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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띠앙과 '사별'을 하고
최근 포털 사이트 '네띠앙'이 인터넷 세상에서 사라졌다. 지난 2000년부터 햇수로 7년 동안 네띠앙을 이용해왔던 사람으로서 아쉬움이 크다. 네띠앙이라는 '건물' 안에 내 홈페이지를 입주시켜 놓고, 그 홈 안에 네띠앙으로부터 지원 받은 게시판도 여러 개를 설치하여 운용을 해온 처지였다. 그러다가 졸지에 네띠앙 건물과 함께 내 홈도 사이버 공간에서 사라지게 되었으니 당혹스러움과 난감함이 컸다.
나는 1995년부터 단순 기종인 워드프로세서로 글을 쓰기 시작했고, 1999년부터 컴퓨터로 글을 쓰다가 2000년부터 인터넷 세상에 뛰어들었다. 딸아이 덕분이었다. 그 해 중학생이 된 딸아이는 아빠에게 네띠앙 이메일 주소를 하나 만들어주더니 홈페이지도 만들어주었다. 여러 날에 걸쳐 홈페이지 작업을 마친 아이는 네띠앙이라는 이름의 사이트를 택해 그 건물 안에다가 내 홈페이지를 입주시켜 주었다.
그러니까 나는 중학생 딸아이 덕에 인터넷 세상을 접하면서 맨 처음 네띠앙과 인연을 맺은 셈이다. 나도 딸아이도 네띠앙이라는 이름을 좋아했다. 여러 개의 포털 사이트 중에서 네띠앙이라는 이름이 가장 예쁘다는 말도 했다. 네띠앙 이용자라는 사실이 '나도 인터넷을 하는 사람'이라는 어떤 자부심 같은 것을 좀더 확실하게 안겨주는 기분이기도 했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1997년 설립된 네띠앙은 개인 홈페이지를 기반으로 한 인터넷 서비스를 처음 시작한 국내 '원조 포털'이라고 한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업계 경쟁이 심해지고 이용자가 줄면서 쇠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 한다.
지난 7년 동안 네띠앙을 이용해 오면서 점점 쇠락의 기미 같은 것을 감지해 왔음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접속을 했을 때 다른 포털 사이트들에 비해 화면이 처음 열리는 속도도 느리고 페이지를 넘기는 일에도 시간이 걸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메일 창을 이용하는데 불편이 따르고, 무수히 쏟아져 들어오는 영문 스팸 메일 등쌀에 기가 질려서 결국은 네띠앙 메일은 아예 이용하지 않게 되었다. 화면이 신속 원활하게 열리지 않는 문제, 메일 창 이용의 불편 등을 겪으면서 네띠앙이 기술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음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그 동안 1세대 포털의 향수를 잊지 못하는 고객들을 중심으로 이용자 수는 적잖았다고 한다. 인터넷 리서치 회사인 '코리안 클릭'에 따르면 네띠앙은 순 방문자 기준으로 전체 인터넷 사이트 가운데 60위권. 한 주에 한 번 이상 방문객이 156만 명에 달했다고 한다.
나는 네띠앙 메일 창은 이용하지 않게 되었지만 홈페이지는 계속 네띠앙 건물에 입주시켜놓고 네띠앙과의 인연을 지속해 왔다. 지난 2003년에는 내 홈페이지가 네띠앙의 '베스트 홈'으로 선정되면서 네띠앙에 대해 좀더 친밀감을 갖게 되었다. 내 홈페이지 메인 화면에 새겨진 네띠앙의 베스트 홈 인증 표식을 볼 때마다 감사한 마음과 함께 네띠앙과의 최초 인연을 되새겨보곤 했다.
그러나 네띠앙은 인터넷 세상에서 끝내 좌초하고 말았다. 네띠앙은 서비스를 중단하면서 이용자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서비스 중단을 미리 알리는 일도 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다. 그래서 피해자도 많은 모양이다. 네띠앙 이용자들 중에는 갑작스러운 서비스 중단 사태에 대해 "최소한의 예의도 없다"며 분통을 터뜨린 이도 많았다고 한다.
나는 네띠앙의 좌초와 함께 갑자기 홈페이지가 사라져 버리는 상황을 맞았지만, 백업이 꼭 필요한 처지는 아니었다. 나는 모든 문서를 로컬 디스크에 저장부터 해놓은 다음 홈페이지의 본 영역 안에 넣거나 게시판에 올리곤 해서 백업을 하지 않을 경우 잃게 되는 문서는 하나도 없었다. 또 홈페이지의 이런저런 게시판이나 방명록에 올려진 방문자들의 글도 모두 그때그때 복사를 하여 문서 방에 보관을 해놓아서 여간 다행이 아니었다.
홈페이지가 영영 사라지게 된 것도 아니었다. 다른 건물에 새로 입주를 하는 식으로, 언제라도 되살릴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홈페이지를 되살린다 해도 예전 같은 형태는 아닐 터였다. 네띠앙에서 지원 받았던 게시판들이 모두 사라진 자리에 다른 포털의 게시판들을 가져다가 다시 설치할 수는 있지만, 새로 설치한 그 게시판들에 예전의 글들을 모두 다시 올린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런저런 문제들을 생각하니 아쉬움과 억울한 마음도 커서 혹 네띠앙을 회생시킬 수 있는 방책은 아예 없는 것일까, 네띠앙의 서비스 중단 사태와 관련하여 정부 당국의 어떤 움직임이 혹 있지는 않을까 기대하는 마음으로 정보통신부에 전화를 걸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전화를 받는 젊은 여성 공무원은 정보통신부와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고 했다. 정보통신부에서는 관여할 수 없는 일이라면서, 경제적 손실을 입게 된 이용자는 민사소송을 할 수가 있으니 그 방법을 알아보라고 했다.
한마디로 어이가 없었다. 안이함과 무책임의 전형을 보는 것만 같았다. 상관을 연결시켜 달라고 할까 하다가 그것 역시 아무 소용없는 일임을 느끼고 전화 받는 일이 주임무인 듯한 젊은 여성 공무원에게 괜한 푸념을 했다.
"포털 사이트의 갑작스러운 서비스 중단으로 수많은 이용자들이 피해를 입게 되었는데, 정보통신부에서는 강 건너 불 구경하는 식으로 팔짱만 끼고 앉아서, 고작 민사소송 어쩌고만 하고 있으니, 그게 정부 기관에서 하는 일이오? 상관에게 내 말을 꼭 전하시오. 아시겠습니까?"
높은 사람에게 직접 그런 일갈을 하지 못한 것이 다소 아쉽기도 하지만, 그래봤자 그것 역시 죽은 자식 불알 만지기일 터였다. 네띠앙은 그때 이미 '사망 신고'를 한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고 생각된다.
이렇게 1세대 원조 포털 사이트 네띠앙은 허무하게 인터넷 세상에서 사라져 버렸다. 7년 이용자였던 나는 네띠앙과의 '사별'을 기정 사실로 받아들이고, 이제는 대학생이 된 딸아이의 도움으로 내 홈페이지를 되살리는 일을 했다.
7년 동안 겨우 3만 명 정도가 찾은 시골 반딧불 문사의 홈페이지가 인터넷 세상에 꼭 필요한 것 같지도 않고, 그래서 겸연쩍은 감도 없지 않지만, 개인 홈페이지 속내의 거창함과 풍요에 찬탄을 한 이들도 있고, 각별한 관심과 애정으로 '즐겨 찾기' 안에 넣어둔 이들도 있어서 내 홈을 되살리기로 마음먹었다.
처음에는 안전성이 높은 유명 대형 건물에 입주를 할까 하다가, 무명에 가까운 시골 반딧불 문사의 홈페이지를 유지하는데 월 1만원 이상의 비용을 들인다는 것이 왠지 겸연쩍게 느껴져서 '아이비호스팅'이라는 아담한 건물에 저렴한 비용으로 입주를 했다.
이렇게 7년 동안 인연을 맺었던 네띠앙과 사별을 하고 아이비호스팅이라는 건물에 입주를 함에 따라 내 홈페이지는 새 주소를 갖게 되었다. 이 기회에 우선 이 지면을 통해 내 홈페이지의 새 주소를 독자 여러분께 알려 드린다. ( http://jiyoha.ivyro.net)
1세대 원조 포털 사이트 네띠앙의 죽음을 안타깝게 여기고, 이용자들의 피해가 하루빨리 해소되기를 바라며, 이 기회에 아름다운 인터넷 문화의 번성을 다시 한번 기원한다.
2006-09-19 14:29 ⓒ 2006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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