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3일 (화)
(백) 부활 제4주간 화요일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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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2.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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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애 [ji5321] 쪽지 캡슐

2022-01-27 ㅣ No.152537

 

(들불은 함지 속에 놓지 않습니다)

2022년 1월 27일

연중 제3주간 목요일

복음 마르 4,21-25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21 말씀하셨다. “누가 등불을 가져다가

함지 속이나 침상 밑에 놓겠느냐?

등경 위에 놓지 않느냐?

22 숨겨진 것도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도 드러나게 되어 있다.

23 누구든지 들을 귀가 있거든 들어라.”

24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새겨들어라.

너희가 되어서 주는 만큼 되어서 받고

거기에 더 보태어 받을 것이다.

25 정녕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미국의 작가이자 소설가인 오 헨리는

사람들에게 늘 친절했다고 합니다.

어느 날 친구와 함께 가게에서

간식거리를 샀습니다.

그런데 계산해주는 점원이 너무나

불친절한 것입니다.

계산하는 물건을 함부로 대하고,

계산하면서도 계속 구시렁구시렁하고,

무엇보다 남은 잔돈을

던지듯이 주는 것입니다.

친구는 이 점원을 보면서

무척 기분이 나빠졌습니다.

그러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항상 친절한 헨리지만,

이 점원에게는 화를 낼 수밖에 없을 거야.’

이런 그의 예상과 달리,

오 헨리는 밝게 웃으면서

고맙습니다.”라고 말하며 가게를

나서는 것입니다친구는 물었습니다.

자네는 그 직원이 그렇게 불친절한데도

왜 예의 바르게 인사를 하나?”

오 헨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합니다.

그 사람 기분에 나까지 휘둘릴 필요는 없지.”

우리는 상대방의 기분이

휘둘리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상대방이 화를 내면 나도 화를 내고,

상대방이 웃으면 나 역시 웃습니다.

그런데 좋은 감정이야 전달되면 좋지만,

나쁜 감정까지 굳이 전달받을 필요가

있을까요그래서 주님께서 어떻게든

사랑하라고 말씀해주셨던 이유를

깨닫게 됩니다남의 감정에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좋은 감정 안에

늘 머무르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오늘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등불의

비유를 보면 조금 이상한 생각이 듭니다.

등불을 가져다가 함지 속이나

침상 밑에 놓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여기서 등불은 비유적으로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가지고 오신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그러니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이

오신 것을 함지로 가리거나 침상 밑에 놓아

숨겨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숨겨진 것도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도 드러나게 되어 있다.”라고

하십니다심판 날에 모든 비밀이

명명백백히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신비가 모두 알려지기에는

시기가 아직 이르고 적절치 않아서 많은

사람에게 가려져 있지만 결국

모든 사람에게 알려지고야 만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의 역할은 분명합니다.

주님을 세상에 알리는 데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 하며동시에 생활 속에서

주님의 뜻인 사랑을 적극적으로

실천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사랑의 실천은 남에게만

좋은 일이 아닙니다.

너희가 되어서 주는 만큼 되어서 받고

거기에 더 보태어 받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시지요주님께서 알아주시기에

더 많은 것을 받게 됩니다.

하느님께 마음을 여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주님을 세상에

알리는 것그리고 주님의 사랑을

세상에 실천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산을 움직이려 하는 이는

작은 돌을 들어내는 일로

시작하느니라(공자)

작은 것에 충실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신학교 입학하고 얼마 안 되었을 때,

아침 미사 후 선배님의 호출을 받았습니다.

아침 식사를 하고서 자기 방에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선배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엄청나게 혼났습니다.

그 이유는 구두가 깨끗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사실 저만 그 선배의 지적을

받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른 후배들도 그 선배에게 지적받고

눈물이 날 정도로 혼났습니다.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 선배는 미사에 온전하게

참석도 하지 않고 후배들의

구두만 보고 있나 싶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 선배의 뜻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일상의 작은 것에 소홀히 하지 않아야

크고 중요한 일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일상을 소홀하게 여기는 사람은 특별한

상황 역시 소홀하게 여기면서

제대로 일할 수 없습니다.

이런 깨달음을 얻은 뒤에 작은 일에도

소홀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주변에서도 작은 일에

소홀하지 않은 사람에게 더 큰 믿음을

갖고 함께 할 수 있게 됩니다.

하느님도 그렇지 않을까요?

(등불을 드신 주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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