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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귀먹고 말 못 하는 이를 치유하시는
방식은 매우 특이하다.
예수님은 손가락을 그의 두 귀에 넣으시고,
손에 침을 뱉으신 다음 그의 혀를 만져 주셨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를 쫓아내듯이(루카 11,20)
막힌 귀를 당신의 손가락으로 뚫어 버리시고,
구약성경에서 침이 부정을 옮기는 수단으로 이해된 것과는 반대로(레위 15,8) 당신의 침으로 굳은 혀를 풀어내시고자 했다.
어찌 보면 예수님의 손가락이며, 침이며 아니 그의 몸 전체가 치유의 능력을 일으키는 매체인 듯 나타난다.
일찍이 하혈하는 여인도 예수님의 옷깃을 잡기만 해도 나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는가?(마르 5,28).
그러나 예수님은 당신의 몸 자체가 신통력이 있는 것이 아님을 보여 주셨다. 치유의 힘은 여인의 믿음(마르 5,34)이거나 예수님 자신의 기도의 힘이었다.
예수님은 하늘을 향해 한숨을 내쉬시며(로마 8,26 참조) 간절히 하느님의 능력에 호소하신 다음 “에파타”라는 말씀으로 하느님이 그를 열어 주시도록 말씀하셨다.
사람들은 저분이 하시는 일은 모두 훌륭하다(자구적으로는 “좋다”)며 “더할 나위 없이” 놀라워했다(마르 7,37).
이는 창조를 마치시고 하느님께서 보시니 모든 것이 좋았다(창세 1,31)고 하신 말씀을 연상시킨다.
예수님의 치유는 일종의 창조행위였던 것이다.
놀라워하다는 표현에 “더할 나위 없이”라는
이중의 최상급 부사가 이 에피소드에서만
유일하게 사용된 것은
귀머거리와 말 못하는 이의 치유가
새 시대에 하느님의 계시 말씀을 듣고 전하는
일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예수님이 당신의 손가락과
침을 치유에 이용하시는 그 정성스러움에
또한 “더할 나위 없이” 놀라워했다.
이 치유 이야기 다음에는 4천 명을 먹이는
빵의 기적 이야기가 즉시 이어지고
5천 명을 먹인 기적이야기는 이미 소개되었다.
거듭된 빵의 기적을 보고도 제자들이
여전히 깨닫지 못하고 있다(마르 8,21)는 것은
빵의 기적을 올바로 알아듣기 위해서는
귀가 열려야만 하고,
그 의미를 올바로 전하기 위해서는
혀가 풀려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오늘의 치유 이야기의
목표는
빵의 기적이 예시하는
성찬례의참뜻을 올바로 받아들이고
선포하는 데에 있다.
이처럼 전인적인 치유를 위한 예수님과의 만남은, 그분의 손가락을 느끼고 그분의 침을 맛보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몸 전체를 받아 모시는 극도의 충격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이제 우리도 사람들로부터 따로 떨어져서(마르 7,33) 그분과 함께 있는 시간을 마련해야 한다.
그분의 사랑 안에서
우리의 닫힌 귀와 묶인 혀가 풀리도록 하자.
● 백운철 스테파노 신부·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