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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우리 기독교인들이 믿는 하느님은 어떠한 분이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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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여향 [cpark] 쪽지 캡슐

2006-09-25 ㅣ No.104642

 

바티칸 고위 성직자들은 9월 24일 베네딕토 16세께서 독일 방문 중 행하신 강론 내용의 핵심을 다음과 같이 재차 천명했다: “하느님은 이성적이신 분, 그리고 이러한 신관에 입각한 기독교 신앙은 합리적 신앙이다. 이러한 합리성 때문에 기독교 신앙은 모든 종교와 문화 현상들의 총체적 이해가 가능하며 그 결과 이들간의 대화와 화해에 중추적 역할을 한다. 따라서 기독교 신앙은 이 같은 대화와 화해를 방해하는 온갖 비합리적 사조를 거부한다. 이러한 비합리적 사조 중 가장 심각한 것은 현 서구 특히 유럽에 만연하고 있는 순수 이성적 사고, 과학 만능주의적 사고로 이러한 사조는 “하느님을 경멸하고 성스러운 것을 조롱하는 것을 자유의 표현”이라 여기고 있다. 유럽은 이 같은 하느님 냉담 사상에서 벗어나 자신의 뿌리인 기독교에 기반을 둔 폭넓은 합리 주의에 복귀할 것을 촉구한다”.

 

바티칸 국무장관 타알시시오 버톤추기경(Cardinal Tarcisio Bertone), 교황청 종교간 대화위원회 의장 폴 포파드 추기경(Cardinal Paul Poupard) 로마의 교황 대리 주교 카밀로 루이니 추기경(Cardinal Camillo Ruini)들을 포함한 이들 성직자들은 특히 교황님의 9월 12일 독일 레겐스부르크 대학에서의 강연은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의 합리적 요소를 배제하려는 역사상의 여러 시도들을 지적 비판하며 기독교 신앙의 합리성을 재차 강조하는데 있었다”고 덧붙여 말했다. 이러한 논리 전개 과정에서, 기독교에 배치되는 한 요소로서 “종교를 폭력적 목표 달성에 이용하려는 시도”역시 잘못됬다는 점을 이해하기 쉽게 하시기 위해 교황께서 지엽적으로 인용하신 것이 중세 한 서적에 나오는 지하드 관련 말인데 이는 강연 전체 내용의 본질에 속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이들 고위 성직자들은 재차 강조했다 (교황께선 강연 중 쎄오돌 코리(Theodore Khoury)란 사람의 책에 나오는 14세기 비잔틴 황제인 마누엘 팔레올로고스와 페르시아 지식인 간에 나눈 대화 내용 중 “회교 전파를 위해 칼을 사용할 수 있다는 코란에 나와있는 구절은  잘못됐다. 사악하고 비인간적인 가르침이다”는 황제가 회교 지식인에게 말한 구절을 인용, 종교 전파에 있어 폭력을 사용해서는 안됨을, 더 나아가 기독교의 하느님은 폭력의 하느님이 아님을 강조하셨었다).

 

이번 기회에 교황님의 레벤스부르그 대학 강연 핵심을 아래와 같이 다시 정리해 보았다:

 

먼저 교황께서 말씀하시는 하느님은 어떠한 분이신지를 살펴보면,

 

하느님은 첫째 우리 이성에 부합하신, 이성적인 하느님이시다. 단순히 칸트가 말한 순수 이성 뿐 아니라 실천 이성, 판단력 이성 등 여타 이성 뿐 아니라 사색, 명상, 관상 등 우리 전 정신, 영적 이성에 부합하신 하느님이시다. 하느님은 우리 이성을 창조하시고 그 활동을 근거지워 주신다. 한마디로 하느님은 이성 자체, 말씀, 로고스로 “창조적 이성 (Creative Reason)”이시다.

 

둘째 하느님은 구약과 신약에 계시되어 있는 하느님으로서 이성, 자비, 사랑의 하느님이시다. 이러한 하느님은 역사가운데 우리에게 오시고 우리 생각과 마음에 뭔가 메시지를 주시며 우리를 사랑해주시고 구원을 위한 대화를 해주고 계시는 분이시다. 또 이러한 하느님은 인격신으로서 예수님을 통해 자신의 본 모습을 드러내셨으며,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신 구원의 하느님, 구세주이시다.

 

교황께선 이러한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가질 때만 우리는 인간, 세계에 대한, 전 존재, 실재에 대한 총체적 인식을 할 수 있다 말씀하신 후, 다음 단계로 이러한 하느님의 합리성을 거부하는 여러 불합리한 신앙이나 사조들을 열거 비판하시고 기독교 신앙의 타탕성을 증명하려 하셨다.

 

교황께선 우선 “기독교 신앙은 성서의 가르침 외에 희랍의 이성적 사고가 본질적으로 본 바탕에 깔려있다, 성서의 가르침과 인간의 이성적 사고가 조화를 이루어 총체를 이루고 있다”고 말씀하시며 요한복음 첫 장을 비롯 여러 구절들을 지적하셨다. 이처럼 성서적 진리와 인간의 이성적 사고가 잘 조화되어 이루어진 신학이 가톨릭의 전통적 신학이며 신앙인데 아우구스티누스에서 토마스 아퀴나스까지 잘 이어져 왔으며 (intellectualism of Augustine and Thomas), 이러한 이성에 기반한 신학은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규범이 되는 가톨릭 정통 신학이다.

 

잘못된 신앙 내지 신앙은 다름아닌 이러한 성서적 진리와 인간의 이성적 사고가 조화를 이루지 못한 신앙 사조들을 말하며 그 첫번째 예가 종교적 극단주의다.

 

이러한 극단주의는 신에 대한 잘못된 생각에 기인한다. 신의 초월성을 지나치게 강조해 신을 우리에게서 완전히 떨어져 군림하는 제왕 같은 존재, 인간적인 모든 범주를 벗어난, 우리가 말하는 합리성의 범주까지 벗어나 그 같은 인간적 생각에 구애 받지 않는 자기 마음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존재, 즉 “완전 자기 의지적 존재”로 보는 신앙내지 신학이다. 이러한 신관 아래에서는 신은 폭력이나 심지어 우상숭배까지도 신이 원하면 인간에게 명할 수 있다. 이러한 극단 주의 신앙은 기독교, 회교 모두에서 찾을 수 있다.

 

기독교의 경우는 중세 말에 나타난 둔스 스코투스(Duns Scotus )의 사상으로 그는하느님의 의지를 지성보다 상위에 두는 ”주의주의 (voluntarism)”를 내세워 신은 인간 의사와는 상관 없이 심지어 비합리적이거나 폭력적인 것일지라도 그가 원하면 하실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회교의 경우 역시 신을 완전 초월적 존재로 보아 인간 의사에 상관 없이 그가 명하는 바를 실천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이러한 생각이 극단으로 흐르면 신은 불합리한 일도 할 수 있다는 극단주의에 빠질 수 있는데 그 예가 회교의 이븐 하즌(Ibn Hazn)의 주장이다.

 

서구에선 칸트에 이르러 하느님은 우리 순수 이성으로 파악 할 수 없는 대상으로 간주되어 합리적 탐구 대상에서 제외되었으며 그 흐름이 현대의 과학 지상주의에까지 이어져 하느님 소외는 그 극에 이르고 있다. 16세기 종교 개혁자들 역시 신학에서 철학적 요소를 배제하여 성경의 하느님 말씀에만 중점을 두는 ‘오직 성서’라는 근본주의적 입장을 택했다.

 

이러한 성서 유일 주의는 19, 20세기의 서구 자유주의 신학에서 심히 왜곡되어 나타났는데, 그 대표적 인물이 아돌프 폰 하르낙(Adolf von Harnack) 이다. 하르낙은 성서를 하느님 말씀, 계시의 기록으로 보지 않고 인간이 작성한 일종의 도덕, 교훈서로 보는 역사적 현상학적 성서 해석 사조에 기초하여 예수님을  신이 아니라 인간으로, 역사상의 도덕 군자들 중 하나로 본다. 성서를 단순한 인간 사상의, 도덕적 가르침의 기록으로, 예수님을 단순한 인간으로 간주하는 이 같은 역사 현상학적 해석에 바탕을 둔 자유주의 신학은 “철학자의 하느님과 성서의 하느님(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느님)을 구분한 파스칼 사상, 신학에서 이성, 철학적 요소를 분리한 그의 사상을 출발점으로 삼고 (Pascal's distinction between the God of the philosophers and the God of Abraham, Isaac and Jacob)있으며 신앙, 신학에서 이처럼 이성적 요소가 배제된체 극단으로 흐름으로서 하르낙 같은 극단주의적 잘못된 신학이 태동한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 신학에서 이성적 요소를 제거하려는 이러한 시도들은 그 자체 모순을 담고 있는데 이유는 “하느님은 로고스이시다”로 시작하는 요한 복음에서 보듯 기독교 신앙은 창조적 이성인 하느님을 기반으로 한 이성적, 합리적 종교이며, 또 이미 신,구약 성서들 자체 안에 이미 희랍적 요소 즉 이성적이며 합리적 요소, 철학적 요소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과학 만능 주의에 빠져있는 현 서구 문화 역시 인간 인식 능력을 순수 논리적 이성만으로, 또 그 취급 대상을 경험적으로 확증할 수 있는 대상, 존재만으로  한정하는 자기 제한 때문에 인간과 세계 안의 전 존재, 전 실재에 대한 총체적 이해가 불가능하다.

 

바로 여기에 기독교 신앙, 신학이 필요한 이유가 있다. 기독교 신학은 순수 이성의 대상인 과학적 대상을 포함한 인간, 세계 안의 전 존재, 전 실재를 대상으로 그 의미와 기원 목적에 대한 해답 제공을 목적으로 한다. 즉 순수 이성을 포함한 인간의 모든 이성적, 영적 능력을 필요로 하는 실재 전반에 대한 이해와 해답을 제공하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과학 지상주의에 기반하여 종교를 도외시하는 현대 서구 문화는 실재 전반의 이해를 위한 사상이라 할 수 없으며 종교성이 본질적으로 내제되어있는 여러 다양한 문화를 이해하고 대화를 나누기에도 불가능하다. 이 같은 자기 한계를 극복하고 다양한 문화, 종교와의 대화 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종교가 말하는 진리를  포용하고 이해해야, 특히 자신의 뿌리가 되어 온 기독교 문화를 되찾아야 한다.

 

기독교에선 하느님의 창조적 이성과 인간 이성 사이에는 유사함이 존재한다고 가르친다. 또 하느님께서는 이성 자체, 즉 로고스(Logos)로서 이성적, 합리적이신 분이시며 우리를 위한 사랑이 그분의 본질이시며 사랑은 지식을 ‘초월”하며 지식 이상의 것을 파악, 께달을 수 있다고 가르친다 (에페소서 3장 19절).

 

결론적으로 그리스도 신앙은 영원한 말씀(이성, 로고스 차체이신 창조적인  하느님 이성)및 우리 인간 이성과 조화를 이루는 그러한 신앙, 이성에 부합하는 신앙이다 (로마서 12장) (As opposed to this, the faith of the Church has always insisted that between God and us, between his eternal Creator Spirit and our created reason there exists a real analogy, in which unlikeness remains infinitely greater than likeness, yet not to the point of abolishing analogy and its language (cf. Lateran IV). God does not become more divine when we push him away from us in a sheer, impenetrable voluntarism; rather, the truly divine God is the God who has revealed himself as logos and, as logos, has acted and continues to act lovingly on our behalf. Certainly, love "transcends" knowledge and is thereby capable of perceiving more than thought alone (cf. Ephesians 3:19); nonetheless it continues to be love of the God who is logos. Consequently, Christian worship is "logic latreía" -- worship in harmony with the eternal Word and with our reason (cf. Romans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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