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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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부활 제2주간 목요일...독서,복음(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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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군 [ahyin70u] 쪽지 캡슐

2022-04-27 ㅣ No.154712

1독서

<우리는 이 일의 증인입니다. 성령도 증인이십니다.>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5,27-33
그 무렵 경비병들이 27 사도들을 데려다가
최고 의회에 세워 놓자 대사제가 신문하였다.
28 “우리가 당신들에게 그 이름으로 가르치지 말라고 단단히 지시하지 않았소?
그런데 보시오, 당신들은 온 예루살렘에 당신들의 가르침을 퍼뜨리면서,
그 사람의 피에 대한 책임을 우리에게 씌우려 하고 있소.”
29 그러자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였다.
사람에게 순종하는 것보다 하느님께 순종하는 것이 더욱 마땅합니다.
30 우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이 나무에 매달아 죽인 예수님을 다시 일으키셨습니다.
31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영도자와 구원자로 삼아
당신의 오른쪽에 들어 올리시어,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죄를 용서받게 하셨습니다.
32 우리는 이 일의 증인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께 순종하는 이들에게 주신 성령도 증인이십니다.”
33 그들은 이 말을 듣고 격분하여 사도들을 죽이려고 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주해

28

4.18 참조. “사도들을 불러들인 다음 절대로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명했다.”

 

마태 27.25 참조. “그의 피는 우리와 우리 자식들이 감당할 것입니다.”

 

29

베드로의 답변은 다른 선교설교들에서처럼 서론, 선포문, 증인들인 사도들 순으로 짜여져 있다.

 

30

나무에 달아는 신명(LXX)221.22-23의 영향을 받은 표현으로서 사도 10.39; 갈라 3.13에도 나온다.

 

31

루카는 새로 내어나신 예수, 부활하신 예수를 구원자라고 한다.

 

32

성령이 증인이라니 무슨 뜻일까? 예수의 삶과 죽음 부활과 승천을 증언하는 사도들에게 성령이 깨달음과 용기를 심어 주었다는 뜻이다. 성령이 증언한다는 말이 1요한 5,6-8에 나온다. “.. 영을 증언하는 분이시니, 사실 영은 진리이십니다. 증언자는 셋이 있으니, 곧 영과 물과 피이며, 이 셋은 일치합니다.”

 

33

사두가이들은 죽은 이들의 부활을 믿지 않았다. 따라서 그들은 예수 부활 선포를 매우 못바땅하게 여긴 나머지, 사도들을 박해하는 데 앞장섰다. 그들과는 대조적으로 죽은 이들의 부활을 믿은 바리사이들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위화적인 입장을 취했다.

 

여기 가므리엘은 가므리엘 1세로서, 기원 전후 무렵 가장 유명한 율사 힐렐의 손자다. 22.3에 따르면 그는 바오로의 스승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루카가 바오로를 충실한 유다교인으로 묘사하려고 한 나머지 만들어진 허구에 불과하다는 설이 있다.

 

 

 

 

 

 

 

 

복음

<아버지께서는 아드님을 사랑하시고 모든 것을 그분 손에 내주셨다.>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3,31-36
31 위에서 오시는 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신다.
땅에서 난 사람은 땅에 속하고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는데,
하늘에서 오시는 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신다.
32 그분께서는 친히 보고 들으신 것을 증언하신다.
그러나 아무도 그분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33 그분의 증언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하느님께서 참되심을 확증한 것이다.
34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하신다.
하느님께서 한량없이 성령을 주시기 때문이다.
35 아버지께서는 아드님을 사랑하시고 모든 것을 그분 손에 내주셨다.
36 아드님을 믿는 이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그러나 아드님께 순종하지 않는 자는 생명을 보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진노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게 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주해

계시자이신 예수

이 대목은 13-21절과 함께 예수의 자기계시에 관한 저자의 복음선포적 해설로 여겨진다. , 니고데모와의 대화에서 예수가 던진 질문(12)에 연결된 저자의 복음선포 내용으로 본다. 예수의 계시 말씀이 저자의 복음선포적 증인형식으로 보도된다.

 

31

위에서 오시는 분하늘에서 오시는 분과 함께 예수를 가리킨다. “하늘에서 내려온 사람의 아들”. 천상적 계시자요 증인, 아버지로부터 사랑받는 유일무이한 아들과 맥락이 같다. “모든 이땅의 것에 얽매여 인간적 한계와 역점에 놓인 지상 인간 모두를 가리킨다. , “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한 땅에서 난 이를 뜻한다. “가 구별되듯이 위에서 오시는 분땅에서 난 이도 대립된다. 그러나 여기서는 대립적 존제상황보다 천상과 지상의 엄청난 거리가 시사되며 천상과의 관계 속에서 지상이 상대한다.

 

32

예수의 증언/ 곧 계시 말씀이 천상적인 것임을. 즉 자기를 파견한 하느님의 것임을 언급한다. 예수의 계시는 하늘에서 직접 유래하므로 그 자체로 참된 증언임도 시사된다. 따라서 이 증언은 진리로서도 표현된다.

 

천상적 참된 증언, 즉 하느님의 유일무이한 이들의 증언인데도 거절당했다는 사실이 강조된다. 저자의 슬픈 체험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33

계시된 증언을 받아들이는 자는 하느님이 진리를 말씀하신다는 것을 확실히 보증한다. 증언된 진리와 구원 약속의 확실성은 하느님의 진실성에 속하고, 하느님의 계시를 받아들이는 자는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며 하느님의 말씀 자체대로 이루어지게 하기 때문이다. 예수의 증언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하느님의 말씀과 약속을 인정하고 그 약속대로 결실을 맺음을 뜻한다.

 

34

하느님의 예수 파견은 구약 예언자들과 달리 예수 자신이 직접 하느님의 말씀을 한다는 뜻에서 새롭고 유일무이한 파견이라는 의미도 내포한다. 예수의 말씀을 들음은 곧 하느님의 말씀을 들음이다.

 

하느님이 파견된 자에게 어떠한 제한도 없이 을 충만히 주신다는 뜻이다. 하느님은 자신의 풍요로움 속에 성령을 한량없이 주심으로써 당신이 파견하신 예수의 말들을 성령이 충만한 신적 말씀들로 만드신다. 따라서 예수의 증언이나 계시는 더없이 완전하고 결정적이다. 문법적으로 볼 때,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된 예수 자신이 믿는 자들에게 측량하지 않고서 영을 주시기 때문입니다라고 번역할 수도 있다. 두 번역 모두 문맥상, 내용상 가능하고 모순되지도 않는다(1.33 참조).

 

35

하느님과 예수의 관계가 아버지와 아들의 밀접한 결속관계로 언급되면서 아버지의 사랑이 강조된다. 측량하지 않고서선물로 주어진 사랑이며,“모든 것을 그의 손에 밭겨주는사랑이다. “손에 맡긴다는 권한을 넘긴다는 뜻이다. 여기서는 계시할 권한을 구체적으로 가리킨다. “모든 것은 계시할 모든 진리를 가리킨다.

 

36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된 예수 그리스도, 아들을 믿음으로써 구원을 얻게 된다는 뜻이다. 여기서 믿음은 계시자의 구원 약속을 받아들이는 것뿐 아니라 그 계시자를 실제로 따르는 것까지도 뜻한다. 즉 믿음은 어떤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계시자와 인격적 결속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삶이다. 요한복음에서 믿음이라는 명사 대신 믿는다란 동사만 사용된 것도 바로 그런 뜻을 시사한다. 믿는 자에게는 그리스도 안에서 신적 삶이 직접 가능하고 구원이 현재형이다.

 

아들에게 순종하지 않는다란 믿지 않는다는 뜻이다. “생명을 보지 못한다하느님의 나라를 보지 못한다와 같은 뜻으로 하느님의 생명 영역, 곧 구원에서 제외된다는 의미다.

 

하느님의 진노는 일반적으로 종말론적 하느님의 심판을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지금 여기서이루어지는 심판의 의미로 사용된다. 아들을 믿지 않는 자는 하느님의 심판 아래 머무는 자라는 것이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 분도출판에서 옮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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