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27일 (수)
(녹) 연중 제8주간 수요일 보다시피 우리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다. 거기에서 사람의 아들은 넘겨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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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니(penny) 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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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선 [johnmaria91] 쪽지 캡슐

2022-05-09 ㅣ No.100911

 

Penny 줍기

 

 

 

정확히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다.

내가 미국 화폐단위 중 가장 그 가치가 작은

penny를 줍기 시작한 것은.

 

penny는 존재하기는 하지만

그 존재 가치는 거의 없는 동전이다.

주머니에 penny가 몇 개 있다는 건

거추장스러움을 더 할 뿐,

돈이 내 주머니 속에 있다는 소유의 뿌듯함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는 걸 의미할 뿐이다.

 

30 년이 훌쩍 넘었지만 미국에 처음 왔을 때에도

거리에서 구걸하는 사람들이 원하는 최소 단위는 Quarter(25센트)였다.

 

"Do you have a quarter?"

 

지금도 Quarter는 주차기 미터에 넣을 수도 있고

자판기에 사용할 수도 있지만

penny를 필요로 하는 곳은

잔돈 계산 외에는 거의 없다고 보아도 괜찮을 것 같다.

잔돈으로 Penny를 받을 때

안 받으면 손해 보는 것 같아 섭섭하고,

받으면 귀찮은 존재가 바로 penny인 것이다.

 

있어도 누구도 원하지 않는 존재가 바로 penny다.

 

그런데 요즈음은 Quarter를 요구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30 년이 넘은 세월이 흘러서인지

인플레이션의 영향 때문에 구걸하는 액수가

1 달러가 보편화되었고,

때론 아주 특이하게 2 달러를 당당하게 요구(?)하는 사람도 적지 않게 보았다.

 

사정이 이러할진대 길에 떨어진 penny는

1 달러를 구걸하는 사람의 눈에도

아주 하찮은 존재여서

허리를 굽혀 주우려는 노력을 아예 하지 않게 만든다.

 

말하자면 penny는 존재는 하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아니, 존재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지도 모르는

아주 불쌍하고 비참한 신세를 가지고 세상을 떠돌거나

잊힌 존재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길에  떨어져 있어도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한다 보니

penny의 외모는 때가 몇 겹이나 묻어 있거나

파랗게 녹이 슬어 있어서

쉽사리 손을 대기에도 엄두가 나질 않는다.

 

그런데 나에게 penny를 줍는 습관이 생겼다.

그것은 아무래도 세 번째 손주인 Penny가 태어난 뒤부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Penny의 엄마인 큰 딸이

새로 태어난 아이의 이름을 Penny라고 할 것이라는 통보를 받고

사실 속이 많이 상했다.

 

-세상에 많고 많은 여자 아이의 예쁜 이름이 있는데

하필이면 Penny가 뭐람?-

 

딸과 사위가 원망스러웠다.

그렇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새로 태어난 아이의 이름을 짓는 주도권은

아이의 부모에게 있는 것이니 말이다.

한 다리 건너 있는 나에게는 아무 권한이 없었다.

 

큰 딸 부부는 두 사람 모두가
'비틀스'의 광팬이다.

그래서 아이들 이름도 비틀스 노래의 가사 중에 등장하는

사람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첫째 손녀는 Sadie이고

둘째인 손자는 Desi(Desmond),

그리고 셋 째가 바로 Penny(Penelope)이다.

 

나는 비틀스를 알고 그들의 노래를 몇 곡을 알기는 하지만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러니 아이들 이름이 어느 곡에 등장하는지

관심도 없다.

 

그러나 셋째 손주의 이름이

Penny로 지어진 것은 내가 되돌릴 수가 없는

운명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화폐 단위에서도 가장 하찮은 penny와 같은

이름을 나누어 갖게 된 우리 셋째 손녀를 생각하면서

나는 길거리나 세탁소 바닥에 떨어져 있는

동전 penny를 줍기 시작하기 시작한 것 같다.

 

세상에 태어난 어떤 사람도 고귀하다는 말을 들으며 살아왔지만

최근까지도 그 말을 곧이듣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 셋째 손녀의 탄생은

'Penny'의 가치를 다시 생각할 기회를 갖게 해 주었다.

 

-세상의 그 누구도 가치 없이 태어난 사람은 없다.-

 

나는 오늘도 penny 줍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penny'를 주우며 손녀  'Penny'를 떠올릴 것이다.

외모나 인종, 빈부귀천, 종교를 떠나

모든 사람들은 평등하고 존귀하게 태어났음을

노골적으로는 아니어도 마음 한 구석에서는 부정하던

지난날을 참회하며

정성스레 가게 바닥을 쓸 것이다.

그리고 눈에 띄는 페니를 

허리 굽혀 주우며 하루를 열 것이다.

 

https://blog.daum.net/hakseonkim1561/2710#none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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