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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순신을 전라좌수사에 천거힌 유성룡의 징비록 비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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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연의 책과 지성] "임진왜란을 생각하면 부끄러워 몸을 지탱할 수 없다." 국정 최고위직이 쓴 기록문학 '징비록' 남긴 명재상. 유성룡의 '징비록(懲毖錄)'은 서책으로는 드물게 국보로 지정된 유물이다. 임진왜란 전후 동북아시아의 외교 상황, 전투 기록, 백성들의 생활상까지 다루고 있는 '징비록'은 기록문학의 백미다. 당대 국정의 최고 책임자였던 영의정의 저술이라는 점도 의미가 있다. 31세라는 늦은 나이로 병과에 급제해 종9품에 오른 늦깎이 이순신은 출세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그는 자존심이 강하고 성품이 고상해서 생전 누구를 찾아가 자기 안위를 부탁할 줄도 몰랐고, 현세욕에 사로잡힌 잡배들과 어울릴 줄도 몰랐다. 조정에서는 이순신을 추천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는 무과에 오른지 10년이되도록 벼슬길에 오르지 못햇다. 내가 순신을 천거해 전라좌수사에 임명되자 사람들은 그가 갑작스레 승진된 것을 의심하였다. 이런 이순신을 가장 안타까워한 사람이 유성룡이었다. 그는 이순신보다 세 살이 위로 이순신의 형 이요신과 친구였기 때문에 이순신의 자질을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었다. 이후 유성룡은 수차례 이순신을 천거하다 오해를 받는다. 이때 이야기가 '징비록'에 이렇게 적혀 있다. 남인이었던 이순신과 유성룡은 반대파들에게는 눈엣가시였다. 둘의 정치적 부침도 비슷하다. 부드러움과 단호함을 동시에 지닌 성품, 균형 있는 외교관(觀), 원칙을 버리지 않는 용기, 신분이나 당파보다 능력을 중시한 실용정신, 성리학자면서도 다른 이론을 배격하지 않았던 열린 자세 등은 많은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는 유성룡의 매력이다. 출처; 매일경제 2023년5월7일자 칼럼 [허연 문화선임기자] 글옮긴이~늘 덜익은 초승달, 李도희(아오스딩) 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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