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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화 데레사는거룩한 얼굴을 어떻게 발견하였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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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얼굴과 아기예수의 소화 데레사 축일을 맞이하여 축일 맞이하시는 모든 데레사 본명분들에게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성녀의 친언니이자 수녀원장이셨던 예수의 아녜스 수녀의 시성조사 공술을 통해서 성녀의 성면신심을 알았봅니다. 소화 데레사는거룩한 얼굴을 어떻게 발견하였는가 『예수 아기의 데레사를성녀로 꽃피운 한 가정 이야기』1990 성요셉 출판사 420쪽 발췌 “성면聖面의 발견” • 정식적 고뇌라는 아픔으로 인해 자매들(Lisieux의 가르멜회에5명의 수녀- Marie (1860-1940) : 성심의 마리아 수녀;1886.10.15. 입회. Pauline(1861-1951):예수의 아녜스수녀;1882.10.2.입회.Celine(1869-1859);성면(聖面)의 쥬느비에브수녀;1894.9.14.입회.-Therese(1873-1897):아기예수와성면(聖面)의 떼레즈수녀;1888.4.9.입회.)은 모두 성장하여 갔다. •“데레사는가르멜에들어간 후 아버지의 뇌질환으로 우리가 큰 시련을 겪고 있을 무렵 수난의 신비에 한 층 더 끌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수도명에 ‘성면聖面’을 붙이게 해 달라고 청한 것도 이 때였습니다.” 이 신심은 리지외가르멜에서중시해 왔는데 이 수도원을 창설한 쁘와티에의가르멜에서이어받은 것이며, 그 또한 뚜르(Tours)의가르멜수도원에서 전승받은것이었다. 당시 수도원장이었던대 데레사의 쥬느비에브수녀는 성 베드로와 성가정의 마리아 수녀에게 준 주님의 계시를 1847년에 알게 됨으로써 성면에신심을 바치는 사람들에게 내리는 주님의 약속들을 귀중하게 받아들였다. 데레사는1889년 2월 12일을 주님이 당신의 작은 정배에게 주신 은혜의 날 중의 하루로 생각하고 우리들의 ‘큰 보물’이라고 부를 정도였다. 여기에 예수의 아녜스수녀(폴린 마르탱 가르멜수녀원장으로 선출됨)는 주님의 종인 데레사에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여 행복의 참 뜻을 보다 깊이 파헤치며 우리들을 부르고 있다. •“데레사는가르멜에들어간 후 아버지의 뇌질환으로 우리가 큰 시련을 겪고 있을 무렵 수난의 신비에 한 층 더 끌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수도명에 ‘성면聖面’을 붙이게 해 달라고 청한 것도 이 때였습니다.” 이 신심은 리지외 가르멜에서 중시해 왔는데 이 수도원을 창설한 쁘와티에의 가르멜에서 이어받은 것이며, 그 또한 뚜르(Tours)의가르멜 수도원에서 전승받은것이었다. 당시 수도원장이었던대 데레사의쥬느비에브수녀는 성 베드로와 성가정의 마리아 수녀에게 준 주님의 계시를 1847년에 알게 됨으로써 성면에 신심을 바치는 사람들에게 내리는 주님의 약속들을 귀중하게 받아들였다. •이 중에 여섯 번 째의 約束이 특히 관상적 영혼들을 끌었다. “경건한 베로니카처럼,죄로 모욕을 당하고 더럽혀진 내 성면聖面을 닦아주는 자들에게 그 보상으로 내 얼굴을 그들의 영혼 안에 새겨줄 것이다.(거룩한 얼굴 봉헌자들에 대한 6번째 약속)” 그래서 수도원장은 리지외에 참회와 속죄 신자단을 설립하기 위한 움직임을 주교님께 급히 서둘렀고, 성당에는 당시 뚜르Tours의 거룩한 성인인 뒤뽕씨가 널리 보급하였던 인상적인 성면의 그림을 내걸었다. 데레사는수도생활의 초기부터 이 신심을 깨닫기 시작하였다. “지금까지 성면안에 숨겨진 보배로운 깊이를 잘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이 거룩한 것을 나에게 가르쳐 주신 분은 나의 어머님 아녜스원장이셨습니다. 우리 세 자매 중에서 제일 먼저 가르멜에 입회한 것과 마찬가지로 천상배필의 거룩하신 얼굴 안에 숨겨져 있는 사랑의 신비도 제일 처음 깨치셨습니다. 그로 인해 어머니는 이 신비를 제게 알려 주셨고 저는 그것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아직 초보에 지나지 않았다. 1888년부터 89년에 걸쳐 짓누르는 듯한 고뇌가 이제 막 싹을 내리기 시작한 신심에 번개처럼 예리한 빛을 조명했다. 노쇠하여 허리가 굽은 채 두꺼운 천으로 얼굴을 가리우고 뷔소네 정원을 가로질러 가시는 아버지의 예언적 환시 직후 느꼈던 불안은 멀지 않아 그 실상이 드러나리라는 예감을 주었다. 그렇지만 마르탱씨가 병에 걸렸을 때에야 비로서 그녀가 옛날에 보았던 것을 두러움속에서 현실로 보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이제 시야를 넓혀 그처럼 자애 깊고 고귀하며 거룩한 아버지가 무거운 집에 짓눌려 묵묵히 걸어가시는 모습과 지극히 훌륭하시고 의인이신 예수님께서 영광을 빼앗기신 채 더럽혀지고 상처투성이로 마치 문둥병자처럼 다가왔다. “마치 수난 중에 예수님의 성면이 가리워지듯 주님의 충실한 종의 얼굴도 후에 천국에서 한층 더 찬란히 빛나기 위해 괴로움과 부끄러움의 날 들 속에 감추어질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시련에서 데레사의 영성을 비추는 한 가닥의 빛이 흘러나왔다. 그녀는 이사야서로 무장되었다고 보일 만큼 그 53장의 아름다운 서문을 옮겨 셀리나에게보냈다. ”그러니 우리들에게 들려주신 이 소식을 누가 곧이 들으랴? 야훼께서 팔을 휘둘러 이루신 일을 누가 깨달으랴? 그는 메마른 땅에 뿌리를 박고 가까스로 돋아난 새 순이라고나할까? 늠름한 풍채도, 멋진 모습도 그에게는 없었다. 눈길을 끌 만한 볼품도 없었다. 사람들에게 멸시를 당하고 퇴박을맞았다. 그는 고통을 겪고 병고를 아는 사람, 사람들이 얼굴을 가리우고 피해 갈 만큼 멸시만 당하였으므로 우리도 덩달아 그를 업신여겼다. 그런데 실상 그는 우리가 앓을 병을 앓아 주었으며, 우리가 받을 고통을 겪어 주었구나. 우리는 그가 천벌을 받은 줄로만 알았고 하느님의 매를 맞아 학대받는줄로만 여겼다. 그를 찌른 것은 우리의 반역죄요, 그를 으스러뜨린 것은 우리의 악행이었다. 그 몸에 채찍을 맞음으로 우리를 성하게 해주었고 그 몸에 상처를 입음으로 우리의 병을 고쳐 주었구나.” (이사야 53, 2~5 고통받는 야훼의 종의 모습)
• 수녀는 이러한 감동적인 구절을 묵상하고 이것으로 양육되었으며 이것으로 살아갔다. ‘사람의 아들’은 무한한 업신여김을 당하고 비천한 모습으로 수녀의 눈 앞에 계셨다. 수녀는 주님의 이러한 겸허의 절정이 우리들의 구령의 댓가임을 깨쳤다. 그리고 데레사의 생각은 착한 구세주 병원에 계신 그리운 아버지(성 루이 마르탱,부인 젤리 마르탱과함께 2015년 10월 18일 부부가 시성되심)에게로 옮아 갔다. 사람들의 눈에는 비참하지만 하느님의 성심에서 볼 때 큰 사랑을 받고 계시는 아버지의 고통은 또 다른 형태의 얼굴을 드러내고 있었다. 한 마디로 구원의 업적으로 밖에는 생각되지 않았다. 굴욕은 초자연적인 결실의 필수의 조건인 것이다.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고통으로 천만 번 바수어지고 세상 사람이 그에 대해 무어라 한들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가시관에 싸인 주님의 성면聖面이야말로 예수님의 신비를 푸는 열쇠가 되었다. 데레사의 생애에서 ‘발견하다’는 이 말이 뜻하는 바는 어제까지 알고 있었다 해도 그 전부를 탐구해 보지도 않았고 이용해 보지도 않았던 어떠한 진리를 성령의 불화살로 인해 마음 깊이 생생한 원칙으로 새겨 주시는 성령의 예리한 활동을 가리키는 의미로서 그 중요한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성인 자신이 이렇게 단언하여 말하였다. “이사야 예언자의 이 말씀은 거룩한 얼굴께 대한 내 자신의 신심의 근거라기보다는 한 발 더 나아가 내 모든 신심의 뿌리입니다.” 또 예수의 아녜스수녀(폴린)는 시성 조사 때(1921 베네딕토 15세 가경자 선포~1923. 4.29 비오 11세 교황 시복 : 내년 시성 100주년 1925. 5. 17 : 비오 11세에 의해 시성)의 공술에서 이렇게 증언하였습니다. “주님의 종인 데레사수녀에게 거룩하신 얼굴께대한 헌신은 특히 마음으로부터 끌리는 것이었습니다. 아기 예수께 대해서도 대단히 애정 어린 신심을 갖고 있었지만 성면께대한 신심과는 비교할 바가 아니었습니다. 이 성면은그가 사랑의 학문을 길어낸 묵상 책과도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성면께대한 묵상을 통해 그는 겸손을 배웠습니다.” 이 주제는 끊임없이 소화 데레사의시에 나타나고 있다. 성녀는 성면께찬가를 바쳤고 또 성면을자신의 문장 紋章속에도 넣었다. 그리고 수련자들의 봉헌과 자신을 위한 기도의 대상으로도 삼았으며 이것을 제의에 그림으로도 그렸고 성무일도서의 책꽂이로도 했으며 묵상 중에 바라보았고 병중에는 침대 옆에 걸어 두기도 하였다. 데레사는자매들의 시련이 극도에 달했던 시기를 보내고 나서 가르멜성당의 성면성화아래에 감사와 자식으로서의위탁의 외침으로 이런 금문자를 새겨 놓았다. •Sit NomenDomini bendeictumF.M 1888 (주님의 이름은 찬미 받으소서! 마르탱가 家 1888년) ‘예수 아기의 데레사를성녀로 꽃피운 한 가정 이야기’ 성요셉 출판사 1990. •이렇게 할 정도였던 데레사는성안聖顔또는 성면聖面즉 예수님의 거룩한 얼굴을 통해서 하느님의 얼굴을 발견했던 것이다.•
"그분의 얼굴은 나의 빛이요,숭배의 대상입니다." 데레사는그리스도의 인성人性을 나타낸 거룩하신 얼굴을 통해 성부 하느님의 얼굴을 바라보았는데, 바로 그 얼굴 속에 그분의 고통의 흔적과 더불어 그 분의 신성神性이 반영되어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라고, 데레사는다음과 같이 자신의 시로 말한다. ‘거룩한 얼굴’께 바치는 ‘소화 데레사성녀’의 기도 “오 !예수님 !당신의 쓰라린 수난 PASSION중에 예수님께서는 가장 비참한 슬픔의 사람이 되셨습니다. 저는 당신의 성스러운 얼굴을 흠숭합니다. 천주성의 아름다움과 감미로움으로 빛나던 그 얼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손상된 얼굴에서 저는 예수님의 무한한 사랑을 깨닫고 예수님을 사랑하고 모든 이들로부터예수님께서 사랑받으시게 하려는 열망passion으로 불태워집니다. ‘예수님의 거룩한 눈’에서 흘러넘친눈물은, 제가 사랑으로 모으려는 값비싼 진주이며!불쌍한 죄인들의 영혼을 구원하시려는, 무한한 가치를 지닌 수단입니다! 오 ! 예수님 ! 당신의 ‘흠숭하올 얼굴'이 제 마음을 황홀케 하며, 예수님 당신께 간청하오니제 안에 ‘예수님의 신적 형상’을 깊이 새겨주소서! ‘예수님 사랑’으로 저를 불태우소서! 그리하시면 천국 영광의 예수님의 ‘거룩한 얼굴’을 제가 뵈올 수 있으리이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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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해서 그를 바라볼 때, 그의 어깨나 등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사랑을 확인하는 것과 같이 데레사도 사랑하는 님의 얼굴을 바라보듯이 그분을 사랑했고, 인간의 모습을 한 예수님의 얼굴과 마주함으로써 성부 하느님의 사랑을 마음으로 느끼고자 했던 것이니, 이 관상적인 차원의 성면신심이 데레사에게는 수도 생활속에서 하느님과의 대화 통로가 되었다. 즉 길 진리 생명이신 예수님께서 직관적인 사랑의 샘을 쏟아 주신 것이다. 이것은 바로 생활하시는 삼위일체께서 데레사의 영혼에 주입하신 것이면서 신속하게 골수로 흘러내리는 하나의 활기차고 기쁨이 넘치는 마르지 않는 샘 즉 성체성사안에서 깊어졌다.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 (1 요한 4,16)” 성체성사적인 거룩한 얼굴 신심을 생활화한 데레사는짧은 생애를 새로운 작은 길로 들어서 성령의 바람에 의탁하여 주님께서 홀로 가셨던 골고타십자가의 정상에 다다르며 또 하나의 그리스도 즉 현대인의 구원의 빛이 되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 (1 요한 4,16)” 이 모든 것이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리려고 한 것이었다. 데레사는복음을 읽는 것도 사랑하는 그분의 성격을 더 잘 알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러니 복음을 실행하는 것 역시 사랑하는 그분의 말씀을 따르는 길이 아니고 무엇이랴! •리지외의성녀 소화 데레사가보편교회의 `사랑의 교회학자’가 되신 것은 그가 단순히 애덕실천에 뛰어났기 때문만이 아니라, 완덕完德에 이르는 지름길이 바로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온전히 따르시려하신 그리스도의 얼굴안에서 성부 아버지의 얼굴이 있다는 것을 성령의 도우심으로 발견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완덕에이르는 길, 다시 말해서 교회학자 성인이 되는 것은 기적이나 예언을 한다든지, 혹은 신학적인 업적이나 세상의 명성을 얻는 것이 아니라, 일상 생활에서 매일 당하는 고통이나 어려운 일들을 통해서 하느님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으로 그분을 기쁘게해 드릴 수 있다는 사실을 데레사는보여 주었던 것이다. - `작은 꽃' 데레사는 또한 작은 것의 의미를 강조하면서 이렇게 기도했다. "저를 하늘까지 올려줄 승강기는 오! 예수님, 당신 팔입니다. 당신 팔을 타고 올라가려면 저는 커질 필요가 없을뿐더러오히려 작은 채로 있어야 하고, 점점 더 작아져야 합니다.“ 데레사는 또 사랑하며 고통을 겪는 것이 행복 중에서도 가장 순수한 행복이라고 단언한다. 그가 남긴 마지막 시에 이런 진주가 박혀 있다. "사랑하며 고통을 겪는 것은 가장 순수한 행복입니다." 이 시는 `데레사의사도신경' 이라고 까지 말하는 이가 있는데, 성모님의 고통을 관상하고, 이 관상에서 자기 고통의 정당성과 이 고통을 기쁨으로 튀어오르게하는 발판을 데레사는발견한 것이다. 세상 사람들의 고통, 희망없는고뇌, 부조리한 혼돈상태 같은 것, 불의 앞에서 겪는 고초, 냉혹한 인간생활의 율법 앞에서의 저항, 이 모든 것을 참고 견뎌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데레사는차분하게, 그러면서도 담대하게 노래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행복이라고 우리에게 일러주고 있는 것이다. •- 방송작가 최 홍준 파비아노 계시글에서 발췌함-
아무쪼록 데레사 성녀의 놀라운 거룩한 얼굴 신심 발견을 우리도 성녀축일이자 올 해 로사리오 성월 첫날 체험 하셨으면 바랍니다. 관련 자료는 예수님의 거룩한 얼굴 - Daum 카페예수님의 거룩한 얼굴 - Daum 카페 예수님의 거룩한 얼굴 - Daum 카페 다시한번 데레사 축일 축하드리면서 이만 줄입니다. 감사드립니다. 묵주기도 성월 많은 은총받으세요.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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