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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노트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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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식 [goodactor] 쪽지 캡슐

2024-11-28 ㅣ No.232412

진주 클라스 1

사람은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존재이다
그런 사람의 성격을 보통 자유라고 한다
하고 싶은 이야기, 하고 싶은 말, 하고 싶은 일, 더 나아가 하고 싶은 짓, 더 나아가 악행이나 범죄로 판단되는 행위까지 자기 마음이나 의식에서, 감정이나 충동같은 움직임에 따라서도, 삶에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만행이나 일탈까지, 사람은 이 세상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존재이다
도시에는 암암리에 포르노가 넘치고, 성인물은 19금이라는 바리케이트를 쳐놓고 노출해서는 안될 그것만 빼고는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며 그런 욕망의 표현으로 사람들의 욕구를 자극하고 유혹한다
사람의 자유는 해야할 일, 해서는 안 되는 일의 경계를 넘나들며 그리고 의무와 사명의 언저리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끝까지 추구한다
그러나 세상이 그렇게 그 모든 자유에 만만해지거나, 호락호락하지는 또 않는다
살다 보면 자기 욕망을 세상과 조정하고 조율하는 과정을 거치게 마련인데, 때론 권력과 재물의 작용과 작동으로 그 자유가 폭넓게 허용되는 부류가 되기도 하고 상당부분 그 자유가 제약되는 부류가 되기도 한다
그렇다 치더라도 어디까지나 딱 그만큼, 거기까지라는 게 보인다
세상이란 한정된 곳에서는 말이다
그런 말도 있지 않은가
사람이 이 세상에서 뭘 더 얼만큼 더할려고
그런 것 같다
사람을 손쉽게 죽일 수 있는 방법만도 수천가지이고 그만큼 존재적 약점투성이와 허점투성이가 많은 사람이 얼마나 뭘 다할 수 있을까 말이다
하느님은 사람에게 자유를 주셨다
아마도 사람에게 선사해 준 가장 큰 선물이 자유가 아닐까 싶다
그러나 사람 치고 나는 자유롭다 이렇게 확실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분명히 그럴 것이다
사람은 같은 사람인 이웃들과 함께 살면서 자신의 삶을 자유롭게 살고 스스로를 자유롭게 해야 하는데 그게 아니라는 말이고 그게 잘 안된다는 말이다
눈치를 보다, 안색을 살피다, 비위를 맞추다, 눈높이를 맞추다, 이런 말들은 대체로 함께 사는 삶이 보통 어렵지 않은 일임을 나타내 주는 표현들이고, 그만큼 자유는 가깝고도 먼 아이러니의 지평 속에서 허우적거리게 마련이다
자신의 자유에 스스로의 자의식과 자존감만을 앞세울 수는 없는 노릇인 것이다
한 사람의 자유, 모든 이의 자유, 그 모두의 자유가 진정 자유로우려면 갈 길이 멀고도 먼 정글인 것이다
사람답게 살려면 자신의 자유를 이루고, 함께 사는 이들과 그 자유가 아무런 문제가 없어야 하며 어떤 탈도, 해도 없어야 한다
그런 자유가 최선의 자유로 보이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세상에는 언제나 그런 자유가 눈을 씻고도 찾아 볼 수 없는 일이다
그러면 자유도 이웃들과, 세상과 평화를 이루어야 하는데, 조화로워야 하는데, 아직까지 그 방법과 방식에서 그래도 최선이라 여겨지는 것들이 바로 정의, 법치, 공권력 등과 같은 제도권과 도덕율, 윤리성, 법률과 법리 등과 같은 관습과 관행이다
그렇게 커다란 틀에서 사람의 자유는 이웃들과의 공동체, 그 삶의 지평과 세상에서 살아야 할 공동선과의 평화와 조화가 어쩔 수 없는 삶의 황금률과 지상명령에 가까운 것일 것이다
그런 삶의 지향이 불의한 타협이나 부정한 유착을 말하는 것이 아님을 사람의 양심은 언제나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나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인 이곳, 진주에 2년 전에 내려왔다
내 삶은 어렸을 때부터 정착이라는 말과는 거의 상관없이 이어져 왔는데, 어떤 이유에서든 사실이 그렇다
어렸을 때는 부모들의 입장과 형편에 따라 불가항력적으로 친척집을 전전했고, 스무 살, 성인이 되어서부터는 내가 사는 방향으로, 나의 됨됨이와 성격을 가지고 가는 방향으로 이곳저곳을 떠돌며, 되는 대로 살아왔다
내가 살 삶의 기반이나 주변을 만들고 이루어야 한다는 의식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먹고 사는 일은 되는대로 다했고 내가 갖추지 못한 직업적 자격과 필요가 없는 일이라면 닥치는 대로 다하며 살아온 것이다
거주문제도 문제가 되지 않는, 숙식제공이 되는 일자리, 그리고 방이 필요하다 싶으면 저렴한 월세나 원룸, 여인숙방이나 여관방에서 지냈다
좋은 집이나 좋은 직업은 나에게는 의식화되지 않았고 삶의 로망으로 비춰지지도, 보이지도 않았던 것이다
나는 대체로 그런 쪽으로는, 삶의 입장이나 형편, 세상살이에 대해서는 그런 됨됨이와 성격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에서야 9평, 11평짜리 임대아파트라도 집이 있어야 삶이 조금은 안식을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을 깊이 느낀다
그리고 먹고 사는 일도 보다 안정적인 일자리가 있어야 삶이 의미없이 고달파지지 않는다는 사실도 마음깊이 느낀다
왜 진작 느끼지 못했을까
그렇게 힘들게 살아왔으면서도 말이다
이곳 진주에 내려와서도 늘 그랬던 것처럼 내 삶의 당면과제는 먹고 사는 일, 생계문제였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치고 문제가 아닐리 없는 문제였다
갑질을 일삼을 정도의 권력과 부를 가지지 않은 이들이라면, 그 대부분이 늘 싸매고 살아야 하는 삶의 문제를 말이다
이곳 진주는 경남권에서도 중심지인 부산, 울산을 비껴나 서부경남이라 일컬어지는 지역의 그나마 중심지로 여겨지는 곳이다
이곳 시내에는 서울 강남에서 쉽게 보는 성형외과들처럼 중급 종합병원들이 즐비하다
병원들이 많다는 것은 그 지역의 중심지라는 반증이기도 하기에 말이다
그렇지만 상평동 쪽의 공단지역은 옛날 서울 구로동이나 가리봉처럼 아주 노쇄한 공장건물들이 점점 흉악해지는 몰골들로 변해가고 있는, 그래서 그 산업적 활력도, 위력도 잘 보이지 않는 쇠퇴하고 노쇠한 공업도시의 모습을 도시 한 쪽에 이루고 있다
그곳에서 나는 하이트진로 하청물류센터에서 한 달간 공병수거 아르바이트를 했다
이곳 사람들의 노동정서는 대체로 유연하고 유도리가 있으며 탄력적이다
이곳에 와서 새삼 느껴보게된 정서이다
다른 곳에서 겪었던 강도높은 강제성이나 강요성이 그렇게 심하지 않은 것이다
나는 젊어서부터 내 몸을 죽을 때까지는 잘 사용해야 한다는 사실을 덮어놓고 몰랐기에 오십이 좀 넘은 나이임에도 몸의 상태가 많이 좋지 않다
특히 관절들이 많이 안 좋은데, 거의 근로능력불가 수준인 것이다
그런 몸을 이끌고 이곳에서도 이곳저곳에서 일을 참 많이 했다
여러 일을, 거의 대부분 다 한 달도 못채우고 그만두었지만, 그래도 쉬지 않고 알아 보고 찾아 다니며 이곳 진주뿐만이 아니라 교과서에서 배웠던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경제발전을 견인차했던 남동임해공업지역 서쪽편에 위치한 도시들, 거제, 김해, 사천에서도 그 아르바이트들을 많이 했다
내 인생에서 이렇게 많은 일을 해본 적이, 시기가 없을 것이다
이곳 진주에서 공병수거도 무릎관절을 지지대삼아 병박스를 쌓고, 올리고 내리고 하는 일이기에 그리 쉽지는 않았다
그래도 노동현장의 유연성과 유도리 때문에 더 할려고 했지만 한 달 단기 아르바이트로 시작했던 터라, 그리고 일을 그리 미덥게 하지 못했는지, 더 이상의 계약연장은 없게 되었다
거제에서는 일과 작업현장에 대한 온갖 불안감과 걱정거리를 뒤로 하고 조선소에서 일을 해 보게 되었다
실제로 해보니 참으로 험한 일들이었다
3D 업종의 대표가 아닐까 싶다
동남아인들, 각지의 아시아인들이, 그 외국인들이 더 많이 보이는 현장, 한국사람들이라고는 다들 나이가 나와 비슷해보이거나 더 많아 보이는 사람들이 그 고된 현장에서 일들을 하고 있었다
대한민국은 경제발전을 완벽히 해 온 것처럼 공치사를 높이지만 선진국들이라도 그런 국가는 없었다
노동법상의 문제들만이 아니더라도, 작업시스템을 구현하고 실현하는 현장상의 문제들도 보통이 아닌 것이다
조선소는 배 만드는 기술자들이 상당수 필요한데, 나는 그런 유형의 작업자가 아닌 일들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배관이나 LNG선의 화물창에 관련된 작업들을, 단기간에 배워서, 육성되어서 써 먹을 수 있는 기술들, 배우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고 까다로운 과정이 필요없는 일들도 할 수 있었다
조선소는 3D업종이라는 인식이 강한 탓에 언제나 인력난에 허덕이고 워크넷에서도 늘 구인난이 미어터지는 곳이다
그래서 웬만한 기술들은 단기로, 현장에서 육성해 조달하는 쪽으로 가고 있었다
나는 처음에는 선박청소일을 잠깐, 그리고 배관일을 한 보름, LNG화물창 박스작업을 한 며칠 하게 되었다
한화오션이라는 대기업의 하청업체에서 말이다
청소일은 최소시급 적용에, 토, 일요일 유급휴일,
배관일은 일당 15만원 정도를 받았다
삼성중공업에서는 크레인 신호수일을, 지게차 신호수일을 했는데, 크레인 신호수일은 코로나에 걸리는 바람에 그만두게 되었다 휴가처리하고 다시 일을 해도 되었었는데 그냥 그만두어 버렸다
지게차 신호수일은 한 안벽(배1척을 만드는 블럭 작업장 같은 곳) 야드 전체를 다녀야 하기에, 일 시작하기 전 동료작업자가 한 3만보는 걸어다녀야 한다고 했는데, 다리에 상당히 무리가 심해 일주일 정도하고 그만두게 되었다
모든 게 다 내 탓일 뿐이었다
김해에서는 롯데아울렛에서 한 20일 정도 청소일을 했는데, 같이 일하는 노인네분들이(대체로 남자미화원이나 여자미화원들이 나이대가 60위아래인 사람들) 같이 일을 못하고겠다고 소장에게 항의해 권고사직같이 그만두게 되었다
그러나 자의퇴사로 처리했다
사천에서는 KCC아파트에서 한 두 달 열흘 간 아파트 외곽미화원일을 했는데 여기도 다들 60이 넘은 노인네분들이 일들을 하고 있었고 청소하다 나무등치에 걸려 뒤로 넘어져 왼쪽 손목을 크게 다치는 바람에 그만 두게 되었지만 여기서도 분위기는 다들 같이 일을 못하겠다는 분위기였다
겸사겸사인 것이다
나는 내가 문제가 많은 사람인 것을 어느 정도는 지금에서야 안다
이곳 진주에 내려오기 전에 처음에는 산청에 있는 작은형제회 산하 시설에서 장기봉사를 하겠다고 그것도 몇년일지, 아예 눌러살지 그런 마음으로 전에 살던 대전에서 가진 짐을 다 싸들고 내려왔다
그러나 한 20년 오래 전, 그곳에서 문제가 있었던 나는, 그 오랜 시간이 지나서도 여전히 문제가 있었다
나를 보는 사람들의 이해와 판단이야 그 사람들의 입장과 형편에 달린 일이리만, 내가 가지고 있는 나의 문제는 내가 잘 알아차릴 수 있을수록 나는 나를 위한, 내 삶을 위한 바람직한 실천의지라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그런 됨됨이 정도는 되는 사람이라면 말이다
나는 성심원에서 나의 많이 부족한 일면들을 다시금 보게 되었는데, 신해철의 민물장어의 꿈이란 노래에서 읊조리듯이 자잘한 욕심들, 그리고 그게 빛의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춰지든, 공동체를 사는 소양과 감각이 결핍되어 있는 인성의 상태가 그 핵심문제를 이루고 있었다
그런 문제는 쉽게 고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문제, 지킬 것은 지키고 따를 것은 따라서 그 공동체에서 사는 한 사람으로 자리하는 문제인 것이다
어떻든, 시설 구내식당에서 하루 세 끼를 다 해결하는 입장의 봉사자 신분으로 눈에 티가 나게 식사량이 많았던 나는 결국 많은 눈총과 판단을 받게 되었고, 피부로 느껴지는 그 문제들은 간과될 수 없었던 것이다
그 시설에서의 내 역할 또한 불분명했고, 소몀의식이나 책임감도 그리 없었던 나는, 단지 그 시설에 얹혀 살며 내 개인적으로 뭔가를 할 궁리만 계속했던 나는 결국 그 시설에서 나와 그 시설이 있는 산청 옆에 가까운 이곳 진주로 오게 된 것이다

이곳 진주에서 지금 2년째 살고 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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