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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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노트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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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 악은 언제나 선에 대비해, 대조되어 의미깊은 주제의 상대성을 이룬다악은 어찌보면 사람이 만들어낼 수 없는 성격이며 일이다 그런데 어쩨서 악인이라는 말을 할 수 있을까 토마토가 붉은색이면 토마토 쥬스도 붉다 이런 식의 논리로는 악에 대한 이해를 돕거나 악에 대한 좋은 설명을 할 수가 없다 하느님은 선하신데, 어째서 하느님이 만든 사람은 똑같이 선하지 않을까 어린아이 같은 마음을 가지고 부딪치는 첫번째 이해의 장벽이 이런 논리를 가진 접근일 것이다 카톨릭의 많은 성인들도 결국 악은 신비라고 결론지었다 카톨릭 교리서에는 분명히 그렇게 나와 있다 그런 악이다 그래서 악에 대한 말들은 주장이나 취향에 그칠 확률이 높다 누가 악에 대해 한 자신의 말을 공리와 같이 여기고 사실임에 분명하다고 우길 수 있을까 사람은 단지 악에 대해 기준 삼은 논리를 가지고 그것이 악한 행위, 악한 짓, 악태라고 판단하고 나아가 이해할 수 있을 뿐이다 실제로 그것이, 곧 악이 무엇인지는 분명히 모르는 것이다 그렇게 악에 대한 모든 판단과 이해의 집대성이 곧 악에 대한 법인 것이다 그래서 모든 범죄는 악에 기인하고 근거한다는 이해 아래에서 사람에게는 나쁘고 안 좋은 것이며 그 악으로 인한 악화는 나쁜 상태, 나쁜 상황을 대변하고 삶의 불행 또한 그런 것과 마찬가지로 여기는 것이다 사람을 자극하지 않고 억압하지 않는 자연환경은 악하다고 볼 수 없다 살인적 더위와 추위, 이런 말들이 도는 지역에서 사람들은 웬만하면 살지 않는다 삶은 좋은 것이며 선에 기반하고 있으므로 그렇게 살 수 있도록 조성된 기후환경은 악하지 않다 그렇지만 그런 기후환경이 자연질서의 전체성 속에서 삶을 살 수 없도록 하거나 삶을 다소 어렵고 힘들게 만드는 요인으로 변해가면 그런 상황속에는 어떤 악이 움직이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미 조성된 선, 그리고 그 선을 파괴하는 악, 언제나 이런 식으로 악에 대한 이해가 가능할 뿐이다 선이 없이는 악도 없는 것이다 시작과 과정과 결과, 이 기본 논리를 넘어서는 일이 자연에서는 웬만하면 없다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악화에도 그 시작에서부터 과정을 거쳐 결과에 이르는 진행이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많은 악들이 있다고 판단되는 이 세상에는 그런 악들만이 있을까 어린아이 같은 이해로는 늘 그 이해의 장벽에 부딪힐 수 밖에 없는 논리들, 그리고 덩어리를 가루로 만들었을 뿐일 때, 달라질 수 없는 연속성의 이해로 그 이해를 삼는 논리들, 그런 이해로는 악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진정 악을 모르는데, 그 악에 대한 이해가 가능할까 선을 조성(실현)하는 입장이 지니는 악에 대한 입장, 아마도 이것에 대한 논리가 보다 중요성을 지니지 않을까 싶다 사람에게는 말이다 카톨릭 성경에는 선악과라는 말이 나온다 그렇지만 성경원본은 지혜(지식)의 나무라고 나와있다 한국인 천주교 신부들과 번역자들은 한자어번역본으로부터 이어진 그러한 의미해석을 그대로 차용한 것이다 선과 악, 죄와 벌, 상선벌악,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해의 지름길처럼 두 단어를 붙여놓는 관행들이 있는데, 서로가 상반된 성격이나 대조되는, 반대되는, 교차되는 실제를 두고 많이들 쓰는 표현의 방식이다 그런 식으로 이해해 온 삶과 세상에서 단지 인도와 안내, 지도와 양성, 학습과 수용, 경로와 적응, 재현과 모방에 주안점을 둔 삶의 입장으로 모든 것을 이해할 수 밖에 없는 삶의 입장이 사람된 입장이기도 하므로 어쩔 수 없는 삶의 논리와도 같은 관행이자 사고방식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면 지혜(지식)의 나무가 어떻게 선악과라는 이해로 이어질 수 있을까 성경은 보다 영성적인 이해와 통찰을 기반으로 그 저술이나 번역이 필요한 책이다 창세기의 선악과 이야기는, 사람의 원죄성의 시발점, 그 역사의 기원, 곧 죄의 삶과 역사가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이라면 함께 하게 될 수 밖에 없는 삶에 대한 이야기는 성경에서도 중요한 부분이다 그런 인생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와 통찰이 가능하도록 고대인들의 입장과 세상저변에서 그 이야기가 씌여진 것이다 그러나 결코 쉽지 않다 그 이해와 통찰이 말이다 대체로 모르는 것을 이해가능하도록 돕는 화법이나 서사는 비유를 많이 쓴다 사람은 많은 것을, 거의 모든 것을 모른다 삶의 의미나 가치에 대해서도 모른다 왜 사는지 흔히들 모르는 사실이다 무엇을 위해 사는지, 나는 왜 이곳에 있고, 이렇게 태어났고, 나에게는 이런 사람들이, 이런 일들이, 나에게는 이런 외모가, 이런 재능이, 나에게는 이런 삶이, 옛날같으면 더한 사실들이 따라 붙는다 이런 계급이, 이런 신분이, 이런 형편이, 이런 처지가, 그렇게 사람된 입장에 대해서도, 차이에 대해서도, 차별에 대해서도 도대체 그 근거가 무엇이고, 그 이유가 무엇인지, 무슨 사유와 연유가 이 모든 것들을 성립시키고 그렇게 성립된 채로 나에게 있는 것인지 말이다 그런 무지의 상태가 사람의 기본입장인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인 것이다 그래서 박이 터지도록 싸우는 것도, 노상 시비를 일삼는 것도, 언제나 시기와 불만이 잠들지 않는 것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인 것이다 진정 빛과 소금이 필요한 것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 번호 | 제목 | 등록일 | 작성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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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2412 | 작가 노트 4 | 2024-11-28 | 조병식 |
| 232411 | 최양업 토마스 가경자 사제님의 시복 시성을 위한 화살 기도문 | 2024-11-28 | 손재수 |
| 232410 | 작가 노트 3 | 2024-11-27 | 조병식 |
| 232409 | 작가 노트 2 | 2024-11-27 | 조병식 |
| 232408 | 작가 노트 1 | 2024-11-27 | 조병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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