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7일 (화)
(녹) 연중 제14주간 화요일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자유게시판

진리의 문턱에서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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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식 [goodactor] 쪽지 캡슐

2024-12-05 ㅣ No.232447

기억보다 오래된 과거란 없을 것이다

과거를 의미있게 보는 관점이 의식에 있으므로
그 의식은 또한 현재에 살아있다
그렇다고 과거에 대한 입장을 가질 수는 없다
단지 기억만으로
과거에 대한 입장으로 현재를 산다는 것, 그것은 기억하고 있는 사실 이상의 의미를 현재에 만들수 없으므로

최고선과의 지옥
지옥이란 테마는 아주 오랜 것이다
최고선의 성격상 제 손으로 만들었다고 보기에는 어딘가 깊은 난감함이 있다
지옥은 말이다
제 버릇대로 살고, 제 습관대로 하는 인간들의 모양을 보고 그 존재성만을 연계해 연상할 수 있는 존재가 신은 아니라고 해도 제 됨됨이, 제 성격에서 벗어난 행위가 미친척 하고 그것 아닌 그것의 모양을 만들 수 있을까
미쳤다라는 말은 단지 상식 밖의, 정상적이라고 여기는 모든 이의 일반적 모습을 벗어난, 비껴난 모양을 말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어찌 보면 살인도 미친 짓이고, 강도도 미친 짓이다
범죄라고 불리는 모든 행위가 미친 짓인 것이다
예상되는 결과가 뻔하게 있어서도 그렇고, 섶을 지고 불길로 뛰어드는 것처럼, 행위에 대한 반작용이 불변의 사실로 끄덕없는 현실이어서도 말이다
제 정신이 아니라고들도 많이 한다
하룻 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
단지 사물과 정황과 사건에 대한 분별력과 이해력의 부족과 결핍만을 말하는 속담은 아닐 것이다
하룻 강아지는 본능으로도 범이 뭔지를 모른다
그 범과의 사이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 지, 그 범과 마주친다는 것이 어떤 정황에 놓이게 된다는 것인지를 그 본능으로도, 탁월한 후각으로도 모른다
후각을 제 필요에 쓸 때쯤에 이르러서야 범이라는 것을 기억할 필요를 알게 될 것이다
그것으로부터 있을 수 있는, 그 모든 위험과 위협에 대해서도, 자신에게 닥칠 수도 있는 그 악화와 불행에 대해서도 말이다
그 모든 사물들의 창조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나에게는 좋지 않아, 제발 치워줘, 없애 줘, 내 눈 앞에 보이지 않게 해 줘 라고
그 모든 것의 창조자에게 말할 수는 없다
그 모든 사물들의 창조에는 창조자의 뜻과 의도가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그런 청원과 부탁은 그 뜻과 의도를 철회해 달라는 말과도 같다
그리고 자신에게 좋은 것만 자신에게 있게 해 달라고 비는 것과도 같다
창조자의 뜻과 의도가 철회되지 않는 선에서 그런 기도는 나름대로 들어줄 수도, 이루어줄 수도 있는 문제이다
지옥의 상징성은 대체로 고통을 기반한다
지옥이 가할 수 있는 실체적 작용이 없으면 지옥은 더 이상 지옥이 아니다
고통은 감각을 지닌 존재가 그 감각상에서 겪는 좋지 않은 성질과 모양이다
고통을, 육체적 고통을 겪어본 사람들은 안다
그게 얼마나 스스로에게 안 좋은 것인지를
그러나 사람에게 고통은 그 이상의 의미와 가치?를 말한다
첫째는 지성을 경로로 삼기에, 둘째는 감정과 의식에 뿌리내리기에, 고통이 말이다
그런 고통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양할 것이다

첫 인간들과 십계명
카톨릭 신자라면 십계명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하느님의 신성에 비추어 사람들이 최소한 맞추고 살아야 할 양심과 감정의 기본입장을 제시하는 하느님의 열 가지 명령이다
하느님과의 관계성을 지키고 유지하는 그 이해관계의 마지노선 같은 성격이다
그 십계명에는 같은 사람이며 이웃인 이들의 삶의 입장을 침해하지 말라는 문구보다 하느님과 함께 하는 이들의 입장을 더 선명히 비추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 더 뚜렷이 드러나 있다
현실적이며 사실적인 명령인 것이다
인간이라는 존재의 의미는 인간의 양심과 감정이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과 의미있게, 가차있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양심과 감정에서 비롯된 모든 발화들이 반드시 이 세상 모든 것과의 작용과 반작용을 일으키고 그런 사태와 사건을 벌이고 그런 상황과 국면을 만들 것이라는 데에도 있다
단지 자연계의 동물들 마냥, 생태계의 범주에서 움직이며 그 작용과 반작용이 전체질서와 맞물려 있는 것과는 보다 차원이 다른 입장으로 두어져 있다는 것이다
지옥이라는 개념은 그런 범주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 모든 것에 신의 뜻과 권능이 배제되거나 방관되어 있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 시스템 속에 있는 것들과 그 시스템을 만들고 작동시키는 것에 대한 이해가 있을 뿐이다
첫 인간들은 스스로들의 양심과 감정으로 행한 일이 스스로에게 악화와 불행이 되는 일이었다는 것을 사실로 겪은 이들이다
그리고 그 사실은 이미 예고되어 있었다
예고된 모든 일이 다 일어나고 벌어지지는 않지만 그 전제와 조건에 맞아들어가면 어김없는 것이 또한 예고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예고는 그 모든 사실들이 가능태로 준비되어 있을 때에만 또한 다가올 현실태를 만든다

지금의 세상도 지옥을 만들기에는 모든 것이 물심양면으로 다 준비되어 있지 않은가
체제와 제도를 빌리는 지옥은 지옥 같지도 않은 지옥이다
눈 앞에 선이 있음에도 그 선을 살지 못하는 것이 진짜 지옥인 것이다
같은 상황이라도 단지 작용과 반작용 상에서 빚어지는 타락과 일탈의 끝을 그 구간과 범주로 삼는 지옥은 지옥 같지도 않은 지옥인 것이다
단테는 지옥의 서사시를 쓴 작가이다
물론 헤븐의 서사시도 써 놓았다
사람으로서의 삶의 끝에서 그 인간존재를 붙들어 놓고 존재상의 고통(내재와 변형)과 환경상의 고통(구속과 가해)을 이글거리는 태양처럼, 들끓는 솥에서처럼 그 지옥에 갇힌 자들을 들들 볶아대며 못살게 구는 모양은 그 지옥의 관리자인 악마들만큼이나 험악하다
지옥을 하나의 세계관으로 보는 것은 인류의 전통적인 의식이다
질서와 시스템 속에서 살아가는 삶의 양식에서 볼 때 인간성에 대한 심판은 현실가능한 마땅함을 추구해야 한다는 결의가 뿌리깊은 의식이자 정서의 구현인 것이다
그러하기에 그 지옥을 지옥의 실현으로 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길이며 일이기도 하다

지옥의 평화, 지옥이 가져오는 평화
지옥에도 평화가 있어야 할 줄 안다
첫째는 지옥 자체인 지옥스런 상태와 현상의 유지이다
지옥을 바꾸어 놓을 수 있는 평화도, 정의도 없다
평화를 위한, 정의에 따른 지옥이라면 말이다
정의로 인한 가장 험악한 결과가 지옥이라면 그 과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한, 지옥은 언제나 부당한 입장일 것이다
그러나 지옥으로 가는 그 드라마와 극적사실을 언제나 보게 되면 정의에 끝에도 지옥이 있음을 잘 이해할 줄 안다
보다 높은 차원의 고상함과 지혜로서 말이다
어린아이들의 그 숱한 천진무구한 의구심에 종지부를 찍어 주는 것에는 다름아닌 지옥도 있다는 사실을 언젠가는 이해할 것이다
살다 보면 말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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