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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의 문턱에서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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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내가 살아가는 삶에는 많은 문제들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겪게 된다 알게 된다라고도 할 수 있겠다그러면 당연하게도 삶을 문제시하는 관점과 입장이 알다가도 모르게 내 셩격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언젠가 느끼게 된다 나의 문제인가 너의 문제인가 성경을 보면 문제가 되는 성격이나 사건들을 두고 그것을 다투게 되는 두 입장의 성립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관심을 조금만 더 가지고 집중한다면, 보다 이해하고픈 의욕을 조금만 더 앞세운다면 그리고 삶의 현실과 사실에서 벗어나지 않고 정상적이고 평범한 생활에서 머무르고 있다면 충분히 말이다 성경 또한 삶의 이야기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고대인들이 살았던 삶과 그 현실 속의 모든 일들과 상상할 수 있었던 존재성(본성, 본능, 이상, 욕망 등을 포괄한 의식상의 모든 이미지들)과 세계관 등을 포괄한 이야기라는 사실을 말이다 경전이라고 해서 무슨 삶에 대한 명령과 교훈만이 가득한 가르침이라고 생각하면 그것에는 어떤 철학적이고도, 인문학적인 견해는 철저히 배제되어 있을 것이다 당연히 문학적인 양식은 차용할 수 없는 형식일 것이다 그러나 명령같은 상하개념이나 교훈같은 경험관념은 질서와 시스템이 있는 공동체나 조직성이 삶의 양식으로 정립되고 수렴되어 있을 때에만 가능한 소통방식이며 이해관계의 확장인 것이다 성경에서 그런 모양새를 드러내 보이는 것은 인류역사와도 그 괘를 같이 하는 것으로 보인다 성경의 선민들이 처음에는 노마드였다는 것은 성경 이야기속의 분명한 사실들이다 역사적 표현으로는 부족공동체, 부족국가의 개념이지만 그 이야기속에는 어떠한 국가적 이미지를 떠올리는 표현은 쓰지 않고 있다 단지 부족장의 이름을 내세우고, 그 이름이 그 부족공동체의 대표와 중심으로 모두 표현되어 있고 그 이름들의 후손이라는 개념으로 공동체성을 두드러지게 표현하고 있다는 것, 요즈음 같이 대한민국이나 USA 같이 국가적 표상으로 공동체의 일원들에게 그 공동체성을 주지시키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그런 정도의 문명이기에 국가적 위업이나 위력에 걸맞는 체제와 제도가 확립되었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부분들이 요즈음의 종교인들에게도 그 공동체성을 나름의 특별한 유형과 부류로 엮어놓는 개념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결국 모든 공동체가 국가라는 단위로 결합되는 것은 역사를 거스를 수 없는 현실이라는 것이 성경에도 잘 나와 있다 그때부터가 성경에도 질서와 조직개념을 담은 공동체성을 표방하는 명령이라든가, 법치라든가 하는 이해관계를 설정하고 확립하는 용어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아마도 성경의 선민들이 본인들보다 보다 앞선 문명과의 조우와 경험을 보다 많이 반영시킨 것이 아닌가 한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 세상 속에는 많은 명령들이 있다 명령이란 단도직입적으로 명령하는 입장과 명령받는 입장을 사실로 만든다 명령이 무슨 충고나 경고는 아니지만 성격에 따라서는 그런 뉘앙스와 분위기가 담길 수도 있다 명령이란 어떤 입장에서 무언가를 시켜야 할 필요가 있을 때, 어떤 일에서 무언가를 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 생겨난다 명령자체가 그 자체로 존재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러면 명령하는 입장을 중심으로 질서가 확립되어 있고, 그 입장에서 해야 할 일을 중심으로 모든 사업들은 편성되는 것이다 그렇게 명령은 입장과 사업이라는 두 가지 중추를 가지고 있게 되는 것이다 하느님이 처음부터 선민들을 공동체 단위였을 때 부른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이미 노마드 공동체의 부족장이었던 것 같다 아브라함이 하느님으보부터 받았던 첫 명령이자 마지막 명령은, 자신의 전 생애를 관통하는 평생의 명령은 '떠나라' 였다 밑도 끝도 없는 단 한 마디, '떠나라' 였던 것이다 요즈음 부모들에게는 자식들을 먼 나라로 유학보내는 일이 많아졌다 노심초사 많은 걱정이 앞서면서도 이것 저것 자식들의 유학길에 필요한 것들을 챙기고 또 챙기면서 말이다 어디에 있는 어떤 대학인지를 모르는 부모는 없다 그걸 모른다는 건 부모도 아니라는 말과 같을 것이다 명령은 분명히 명령하는 입장의 입장에서 생기는데 그리고 그 입장에서 해야 할, 이루어야 할 일을 중심으로 하달되는데, 아브라함은 그 모든 것을 알지 못했다 그래도 명령은 명령받는 입장에서는 받들어야 할, 따라야 할, 일이다 오랜 역사 동안 명령은 질서와 시스템을 지탱하고 유지하는 불문률과도 같은 것이었다 지금 시대에도 그런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보통 오더가 없이는 어떤 일도 시작되지 않는다는 게 산업의 실제적 기초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명령하면 군대조직을 쉽게 떠올리는데 징병제를 시행하는 대한민국에서 그런 명령 속에 군대생활을 안 해 본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는 삶, 그 명령이 이루고 해야할 사명과 의무를 지는 삶, 그래서 어떤 사업체들은 군필을 선호하기도 한다 부모들은 부모말 잘 듣는 아이들을 좋아하고 어른의 입장에서 어른의 말을 잘 듣는 것을 미덕으로 치기도 하는 것은 그런 명령의 입장과 속성에 대해 보다 완화된 성격을 보여주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쁜 부모가 많고 나쁜 어른들이 많아지면 명령하는 입장에 서는 이들로 인해,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온갖 유형무형의 폭력과 억압기제들이 명령의 탈을 쓰고 삶의 많은 악화와 불행을 야기시키기도 하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며 지금의 현실이기도 하다 그 현실 속에서는 삶의 실제적인 고통과 괴로움이, 고뇌와 번민이, 고생과 회의가 있는 것이다 명령을 따르지 않았을 때, 않을 때에는 보통 명령이 효율성과 활성화를 이루는 조직적 차원의 대응은 피할 수 없는 운명과도 같은 일이 된다 그리고 명령을 하는 입장자들이 악의적이거나 악한들이면 받아야 할 그 불이익은 이만저만이 아닌 게 된다 보통 악의를 따르고 악한들의 명령에도 사는 길은 그 보복과도 같은 불이익들과 그 조직에서의 온갖 불행과 시달림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으로 더욱 굳어지고 고착되는지도 모른다 대한민국 어느 학교 교실에서도 이미 학폭의 가해자들로부터 그런 무언의 억압을 교육받고 크는 아이들은 나중의 더 큰 질서와 조직에서도 마찬가지의 애들로 굴 것은 명약관화한 사실일 것이다 그리고 학폭 가해자들같이 굴 것도 예상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스스로의 성격에도 있는 것을(할 수 있는 것을, 해도 되는 것을) 보았으니 모방하고 맞는 옷이니 입는 것이다 누구 하나 예외란 법은 없는 것이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원죄가 없는 사람이 있겠는가 결국은 명령대로 가는 것이다 삶이란 말이다 그 명령이 어떤 명령인지를 알아야 할 일이다 스스로의 삶에서 가장 확실한 명령을 알아보아야 할 일이다 나의 문제인가, 너의 문제인가, 제 3자의 문제인가 뱀은 나무를 아주 잘 탄다, 줄을 감듯이 말이다 그렇게 타고 올라가 어떤 새의 둥지에 가득한 알들을 먹어치운다 새 한 마리가 부리로 대응해 보지만 뱀을 이길 수는 없다 뱀은 남김 없이 다 먹어치우고서는 다시 나무를 타고 기어 내려 간다 새 한 마리 홀로 둥지에 서 운다(분명히 그런 심정일 것이다) 사실상 생태계의 문제인가 생태계를 계획하고 설계한 창조자의 문제인가 무엇이 문제로 보이는가 그럼 그 문제를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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