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들, 제 마음대로 다 되겠는가
누군들, 제 뜻대로만 다 하겠는가
지 자유가 모든 것에 우선해서
지(이 단어를 쓸 수 밖에 없음을)
나의 자유와 너의 자유는 동일한 것이어야 하고, 그렇게 각자의 자유는 우리의 자유로서 합일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다
사람이 같은 사람들과 함께 살므로써 같은 사람들을 겪고 산다는 것은 스스로의 실체형성(사람됨)에도 중요한 일이다
엑소시즘 영화를 보면 대체로 구마사제들 앞에 악령들린 어린아이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그렇게 악령같은 것이 자기아이에게 들렸다는 것을 가장 먼저 알아차리는 이들은 바로 그 부모들이다
아이를 갖고 10개월 동안의 임신과 그리고 출산, 그리고 아이를 키우면서, 젖을 먹이고 기저귀를 갈고, 어루고 달래고 이뻐하고 귀여워하며 그렇게 부모손으로 자라난 아이들의 모습을 그런 부모들보다 더 많이 보고 더 잘 알아볼 수 있는 이들은 없을 것이다
자기 아이들의 사소한 습관과 버릇까지도 알텐데. 그런 평상시의 아이들 모습과는 다른 '이질적인' 어떤 것이 아이의 모습에서 나타나는 것을 못 알아 차릴 수는 없는 일일 것이다
바로 그 '이질적인' 어떤 것을 엑소시즘 영화에서는 뚜렷이 보여주는데, 그것을 보통 악마라는 존재, 악마라는 실체로 보는 것이다
대체로 귀에 거슬릴 정도의 괴기스런 음성을 곁들이고(실제로 으으으 하는 듯한 소리인지는 안 겪어본 이상 모를 것이지만) 아이답지 않은 것 뿐만이 아니라 사람답지 않은 행태를 부리는(드러내 보이는) 것으로 나타내고 각자의 기억이란 블랙박스를 훤히 들여다 보는 것처럼 마주한 이들의 삶의 경험들을 일상까지 꿰뚫어 보며 그 현장에 있는 듯한 생생한 중계까지 곁들이는 악마의 실력행사에 모두들 얼어붙게 만드는 모습까지 삼종세트처럼 보여주는 것이다
사람들은 같은 사람들, 함께 사는 사람들을 그 행실과 행태로, 그 태도와 하는 짓으로 어느 정도는 알아 볼 수 있다
그렇게 서로가 함께 살므로써, 서로를 보고 살므로써 서로에 대한(스스로의) 인간적인 의식과 감정이 동시에 생기고 그런 의식상태와 감정상태를 지니고서 또한 서로가 함께 살아가는 차원을 이루는 것이다
그래서 악령같은 영적존재로 보이는 것들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스스로의 의식과 감정을 기반으로 해서 뭔가 다르고 이질적인 어떤 것을 알아 차릴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악령도 존재인 이상, 스스로를 드러낼 수 밖에 없는 사물의 실체적 원리를 벗어나 있을 수는 없을 것이므로, 그렇게 상이한 존재들의 조우와 마주함이 어떻게 일어날 지는 오로지 시공간과 삶의 차원이 결정할 일일 것이다
어떻든 사람들은 외적 형상이 같고 서로 함께 살만한 인간성이 유사한(차이도 있고, 다름도 있고, 다양하기도 하지만) 사람들과는 서로 자연스레 함께 살 수 있지만 지옥의 악령들 같은 존재들과는 함께 살 만한 성격이 이질적일만큼 판이하게 달라서(섞일 수 없는 물과 기름처럼, 같이 있을 수 없는 물과 불처럼) 서로가 공유할 수 있는(물에 녺아드는 소금처럼, 빛으로 광합성을 하는 나뭇잎처럼) 삶의 영역이나 차원에서 공존이(평화를 이루고, 정의를 이루는 공동선의)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그래서 악령같은 존재들은 스스로의 악성만을 지배적으로 유효하게 만드는 사실을 만들어야(사람에게 깃들어 하이드한 상태로 있지만, 이미 그 사람을 손쉽게 통제가능한 상태로 두고 있고, 단지 악령 스스로의 숙주로, 노예화된 매체로 만들어 두었기에 그 사람은 그 주권과 실체적 자아가 억압되고 유린된 상태로 단지 있는) 악령 스스로가 그런 식으로 존재가능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문제는 그런 실태가 존재 상호간에(사람과 악령) 좋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어떻든 악령들은 하느님이나 천사들처럼 사람들과의 평화로운 커뮤니케이션이나 소통이 불가능하고 정의로운 삶의 접점과 합치점을 이루어 바람직한 관계성을 형성하기가 대단히 어렵기에 악령들은 자신들만의 억지와 강압으로 침범하고 침해하며 그런 지배적 양태로 공존의 사실을 일방적으로 만들어 그 실태에만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 것들이 존재 상호간에 좋을 수 있겠는가
지 자유가 모든 것에 우선하는 것들은 대체로 그런 악성이 다분하고 그런 악질적인 양태가 내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스스로의 양심과 모두의 공동선을 지키고 살 수 있는가, 그렇게 살 만한 인간성을 지니고 있는가가 대체로 정의와 평화의 주요 아젠다임은 언제나 이 세상에서 변함없을 것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