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
나의 생각과 견해 2 |
|---|
|
Omnibus Omnia Self-control, 성령의 열매, 성령의 힘 성령이 함께 하고 있다는 증거 Control, 통제라는 단어로는 그 의미를 이해하기가 다소 부족하지만 존재와 세계를 아우르는 중요한 모든 원리들의 핵심 키워드인 이 컨트롤을 모르고서는 많은 상태와 현상이 잘 이해되지 않기에 부분적으로 그 의미가 해당되기도 하므로 비슷한, 유사한 측면에서 같은 의미로 쓰기로 한다 모든 인간들은, 인간들 뿐만이 아니라 모든 피조물은 스스로와 함께 하면서 통제되지 않는 것들은 곁에 두고 함께 할 수 없다 이것은 자연의 불문률(자연법 상의 차원의)임과 동시에 존재들의 공동체와 무리, 그 사회성의 차원에서도 필연적인 체제율과 관습법과도 같다 통제되지 않는 것은 감당하기 어렵고, 껴 안고 있더라도 큰 부담이 되며, 문제로 자리하면 그만한 수고와 비용을 들이지 않고서는 한 하늘, 같은 땅에서 공존하기조차 어렵다 그래서 그러한 통제율을 가지고 모순을 만들고 부조리를 조성하는 것은 인간들의 특기 아닌 전매특허와도 같은 오랜 악습의 전형이다 통제율은 존재 스스로에게도 필요한 것이지만 대체로 그것은 공동체상에서, 무리를 이룬 가운데에서, 그 사회성이나 집단성 상에서 더욱 필요한 것으로 간주된다 대체로 그러한 통제율은 누구 하나, 어떤 구성원 하나(공동체상에서, 집단 속에서)에게 유리하게나 기득권적이게나 독점적이게나 할 수도 있고, 보다 그리스 민주주의와도 같이 공동체와 무리에 속한 모든 이를 염두에 두고 그러한 공정하고 정당한 공동선과 그 유익함을 다 같이 함께 불편부당함이 없이 동일하게, 동일시하게 할 수도 있다 그것은 언제까지나 인간들에게는 선택사항이고 수용가능성이며 역사적인 현실태의 전망과 계획과 실천에 달려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러한 통제율은 거의 대부분, 규범적인 에테르를 기준으로 삼는 데에 동의의 일치를 이룬다(보다 지성적일수록) 그러한 규범들은 다양한 이데올로기의 형태로 인간사회에 출현하고 자리한다 종교적 규범들은 대체로 오랜 역사(인간들의 근본적인 약점들을 틀어쥐고 있으므로, 인간들이 자리한 삶의 전제와 조건과 그 바탕과 전형에 대한 확신에 찬 신념들을 누구보다 굳건하게 공유하고 있으므로)동안 그런 인간삶과 인간사회의 부동의 이데올로기들로 자리하고 있고, 여러 철학들과 사상들, 그리고 신념화된 주의들이 대체로 인간삶의 통제율을 성립시키고 주도하며 겉으로나 속으로나 활동하거나 암약하거나 하는 등의 갖은 표상과 양태들로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통제율의 역사 고대로부터 법은 존재해 왔다 지성을 가진 인간들이 스스로들의 불합리와 부조리를 대하는 양식과 대응방식으로 법은 인류역사 속에 계속되어 왔다 인간지성(인간과 같은 지성, 인간이 지닌 지성)에 있어서 법은 선의롭고 양화적인 바람직한 규범들이(강제성이 없고 인간의 선택과 수용가능성에만 두어져 있는 다소 자유로운 영역의) 인간들에게 그 통제율로 평화롭고 조화롭게 통하지 않을 때, 그로 인한 악화와 타락의 진상들이 표출될 때, 그 반동과 반항을 다스림으로써 통제하고 질서상에서 처리함으로써 통제하는 통제율의 최후의 수단으로도 여겨진다 그렇지만 그 법을 수단으로 다룰 줄 아는 인간들의 악화와 타락이 더해짐으로써 통제율에 대한 모순은 더욱 더 부추겨지고 팽배하게도 되는 것이다 그렇게 법 또한 인간들의 악화되고 타락한 권력과 그 권력을 손아귀에 쥔 인간들의 욕망과 이익추구로 인해 그 모순의 도가니속에 자리한 불합리와 부조리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역사의 진행과 전개 속에 못 나올 불합리와 부조리란 없는 것이다 그러한 이데올로기들은 또한 인간들의 참혹한 역사들을 써 내려 간다 산업혁명 이후 마르크스는 자본론을 통해 그 심각한 불합리와 부조리를 고발했으며 그 진상들에 대한 통제율은 이미 극단에 이르러 있었다 그러할 때, 바로 나찌나 파시즘, 공산주의와 같은 이데올로기들이 불거져 나오는 것이다 이러한 이데올로기들이 집단과 무리의 통제율을 넘어서 사회와 국가, 세계를 아우르는 통제율이 될 때, 그 영향과 파급력은 이미 역사책에 나와 있는 대로이다 유다인들에 대한 처형과 몰살도 나찌의 통제율 하에서는 바람직한? 제도적 행태와 체제율이 되어 적극 적용되고 행사되었으며, 공산주의자들의 계급적 신념과 사상 속에서 강화된 계급투쟁 상의 통제율은 그 숙청대상들과 처형대상들을 가감없이, 과감하게 제거하고 처리했던 것이다 계몽주의와 개화된 사상적 혁명들을 현실태 속에서 이루어 가던 유럽이 그러할 진대, 그보다 한참 미개하고 야만적인 아시아에서는 킬링필드의 잔혹한 참상과 만행들이 거침없이 자행되었다 어디로 가야하고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가 2000년 전, 중동 근방의 유다 땅에서는 유다교의 파행과 폭동으로 유다인들의 국가가 멸망했으며, 유다인들은 국토마저 잃어버린 난민들로 전 세계에 뿔불이 흩어졌다 유다인들의 통제율은 대체로 토라를 근거로 한 율법사회였다 통제율의 정점과 전체성이 확고하게 확립된 사회였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결국 몰락하고 멸망해 버린 것이었다 200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산헤드린이나 시오니즘이니 하는 통제율 아닌 통제율로 다시 뭉쳐 그 집단과 무리, 공동체와 사회, 국가와 국토를 이루고 있는 모습을 보면 2000년 동안이나 유다인들이 그렇게 전세계에 흩어진 난민으로 살며 진정 바라던 삶이나 공동체, 사회가 무엇이었는지 그 깊은 모순에 안쓰러움이 든다 그런만큼 유다인들만큼 전 세계(대체로 유럽과 북미 중심의 서구사회)의 다양한 이데올로기들을 접한 인간들은 없을 것이다 그러한 인간들이 한 국가의, 한 사회의, 한 공동체의 통제율을 만들어 가는 모습 또한 아직은 가변적이고 유동성이 큰 모양이지만, 숙명적인?(전세계에 흩어진 유다인들은 당시 영국의 점령지였던 팔레스타인을, 그리고 2000년 전 본인들의 조상들?이 살았던 그 지역을 국토로 선사?받았는데 처음에는 아주 작은 동네나 마을 같은 테두리에서 점점 그 외연을 확장하고 지배력을 강화해 가면서 그 반작용으로) 팔레스타인의 저항과 투쟁을 피할 수 없이 계속 맞딱뜨리다가 최근에는 팔레스타인의 무분별하고 무차별적인 테러로 결국 기난긴 전쟁을 치르고 있으며 결국 한 이슬람, 한 아랍 비슷한 종교적 통제율을 공유한 아랍권과의 전면전 또한 아슬아슬하게 치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는 가운데 그런 유다인들의 국가에서 드러나는 통제율은 역시나 긴 역사의 공백과도 같은 단절이 있었다고는 볼 수 없는 공동체성과 사회성, 국가이념을 아우르는 그들만의 역사적 신원과 정체가 변함없이 담겨진 유다이즘과 시오니즘, 그 산헤드린의 전통과 관습에 있는 것이다 유다인들이 전쟁을 치르며 그 모든 전략과 전술을 확립하고 수행하는 모습에서, 그 선택과 결단에서, 테러와 같은 사건과 이에 직면해 단호하게 대응하는 태도에서도 그러한 유다인들의 정통성과 진면목 같은 것이 보인다 세상이 평하는 극우니 편향적 집단성이니 하는 말로는 그 저변의, 그 기반의 통제율에 대한 이해가 언제나 부족할 뿐이다 트럼프 통제율 트럼프는 오랫동안 부동산과 쇼비지니스업계에서 일해왔던 사람이다 그런 만큼의 성격이 언제나 가감없이 보이는 인간이기도 하다 그런 인간이 미국의 정치판에 등장한 지도 어언 10년이 넘었다 트럼프 이 한 인간을 둘러싼 그 숱하고 많았던 미국?의 사건들, 미국도 어쩌지 못하는 트럼프라는 인간은 미국의 그러한 겸연쩍은, 다소 어리둥절한 국가성에 대한 깊은 의구심을 자아내게 만든다 과연 미국을 위한 최선의 선택인가, 누군들 그러려마는 언제나 모든 선택에는 그 댓가가 확실히 따른다는 사실만큼은 언제나 사실이다 트럼프는 미국은 다시 위대해져야 하고 강해져야 한다고 연일 엄포를 놓고 있다 그런 국가에 대한 의지가 진정 트럼프에게 있는지는 의문이지만 말이다 그렇게 미국을 강하게 하기 위한 트럼프의 미국을 위한 정책과 행정명령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리고 그 즉시 실천되고? 실행되고? 있다 트럼프에 의한, 트럼프의 미국을 위한, 트럼프의 행동들로, 트럼프의 주장에 의하면 트럼프에 의해 그렇게 미국이 강해질수록 세계의 많은 국가들은 불편해하고 있고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진정 무엇이 문제일까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 보면, 미국이 전 세계 난민들의 봉 같은 국가도, 호구 같은 국가도 아니다 트럼프는 그것을 기분나쁘게, 상대방들의 기분을 더럽게 만들며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무역정책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미국의 GM이나 크라이슬러, 포드와 같은 '미국의 빅 쓰리'는 벤츠나 BMW, 아우디 같은 '세계의 빅 쓰리'같은 기업들이 아닌지도 오래되었다 걸핏하면 남들이 다 뺏어갔다'고 볼멘 소리들을 주장에 섞기도 하는데, 지금같이 정보가 생명과도 같은 문명에서는 기술개발만큼, 기술보안도 아주 중요한 일이 되었다 그리고 미국의 자동차기업들은 이미 독일의 자동차회사들보다 한 수 아래인 기업들로 평가된다 누가 다 뺏어 간 게 아니라, 본인들이 못하는 것이다 사실은 그런데 그런 자기 생각만으로 미국의 상실된 국익을 다른 방식으로 챙긴다는 것 자체부터가 미국을 강하게 하고 위대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미국도 다른 국가들 같이 똑같은 지위의 국가이고 그런 수준의 국가일 뿐이라는 사실만을 더욱 반증해주는 일 밖에 안 된다 미국 소비자들의 선택이 세계적이고 합리적이라면 미국에서 팔리는 전 세계의 제품들을 만드는 기업들도, 그러한 기업들이 있는 국가들도 문제시 될 수는 없다 트럼프 통제율의 핵심은 그런 억지, 어거지를 기반으로 하는 것이고 어찌 보면 그것이 더욱 미국답지 않은 것이다 미국이 위대해지건 말건, 강해지건 말건, 언제나 팍스 로마나 같은 세계의 지형은 미국 아니더라도 되는 일이다 중국이 문제가 아주 많은 국가라는 것은 다들 아는 사실이다 그 이유로 미국의 대응이 중국에만 한정되고 중국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 다른 국가들마저도 그런 중국 대하듯 한다면 그것은 이유 같지도 않은 이유일 뿐이고 행패와 횡포에 지나지 않는다 점차로 사실들로 드러나고 있듯이 중국의 기업들이 다른 국가 고객들에게 그 사은보다도 중국정부에 고객들의 중요한 정보와 해당국가의 중요한 정보들과 기술들을 갖다 바치고 있으며 그렇게 중국정권의 주도하에 모든 것을 중국의 이익중심으로, 그리고 다른 국가 고객들을 대하는 행태 또한 연일 나쁘고 더럽게 군다는 말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 것도 중국에 많은 문제가 있다는 사실인 것이다 중국인들의 횡포와 행패 또한 지난 사드사태 때도 보듯이 중국인이라면 중국인들은 거의 동일한 중국의 통제율에서 움직이는 것들이라는 게 또한 분명한 사실이며 그 중국의 통제율이라는 게 공산주의를 기반으로 한, 단지 검은 고양이, 흰 고양이의 논리에 따른, 아무 생각 없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도리도, 예의도 없는, 몰상식하고 무분별하며, 불법적이고 범죄적인 것도 마다않는(중국에는 다른 외국 기업들의 디자인이나 기술들을 무단으로 도용하고 온갖 짝퉁들을 다 만들며 시장질서를 교란하고 혼란스럽게 하며, 상도의나 상업적 양심이라고는 없는, 파렴치하게 극성맞은 상술들과 온갖 보이스피싱 범죄들의 아지트이자 온상이며 무책임하고 무모한 기업행태들이 범람하고 온갖 부정부패와 뇌물들이 난무하는 통제불가능한 저변의 무법천지를 기반으로 한 생리와 생태계를 정치에도, 경제에도, 사회에도 그 관리의 상태가 팽배해 있다) 정의를 기초와 기준으로 두지 않는 것이라는 게 또한 사실인 것이다 그런 중국의 악습들과 버릇들을 고쳐 놓는 일은 다른 국가가 할 수 없는 일이다 오로지 그런 중국에 의한 피해와 불이익이 생기지 않도록 대응하고 방어하며 중국과의 일을 합리적인 선상에서 처리하는 데에 최선을 다하고 정의롭게 할 수 있을 뿐이다 미국은 그런 차원에서 중국에만 향해야 할 칼을 다른 국가들에게 휘둘러대서는 그 누구도 미국을 중국보다 나은 국가로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대한민국이든, 유럽의 어느 국가든 국력을 넘어서는, 국익을 침해할 정도의 관대함을 보일 수는 없는 일이다 지금 시대의 난민들은 대체로 자국의 정치적, 경제적 불안정 때문에 그 형편이 나은 다른 국가로 넘어가려고 하는 난민들이다 그 사정이 딱하기는 다들 마찬가지이겠지만, 그렇다고 그런 사정만으로 무조건적으로 대문을 열어줄 국가란 이 지구상에는 없다 그런 국가적 입장이 모든 국가들에게 동일하다는 사실을 난민들도 알아야 할 일이다 본인들이 미국처럼 나은 국가란 판단과 이해만으로 찾아들어 본인들을 자국민의 입장으로 받아들일 국가란 이 지구상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을 먼저 알아야 할 일인 것이다 어려운 이웃들은 도와야 할 일이지만 언제나 어디에서나 그 공동체를, 그 사회를, 그 국가를 지탱하고 유지하는 통제율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존중하지 않으면 그만한 입장으로 같은 대우나 지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도 같이 붙어 있는 동일한 사실임을 알아야 할 일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 번호 | 제목 | 등록일 | 작성자 |
|---|---|---|---|
| 232643 | 피아니스트 황재선야고보 듀오 연주회 나눔합니다 | 2025-02-03 | 바로아페 |
| 232638 | 새 책! 『실재론의 부상』 마누엘 데란다·그레이엄 하먼 대담, 김효진 옮김 | 2025-02-02 | 김하은 |
| 232637 | 나의 생각과 견해 2|1| | 2025-02-02 | 조병식 |
| 232635 | 한국인 세 번째 사제 ‘강도영 신부’를 아시나요?|3| | 2025-02-01 | 박관우 |
| 232633 | 나의 생각과 견해 1 | 2025-02-01 | 조병식 |




게시판 운영원칙
Help Des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