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2일 (목)
(자) 성주간 목요일 - 성유 축성 미사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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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간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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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corenelia] 쪽지 캡슐

2026-04-01 ㅣ No.188833

[성주간 수요일] 마태 26,14-25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

 

 

 

 

보통 우리는 예수님의 ‘수난’이라고 하면 그분께서 사람들 앞에서 채찍질을 당하시고, 무거운 십자가에 가혹하게 짓눌리시며,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외적인 고통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수난은 그런 외적인 것만 있는 게 아니지요. 믿고 사랑했던 제자들 중 하나가 당신을 반대자들의 손에 팔아넘긴 배신, 그걸 아는 제자들은 그런 상황을 적극적으로 막기는 커녕, 다들 자기 앞가림만 신경 쓰느라 예수님이 얼마나 힘들고 괴로우실지는 별로 개의치 않는 무관심, 당신과 동고동락하면서도 당신 뜻이 무엇인지 헤아리지 않고 자기 뜻만 추구하는 동상이몽, 이 모든 것들이 예수님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는 ‘내적 수난’이었던 겁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런 못난 제자들을 탓하거나 원망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이 그럴 수 밖에 없었던 부족함과 약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셨습니다. 3년이나 열매를 맺지 못한 무화과나무를 또 다시 인내로이 기다려주며 그 나무가 열매를 맺도록 거름을 더 얹어주는 자비를 베푼 정원지기처럼, 제자들이 언젠가는 각자의 ‘알’을 깨고 나와 하느님 보시기 좋은 모습으로 성장할 거라 믿고 기다려주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참으로 실망스럽습니다. 자신들을 누구보다 아껴주시고 사랑해주신 스승님이 괴롭고 심란한 얼굴로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는데, 겨우 한다는 소리가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인 것을 보면 말이지요.

 

그들 중 누구도 예수님이 얼마나 힘들고 괴로우실지 걱정하지 않습니다. 그분께서 이루셔야 할 사명에 지장이 생기지는 않을까 염려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예수님의 등에 칼을 꽂는 ‘배신자’가 ‘나만 아니면 된다’는 생각 뿐이었지요. 예수님께서 걸으셔야 할 ‘십자가의 길’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여 힘이 되어 드리지는 못할 망정, 그분을 배신하는 ‘죄’만 안지으면 된다 여기는 그들의 안일함이, 예수님이야 어찌되든 나만 괜찮으면 된다 여기는 그들의 냉정함이 마치 제 모습 같아 마음이 무겁습니다. 세상의 눈치가 보여 주님 뜻을 적극적으로 따르지도 못하고, 주님 눈치가 보여 대놓고 탐욕을 채우지도 못하는 저의 비겁함이 제 양심을 아프게 찌릅니다. 오늘 복음 속 유다가 바로 저인 것이지요.

 

“스승님, 저는 아니겠지요?”하며 ‘면피’할 생각만 하는 저에게 주님께서 슬픈 표정으로 말씀하십니다. “네가 그렇게 말하였다.” 우리는 어떻게 말해야 할까요? “저는 아니겠지요?”라고 외면할 게 아니라, “제가 바로 그 배신자입니다”라고 솔직히 고백해야 합니다. 내 손에 쥔 얼마 안되는 것을 어떻게든 지키기 위해 양심을 저버리지 말고, 주님께서 바라시는 것을, 하느님 뜻에 합당한 올바른 것을 선택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발만 동동 구르고 있어서는 구원의 길을 걸을 수 없습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있어서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나중에 천국문 앞에서 ‘저 여기 들어갈 수 있겠지요?’라고 물을 때, 주님으로부터 ‘네가 그렇게 말하였다’라는 무서운 대답을 듣게 될 겁니다. 

 

* 함 승수 신부님 강론 말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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