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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6주간 월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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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우들의 집이나 사업체를 축성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 자주 떠올리는 시편 말씀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집을 지어 주지 않으시면 그 짓는 이들의 수고가 헛되리라.” 우리는 노력하고, 계획하고, 땀 흘리며 살아갑니다. 집을 마련하고, 사업을 시작하고, 자녀를 키우고, 공동체를 세워 갑니다. 그러나 신앙인은 그 모든 일의 마지막 주인이 하느님이심을 고백하는 사람입니다. 일이 잘되면 그 영광을 하느님께 돌리고, 일이 뜻대로 되지 않으면 남을 탓 하기보다 먼저 나를 돌아보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겸손입니다. 며칠 전 사무실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자동차 검사를 받으라는 우편물이 왔다는 것입니다. 저는 보험증과 면허증을 챙겨 동네 정비소에 갔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어렵고 내일 오라고 했습니다. 조금 거리가 있었지만, 교우분이 하시는 정비소에 연락했더니, 사장님께서 조금 늦었지만 오라고 하셨습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사장님이 보험증과 차량 정보를 보시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신부님, 이 차는 올해 검사받지 않아도 됩니다. 새 차는 2년 동안 검사가 면제됩니다. 내년에 오시면 됩니다.” 저는 그제야 알았습니다. 2024년에 차를 샀지만, 차량 모델이 2025년이면 2025년 차량으로 적용된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처음에는 괜히 시간을 낭비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무장도 미안해했습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것도 하나의 ‘수업료’였습니다. 우편물을 조금 더 꼼꼼히 보았더라면, 먼저 확인했더라면 발품을 팔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덕분에 하나 배웠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도 배웠습니다. 우리 삶에는 때로 헛걸음처럼 보이는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눈으로 보면 그 헛걸음도 우리를 겸손하게 만드는 길이 될 수 있습니다. 내가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모르는 것이 있습니다. 내가 바쁘다고 생각했는데 더 차분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옳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사람이 미안해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작은 일 안에서도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가르치십니다. 이냐시오 성인은 그리스도와 함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겸손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첫 번째 겸손은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운전으로 말하면 ‘준법 운전’입니다. 신호를 지키고, 속도를 지키고, 법규를 지키면 사고를 예방할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의 계명과 교회의 가르침을 충실히 지키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깃발 아래 머무는 사람입니다. 두 번째 겸손은 계명을 지키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계명의 정신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운전으로 말하면 ‘안전운전’입니다. 법적으로는 내가 먼저 갈 수 있어도, 급하게 가려는 차에 길을 내어줄 수 있습니다. 장거리 운전을 하기 전에 충분히 쉬는 것도 안전운전입니다. 부모에게 효도하라는 계명도 마찬가지입니다. 안부를 묻고, 찾아뵙고,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 계명의 정신입니다. 세 번째 겸손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고통과 불편까지도 기쁘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운전으로 말하면 ‘양보 운전’을 넘어 ‘사랑의 운전’입니다. 짐을 들고 힘들게 걸어가는 어르신을 보면 잠시 멈추어 도와드리는 마음입니다. 복음을 위해서라면 가난도 받아들이고, 불편함도 받아들이고, 때로는 억울함도 받아들이는 마음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신 길이 바로 그 길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미카 예언자는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삶을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아, 무엇이 착한 일이고 주님께서 너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그분께서 너에게 이미 말씀하셨다. 공정을 실천하고 신의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느님과 함께 걷는 것이 아니냐?”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화려한 제물이 아닙니다. 많은 말도 아닙니다. 공정을 실천하는 삶, 신의를 사랑하는 삶, 겸손하게 하느님과 함께 걷는 삶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예수님께 표징을 보여 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요나의 표징”밖에는 주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요나는 처음에는 하느님의 뜻을 피해 도망쳤습니다. 두려움 때문에 니네베로 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만난 뒤에 요나는 다시 길을 떠납니다. 그리고 니네베 사람들에게 회개를 선포합니다. 요나의 표징은 단순히 큰 물고기 배 속에 사흘 동안 있었다는 기적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뜻 앞에서 도망치던 사람이 다시 돌아서는 표징입니다. 자기 생각을 내려놓고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표징입니다. 예수님께서 보여 주시는 가장 큰 표징도 놀라운 기적만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삶 자체가 표징입니다.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신 삶, 죄인들을 용서하신 삶, 병자들을 일으키신 삶, 십자가를 지고 가신 삶, 그리고 부활로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신 삶이 표징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그런 표징이 되라고 하십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보며 하느님의 자비를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공동체를 보며 하느님의 사랑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산상설교는 세 번째 겸손으로 살아가라는 예수님의 초대입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 자비를 베푸는 사람, 평화를 이루는 사람,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행복하다고 하셨습니다. 옳은 일을 하다가 모욕과 박해를 받아도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의 길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작은 헛걸음을 할 때가 있습니다. 불필요한 수고를 할 때도 있습니다. 누군가의 착오 때문에 마음이 상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불평으로 끝나면 그것은 시간 낭비가 됩니다. 그러나 그 안에서 내가 배울 것을 찾고, 나를 낮추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면 그것은 수업료가 됩니다. 신앙인은 시간 낭비처럼 보이는 일도 은총의 자리로 바꾸는 사람입니다. 오늘 하루도 주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삶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공정을 실천하고, 신의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하느님과 함께 걷는 삶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세상에 보여 줄 요나의 표징이고,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는 길입니다. “사람아, 무엇이 착한 일이고 주님께서 너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그분께서 너에게 이미 말씀하셨다. 공정을 실천하고 신의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느님과 함께 걷는 것이 아니냐?”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 번호 | 제목 | 등록일 | 작성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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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700 |
07.20.월 / 한상우 신부님 |
04:35 | 강칠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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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연 마태오신부님(빠다킹신부님) 7월 20일 연중 제16주간 월요일 |
2026-07-19 | 박양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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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6주간 월요일 |
2026-07-19 | 조재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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