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8월 23일 (일)
(녹) 연중 제21주일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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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우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_김건태 신부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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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08:58 ㅣ No.191388

이병우 신부님_<연중 제21주일>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마태16,16)

 

'너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오늘 복음(마태16,13-20)의 제목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다.'입니다.

 

예수님께서 카이사리아 필리피 지방에 가셨을 때 제자들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마태16,13) 밖에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묻습니다. 제자들이 대답하기를,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마태16,14)

 

예수님께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마태16,15) 하고 물으시면서, 제자들의 마음을 묻습니다.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나서서 이렇게 대답합니다.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마태16,16)

 

이는 베드로 사도의 신앙고백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신앙고백을 들으시고, 그를 으뜸 사도의 지위를 주시어 교회의 반석(기초)이 되게 하시고, 하늘 나라의 열쇠를 그에게 맡기십니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마태16,18-19ㄱ)

 

오늘 복음에 이어질 말씀이 떠오릅니다.

오늘 복음을 듣는 우리에게도 같은 질문을 하실 것 같습니다.

"그러면 루카 너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을 스승님으로, 살아 계신 분으로,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곧 예수님께서 나를 가르치시는 분이시고, 지금 나와 함께 계신 하느님이시고, 지금 나를 구원하시는 주님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렇게 신앙고백을 드리도록 합시다!

 

예수님께서 하늘 나라의 열쇠를 베드로에게 맡기셨습니다.

이 맡김이 오늘날 이 지상 그리스도의 대리자인 교황에게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늘 나라의 열쇠는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열쇠입니다.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온전히 나의 손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마태7,21)

예수님의 이 말씀처럼, 하느님의 나라는 지금 여기에서 예수님을 통해 드러난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면 들어갈 수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죽은 신앙이 아니라, 생각과 말과 행위로 믿는 살아 있는 신앙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예레25,38)

 

조욱현 신부님_하늘 나라의 열쇠를 너에게 주겠다. 

 
1. 신앙 고백의 근원: 하늘로부터 오는 선물
예수님께서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13절) 하고 물으신 것은 단순한 여론 조사가 아니라, 제자들의 내면이 하느님의 계시에 열려 있는지를 묻는 근본적 질문이다. 베드로는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16절)라고 고백한다. 이 신앙 고백은 단순한 인간적 인식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주어진 은총이다.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17절)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 신앙의 기원을 이렇게 설명한다. “베드로가 고백한 것은 인간의 지성으로 이해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계시하신 진리였다. 그러므로 그 고백은 인간의 말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응답이다.”(In Ioannis Evangelium Tractatus 124,5 의역) 신앙은 단지 지성의 이해를 넘어, 하느님이 먼저 여신 관계의 응답이다. 그리스도에 대한 올바른 고백은 언제나 성령의 영감 안에서만 가능하다.(1코린 12,3 참조) 
 
2. “너는 베드로이다.”: 반석 위의 교회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신다고 하신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18절) 여기서 ‘반석’(πέτρα)은 단지 베드로 개인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고백한 믿음과 그 고백 안에서의 사도적 봉사를 포함한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렇게 해석한다. “그리스도께서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셨다는 것은, 단순히 사람 위에 세웠다는 뜻이 아니라 그 신앙의 확고함 위에 세웠다는 의미이다. 그 신앙이 무너지지 않기에 교회도 무너지지 않는다.”(Homilia in Matthaeum 54,3 의역) 교회는 그러므로 언제나 베드로의 신앙, 곧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그리스도”에 대한 고백 위에 서 있다. 그 반석은 단단하지만, 동시에 봉사의 반석, 겸손한 직무의 기초이기도 하다. 
 
3. 열쇠의 의미: 하늘과 땅을 잇는 봉사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네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다.”(19절) ‘열쇠’는 권위를 상징하지만, 단순히 통치의 권력이 아니라, 열어 줌의 봉사, 용서와 화해의 직무를 가리킨다. 이사야서에서 “다윗의 집의 열쇠를 그의 어깨에 걸겠다.”(22,22)라는 표현은 ‘하느님의 집’을 관리하고 문을 여닫는 청지기적 권한을 상징한다. 마찬가지로 베드로의 권한은 하느님 백성에게 생명의 문을 여는 권한, 곧 복음과 은총의 문을 여는 봉사직이다. 
 
교회 헌장은 이렇게 가르친다. “그리스도께서는 교회의 사명을 지속시키기 위하여 복된 베드로를 다른 사도들 가운데 세워, 그 위에 교회의 영속적이고 가시적인 근거를 세우셨다. 그 권한은 그의 후계자, 곧 로마 주교 안에 계속 살아 있다.”(18항 의역) 따라서 베드로의 사명은 역사 속에서 단절되지 않고, 교회의 일치를 위한 가시적 중심으로 계속 이어진다. 일치 교령이 말하듯, “하느님의 뜻 안에서, 주님은 당신의 유일한 교회 안에 모든 사람을 부르신다.”(2항)라는 일치의 표징이기도 하다. 
 
4. 권위는 봉사를 위한 것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권한을 주신 목적은 지배가 아니라, 봉사이다. 교회 안의 권위는 언제나 사랑의 봉사 안에서 행사되어야 하며, 이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신”(마르 10,45)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르는 것이다. 성 그레고리오는 교황직의 본질을 이렇게 요약했다. “나는 교회의 주인이 아니라, 하느님의 종들의 종(servus servorum Dei)이다.”(Epistolae, V,44) 그러므로 교회의 반석은 돌이 아니라, 사랑으로 굳건해진 믿음이다. 그 믿음은 언제나 교회 공동체 전체가 함께 세워가는 신앙이다. 
 
5. 찬미로 마무리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의 구원 계획의 신비 앞에서 이렇게 찬미한다. “오! 하느님의 풍요와 지혜와 지식은 정녕 깊습니다! 그분의 판단은 얼마나 헤아리기 어렵고 그분의 길은 얼마나 알아내기 어렵습니까? 그분께 영원토록 영광이 있기를 빕니다. 아멘.”(로마 11,33.36) 
 

이 찬미는 베드로의 고백에서 시작된 교회의 신앙 고백으로 이어진다.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 안에서만 교회는 흔들리지 않으며, 모든 권위는 봉사로 완성된다.

 

김건태 신부님_반석위에 세워진 교회 

 

[말씀]

1독서(이사 22,19-23)

기원전 8세기 말엽 히즈키야 임금 시대에, 상당수의 지도자는 아시리아 제국을 거슬러 전쟁을 일으킬 목적으로 백성들을 선동했습니다. 예언자 이사야는 이러한 야욕을 하느님께 대한 신앙 결핍으로 판단하고서 단호히 배격합니다. 특히 그는 백성들을 그릇된 길로 이끌어가는 시종장 세브나를 고발하고 그에게 하느님의 응벌을 예고하는 가운데, 하느님께서는 그를 권좌에서 끌어내리고 새로운 시종장을 그 자리에 앉히시리라 예고하십니다.

2독서(로마 11,33-36)

앞서 사도 바오로는 성령으로 이끌리는 신앙생활이 어떤 것인지를 제시하고 난 다음 이스라엘의 운명에 대하여 긴 숙고의 시간을 가진 적이 있습니다. 그는 언젠가 자기의 동족인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의 교회 안에서 제 자리를 차지하게 되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바오로는 주님께 영광을 올리는 찬미가로 숙고의 시간을 마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감사의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그 앞에 머리를 숙입니다.

복음(마태 16,13-20)

하느님 나라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전하고 난 다음, 이제 복음저자 마태오는 곧 지상 생활을 마치실 주님께서 당신의 교회를 세우시면서 미래를 어떻게 준비하고 계신 지 밝혀줍니다. 그분은 당신 제자들이 당신의 업적과 신원 앞에 바로 서게 하십니다. 동료들을 대표하여 시몬이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신앙을 고백합니다. 주님께서는 시몬에게 베드로라는 새로운 이름을 주시며 이 지상 교회를 맡기십니다. 베드로는 이제 동료들과 함께 주님의 구원사업을 이어나갈 것입니다.


[새김]

교회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상당수의 신자는 교회의 제도나 규정을 달갑지 않은 것으로 여기곤 한다. 우리 교회가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좀 더 자유로운 공동체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우리의 신앙생활이 고정적인 틀에서 벗어나 활력 넘치는 삶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일 것입니다. 충분히 이해가 가면서도, 제도나 규정 자체를 무시함으로써 복음 정신을 해치는 위험한 결과에 이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기쁜 소식’, 곧 복음(福音)은 거저 주어진 은총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함부로 제재를 가할 수 있는, 우리가 멋대로 재편할 수 있는 성질의 선물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리스도교 신자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말씀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가르침 가운데 으뜸가는 요소는 교회의 초석인 베드로에 관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사도로서 다른 사도들을 대표하여 예수님을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로 고백한 첫 인물, 우리의 신앙을 대표하는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제도나 규정들은 이처럼 베드로와 사도들을 기초로 세워진 교회가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라, 오랜 역사를 통해 빚어낸 것들이기에 존경과 순명의 정신으로 받아들이고 준수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매 순간 우리에게, 당신 제자들에게 던지셨던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하는 바로 그 질문을 던지시며,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하는 똑같은 신앙고백을 듣고자 하십니다. 우리의 고백 속에 주님의 수난과 십자가상 죽음과 영광스러운 부활이 늘 스며 있는 고백, 더는 주님의 함구령이 필요 없는 고백이 될 수 있도록, 어떠한 수난과 죽음의 현실이 우리를 위협할지라도 부활의 영광을 희망하며, 당당하게 우리의 신앙생활을 펼쳐나가는 한 주간 되기를 기도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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