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1일 (화)
(녹) 연중 제22주간 화요일(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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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태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_이병우 신부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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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2026-08-27 ㅣ No.191466

김건태 신부님_충실하고 슬기로운 종

 

연중시기 평일 미사 복음 가운데 1-9주간은 마르코 복음, 10-21주간은 마태오 복음, 그리고 22-34주간은 루카 복음을 읽습니다. 따라서 마태오 복음은 이번 주간까지 봉독되고, 다음 주간부터는 루카 복음으로 넘어갑니다. 이러한 전례적 여정에서 오늘부터 사흘 동안 마태오 복음 24장과 25장에 나오는 마지막 때에 관한 말씀, 곧 충실한 종과 불충실한 종 이야기(오늘), 열 처녀의 비유 이야기(내일), 탈렌트의 비유 이야기를(모레) 읽고 묵상하게 됩니다.

 

오늘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하여 깨어 있어라. 너희의 주인이 어느 날에 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하는 말씀으로 가르치기 시작하십니다. ‘어느 날에 올지 모른다라는 표현에서 주인의 오심은 마지막 심판의 때를 가리킬 수 있으나, 이어지는 말씀에 담긴 몇 시에 올지 모른다라는 표현에서는 우리 각자가 언젠가 분명히 맞이할 죽음의 시간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것이 최후 심판의 날이든 우리 각자의 죽음의 시간이든, 깨어 있어야 합니다. 이 날과 이 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특별한 깨어 있음이 필요합니다.

여기까지는 마지막 시간에 대한 일반적이며 보편적인 경계의 말씀으로 다가옵니다. 제자들은 물론 모든 그리스도교 신자에게 깨어 있음은 늘 갖추고 살아야 할 기본자세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어찌 보면, 깨어 있음이 신자와 비신자를 가름하는 잣대로 자리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어서 이야기는 충실한 종과 불충실한 종에 관한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주인이 제때 양식을 내주도록 집안 식솔들을 맡긴 종, 이름하여 청지기의 직무 수행에 관한 태도가 주제로 떠오릅니다. 충실한 청지기는 주인의 재산을 잘 관리하고 집안일 전반을 살피며 수하의 다른 종들을 감독하는 사람, 오늘 말씀에 의하면 특별히 생명 유지를 위해 제때 양식을 내주어야 하는 사람이며, 그에게는 지난 사흘 동안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을 거슬러 울려 퍼졌던 불행이 아니라 행복이 선언됩니다: “행복하여라, 주인이 돌아와서 볼 때에 그렇게 일하고 있는 종!이 행복 선언은 주인이 자기의 모든 재산을 맡기는 것으로 구체화합니다.

그러나 여기 못된 종도 등장합니다. “마음속으로 주인이 늦어지는구나.’하고 생각하며동료들을 핍박하고, “술꾼들과 어울려 먹고 마시며주어진 직무를 저버리는 청지기를 말합니다. 주인으로부터 식솔을 보살필 임무를 부여받은 존재임을 망각하고서, 비뚤어진 권력을 행사하는 존재입니다. 이 사람은 위선자들과 같은 운명”, 곧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에게 예고된 운명을 겪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충실한 종과 불충실한 종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말씀을 듣고 있는 제자들이 늘 충실한 종으로 머물기를 간절히 바라시는 듯합니다. 종은 주인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이며, 그 뜻을 온전히 실행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이 당신이 늘 함께하고 계심을 믿고, 교회와 교회 구성원들을 섬기며 변함없는 봉사의 길을 걸어가기를 바라십니다.

 

 

오늘 하루, 주님과 주님의 가르침에 충실한 삶으로, 만나는 사람들에게 기쁨과 행복을 전하는 하루, 그리하여 행복하여라, 주인이 돌아와서 볼 때에 그렇게 일하고 있는 종!으로서의 복된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조욱현 신부님_너희는 늘 준비하고 있어라.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44절)라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은 두려움과 위협이 아니라, 오히려 사랑으로 깨어 있는 삶을 촉구하는 말씀이다. 신앙인은 언제 오실지 모르는 주님을 기다리면서,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아가야 한다. 
 
예수님께서 들려주신 두 비유는 매우 선명하다. 도둑의 비유(43절)에서 집주인이 도둑이 올 시간을 알면 대비했을 것이다. 하지만 알 수 없으므로 늘 깨어 있어야 한다. 이는 종말의 때가 예고 없이 찾아옴을 가르친다. 충실한 종과 악한 종의 비유(45-51절)는,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은 주인의 뜻에 따라 다른 이들에게 제때 양식을 나눠주지만 못된 종은 주인의 지연을 핑계로 자기 욕심에 빠지고, 다른 이들을 학대한다. 결국, 그는 “처단되어”(51절) 하느님의 나라에서 제외된다. 여기서 ‘제때 양식을 내주는 것’은 단순한 물질적 나눔을 넘어, 하느님의 말씀과 은총을 세상과 나누는 사명을 의미한다. 교회의 사명, 그리고 우리 신앙인의 소명이 바로 여기에 있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 비유를 설명하면서, “주인의 뜻은 그 종이 자기 자신만이 아니라 다른 이들의 구원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다. 충실한 종은 주인의 재산을 자기 것이 아니라, 공동의 선을 위해 사용한다.”(Hom. in Matthaeum 77 요약)라고 한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깨어 있음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너희가 언제 죽을지 모른다. 그러니 너희 삶을 언제나 선하게 살아가라. 종말은 멀리 있지 않고, 너의 마지막 날이 곧 종말이다.”(Sermo 93,8 참조) 즉, 개인의 죽음과 최종 종말은 본질적으로 같은 긴장 속에 있다. 교리서는 이렇게 가르친다. “최후의 심판은 하느님의 나라가 결정적으로 나타나는 순간이며, 우리 각자의 은밀한 마음과 행위가 드러나는 때이다. 그날을 미리 알 수 없으므로, 그리스도인들은 늘 깨어 준비해야 한다.”(1040항 참조) 깨어 있음은 단순히 두려움 속에서 조심하는 태도가 아니라, 하루하루를 성실하게사랑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기도와 말씀, 성사 생활 속에서 주님을 기억하며, 이웃을 돌보는 사랑의 행위에서 우리는 진정한 준비를 하게 된다. 
 

우리는 모두 주인의 집에 맡겨진 종들이다. 주님께서 언제 오실지 모르지만, 우리는 그분의 재산인 세상과 교회를 돌보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은 주님의 기쁨에 들어가지만, 악한 종은 자기 욕심과 방종으로 심판을 받는다. “행동하는 사랑” 안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주님이 오실 날을 기다리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주님께서 오실 때, 우리 각자를 향해 이렇게 말씀하시면 좋겠다. “잘하였다, 착하고 충실한 종아!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마태 25,23)

 

이병우 신부님_<성녀 모니카 기념일>

 

"깨어 있어라.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마태24,42ㄱ.44ㄱ)

 

'엄마의 기도!'

 

오늘 복음(마태24,42-51)은 '깨어 있어라.'는 말씀과 '충실한 종과 불충실한 종'에 대한 말씀입니다. '마지막 심판의 때를 깨어 준비하고 있는 충실한 종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깨어 있어라. 너희의 주인이 어느 날에 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마태24,42)

 

"그러니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마태24,44)

 

오늘은 '성녀 모니카를 기억하는 날'입니다.

성녀 모니카는 내일 기억하는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의 어머니'입니다.

성녀 모니카의 모범은 아들의 회개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신 것입니다. 아들의 회개를 위해 무려 18년 동안이나 끊임없이 기도하셨다고 합니다.

성녀 모니카 엄마의 전구 기도로 마침내 아들이 마니교 이단으로부터 돌아와 세례를 받았을 때, 엄마는 아들 아우쿠스티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들아, 내게 있어선 세상 낙이라곤 인제 아무것도 없다. 현세의 희망이 다 채워졌는데 다시 더 할 것이 무엇인지, 왜 이렇게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내가 이 세상에서 좀더 살고 싶어했던 것은 한 가지 일 때문이었다. 내가 죽기 전에 네가 가톨릭 신자가 되는 것을 보겠다고 .... 한 가지만 너희한테(두 아들) 부탁한다. 너희가 어디에 있든지 주님의 제단 앞에서 날 기억해 다오."('고백록' 에서/ 성무일도 고유독서)

 

'엄마의 기도!'

 

엄마의 기도가 필요한 때라고 생각합니다. 냉담자들 안에 자녀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성녀 모니카 엄마처럼 자녀들이 주님께로 돌아오라고 기도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성당 나오라고, 미사에 참례하라고 자꾸 보채기 보다는, 묵묵히 자녀들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면서, 행동으로 자녀들에게 더 큰 하느님의 사랑을 나누어 줄 때라고 생각합니다.

 

하느님의 종들인 우리에게 맡겨진 일은 너의 구원, 모두의 구원을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이 소명에 충실한 슬기로운 하느님의 종, 그래서 행복한 하느님의 종이 되도록 함께 노력합시다!

 

다시금 2020년 3월 4일 밤 0시 59분, 수원 빈센트 병원 중환자실에서 선종하신 이정숙사비나 엄마의 기도문들을 찾아 읽어 보았습니다. 대부분 저와 두 동생을 위한 기도였고, 손주들을 위한 기도였습니다. 이루카 신부가 사제의 길 잘 걸어가게 해 달라는 기도와 동생들이 성가정을 이루게 해 달라는 기도였습니다. 천국에서도 기도하고 계시겠지요. ㅎㅎ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고, 또 누군가가 나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맙시다!

 

(~ 예레48,47)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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