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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를 맞은 것처럼 아프고 쓰라린 이유 ― 오늘날 교회의 성금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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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매일 사람들에게 하느님을 알게 해 달라고 기도드립니다.
성령께서 저에게 오셨듯이, 모든 사람에게도 성령께서 오셔서 진리를 가르쳐 주시고 하느님을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는 제 뜻은 내려놓고, 오로지 고통과 기도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하느님을 알게 된다면 세상은 새로워질 것입니다.
사람들이 제가 바라보는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제가 듣는 세상의 소리를 듣게 된다면, 그들의 마음은 마치 매를 맞은 것처럼 아프고 쓰라릴 것입니다.
그동안 하느님을 알지 못한 채 살아온 자신을 바라보게 되고, 하느님을 떠나 있는 세상의 모습을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제가 하느님을 알게 되었을 때 느끼게 된 마음입니다. (28. 하느님께 반역하는 영,7-8) "심지어 내 사제들 가운데도 더는 믿음이 없으면서 여전히 교회 속에 머물러 있는 자가 너무나 많다. 양의 탈을 쓴 이리(마태 7,15)인 그들이 헤아릴 수 없도록 많은 영혼을 멸망으로 이끌고 있는 것이다! 이제 그 무엇으로도 더는 하느님 정의의 손길을 만류할 수가 없다. 선택된 사람들의 사랑과 기도와 고통을 보시고, 그분께서 머지않아 사탄과 그 앞잡이들에게 당신 격노의 불길을 터뜨리실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 가지 경험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2024년 5월 어느 날, 저는 제빵기사 자격증 실기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시험을 며칠 앞두고 아내가 꿈을 꾸었습니다. 성당이 나왔고, 제대가 펼쳐져 있었으며, 영성체를 모시는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신부님 앞에 서니 신부님께서 성체가 아닌 단팥빵을 주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무엇인가를 더 주려고 하셨는데, 그것은 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물질은 검은 액체 같은 것이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커피였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뒤돌아보니 사람들이 모두 단팥빵을 허겁지겁 먹고 있었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입가에 팥이 묻은 채로 계속 빵을 먹고 있었다고 합니다.
며칠 뒤, 실제 실기 시험에서 단팥빵이 시험 종목으로 나왔습니다.
처음에 저는 이 꿈이 저에게 일어날 일을 알려주는 것이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 기도 중에 그것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교회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2025년 2월 어느 날, 어느 성당에서 미사가 끝난 뒤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신부님께서 저에게 찾아오셔서 세뱃돈을 주셨습니다. 저는 어쩔 수 없이 받았는데, 알고 보니 새해 인사를 하며 만나는 사람들에게 세뱃돈을 주고 계셨던 것이었습니다. 큰돈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성당에서 기도하고 있는 사람에게까지 세뱃돈을 건네는 모습을 보면서, 사제의 삶에서 물질이 어떤 의미를 차지하고 있는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찾아가는 사제들이나 제가 만났던 사제들에게서는 식사와 여러 가지 먹을 것, 심지어 와인을 대접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음식을 먹기 위해 사제를 찾아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그저 함께 기도하고, 하느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성지에서 잠시 일할 때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한 사제가 상당히 비싼 식사를 몇 번 사주신 적이 있습니다. 그 한 끼의 식사값이 제가 2~3년 동안 외식에 쓴 비용을 모두 합친 것보다도 많았습니다.
오늘날에는 많은 사제들이 자동차를 가지고 있고, 지인이나 신자들과 외부에서 만나 식사를 하거나 함께 여행하는 모습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사제들은 자신의 영명축일에 많은 신자들에게 선물을 나누어 주거나 식사를 대접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는 묻고 싶습니다. 혹시 사제가 함께 기도하기 위해 여러분을 찾아온 적이 있습니까? 가정을 방문하여 신자들과 함께 기도하고, 깨어 있도록 가르치며 이끌어 주는 사제가 여러분 주변에 있습니까? 저녁의 텔레비전 시청이나 오락보다 가정 기도를 우선하도록 가르치고, 가정에서 기도가 살아나도록 이끌어 주는 사제들이 있습니까?
하느님께서 이 세상에 징벌을 내리신다면, 그것은 단지 세상의 암흑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세상은 하느님을 거슬러 살아가고 있으며, 사탄은 교만으로 하느님께 반역하여 이미 심판을 받았습니다. 마지막에는 그 심판이 완전히 드러나 불과 유황의 못에 던져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백성인 우리가 그분을 배신하고 세상을 받아들임으로써 하느님의 정의의 잔이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146. 너희는 성전에서 희생 제물이 되리라,7-9) "성전은 이제 속화되어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다. '진리'의 기둥들에 터진 금이 보이고, 수많은 목자들이 더없이 위태로운 오류의 희생자가 되어 있다! 모든 것이, 제대마저 뒤덮으려 하는 죄로 더럽혀져 있다. 독성죄가 점점 더 저질러지니, 하느님의 정의의 잔이 이제는 가득 차고 말았다." (357. 나의 때가 되었다,12) "지금은 대징벌의 때이다. 하느님 정의의 잔이 가득 찼고, 가득 찬 정도가 아니라 이미 넘쳐흐르고 있다."
성경은 수없이 전해줍니다. 하느님께서 이민족을 보내시어 당신 백성을 치게 하셨습니다.
판관기에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주님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을 저지르고 다른 신들을 섬겼을 때, 주님께서 그들을 원수들의 손에 넘기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판관 10,6-7) "이스라엘 자손들이 다시 주님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저질렀다. 그들은 바알들과 아스타롯, 아람의 신들, 시돈의 신들, 모압의 신들, 암몬 자손들의 신들, 필리스티아인들의 신들을 섬겼다. 그들은 이렇게 주님을 저버리고 그분을 섬기지 않았다.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시어, 그들을 필리스티아인들과 암몬 자손들의 손에 팔아넘기셨다."
또한 예레미야 예언자는 이스라엘과 유다의 죄 때문에 하느님께서 북쪽의 민족들을 불러 예루살렘과 유다의 성읍들을 치게 하실 것이라고 전합니다. (예레 1,15-16) "이제 내가 북쪽 왕국들의 모든 족속을 불러들일 것이다. 주님의 말씀이다. 그들이 와서 저마다 제 왕좌를 예루살렘 성문 입구에 차리고, 그 주변 모든 성벽과 유다의 모든 성읍에 맞설 것이다. 그러면 내가 그들을 거슬러, 그들이 나를 저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제사를 바치며, 자기네 손으로 만든 것들을 섬긴 모든 죄악에 대하여 심판의 말을 내리겠다."
그리고 에제키엘 예언서에서는 이스라엘의 목자들이 양 떼를 돌보지 않고 자기들만 먹은 것을 주님께서 책망하십니다.
여기서 주님께서는 목자들이 양 떼를 먹이지 않았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어서 그들이 약한 양에게 원기를 북돋아 주지 않고, 아픈 양을 고쳐 주지 않았으며, 부러진 양을 싸매 주지 않고, 흩어진 양을 도로 데려오지도, 잃어버린 양을 찾아오지도 않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마침내 당신의 양 떼를 목자들의 손에서 되찾으시고, 직접 당신의 양 떼를 찾아 보살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에제 34,2-6.10-11) "사람의 아들아, 이스라엘의 목자들을 거슬러 예언하여라. 예언하여라. 그 목자들에게 말하여라.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불행하여라, 자기들만 먹는 이스라엘의 목자들! 양 떼를 먹이는 것이 목자가 아니냐? 그런데 너희는 젖을 짜 먹고 양털로 옷을 해 입으며 살진 놈을 잡아먹으면서, 양 떼는 먹이지 않는다. 너희는 약한 양들에게 원기를 북돋아 주지 않고 아픈 양을 고쳐 주지 않았으며, 부러진 양을 싸매 주지 않고 흩어진 양을 도로 데려오지도, 잃어버린 양을 찾아오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들을 폭력과 강압으로 다스렸다. 그들은 목자가 없어서 흩어져야 했다. 흩어진 채 온갖 들짐승의 먹이가 되었다. 산마다, 높은 언덕마다 내 양 떼가 길을 잃고 헤매었다. 내 양 떼가 온 세상에 흩어졌는데, 찾아보는 자도 없고 찾아오는 자도 없다.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나 이제 그 목자들을 대적하겠다. 그들에게 내 양 떼를 내놓으라 요구하고, 더 이상 내 양 떼를 먹이지 못하게 하리니, 다시는 그 목자들이 양 떼를 자기들의 먹이로 삼지 못할 것이다. 나는 내 양 떼를 그들의 입에서 구해 내어, 다시는 그들의 먹이가 되지 않게 하겠다.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나 이제 내 양 떼를 찾아서 보살펴 주겠다.’"
에제키엘 예언서의 말씀을 읽으면서 저는 오늘날의 교회를 다시 바라보게 됩니다.
성모님께서는 오늘날에도 예수님께서 당신의 교회 안에서 저버림과 부인과 배반을 당하고 계신다고 말씀하십니다.
특히 목자들에 대해서는, 두려움이나 편의 때문에 침묵함으로써 오류의 속임수로부터 진리를 옹호하지 않고, 양 떼를 사나운 이리들로부터 보호하지 않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323.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나이까?,7-12) 오늘날에도 예수께서는 여전히 당신 교회의 저버림과 부인과 배반을 당하고 계신다. 그분을 부인하는 자들은 자신들의 안락, 자아, 사람들에게서 환영과 칭송을 받는 재미부터 찾느라고 그분을 뒷전으로 밀어내는 자들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만심 때문에 말과 생활로 그분을 부인하면서,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오!"(마태 26,72:마르 15,71:루가 22,57:) 라고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분을 배반하는 자들은 스스로에게 맡겨진 양떼를 돌보지 않는 목자들이다. 두려워서, 혹은 편의상 침묵을 지킴으로써, 오류의 속임수로부터 진리를 옹호하지 않을 뿐더러, 양의 탈을 쓰고 나타난 사나운 이리(마태 7,15)들의 끔찍한 횡포로부터 양떼를 보호하지도 않는 목자들이다. 그분을 저버리는 자들은 숭고한 성소의 신분을 버리고 떠나거나, 떠나지는 않더라도 서원에 충실하지 않거나, 혹은 몸담고 있는 세상의 정신에 자신을 온통 내맡기고 끌려가는 숱한 사제와 수도자들이다. 그분을 거부하며 배척하는 자들은 오늘날 유행하는 이데올르기를 추종하여 '복음'과 상반되는 가치들을 내세우면서, 모든 이의 찬동을 얻기 위해서라면 언제라도 타협하고 마는 평신도들이다. '성금요일'은 과연, 오늘날에도 되풀이되고 있다. 예수께서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신 그 당시보다 훨씬 더 크고 더 일반적인 모양으로 반복되고 있다. 이를테면, 그 당시의 못된 짓 한 번이 지금은 천 배로 가중되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당신 신비체인 교회 안에서 그 비통한 외침을 아직도 계속하시는 것이다: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나이까?"
그리고 이어서 성모님께서는 당신께서 겪으시는 고통에 대해서도 말씀하십니다. (323.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나이까?,13-16) "너희 '천상 엄마'의 고통이 오늘 다시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것도, 예수께서 성금요일에 받으신 고난이 지금도 똑같이 교회에서 반복됨을 보기 때문이다. 내 고통과 같은 고통이 달리 있겠는지 생각해 보아라! 이 고통의 원인은 죄가 넘쳐흐르고, 수많은 이들이 신앙을 잃음으로써 배교자가 갈수록 불어나며, 영혼들을 삼키는 불충실의 진수렁이 확산되는 데 있는 것이니, 너희도 나의 이 고통을 나누어 가져 다오. 오, 교회여, 오늘날만큼 네가 십자가에 못박히신 네 '신랑'을 닮은 적은 일찍이 없었으니, 너에게 있어서도 지금은 고뇌의 때, 버림받고 십자가에 달려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때이다. 그러나, 이 '너의 성금요일'에도 '고통의 어머니'는 네 곁에 있다. 네게 다가올 영광스러운 부활을 굳게 희망하면서 너를 격려하고 깨어 기도하는 '어머니'이다."
성모님께서는 “너희도 나의 이 고통을 나누어 가져 다오.”라고 말씀하셨고, 이어서 “이 천상 엄마의 고통과 하나가 되도록 부른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오늘날 교회와 세상의 현실을 바라보며 아파하는 성모님의 마음에 우리도 함께하고, 기도와 보속으로 그 고통에 동참하라는 부르심입니다.
또한 성모님께서는 지금 “기도의 큰 힘이 필요하다”, “하느님께 보속으로 올려지는 고통의 긴 고리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십니다. (251. 보속의 큰 힘, 6-7) "예수께서 맡겨 주신 양떼를 더 이상 돌보지 않는 ‘목자들’이 오늘날 얼마나 많은지! 진리를 수호하고 오류와 죄를 단죄하기 위해 용감하게 발언해야 할 때에도 침묵을 지키는 자들이 있다. 그들은 곤경에 몰리지 않으려고 이단자들에게 관용을 베풀고, 단지 자신들의 체면 유지에 급급해서 타협하고 만다. 이 때문에 오류가 애매모호한 표현으로 널리 유포되고 있으며, 예수님과 그분의 ‘복음’에 대한 배교가 증가일로에 있는데도 더 이상 죄의 보속이 행해지지 않는 것이다. 지금은 기도의 큰 힘이 필요하다. 하느님께 보속으로 올려지는 고통의 긴 고리가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사랑하는 아들들인 너희와 티없는 내 성심에 봉헌한 모든 자녀들이 이 천상 엄마의 고통과 하나가 되도록 부른다. 예수님의 ‘수난’에서 덜 채워진 부분이 너희 각자 안에서 다 채워지도록 하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누군가가 대신 기도해 주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각자가 그 기도의 고리에 하나씩 동참하는 것입니다.
성모님께서는 극기의 작은 꽃송이들을 바치고, 속죄와 희생으로 죄에 빠진 영혼들을 도와주며, 묵주기도를 더욱 열심히 바치고, 봉헌을 우리의 삶으로 살아가라고 당부하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봉헌된 기도와 희생들이 모여 하느님께 올려지는 ‘고통의 긴 고리’가 되는 것입니다. (264. 이 5월에는,2.4.6-9) "내게 극기의 작은 꽃송이들을 바쳐 주려무나. 그것으로 나를 위로해 다오. 하느님께 돌아오게 하려고 내가 보낸 모든 호소에 인류가 얼마나 귀를 기울이지 않는지, 그것을 보는 내 마음이 여간 비통하지 않다." "침묵, 순종, 온전한 봉사, 겸손, 인내, 온유, 쾌락과 오관의 만족 포기로 엮은 작은 꽃송이들을 날마다 내게 선물해 다오." "더욱 열심히, 또 더욱 자주, 내게 '묵주 화관'을 바쳐 다오. 너희 주위의 수도자와 신자들을, 나와 함께 열렬한 기도를 끊임없이 바치는 '체나콜로'로 모아들여라. 어느 때보다도 지금, '거룩한 묵주'로 열심히, 또 기쁘게 기도할 것을 당부한다. 이것이 이 유혈의 전투에서 싸워 이기기 위해 너희가 오늘날 사용해야 하는 무기이다. 이는 또한 너희를 내 마음에 묶어주는 황금 사슬이요, 징벌의 불이 너희와 너희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치지 못하게 막아주는 피뢰침이요, 나로 하여금 항상 너희 곁에 있게 하는 안전한 수단이다. 끝으로 너희에게 당부하는 것은, 나의 '티없이 순결한 고통의 성심'에 바친 너희의 봉헌을 자주 새롭게 하면서 온전히 생활화하라는 것이다."
우리가 하느님을 알고 세상을 바라보게 될 때, 그 마음이 매를 맞은 것처럼 아프고 쓰라린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하느님을 떠난 세상의 모습과 그 안에서 고통받으시는 예수님을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성모님께서 오늘날 교회의 성금요일을 바라보시며 겪으시는 고통도 바로 그러할 것입니다. 그 고통이 우리가 매를 맞은 것처럼 아프고 쓰라린 이유입니다. 그리고 그 아픔은 성모님의 마음에 함께하는 길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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