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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우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_김건태 신부님 묵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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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우 신부님_<성 아우쿠스티노 주교 학자 기념일>
"하늘 나라는 저마다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에 비길 수 있을 것이다."(마태25,1)
'정신 차리자!'
오늘 복음(마태25,1-13)은 '열 처녀의 비유'입니다. 예수님께서 저마다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의 비유를 들어 하느님의 나라를 설명해 주십니다.
열 처녀 중 다섯은 어리석고 다섯은 슬기로웠습니다. 어리석은 처녀들은 등은 가지고 있었지만 기름은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등과 함께 기름도 그릇에 담아 가지고 있었습니다. 등과 기름을 함께 준비하고 있었던 슬기로운 처녀들이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어리석은 처녀들은 들어가지 못합니다.
열 처녀의 비유가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등과 기름이 등불을 밝히는 데에 절대적 필요인 것처럼, 완성된 하느님의 나라 안으로 들어가려면 받드시 믿음과 삶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마태7,21)
"누가 믿음이 있다고 말하면서 실천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러한 믿음이 그 사람을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믿음에 실천이 없으면 그러한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야고2,14.17)
'믿음의 본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의 말씀과 삶인 '복음'입니다.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처럼 '복음을 말과 행동으로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 믿음의 본질입니다.
어제 모두의 집, 공동의 집인 지구의 이웃 나라인 네팔에서 갑작스런 큰 홍수가 있었습니다. 이로 인한 큰 피해를 입었고, 안타깝게도 많은 분들이 희생되고 실종 되었습니다. 알려지는 소식에 의하면 비로 인한 홍수가 아니라, 빙하 스나미로 인한 홍수였다고 합니다. 지구 온난화로 빙하가 빠르게 녹고 있고, 그로 인해 빙하 호수가 만들어지고 있는데, 이 호수에 큰 빙하가 무너져 내려 빙하 스나미로 인한 갑작스런 대홍수가 일어났다고 합니다.
2015년에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우리 공동의 집인 지구를 함께 살리자는 호소를 담고 있는 회칙, 지구 생태 환경의 위기에 관한 회칙, 기후 문제를 주제로 다룬 회칙인 '찬미 받으소서(Laudato Si)'를 반포하셨습니다. 실천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이 회칙은 무너져 가는 공동의 집, 하나의 집인 지구를 살리기 위한 생태적 회계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지구 온난화의 주범인 온실가스(이산화탄소 등)를 줄이고, 인간의 욕심과 탐욕을 줄이자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여기저기에서 지구가 아파 신음하고 있습니다. 이러다가는 언젠가 함께 공멸의 길을 걸어가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엄습해 옵니다. 우리는 함께 살아야 합니다. 함께 하느님 나라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이를 위해 끊임없이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입니다.
죽은 믿음이 아니라 살아있는 믿음이 되도록, 그래서 나와 너 그리고 우리 모두가, 공동의 집인 지구가 다시 살아날 수 있도록 정신을 차립시다!
"주님, 네팔 홍수로 인해 희생된 불쌍한 영혼들을 기억합니다. 주님, 그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영원한 빛을 그들에게 비추소서. 아멘."
(~ 예레52,34)
조욱현 신부님_열 처녀가 등불을 가지고 오늘 복음은 잘 알려진 열 처녀의 비유이다. 신랑을 맞이하기 위해 등불을 준비한 열 처녀 가운데 다섯은 슬기롭고, 다섯은 어리석었다. 이 비유는 단순히 준비성의 차이가 아니라, 영원한 혼인 잔치에 들어가는 길이 무엇인지, 곧 구원의 열쇠가 무엇인지를 가르쳐 준다. 모든 처녀가 등불은 가지고 있었다. 이는 모두가 신앙의 표지를 가졌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기름을 준비한 이는 절반뿐이었다. 전통적으로 이 기름은 사랑(자선과 선행)을 상징한다. 바오로 사도가 말한 것처럼,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1코린 13,2) 신앙은 겉모습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사랑이라는 내적 실천이 필요하다. 신랑은 늦게 오고, 모두가 졸았다. 이는 종말이 지연되는 현실과 인간의 나약함을 반영한다. 그러나 깨어 있다는 것은 단순히 육체적으로 잠을 자지 않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주님을 맞이할 준비, 곧 사랑으로 깨어 있는 상태를 뜻한다. “문은 닫혔다.”(10절) 이는 은총의 시간이 끝남을 뜻한다. 그제야 달려온 어리석은 처녀들은 주님의 혼인 잔치에 들어가지 못한다. 이 말씀은 구원의 문이 항상 열려 있는 듯 보이지만, 우리의 준비 여부에 따라 닫힐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풀이한다. “등불은 신앙을, 기름은 사랑을 상징한다. 신앙은 사랑으로 채워지지 않으면 꺼지고 만다.”(Sermones 요약)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강조한다. “등불만 가지고는 충분하지 않다. 기름, 곧 자선을 준비하지 않으면 잔치에 들어가지 못한다.”(Hom. in Matth. 78 참조) 성 치프리아노는 이 비유를 교회 공동체 안의 경계로 해석하며, “누구나 세례로 등불을 받지만, 끝까지 꺼뜨리지 않으려면 선행과 덕행으로 채워야 한다.”(De habitu virginum 참조)라고 말한다. 교리서는 이 말씀을 종말론적으로 설명한다. 주님의 재림은 지연되지만, 확실히 오며, “그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르므로 신앙인들은 사랑으로 충실히 준비해야 한다.”(673, 1040-1041항 참조)라고 가르친다. 우리도 신앙의 등불을 가지고 있다. 세례와 성사 생활, 기도와 말씀으로 불을 지피고 있다. 그러나 그 등불에 기름, 곧 사랑과 자선의 기름을 준비하지 않는다면, 마지막 순간에 꺼져버릴 수 있다. 주님은 오늘 우리를 초대하신다. 지금, 이 순간이 바로 준비할 시간이며, 사랑을 쌓을 기회이다. 열 처녀의 비유는 단순히 준비성과 부주의를 나누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신앙이 사랑으로 완성되어야 한다는 구원의 핵심 진리를 전한다. 주님을 맞이할 준비는 먼 훗날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시작된다. 오늘 우리가 실천하는 작은 사랑, 작은 자선, 작은 충실함이 바로 혼인 잔치에 들어가는 기름이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사랑의 기름을 준비하여, 신랑이신 주님께서 오실 때 이렇게 부르심을 받아야 한다. “어서 와서, 네 주인의 잔치에 참여하여라.”
김건태 신부님_열처녀 비유 산상설교 마지막 부분에서 예수님은 슬기로운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을 비교하여 비유로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단단한 반석 위에 집을 지었고, 다른 사람은 모래 위에 집을 지었습니다. 오늘 ‘열 처녀의 비유’에서도 우리는 거의 동일한 대조, 기름을 준비하고 있던 슬기로운 처녀와 그렇지 못한 다른 처녀들을 만납니다. 달리 말한다면, 복음의 기쁜 소식을 받아들이고 그대로 행동하는 사람은 슬기로운 사람이며, 복음 말씀을 듣기는 하나 그에 따른 행동을 보여주지 못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임을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먼저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처녀들은 혼인 잔치에 초대된 사람들, 더욱이 잔칫집에서 신랑을 마중하러 나갔다가 신랑을 맞이하여 함께 돌아오는 의식에 참여할 자격이 부여되었던 사람들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이야기는 더할 나위 없이 상식적이며 논리적이어서, 해설을 위해 고심하거나 무언인가를 덧붙일 필요가 없어 보이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신앙의 차원에서 본다면, 더욱 그러합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에서 신랑이 누구인지, 슬기롭거나 어리석은 처녀들이 어떠한 상태에 있는 사람들인지, 혼인 잔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닫힌 문이 상징하는 공포감이 어느 정도일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유사한 예수님의 비유 말씀들이 말하는. 또는 되풀이하는 메시지는 거의 동일합니다. 반석 위에 지은 집(7,24-27),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하객이 갖추어야 할 예복(22,1-14) 등의 비유가 주는 메시지가 그러합니다. 한 마디로, 신앙을 실천에 옮기는 삶만이 보상의 대상이 될 것이며, 영원한 행복을 선물 받을 수 있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또 다른 중요한 메시지가 있다면, 각 개인이 원하는 바를 행하는 것은 전적으로 각자의 자유 의지 문제이며, 그에 대한 책임 역시 온전히 각자의 몫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릇에 기름을 준비하지 않아 신랑을 마중하러 나가지 못한 것도, 혼인 잔칫집이 문이 닫혀버린 것 모두 잔치에 초대된 각자의 책임 문제라는 점입니다. 우리 모두 혼인 잔치에 초대되었다는 확신은 그 자체로 기분 좋은 일이며, 희망적인 일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확신은 안전보장이라는 세속적인 장치 속에 안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헛된 꿈으로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세상의 종말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가운데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러한 헛된 꿈을 경계할 것을 촉구하십니다. 다시 말해서, 구원에 대한 꿈은 늘 간직하되, 이 꿈을 현실화시키기 위한 준비에 소홀함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십니다. 신랑이 언제 오실지 모르니, 언제나 깨어 기다려야 하며, 언제든지 그분을 영접할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깨어 있어라. 너희가 그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
오늘 말씀과 함께 우리는 우리 모두 ‘구원’이라는 혼인 잔치에 은혜로이 초대되었다는 사실을 다시금 새기고 감사하며, 초대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신랑을 맞이할 준비, 특히 ‘기름’으로 상징되는 기도, 사랑 실천 등 행동하는 신앙인의 모습으로 드러내야 합니다. 오늘 하루도 그릇에 담을 기름을 열심히 준비하여, 주님을 기쁜 마음으로 맞이하기 위한, 뜻깊은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 번호 | 제목 | 등록일 | 작성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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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527 | 준비하고 있던 처녀들은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 2026-08-28 | 최원석 |
| 191526 | 전삼용 신부님_감정은 내가 사는 지구다.|1| | 2026-08-28 | 최원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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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524 | 이영근 신부님_“깨어 있어라.”(마태 25,13) | 2026-08-28 | 최원석 |
| 3002 | 매를 맞은 것처럼 아프고 쓰라린 이유 ― 오늘날 교회의 성금요일 | 2026-08-28 | 박소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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