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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9월 25일 (금)
(백) 한가위 사람의 생명은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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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5 주간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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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05:49 ㅣ No.192101

요즘은 거의 읽지 않는데 예전에는 ‘시조’를 읽곤 했습니다. 작가는 짧은 글에 ‘희로애락’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오늘은 시조 둘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오백 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보니 산천은 유구한데 인걸은 간 곳 없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고려의 충신 길재가 고려가 멸망한 뒤 옛 도읍 개경을 돌아보며 지은 시조입니다. 오백 년 동안 찬란했던 고려의 도읍은 산과 강이 예전 모습 그대로 남아 있지만,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과 영화는 모두 사라지고 없습니다. 길재는 변함없는 자연과 사라져 버린 인간의 역사를 대비시키며 인생과 권세의 무상함을 노래합니다. 한때 영원할 것 같았던 태평성대도 지나고 나면 한바탕 꿈처럼 느껴집니다. 산천은 남아 있어도 사람은 떠나고, 권세와 영화도 사라진다는 사실에서 우리가 무엇을 남기며 살아야 하는지를 돌아보게 하는 시조입니다.

 

‘비 갠 긴 둑에는 풀빛이 짙어지고 남포에서 그대를 보내니 슬픈 노래가 절로 나오네. 대동강 물은 어느 때나 마를 것인가. 이별의 눈물이 해마다 푸른 물결에 더해지는구나.’ 고려의 문인 정지상(鄭知常)의 ‘송인(送人)’은 대동강 남포에서 벗을 떠나보내는 아쉬움을 노래한 아름다운 이별 시입니다. 비가 그친 뒤 풀빛은 더욱 푸르고 대동강 물은 유유히 흐르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야 하는 마음에는 슬픔이 가득합니다. 특히 “대동강 물은 어느 때 마를 것인가, 이별의 눈물이 해마다 푸른 물결에 더해지는데”라는 마지막 두 구절은, 강물이 마르지 않는 것처럼 사람의 이별과 그리움도 끊이지 않는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변함없이 흐르는 강물과 덧없이 헤어지는 인간의 삶을 대비시키면서, 만남의 소중함과 이별의 애틋함을 절묘하게 표현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에도 이렇게 보이는 것 너머를 보는 눈이 필요합니다. 그것을 우리는 ‘식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식별은 단순히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를 판단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지금 내 눈앞에 일어나는 사건 안에서 하느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알아듣는 것입니다. 성공했다고 무조건 좋은 것도 아니고, 실패했다고 무조건 나쁜 것도 아닙니다. 박수받는다고 반드시 하느님의 뜻인 것도 아니고, 어려움이 있다고 하느님께서 떠나신 것도 아닙니다. 식별은 겉모습을 넘어 그 안에 담긴 하느님의 뜻을 찾는 것입니다. 오늘 제1 독서에서 코헬렛은 아주 현실적인 이야기를 합니다. 젊음도 지나가고, 건강도 쇠하고, 눈도 어두워지고, 귀도 잘 들리지 않으며, 마침내 인간은 흙으로 돌아갑니다. 그래서 코헬렛은 말합니다.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

 

그러나 코헬렛이 우리에게 절망하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사라지는 것과 사라지지 않는 것을 식별하라는 말씀입니다. 재산은 사라지고, 명예도 사라지고, 젊음도 사라집니다. 그러나 우리가 베푼 사랑은 남습니다. 우리가 건넨 따뜻한 말 한마디는 남습니다. 용서했던 마음은 남고, 누군가를 위해 흘린 눈물과 기도는 하느님 안에 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식별의 문제가 나타납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하신 놀라운 일을 보고 모두 감탄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눈에는 예수님의 성공과 영광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다.” 제자들은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눈에는 기적과 박수와 영광만 보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너머에 있는 십자가를 보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 너머에 있는 부활까지 보고 계셨습니다.

 

우리의 삶도 그렇습니다. 눈앞의 일만 보면 이해되지 않는 일이 많습니다. 건강을 잃을 때도 있고, 관계가 힘들어질 때도 있고, 계획했던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 순간 우리는 묻게 됩니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그러나 신앙인은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주님, 이 일을 통해 제가 무엇을 보아야 합니까? 무엇을 내려놓아야 합니까?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합니까?” 이것이 식별입니다. 길재는 폐허가 된 옛 도읍에서 세월의 무상함을 보았습니다. 정지상은 흐르는 강물에서 인간의 만남과 이별을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환호 속에서 십자가를 보셨고, 십자가 너머에서 부활을 보셨습니다. 우리에게도 그런 눈이 필요합니다. 지나가는 것에 너무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영원한 것을 선택하는 눈입니다. 눈앞의 성공과 실패에 흔들리지 않고, 그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찾는 눈입니다.

 

“나는 백성의 구원이다. 어떠한 환난 속에서도 부르짖으면 내가 들어 주고, 영원토록 그들의 주님이 되어 주리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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