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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기념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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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영화 ‘오디세이’를 보았습니다. 호메로스의 오래된 서사시를 영화로 만든 작품입니다. ‘오디세이’의 주인공 오디세우스는 트로이 전쟁을 마치고 고향 이타카로 돌아갑니다. 사랑하는 아내 페넬로페와 가족이 기다리고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수많은 시련과 유혹을 겪습니다. 바다에서 폭풍을 만나고, 낯선 땅에 머물기도 하고, 죽음의 위기를 넘기면서도 한 가지를 잊지 않습니다. “나는 돌아가야 한다.” ‘오디세이’는 결국 인간에게는 돌아가야 할 곳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인상 깊게 보았던 영화 가운데 ‘십계’가 있습니다. 모세가 이집트의 노예였던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홍해를 건너 광야로 나아가는 장대한 이야기입니다. 오디세우스의 여행과 모세의 여행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두 긴 여행이고, 시련이 있으며, 목적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오디세우스는 자기의 집으로 돌아갑니다. 모세는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백성과 함께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땅을 향해 갑니다. 그래서 성경의 ‘오디세이’는 조금 다릅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멀리 갔느냐가 아니라 누구와 함께 갔으며, 누구의 말씀을 따라갔느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40년을 지냈습니다. 때로는 배고팠고, 목말랐고, 모세에게 불평했습니다. 이집트로 다시 돌아가겠다고도 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함께하셨습니다. 광야는 길을 잃은 장소가 아니라 하느님을 배우는 학교였습니다. 약속의 땅은 단순히 젖과 꿀이 흐르는 좋은 땅이 아니라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는 새로운 삶이었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욥도 길고 깊은 광야를 걷습니다. 재산을 잃고, 자녀를 잃고, 건강까지 잃었습니다. 친구들은 욥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욥은 자신의 인생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욥은 말합니다. “내 살갗이 이토록 벗겨진 뒤에라도 이 내 몸으로 나는 하느님을 보리라. 내가 기어이 뵙고자 하는 분, 내 눈은 다른 이가 아니라 바로 그분을 보리라.” 얼마나 아름다운 신앙의 고백인지 모릅니다. 욥에게도 목적지가 있었습니다. 재산을 다시 얻는 것이 아닙니다. 건강을 되찾는 것만도 아닙니다. “나는 하느님을 보리라.” 이것이 욥의 목적지였습니다. 신앙인은 결국 하느님을 향해 길을 걷는 사람입니다. 바오로 사도에게도 긴 ‘오디세이’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오로의 여행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여행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고향에서 점점 멀어지는 여행이었습니다. 안티오키아에서 출발하여 소아시아로 갔고, 그리스로 건너갔으며, 필리피와 테살로니키와 코린토를 거쳤고, 마침내 로마까지 갔습니다. 배가 난파되기도 했고, 감옥에 갇히기도 했으며, 매를 맞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바오로는 왜 그렇게 먼 길을 갔을까요?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그리고 제자들을 보내십니다. “어떤 고을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받아들이면 차려 주는 음식을 먹어라. 그곳 병자들을 고쳐주며 ‘하느님의 나라가 여러분에게 가까이 왔습니다.’ 하고 말하여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나에게 오라.”고만 하지 않으셨습니다. “가라.”고 하셨습니다. 복음에는 언제나 움직임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고향을 떠났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과 광야로 나갔습니다. 바오로는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넜습니다. 제자들은 둘씩 짝지어 마을로 갔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축일을 지내는 아기 예수의 데레사 성녀를 보면 조금 이상합니다. 데레사 성녀는 먼 나라로 선교 여행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바오로처럼 배를 타지도 않았고, 모세처럼 광야를 걷지도 않았습니다. 프랑스 리지외의 가르멜 수도원 안에서 살다가 스물네 살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교회는 데레사 성녀를 ‘선교의 수호성인’으로 공경합니다. 성녀는 선교사들을 위해 기도하고 작은 희생을 봉헌하며 자기의 삶 전체를 복음 선포를 위해 내어놓았습니다. 여기에 오늘 복음의 깊은 뜻이 있습니다. 선교는 반드시 멀리 가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것이 선교입니다. 기도하는 것이 선교입니다. 아픈 사람의 손을 잡아 주는 것도 선교이고, 외로운 사람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는 것도 선교입니다. 용서하기 어려운 사람을 용서하는 것도 선교입니다. 오디세우스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바다를 건넜습니다.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은 약속의 땅으로 가기 위해 광야를 건넜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 지중해를 건넜습니다. 데레사 성녀는 수도원을 떠나지 않았지만, 사랑과 기도로 세상 끝까지 갔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각자의 오디세이가 있습니다. 누군가는 질병이라는 광야를 걷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가족 때문에 마음 아파하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외로움의 바다를 건너고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에도 폭풍이 있고 광야가 있으며 때로는 길을 잃기도 합니다. 그럴 때 욥의 말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내 눈은 다른 이가 아니라 바로 그분을 보리라.” 우리 여행의 마지막 목적지는 성공도, 재산도, 명예도 아닙니다. 하느님을 뵙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을 향해 가는 가장 확실한 길은 복음을 들고 이웃에게 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이 끝나는 날 하느님께서 “얼마나 멀리 여행했느냐?”고 묻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것을 가졌느냐?”고도 묻지 않으실 것입니다. 아마 이렇게 물으실 것입니다. “너는 가는 길에 누구에게 나의 사랑을 전해 주었느냐?”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 번호 | 제목 | 등록일 | 작성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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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197 |
■ 가톨릭라디오 : 성 예로니모 사제 학자 기념일, 오늘의 복음 묵상 |
05:00 | 이재현 |
| 192196 |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기념일 |
04:58 | 조재형 |
| 192194 |
말씀과 연계된 오늘의 묵주기도 (영광의 신비) |
04:15 | 김학용 |
| 192193 |
人 生 草 露 (인생초로) |
04:00 | 김중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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