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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묵주기도 학교: 관상의 정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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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6-09-02 ㅣ No.2305

[묵주기도 학교] 관상의 정점

 

 

영광송과 구원을 비는 기도

 

묵주기도는 단순히 반복하는 소리 기도가 아니라, 성모님과 함께 그리스도의 구원 신비를 깊이 묵상하는 관상 기도입니다. 이 기도는 각 단마다 주님의 기도와 성모송을 바친 뒤, 영광송과 구원을 비는 기도로 마무리됩니다. 그러므로 이 두 기도는 단순한 덧붙임이 아니라, 앞서 바친 기도의 의미를 하느님께 봉헌하고 그 열매를 청하는 묵주기도의 완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묵주기도는 삼위일체 하느님께 나아가는 기도

 

먼저 영광송은 묵주기도의 가장 본질적인 방향을 드러냅니다. 영광송을 바침으로써 묵주기도는 그리스도교 기도의 일반적인 형식과 마찬가지로 한 분이시며 삼위이신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것으로 끝맺게 됩니다(「마리아 공경」, 25항 참조). 곧 묵주기도는 성모님께 머무는 기도가 아니라, 성모님과 함께 삼위일체 하느님께 나아가는 기도입니다. 그래서 동정 성모 마리아께 대한 신심 행위는 본질적으로 삼위일체 하느님께 드리는 기도입니다. 그리스도교 전례는 그 자체가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부께 드리는 흠숭이기 때문입니다(「마리아 공경」, 25항). 묵주기도의 매 단 끝에 바치는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라는 기도는, 바로 이러한 전례적 흠숭의 정신을 담고 있습니다.

 

교회의 전통 안에서 영광송은 매우 오래된 기도 형식입니다. ‘영광’은 사람에게 쓰일 때는 빛나는 영예를 뜻하지만, 하느님을 향할 때 하느님의 거룩하심과 권능, 그리고 존재의 찬란함을 드러냅니다. 그래서 영광송은 하느님께 영광과 영예를 드리는 찬미의 경문입니다. 시편의 각 권이 영광송으로 끝맺는 전통은 유다교에서 비롯되었고, 교회는 이를 이어받아 미사 전례 안에서도 ‘대영광송, 마침 영광송, 주님의 기도 뒤의 영광송’ 등을 발전시켰습니다. 

 

이러한 전례적 전통은 성무일도와 묵주기도에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묵주기도가 한때 ‘성모 시편’이라 불렸던 것도, 성모송 150번을 바치는 구조가 시편 150편의 전통을 닮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묵주기도의 매 단 끝에 영광송을 바치는 것은 우연한 추가가 아니라, 교회의 오래된 기도 전통 안에서 형성된 것입니다.

 

 

관상의 정점

 

묵주기도 안에서 영광송은 단순한 마침이 아니라 관상의 정점입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성모송에서 성모송으로 이어가며 그리스도와 성모님께 대한 사랑으로 각 신비를 생생하게 깊이 묵상하는 그만큼, 각 단에서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것은 형식적인 마무리가 아니라, 마치 우리 마음을 하늘 낙원으로 들어 올리고 타볼산의 경험을 다시 체현하는 것과 같습니다”(교서 「동정 마리아의 묵주기도」, 34항)라고 말씀하십니다. 영광송은 묵주기도를 바치며 묵상한 환희, 빛, 고통, 영광의 신비를 모두 하느님의 영광 안에서 바라보게 하는 기도입니다. 예수님의 변모 사건처럼, 인간의 시선을 잠시 땅의 현실에서 들어 올려 하늘의 영광을 미리 맛보게 하는 것입니다.

 

 

짧은 마침 기도인 구원을 비는 기도

 

이러한 흐름 안에서 구원을 비는 기도는 영광송 뒤에 이어지는 ‘짧은 마침 기도’로서, 묵상한 신비의 열매가 구체적인 청원으로 이어지게 합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오늘날의 묵주기도에서는, 영광송 다음에 짧은 마침 기도가 이어집니다. 신비의 묵상이 고유한 열매를 맺도록 그 신비를 기도로 마무리한다면, 신비의 관상이 더더욱 풍요로워질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깁니다”(교서, 35항)라고 말합니다. 곧 구원을 비는 기도는 관상을 끝내는 부속물이 아니라, 묵상한 신비가 삶의 청원으로 열매 맺도록 하는 기도입니다. 이 기도는 ‘구원송’, ‘구원경’, ‘파티마의 기도’로도 불렸습니다.

 

구원을 비는 기도는 파티마에서 발현하신 성모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로, 살아 있는 이들과 죽은 이들 모두를 위한 구원을 청합니다. 이 기도의 특징은 맨 먼저 ‘예수님’의 이름을 부른다는 데 있습니다. 다시 말해, 구원을 비는 기도는 성모님께 드리는 기도가 아니라, 성모님의 인도로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직접 자비를 청하는 기도입니다. “저희 죄를 용서하시며, 저희를 지옥불에서 구하시고”라는 청원은 살아 있는 이들의 회개와 보호를, “연옥 영혼을 돌보시며, 가장 버림받은 영혼을 돌보소서”라는 청원은 죽은 이들의 정화와 구원을 향합니다. 우리말로 ‘구원을 비는 기도’라 칭하는 것도 살아있는 이들과 죽은 이들의 구원자이신 주님께 드리는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이로써 묵주기도는 개인의 경건에 머무르지 않고, 산 이와 죽은 이를 함께 품는 교회의 보편적 기도가 됩니다(‘구원을 비는 기도’는 꼰칠리움 레지오니스 마리애의 결정에 따라 레지오 회합 중에는 바치지 않습니다).

 

 

흠숭과 청원

 

묵주기도 안에서 영광송과 구원을 비는 기도는 서로 분리되지 않습니다. 영광송이 묵상한 신비를 삼위일체 하느님께 대한 찬미와 흠숭으로 들어 올린다면, 구원을 비는 기도는 그 찬미를 구체적인 구원의 청원으로 확장시킵니다. 하나는 하늘을 향한 기도이고, 다른 하나는 그 하늘의 자비가 우리와 세상, 산 이와 죽은 이들에게 전해지기를 바라는 기도입니다. 묵주기도의 매 단을 마치면서 우리는 하느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동시에 구원을 간절히 청합니다. 이것이 바로 묵주기도의 참된 목적입니다.

 

결국 매 단 묵주기도의 마무리는 단지 기도의 끝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영광 안에 들어가고자 하는 희망의 고백이며, 모든 영혼이 구원의 길로 나아가기를 바라는 사랑의 청원입니다. 영광송은 우리의 마음을 하늘로 들어 올리고, 구원을 비는 기도는 그 하늘의 자비를 이 땅과 연옥의 영혼들까지 끌어옵니다. 그러므로 이 두 기도는 묵주기도의 형식적 결론이 아니라, 그 신비 전체를 완성하는 찬미와 전구의 절정입니다.

 

[성모님의 군단, 2026년 8월호, 박상운 토마스 신부(전주교구 사목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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