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11일 (수)
(자) 대림 제2주간 수요일 고생하는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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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전국 교구 교구장 사목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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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뉴스 [goodnews] 쪽지 캡슐

2019-11-29 ㅣ No.2243

2020년 전국 교구 교구장 사목교서

 

 서울대교구 

춘천교구

대전교구

인천교구

수원교구

원주교구

의정부교구

대구대교구

부산교구

청주교구

마산교구

안동교구 

광주대교구

전주교구

제주교구

군종교구

 

 

 

[서울대교구]

“새로운 시대, 새로운 복음화”
- 복음의 기쁨을 선포하는 본당 공동체 -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마르 16,15)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자비로우신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성령께서 주시는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기를 기도합니다.

  지금까지 우리 교구는 새로운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복음화를 이루기 위하여 신앙의 기초를 다지고자 노력해왔습니다. 이러한 신앙의 기초를 토대로 지난 한 해 동안 우리는 새로운 열정과 방법으로 ‘복음의 기쁨을 선포하는 교회 공동체’를 만들고자 마음을 모았습니다. 이를 위하여 복음의 참된 기쁨을 체험하고 또 그 기쁨을 전하는 ‘가정 공동체’를 이루고자 힘써왔습니다. 이제 2020년에는 가정이 맺은 열매를 바탕으로 ‘복음의 기쁨을 선포하는 본당 공동체’를 만드는 데 힘을 모으고자 합니다. 그리고 2021년에는 교구의 모든 신자들과 본당 및 기관이 힘을 모아 ‘복음의 기쁨을 선포하는 교구 공동체’를 이루려고 합니다.


교황 프란치스코께서는 2019년 전교주일 담화문에서 “저는 언제나 선교사이고, 여러분도 언제나 선교사입니다. 세례 받은 모든 이가 선교사입니다.”라고 말씀하시며 세례를 받은 우리 모두가 무엇보다 복음 선포의 사명을 수행하는 선교사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선교의 사명을 올바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몸담고 있는 교회 공동체를 선교의 공동체로 변화시켜 나아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교회 공동체는 우리가 복음을 전해 받고, 또 전해 주는 선교의 역동적인 자리이며 동시에 선교를 가르치며 배우는 학교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신앙의 공동체인 교회 안에서, 특히 각자가 속한 지역 본당 안에서 복음 선포의 사명을 배우고 시작하며 성장시켜 나갑니다. 교회 공동체 역시 복음의 기쁨을 주고받는 그리스도인들을 통하여 성장하고 발전하게 됩니다. 이처럼 ‘자신이 전해 받은 복음을 전해 주는’(1코린 15,3 참조) 모든 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지는 교회 공동체 안에서 우리는 선교사로 거듭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가정과 본당 그리고 사회 안에서,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복음을 체험하고 전하는 선교적 교회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본당 공동체는 복음을 전하고 살아가는 우리 각자의 선교적 노력을 통해 세상 속에 복음을 증거하는 그리스도의 참된 성사(聖事)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 안에 깊이 뿌리 내린 무관심과 개인주의를 넘어서 서로가 서로에게 힘과 위로가 되어주며 환대하는 선교사가 됩시다. 그리고 소외되고 어려운 형제자매들을 우선적으로 돌보고 사랑하는 분위기가 자리할 수 있는 본당 공동체가 되도록 노력합시다. 선교사로서의 사명을 공동체 안에서 충실히 살아갈 때, 우리가 살아가는 본당 공동체는 진정 사랑을 받고 사랑을 전해 주는 공동체로 거듭날 것입니다. 이제 올 한 해 ‘복음의 기쁨을 선포하는 본당 공동체’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으로 다음의 세 가지 측면을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1) 본당은 ‘신앙의 공동체’입니다.

본당은 그리스도인들이 ‘복음화되고 복음화하는 공동체’입니다. 다시 말해 본당은 ‘복음의 기쁨을 믿고, 체험하며, 보존하고, 성장시키는 신앙의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선교는 우리의 생각과 말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보여주신 복음을 전하는 것이기에 무엇보다 하느님의 사랑 안에 머무르며 그분의 뜻을 올바르게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본당 공동체가 인간의 생각이 아닌 하느님의 뜻을 먼저 찾고 따르고자 할 때, 그 공동체는 참된 선교 사명을 수행 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하느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교회의 가르침을 공부하고, 무엇보다 한마음으로 기도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미사와 전례 안에서 또 다양한 신심 활동들 안에서 같은 마음으로 함께 기도하는 공동체는 언제나 하느님을 믿고 사랑하며 희망하는 공동체로 성장하게 됩니다. 이러한 공동체의 모습은 예비 신자들의 신앙심을 고취시킬 것이며, 냉담 신자들의 회심을 불러일으키게 될 것입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께서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우리는 알게 되었고 또 믿게 되었습니다.”1)라고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요약하십니다. 그러므로 참된 선교사로서의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서 본당 공동체는 하느님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신앙의 공동체를 이루어야 합니다.


(2) 본당은 ‘하나 되는 공동체’입니다.

본당은 복음의 기쁨으로 하나 되는 공동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요한 17,21)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이 기도의 지향처럼 출신도, 생각도 달랐던 제자들은 하나가 되어 같은 곳을 바라보며 충실히 복음을 선포할 수 있었습니다. 평신도, 수도자, 성직자가 하나의 신앙 공동체를 이루는 본당 공동체는 예수님을 머리로 하여 한 지체가 되어 복음을 선포하여야 합니다. 평신도, 수도자, 성직자가 화목한 한 가족을 이루는 모습이야말로 ‘살아있는 복음의 증거’이며, 세상을 ‘복음화하는 삶’이 됩니다. 아울러 본당의 여러 가정들, 다양한 세대들, 소공동체들, 교회 운동과 단체들이 조화를 이루게 될 때 본당은 하느님께서 마련해주신 기쁨 안에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끼리끼리 문화의 병폐를 넘어서 다양성 안에 일치를 이룰 때 본당은 모든 사람을 맞아들이고, 모든 사람을 섬기는 따뜻한 가정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본당 공동체는 진리를 목말라하는 모든 사람들이 목을 축일 수 있는 ‘동네 샘’으로 자리하게 될 것입니다.2)


(3) 본당은 ‘선교하는 공동체’입니다.

본당은 복음을 전하고 증거하는 선교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급변하는 세상 가운데 복음을 전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언제나 새로운 도전이 됩니다. 때로는 그 도전이 무거운 짐처럼 여겨질 때도 있을 것이며, 사람들의 냉대와 무관심 등으로 인해 두렵게 느껴지기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도전 앞에 우리는 언제나 세상을 향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가 본당 공동체를 선교를 지향하는 모습으로 만들어 갈 때,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의 두려움을 기쁨으로 바꾸어 주실 것입니다. 또한 아직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많은 이들이 주님을 통해 새로운 삶의 희망을 얻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주님의 부활을 체험한 이후 선교사로서 복음을 전파했고, 그 복음이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이어져 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함께 마음을 모아 복음을 전한다면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예상을 넘어서는 풍성한 열매를 맺어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본당이 각 지역 공동체 안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증거하는 공동체가 될 수 있도록 힘을 모아 주십시오.


사제 여러분, 교구장 주교인 저와 일치하는 가운데 사목활동 안에서 선교를 위한 노력에 더 힘을 기울입시다. 그러기 위하여 사제들이 먼저 복음의 기쁨을 체험하고 확신할 수 있도록 합시다. 이러한 삶을 바탕으로 “단순한 현상 유지를 넘어서 참으로 선교하는 사목으로”3) 옮아갑시다. 본당 신자들뿐 아니라 구역 안의 다양한 사회복지 시설, 학교, 병원, 관공서 등에도 더 큰 관심을 가져 주십시오. 특히 독거노인이나 이주민 등과 같은 소외되고 어려운 이웃에 대한 깊은 관심과 돌봄에 힘써주십시오. 본당 구역 안에서 생활하는 모든 사람들이 복음의 기쁨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도록 ‘찾아가는 사목’에 힘을 기울여 주십시오.


남녀 봉헌 생활자 여러분, 여러분의 고유한 신분 안에서 선교에 충실합시다. 여러분의 기도와 고유한 활동을 통해 선교를 지향하고 노력하는 사목자들의 좋은 협력자가 되도록 힘써주십시오. 또한 선교의 바탕은 하느님과의 사랑의 관계에서 시작되어야 함을 알 수 있도록 본당의 신자들에게 기도와 사랑의 모범을 보여주십시오.

 

신자 여러분, 가정을 비롯한 학교, 직장, 각종 모임뿐 아니라 본당과 지역 안에서 복음의 기쁨을 증거하는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갑시다. 자신의 재능, 시간, 그리고 가진 바를 복음화를 위하여 기쁜 마음으로 봉헌하도록 합시다. 그리고 지난 10월 우리가 함께 마음을 모았던 ‘특별 전교의 달’의 정신과 실천 내용을 지속적으로 실천하도록 합시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교회는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첫 시작부터 지금까지 복음화를 위해 공동체 안에서 서로 사랑을 증거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요한 13,35)라는 말씀처럼 우리 교구의 모든 본당 공동체가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사랑의 기쁨을 체험하고 나누며 전한다면 진정 선교의 공동체, 복음화의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그때 비로소 세상은 하느님이 누구이신지를, 하느님께서 주시는 사랑과 은총이 얼마나 크고 좋은지를 우리 공동체를 통하여 보고 듣고 느끼고 깨닫게 될 것입니다. 분명 선교적 삶을 지향함에 있어서 공동체 안에 어려움과 두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전해주신 복음의 놀라운 기쁨을 믿기에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교구의 모든 본당 공동체가 하느님 보시기에 참 좋은 공동체가 되도록 여러분을 위해 언제나 기도하겠습니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 16,15)는 주님의 말씀이 올 한 해 각 본당 안에서 더욱 풍성히 열매 맺기를 바랍니다. 이는 우리의 가정과 교회 공동체를 넘어 세상 곳곳에 ‘복음의 기쁨’이 도달하는 길이 될 것이고, 2031년에 맞이하게 될 ‘교구 설정 200주년’의 마중물이 될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믿고 증언한 성모 마리아와 성 요셉,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이 땅에 복음의 빛을 전하신 한국의 순교자들,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1) 교황 베네딕토 16세,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1항

2)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평신도 그리스도인」, 27항

3) 교황 프란치스코, 「복음의 기쁨」, 15항

 

 

2019년 대림절에
천주교 서울대교구
교구장 염수정 안드레아 추기경

 

 

  

[춘천교구]

 
 


      
 




 

 

 

 

 

  

[대전교구]

“소통과 친교를 이루는 교구 공동체”
- 교구 시노드 정신이 뿌리내리는 해 -

 

 

소통과 친교를 실현하는 ‘공동합의성’(공동 식별)

 

사랑하는 대전교구 하느님 백성 여러분!

 

1. 우리는 어둡고 거친 세상의 한 가운데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갑니다. 과학기술이 생활방식을 넘어 사고방식을 지배하는 세계이며, 이념의 갈등으로 서로에 대한 미움이 더욱 커가는 세상입니다. 또한 물질만능주의와 성장제일주의, 적자생존의 법칙이 교회 안에도 깊숙이 스며든 현실입니다. 이러한 현실을 반성하며 우리 교구는 지난 4년간 시노드의 여정을 함께 걸었습니다. 우리 함께 새로운 출발을 위하여 다가오는 2020년의 문을 활짝 열고, 시노드에서 함께 나눈 반성과 결심을 실현하는 첫해로 만들어 갑시다!

 

2. 교회를 이끄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우리는 시노드를 통해 성령의 인도하에 함께 걸어가는 교회의 신비를 체험하였습니다. 성령께서는 마음속에 담긴 상처와 부끄러운 교회의 모습을 말하고 듣고 보며 보듬는 귀한 시간을 마련해주셨습니다. 『복음의 기쁨』“순교자들의 삶”은 교회의 모습을 성찰하도록 이끄는 나침반이었고, ‘공동합의성’의 정신은 대전교구 쇄신을 위한 지침이었습니다.


3. 이처럼 우리 교구의 새로운 출발점이 된 시노드 최종문헌의 지향과 비전 안에서 새로운 시대의 사목을 여는 2020년을 ‘소통과 친교의 해’로 선포합니다! 2020년은 지난 4년간 함께 걸어온 ‘교구 시노드 정신이 뿌리내리는 해’가 될 것입니다. 지나친 성직주의를 지양하고 교회 내 하느님 백성의 책임과 활동을 보장하여, 교회의 변화된 모습이 기쁜 소식으로 선포되는 한 해를 만들어 갑시다.


4. 교회는 하느님의 말씀과 성령의 인도하에 하느님 백성 모두가 경청하고 서로를 위하며 복음 선포를 위해 나아갑니다. 이것이 2018년에 교황청에서 발표한 문헌 「교회의 삶과 사명 안에서 공동합의성」의 정신입니다. ‘공동합의성’으로 번역된 ‘Synodalitas’의 핵심은 성령의 인도하에 함께 복음 선포의 길을 걸어가는 데 있습니다. 이는 세례를 받은 모든 그리스도인 안에 심어진 ‘신앙 감각’을 존중하며 지금의 현상과 의미를 함께 식별하는 데서 실현됩니다.


5. 이처럼 교회를 구성하는 모든 구성원이 함께 가는 여정에서 교회는 진정으로 세상과 함께 걸어갑니다. 하느님 백성인 사제 · 수도자 · 평신도들은 공동합의성을 통해 자신의 영역을 넘어 갈라진 교회와의 일치, 더 나아가 교회와 세상이 성령의 인도하에 함께 완성을 향해 걸어가야 합니다. 교회는 모든 사태와 인간 영혼의 감각을 활짝 열어 경청하고 함께 아파하며, 더 나은 내일을 위해 함께 노력하며 공동합의성을 실현합니다.


『복음의 기쁨』으로 열매 맺는 교회


6. 교회의 본질은 선교입니다. 교회는 지금 여기에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느님의 현존과 활동을 증거하는 선교사입니다. 비단 입교자의 수를 늘리는 데 국한되지 않고 신앙인 각자의 삶에서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온전히 실천하는 여정이 선교의 여정입니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배치되는 가치관과 행동을 거부하고, 사랑과 섬김과 나눔으로 평화를 이룰 때 세상은 하느님의 사랑을 보기 때문입니다. 인간과 세상을 사랑하고 섬기는 삶이 기쁜 소식의 선포가 되는 이유입니다.

7. 사랑하는 힘은 하느님에게서 옵니다. 사랑의 실천인 선교는 하느님 말씀으로부터 주어지는 기쁨을 나눔에서 시작됩니다. 따라서 복음 선포를 위한 첫 번째 단계는 성경의 말씀에 경청하고 말씀의 힘이 우리 생각과 마음과 행동을 이끌도록 우리 자신을 비우는 데 있습니다. 성경공부와 묵상에 충실하면서 특별히 성경 말씀을 생활에 옮기는 삶의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또한, 성사 참여를 통해 하느님 현존 앞에 자신을 가다듬는 시간이 절실하게 요청됩니다. 이럴 때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서, 우리와 함께 세상 안에 당신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8. 대전교구 신앙의 못자리인 순교자들의 삶은 선교의 뛰어난 모범입니다. 세계교회사에 빛나는 우리 신앙 선조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삶으로 증거했습니다. 목숨의 위협에 굴하지 않고 사랑과 섬김과 나눔을 실천한 그들의 증거가 역사 가운데 살아계시는 하느님을 보여주며 신앙을 전파하였습니다. 생각과 말과 행동의 기준을 철저히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른 그들의 삶은 오늘 우리가 나아갈 길을 보여줍니다. 성 김대건 신부님과 하느님의 종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의 탄생 200주년이 되는 2021년도 잘 준비해 갑시다.


9. 초기 한국교회가 보여준 사제와 평신도의 협력, 낯선 이들에 대한 환대와 약자에 대한 우선적 배려, 복음 묵상과 성찰 및 기도의 철저한 생활화는 공동합의성의 주요정신이 실현된 사례로 볼 수 있습니다. 『복음의 기쁨』이 제시하는 교회의 자기반성 기준과 순교자들의 영성은 빛과 소금이 되어 어둠을 물리치도록 이끌어줄 것입니다. 이것이 대전교구 시노드를 통해 우리가 함께 확인한 교회의 나아갈 길입니다. 이러한 반성과 성찰을 바탕으로 2020년 대전교구의 사목 실천 방향을 다음과 같이 제안합니다.


교구 사목 실천 방향


첫째, 하느님을 향한 신앙 여정에 ‘경청을 통한 대화’와 ‘공동 식별과 공동합의성’이라는 시노드 정신이 구현되도록 세부 사항을 점검하고 실천해 갑시다. 시노드는 정지된 마침표가 아니라 새로운 시작입니다. 서로의 이야기와 상황을 듣고 공감하며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자세는 이제부터 더욱 진지하게 생활화되어야 합니다. 「교회의 삶과 사명 안에서 공동합의성」에 제시된 원칙과 취지 그리고 구체적인 실천사항을 교구 백성 모두가 배우며 성령께서 이끄시는 교회, 교회구성원의 조화와 협력이 돋보이는 교회, 하느님의 사랑과 정의를 실천하는 교회, 세상의 편견과 그릇된 가치관이 넘어오지 못할 만큼 높지만 ‘가난한 이웃 형제들이 쉽게 넘어올 수 있도록 충분히 낮은 교회’, 섬김과 나눔을 증거하는 교회로 성장합시다.

 

둘째, 『복음의 기쁨』을 내면화하고, 실천하는 새로운 노력들을 해 갑시다. 시노드의 정신과 더불어 『복음의 기쁨』을 우리 사목현실을 진단하고 기획하는 기준으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사목적이고 선교적인 회개는 언제나 우리의 시작점이 될 것이며, 교회의 전례와 교리 그리고 말씀 선포가 오늘 우리 사회에 실제로 영향을 미치는지를 겸허히 반성해야 하겠습니다. 이를 위해 공동체의 영역별로 자신의 활동이 누군가 쉽게 알아듣고 대화에 개방되어 있는지, 인내와 온유 그리고 심판하지 않는 환대 속에 복음을 선포하는 활동이었는지를 돌아봅시다. 또한, 정신적 세속성이 교회 안에 스며들어 내적 정신적 피폐를 초래하지는 않는지, 권력 지향성이 교회 운영과 신앙생활을 물들이지 않는지, 형제자매의 아픈 상처와 가난함이 사목의 제일 자리에 놓였는지를 돌아봅시다. 특히『복음의 기쁨』에서 강조하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를 살고 있는지 질문해 봅시다. 본당 신자만이 아니라, 지역 사회에서 어려움 속에 있는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기 위해 복지예산의 집행과 그들을 향한 사목적 배려와 관심을 키워가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이처럼 교회의 본질적인 이웃을 돕는 복지예산을 집행하기 위해 현재의 5%에서 매년 1%씩 늘리는 공동체를 건설합시다.


셋째, 교구 시행령으로 선포되는 새로운 사목지침서를 공동책임, 공동참여의 자세로 함께 살펴봅시다. 교구는 하느님 백성과 함께 개정된 교구 사목 지침서를 검토해 가면서 수정, 보완하고 이에 따른 세칙도 준비해 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신청사 이전과 함께 완성된 교구 사목지침서(‘사제생활지침서’, ‘교구사목지침서’, ‘본당사목협의회 운영지침서’)를 제시할 것입니다.


넷째, 시노드 최종문헌의 건의에 따라 ‘시노드 사목연구소’와 ‘성직자실’이 신설됩니다. 시노드 사목연구소를 통해서 교구 사목의 로드맵 설정, 중장기적인 교구 사목비전 수립, 빅데이터 수집 등의 체계적인 연구 과정들이 시작될 것입니다. 그리고, 성직자실의 신설과 함께 교구 신부님들을 위해 필요한 지원 방향과 다양한 사목 정책들이 마련될 것입니다. 이와 더불어 우리 정체성의 뿌리인 순교자들의 삶과 영성을 배우고 보급할 연구소 기능의 강화와 ‘순교자 학교’등을 통해 순교영성의 심화를 위한 노력을 앞으로도 계속해 나갈 것입니다.


다섯째, 성소 계발을 위해 교구와 본당, 가정이 함께 공동노력과 공동책임을 다하도록 노력해 갑시다. 지난 몇 년간 우리 교구는 성소의 위기를 절감하고 이를 회복하기 위해 모든 교구민이 노력해 왔습니다. 교구에서는 예비신학생 모임을 강화하고 청년들을 위한 모임을 개설하였고, 본당에서는 많은 예비신학생을 모임에 보내주셨고 부모님 또한 적극적으로 도와주셨습니다. 성소 계발에 있어 교구와 본당, 가정의 공동노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본당에서 청소년, 청년들이 점점 줄어가고 있는 현실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젊은이들의 신앙생활을 위해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교회가 길을 제시하기 전에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그들의 목소리가 사목 현장 안에서 구체적으로 실현될 수 있도록 함께 고민하는 것이 바로 소통과 친교를 이루는 교회의 출발점이 됩니다. 젊은이들이 교회 안에서 존중받는 중요한 주체임을 자각하고, 자신들을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과 복음의 기쁨을 발견할 수 있을 때, 그리스도의 사도로 살아가고자 하는 원의가 생겨날 수 있습니다. 올 한 해도 청소년들과 청년들의 적극적인 활동을 통해 하느님께서 뿌려주신 소중한 성소의 씨앗이 싹 트고 자랄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하고 노력하도록 합시다.


새해에도 우리 교구 하느님 백성이 새로운 사람, 새로운 응답, 새로운 교회로 나아가는 해로 만들어 갑시다. 저는 새로운 복음화의 여정 안에서 사제, 수도자, 평신도가 서로를 돕는 ‘하느님 백성’의 일원임을 잊지 않는 공동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느님 백성’ 모두가 각자의 소명과 역할을 통해 풍성한 은총을 체험하는 교구 공동체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특별히 평신도의 다양한 사목적인 참여를 활짝 여는 교구 공동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2019년 12월 1일 대림 첫 주일에
천주교 대전교구장 주교
유흥식 라자로

  

  

[인천교구]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루카 11,28)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거룩하고 살아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있는 말씀인 성서를 통해 하느님께서 주시는 지혜와 힘과 은총이 여러분 안에 가득하기를 기도합니다. 지난 한 해, 우리는 ‘첫 번째 성서의 해’를 지내며, 확신에 찬 신앙으로 나아가기 위해 매일 성서를 읽고, 말씀을 묵상하는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그러나 때로 우리의 바쁜 일상은 우리의 시선을 성서에서 멀어지게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다시 마음을 돌려 성서를 펼치고,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려 했던 여러분의 노력에 감사드립니다. 그러한 여러분의 의지와 노력이 이제 알찬 결실로 맺어지기 위해 저는 올해, ‘두 번째 성서의 해’를 지내고자 합니다.



1. 인격적 만남


예로니모 성인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성서를 모르면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이다.”(성 예로니모, 이사야서 주해) 성서를 가까이하지 않으면 주님의 말씀을 알 수 없고, 우리의 신앙도 성장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사목 전체를 감도感導하는 ‘성서 사목’의 중요성을 강조하였습니다(베네딕토 16세, 「주님의 말씀」 73항 참조). 성서 사목은 단지 성서와 관련된 단체들을 증대시키는 것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일상적 활동들 안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만남을 소중히 여기는 것’(73항 참조)을 의미합니다. 그러기에 교회는 모든 신앙인이 자신의 삶 안에서 성서를 통해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만남을 이룰 수 있도록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해야 합니다.


신앙생활 안에서 성서를 읽고, 묵상하며, 삶 안에서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것은 무척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 방법으로 성서를 읽어야 하겠습니까?


계시 헌장 25항에는 그 방법을 다음과 같이 제시합니다.

“성서를 읽을 때에는 하느님과 인간의 대화가 이루어지도록 기도가 따라야 함을 명심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기도할 때에는 하느님께 말씀을 드리는 것이고,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읽을 때에는 그분의 말씀을 듣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성서를 읽는 이유는, 학식의 증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의 친밀함을 더하고, 기도하기 위해서입니다. 기도가 동반되지 않는 성서 읽기는 자칫 인간적 만족감만을 남기거나, 인간적 해석으로 하느님 말씀을 곡해하는 오류를 낳게 합니다. “하느님의 것들을 이해하려면 기도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오리게네스, 그레고리오에게 보낸 서한)라고 하신 오리게네스 교부의 말씀을 주의 깊게 되새겨야 할 것입니다.

 

 

2. 기도


교회는 신앙인들에게 기도를 통해서만 ‘하느님 말씀의 보고가 열리고, 그렇게 해서 살아있는 하느님 말씀이신 그리스도와의 만남이 이루어지게 된다.’는 것을 거듭 확인해 주었습니다(주님의 말씀 87항 참조). 기도와 함께, 기도하는 마음 안에서 성서를 읽으며, 그 내용이 나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지를 깊이 묵상하여야 합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성서를 읽고, 자신이 묵상한 성서 본문의 내용으로 기도할 때, 우리는 하느님의 뜻을 점차 알아가게 될 것입니다. 즉 주님의 말씀을 읽고, 들으면서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경청하게 되고, 주님 말씀에 대한 응답으로 주님께 말씀을 드리는 기도를 바치게 됩니다. 그렇게 우리가 성서를 읽는 순간이 하느님을 향한 거룩한 시간으로 변화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기도하면서, 성서를 통해 우리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됩니다. 곧 주님의 말씀을 들은 이들은 자신 안에 육화된 주님의 뜻을 가슴 깊이 새기면서, 점차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식별하여 결심에 다다르게 됩니다.


사도 바오로는 “여러분은 현세에 동화되지 말고 정신을 새롭게 하여 여러분 자신이 변화되게 하십시오. 그리하여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하느님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 것인지 분별할 수 있게 하십시오.”(로마 12,2)라고 말씀하십니다. 성서는 우리의 일상 안에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선택할 수 있도록 우리를 초대합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삶으로 우리를 이끌어 줍니다. 비록 인간적인 나약함과 부족함으로 이 초대에 응하지 않을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성서를 읽고 기도할 때에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 점차 “그리스도의 마음”(1코린 2,16)이 형성되도록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두 번째 성서의 해를 보내면서, 주님의 말씀에 깊이 잠겨 주님의 말씀에 맛 들이고, 그 말씀이 주는 참 기쁨 속에서 살아가는 시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여러분 모두가 다음의 세 가지를 실천하며 새로운 한 해를 보냈으면 합니다.


첫 번째, 기도하는 마음으로 성경을 읽도록 합시다.

교회는 전통적으로 성경을 읽는 방법으로 ‘거룩한 독서 Lectio Divina’ 방법을 제시하였습니다. 독서와 묵상, 기도, 그리고 하느님과의 일치는 거룩한 독서의 근본 요소입니다. 카르투시오회 수도승 귀고 2세는 “성서를 읽으면서 성령을 청하십시오. 우리가 읽을 수 있는 능력을 주실 것입니다. 독서 안에서 찾으십시오. 묵상과 함께 얻을 것입니다. 기도 안에서 두드리십시오. 관상으로 들어갈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이 이러한 여정 속에서 성서를 읽는다면, 성서를 읽는 매 순간이 기도가 될 것입니다.


두 번째,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합시다.

야고보 사도는 “말씀을 실행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말씀을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야고 1,22)라고 우리를 깨우쳐 줍니다. 우리 역시, 읽고 들었던 주님의 말씀에 머무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생활의 변화’, ‘자신의 변화’를 이룰 수 있도록 말씀의 실천이 뒤따라야 합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 온유, 절제”(갈라 5,22-23)의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세 번째, 말씀을 선포하는 선교사가 되도록 노력합시다.

하느님께서 말씀의 육화를 통해 이 세상에 당신의 외아드님을 보내주셨듯이, 성서를 읽고 기도하는 우리 안에 바로 그 주님께서 함께하십니다. 왜냐하면 말씀이 곧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내 안에 살아계신 주님을, 주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로서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사도 4,20)라는 사도들의 증언처럼, 성서를 통해 듣고, 느끼고 체험한 나의 신앙을 이웃들에게 전하는 말씀의 선교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새로운 2020년 한 해, 교구의 모든 형제자매가 주님의 말씀 안에서, 주님의 말씀을 통해 세상을 살아갈 힘을 얻게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주님의 말씀 안에서
천주교 인천교구장 정 신철 요한 세례자 주교

 

  

[수원교구]

 

새로운 방법, 새로운 선교

 

 

새롭게 출발하는 수원교구
1. 사랑하는 수원교구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지난 2013년 교구설정 50주년을 맞이하여 “50주년 교서”를 반포한 이래로 교서에서 제시한 “소통, 참여, 쇄신”이라는 세 가지 복음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교구민 모두가 한 마음으로 노력하였습니다. 하느님의 삼위일체 신비 안에서 드러나는 이 세 가지 복음적 가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끊임없이 본받고 실천해야 하는 항구적인 것입니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교황권고『복음의 기쁨』을 반포하시면서 전 세계 교회에 ‘시대의 변화에 걸맞은 복음 선포를 위한 새로운 성찰’을 요청하셨습니다.1) 사실 우리 교구가 지난 3년간 “소통, 참여, 쇄신”이라는 주제로 자신을 돌아보며 복음적 가치에 충실하게 살아가고자 노력한 것도 이러한 성찰의 한 과정이었습니다. 이제는 보다 구체적으로 우리들의 삶의 자리에서 드러나는 문제들을 깊이 성찰하고 복음의 빛으로 조명하여 현실적으로 필요한 새로운 방법들을 모색해내야 합니다. 저는 이번 교서를 통하여 향후 3년 동안 우리 수원교구가 구체적으로 나아가야 할 복음 선포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기술의 혁명, 가치의 혼란
2. 지금 세상은 ‘4차 산업혁명’의 도래를 예고하며 새로운 기술혁명이 가져올 생활방식의 변화를 예견하느라 분주합니다. 무선 정보통신 영역이 경이롭게 확장되고, 과학기술의 발달이 고도화 하면서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물, 사물과 사물이 맺는 관계방식이 상호 유기적으로 진화하는 국면에 이르렀습니다. 인공지능의 등장은 이러한 사람과 사물 사이의 유기적 진화가 아주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음을 알려줍니다. 스스로 말하고 학습하고 행동하는 인공지능은 다양한 사물과 결합하여 그동안 인간만이 가능했던 영역들을 대체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로봇기술은 이미 산업현장에서 인간을 대체한지 오래되었고 이제는 상당히 전문적인 지식과 판단을 요구하는 영역까지 인공지능이 자리를 대신하려 합니다. 앞으로 그 영역이 어디까지 확장될지 아무도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혹자는 인공지능이 인간을 능가하게 되고 더 나아가 인간을 지배하는 새로운 종(種)의 출현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합니다.2) 그동안 인간만이 가능하다고 여겨왔던 영역에 더 유능한 존재가 등장함으로써 상대적으로 인간이 가치서열의 중심에서 뒤로 밀려나고 있습니다.

 

위협받는 인간의 존엄
3. 이러한 가치의 혼란은 가치서열의 정점에 서있던 인간의 권위를 실추시키는 우려를 낳고 있습니다. ‘만물의 영장’이요 ‘하느님의 모상’으로서 가장 존엄한 존재였던 ‘인간’이 기능적 차원에서 인공지능에게 우위를 내어줌으로써 사회적 지위를 잃게 되고, 사회적 지위의 상실은 존립의 기반을 위태롭게 하여, 결국에는 인간으로서 존중받아야 하는 ‘존엄의 권리’마저 위협받게 될 것입니다. 처음에는 기능적 차원에서 시작했지만 불가피하게 맞닥뜨리는 사회적, 윤리적 차원을 간과한다면 우리는 돌이킬 수 없는 인간성 상실의 재앙을 맞이할 것입니다.

 

직면한 현실, 다가오는 위기
4. 정당한 노동과 일정한 수입은 인간이 사회생활을 유지하고 자신의 존엄을 지킬 수 있게 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건입니다. 특히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젊은이들에게 일정한 직업을 갖는다는 것은 그가 자신의 존엄을 지키며 미래에 대한 설계를 가능하게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지난 수년간 지속되고 있는 대규모 청년실업은 젊은이들의 사회 생활을 불안하게 만들고, 비정규직 일자리와 불특정한 수입은 가정의 안정과 평화를 위험에 부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하여 젊은이들은 결혼을 포기하거나 늦추게 되고, 기존의 가정 역시 위기에 봉착하게 됩니다. 갈수록 늘어나는 ‘1인 가구’의 출현은 오늘의 우리사회가 불안정한 모습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명확한 지표입니다. 또한 가정과 노동에서 소외된 인간이 겪는 불안과 고독은 ‘개인주의적 불행’3)으로까지 이어집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전수의 단절
5. 지금까지 그리스도교 신앙전수는 가정공동체를 기반으로 전개되어 왔습니다. 가족구성원이 함께 모여 신앙 안에서 성가정을 이루며 살아가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목표였습니다. 그리고 같은 신앙을 가진 가정들이 모여 공동체를 이루며 서로 기도하고 나누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교회의 모습이었습니다. 부모는 자녀들에게 자신의 신앙을 전수함으로써 그 맥을 이어가게 하였고 이는 교회발전의 원동력이 되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 기반이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있습니다. 갈수록 가정은 와해되고 젊은이는 소외되고 있습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가톨릭 신자들이 젊은 세대에게 그리스도교 신앙을 전수하는 데에 단절이 있었음을 더 이상 간과할 수만은 없습니다. 많은 이가 가톨릭 전통에 실망하여 이를 더 이상 따르지 않는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또한 자녀들을 영세시키지 않고 자녀들에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치지 않는 부모들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또한 일부는 다른 신앙 공동체로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단절의 원인들을 살펴보면, 가정 안에서 대화 부족, 대중 매체의 영향, 상대주의적 주관주의, 시장만 배불리는 무분별한 소비주의, 가난한 이들 가운데서 그들과 함께 사는 사목의 결여, 교회 기관들의 환대 부재, 그리고 다종교 상황 속에서 신앙의 신비를 지키고 되살리는 데서 겪는 어려움 등이 있습니다.”4)

 

생활양식과 소통방식의 변화
6. 기술문명의 빠른 발전은 사람들의 생활양식과 소통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기성세대들은 아직 이전의 생활양식과 소통방식에 기반을 둔 채 새로운 기술문명에 적응해가는 반면에, 젊은 세대들은 새로운 기술문명을 기반으로 새로운 생활양식과 소통방식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이로 인하여 세대와 세대 간의 단절이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단절은 세대 간의 갈등과 대립을 조장하기도 합니다. 최근 국내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서 기성세대와 젊은이들 사이에 드러나는 자기주장의 표현방식과 내용들은 이러한 갈등과 대립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문화적 도전들
7. 오늘날 소통방식의 변화는 새로운 대중문화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은폐되거나 축소되고 조작 가능했던 일들이 이제는 너무나도 쉽게 대중에게 노출되고 밝혀짐으로써 더 이상 갑의 횡포를 좌시하지 않는 대중문화를 만들어내었습니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그것이 비도덕적이고 비상식적인 것이라면 즉시 세상에 알려 대중으로부터 비난과 질타의 대상이 되게 하는 새로운 문화는 사람들의 삶의 양식을 바꾸고 있습니다. 또한 공동체를 구성하는 방식과 삶을 공유하고 나누는 방식에 있어서도 이전과는 판이한 새로운 유형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다양한 포털사이트를 통한 네트워크 서비스는 부단히 진화하면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한 새로운 차원의 소통방식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속지, 속인 등의 원칙이 적용되는 오프라인 형태의 공동체가 주류를 이루었었다면 앞으로는 지역과 소속, 계층과 계층을 넘나드는 온라인 형태의 공동체가 주류를 이룰 것입니다.

 

복음 선포의 원형이신 예수 그리스도
8. 이렇듯 인간의 존엄이 도전받는 위기와 변화의 시대에 선교 활동은 교회의 가장 큰 도전이 되고 있습니다. 그래도 선교 임무는 우선되어야 합니다.5) 사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윤리적 선택이나 고결한 생각의 결과가 아니라, 삶에 새로운 시야와 결정적인 방향을 제시하는 한 사건, 한 사람을 만나는 것입니다.”6) 그러므로 우리는 갈수록 “개인주의적 불행”으로 치닫고 있는 세상의 흐름 속에서 더욱 절박한 마음으로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우리를 구원하신 한 사건이며, 한 사람이신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도록 복음을 선포해야 합니다. 그런데 만일 세상을 대하는 삶의 방식과 소통의 방식이 바뀌고 있는데 여전히 과거의 방식만을 고집한다면 우리가 선포하는 그리스도가 세상 사람들에게 효과적으로 다가갈 수는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더욱 적극적으로 그리스도를 선포할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언제나 그렇듯이 복음 선포의 원형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다시 돌아갈 것을 촉구합니다. “우리가 원천으로 돌아가 복음 본연의 참신함을 되찾고자 노력할 때마다 새로운 길들이 드러나고 창조적 방식들이 보이며, 또 다른 형태의 표현들과 더욱 설득력 있는 기호들과 오늘날의 세계에 새로운 의미를 갖는 어휘들이 생겨날 것입니다. 모든 참다운 복음화 활동은 언제나 ‘새로운’ 것입니다.”7)

 

새로운 방법 – 통합사목
9. 기존의 사목은 가정을 중심으로 신앙의 전수가 이루어진다는 전제하에 이루어져 왔습니다.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을 본받아 행복한 가정을 이루도록 신자들을 인도하는 것이 사목의 주요한 목표였고, 이를 바탕으로 신앙 안에서 부부의 역할을 강조하고 자녀교육과 어른공경을 중시하는 사목이 전개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유교적 전통이 아직 남아있는 우리사회 안에서 신앙의 토착화를 이루는 유효한 방법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가정을 중심으로 한 신앙의 전수가 점차 사라지고 모든 것이 ‘개인화’ 되어 가는 세상의 추세에 따라 신앙 역시 ‘사사(私事)화’ 되어 가고 있습니다. 개인의 취향에 따라 좋으면 믿고 싫으면 가차 없이 버리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이를 온전히 개인의 탓으로 돌리며 기존의 사목방식을 고수한다면 우리는 더 많은 신자들을 잃게 될지도 모릅니다. 세상이 개인맞춤형 서비스를 추구하며 변화되어 가듯이 이제는 선교의 방법도 개인의 성향을 고려하여 다양하게 전개되어야 합니다. 기존의 사목이 세대와 계층을 구별하여 특화된 형태의 사목을 전개해 왔다면 이제는 ‘잘 짜인 그물망 구조의 통합사목’ 안으로 신자 각 개인이 들어와 참여함으로써 신앙을 키워가는 형태의 새로운 방법을 모색해야 합니다.

 

10. 통합사목이란 모든 세대와 계층을 유기적 관계망 안에 놓고 접근하는 사목유형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이미 각 사목분야별로 갖추고 있는 그물들을 한데 모아서 하나의 유기적인 커다란 그물로 다시 짜는 소통과 협력의 과정이 필수적입니다. 이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고 수많은 지체들이 모여 한 몸을 이루는 교회의 신비와도 같습니다.(1코린 12장 참조) 이제는 통합사목의 그물망을 통해서 신자들이 각자의 성향과 적성에 따라 자신의 신앙생활을 극대화 할 수 있는 방법과 형태를 선택하도록 인도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체계적인 연구와 점진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각 사목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서 이를 구체화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또한 통합사목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이를 뒷받침해줄 인재의 양성이 필수적입니다. 그리고 유능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체계적인 과정과 지속적인 관리가 수반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이미 여러 분야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각 분야별 평신도 양성 프로그램에 대한 통합 로드맵이 작성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체계적이면서도 점진적인 교육과정이 마련되고 운영되어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평신도 인재양성을 위한 전담기구의 설치와 전문 교육시설의 확충 또한 시급히 이루어져야 할 과제입니다.

 

새로운 선교 – 젊은이
11. 지역의 본당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기존의 선교방식은 전통에 익숙한 기성세대들에게는 여전히 유효하겠지만 세상의 변화에 민감한 젊은 세대들에게는 전혀 매력 없는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미 젊은이들이 사라져버린 교회의 현실이 이를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하면 젊은이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젊은이들을 교회로 나오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전통적인 방식은 이미 늦었습니다. 이제는 젊은이들의 소통과 참여가 이루어지는 곳에서 말씀이 선포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곳이 어디인지 부단히 찾아야 하고, 또한 그들의 언어로 말씀을 선포하기 위해서 부단히 새로운 형태의 표현들과 더욱 설득력 있는 기호들과 새로운 의미를 갖는 어휘들을 찾아내야 합니다.8) 특히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더없이 힘겨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삶에 새로운 시야와 결정적인 방향을 제시하는 한 사건, 한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하는 것”9) 이야말로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일입니다. 모든 일선 사목현장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더 애정 어린 시선과 관심으로 젊은이들을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복음화의 사회적 차원
12. 통합사목의 범주는 복음화의 사회적 차원까지 포함합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고 따르는 신자들의 참여는 반드시 사회적 차원으로까지 확대되어야하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4차 산업혁명의 도래와 더불어 예견되는 양극화와 인간의 소외는 많은 사회적 문제들을 야기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의 기준에 따라서 인간의 존엄을 위협하는 여러 가지 시도들을 견제하고 저지함으로써 사회의 발전이 인간에게 유익한 방향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인도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모든 사목현장에서 교회의 사회교리를 교육하고 이를 삶 속에서 실천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통합사목의 실천이 사회적 차원에서 결실을 맺을 때 우리는 새로운 세상을 향한 쇄신의 길을 더욱 힘차게 걸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기도 안에서 성령으로 하나 되어
13. 성령께서는 복음을 선포하는 교회의 영혼이십니다.10) 성령으로 충만한 복음 선포는 기도하며 일하는 복음 선포입니다.11) 복음을 선포하는 이들이 기도 안에서 말씀과 만나고 주님과 성실한 대화를 나누는 데에 더 많은 시간을 쏟지 않으면, 우리의 활동은 쉽게 무의미해지고, 지치고, 열정도 사그라질 것입니다.12) 사실 성령께서는 우리가 행하는 모든 선교 활동의 중심에서 우리와 함께 숨쉬고, 걷고, 이야기하고, 일하십니다. 그러므로 기도 안에서 성령과 일치를 이루지 않고서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올바로 선포할 수 없습니다.

 

복음화의 어머니이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14. 성모님께서는 복음을 선포하는 교회의 어머니이십니다.13) 예수님께서는 당신 어머니를 우리 어머니로 내어주심으로써(요한 19,27) 당신 교회가 어머니의 여성다운 모습을 지니기를 바라십니다.14) “참어머니이신 마리아께서는 우리 옆에서 함께 걸어가시고 우리와 함께 싸우시며 끊임없이 하느님 사랑을 우리에게 전해 주십니다.”15) “마리아께서는 이 세상 안에, 인류 역사 안에, 우리의 일상생활 안에 깃든 하느님의 신비를 바라보십니다.”16) 그렇기에 교회는 그분 안에 지닌 겸손과 온유, 정의와 사랑의 힘을 믿고 모범으로 따릅니다. 우리 모두 마리아께 어머니의 전구를 간청하며 새로운 변화와 도전에 직면하고 있는 교회에 자비로우신 하느님의 은총이 가득하기를 기도합시다.

 

복음화의 어머니이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1) 현대 세계의 복음 선포에 관한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 1항∼18항 참조.
2) 유발 하라리 저, 김명주 역, 『호모 데우스』, 김영사, 2017.
 3) “이는 안이하고 탐욕스러운 마음과 피상적인 쾌락에 대한 집착과 고립된 정신에서 생겨나고 있습니다. 내적 생활이 자기 자신의 이해와 관심에만 갇혀 있을 때, 더 이상 다른 이들을 위한 자리가 없어 가난한 이들이 들어오지 못합니다. 하느님의 목소리를 더 이상 들을 수 없고 그분 사랑의 고요한 기쁨을 느끼지 못하며 선행을 하고자 하는 열정도 식어 버립니다. 이는 신앙인들에게도 매우 현실적인 위험입니다. 많은 이가 이러한 위험에 빠져 삶을 잃어버리고 불만과 분노에 가득 찬 사람으로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복음의 기쁨』, 2항.
4) 『복음의 기쁨』, 70항.
5) 『복음의 기쁨』, 15항.
6) 『복음의 기쁨』, 7항.
7) 『복음의 기쁨』, 11항.
8) 『복음의 기쁨』, 11항.
9) 『복음의 기쁨』, 7항.
10) 『복음의 기쁨』, 261항.
11) 『복음의 기쁨』, 262항.
12) 『복음의 기쁨』, 262항.
13) 『복음의 기쁨』, 284항.
14) 『복음의 기쁨』, 285항.
15) 『복음의 기쁨』, 286항.
16) 『복음의 기쁨』, 288항.
 

2019년 대림 제1주일
수원교구장 이용훈 마티아 주교

 

   

[원주교구]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1테살 5,17)

 

 

♱ 찬미예수님,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은총의 성모 마리아 기도학교’가 완공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의 기도와 정성을 하느님께서 들어주셨습니다. 저희 교구로서 신자들의 규모나, 경제적 사정 등으로 보아서 참으로 엄청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교구민 여러분들과 다른 교구 신자들의 협조로 시작한 일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저는 ‘기도학교’ 완공과 더불어 올해를 ‘기도의 해’로 정합니다. 기도는 신앙인에게 필수적입니다. 오늘날처럼 실용성을 추구하는 현실에서 기도가 불필요하고, 시간 낭비로 간주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기도하는 일을 소홀히 하고 있습니다. 사제건 수도자건. 또 평신도건 기도를 어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기도하지 않고서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더 나아가서 어느 누구도 기도하지 않고서는 구원 받을 수 없습니다. 기도란 신앙의 언어요 신앙의 대화이기 때문입니다. 기도란 바로 하느님을 만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만나지 않고, 하느님과 대화하지 않고서는 신앙도 구원도 가능하지 않습니다.


기도를 포함하여 모든 대화에는 두 가지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만나고 대화하는 것입니다. 남북대화, 한일협상 등이 그렇습니다. 개인적인 경우에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나고 대화하고 협상합니다. 또 하나의 목적은 더 중요한 만남이요 대화입니다. 바로 친교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나는 것이 아닙니다. 더 사랑하기 위해서, 더 친해지기 위해서 만나고 대화하는 것입니다. 기도 역시 문제를 해결해 주시길 청하는 청원기도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힘이 들 때, 자신의 힘으로 도저히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경우, 인간의 능력으로 한계를 느낄 때 기도합니다. 그것은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는 것은 하느님에게만 가능하다는 신앙의 표현입니다. 하느님에게는 불가능이 없다는 신앙의 표현입니다. 이러한 신앙만이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는 것을 희망하게 합니다.

 

그러나 고마운 일에 감사를 드리는 감사기도도 있고, 하느님을 더욱 사랑하기 위한 묵상과 관상의 기도도 있습니다. 마르타의 동생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치 아래서 귀를 기울이는 모습이 바로 그러한 기도의 한 가지 모습입니다.


성경은 기도의 중요성을 잘 알려줍니다. 모세는 기도하였고, 여호수아는 전쟁터에 나아가 싸웠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기도할 때만 여호수아는 전쟁터에서 이길 수 있었습니다.(탈출 17,8-13 참조) 마르타는 예수님께 시중을 들었고,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경청하였습니다. 주님을 마주하고 그분의 얼굴을 바라보고, 그분의 말씀을 귀담아 듣는 일이 친교를 위한 좋은 기도입니다. 예수님은 마르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 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루카 10,41-42)


우리 그리스도 신앙인들은 사순절이 되면, 40일간 예수님의 광야의 삶을 본받아,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야 할 중요한 세 가지를 훈련하게 됩니다. 재의 수요일에 복음을 통해서 듣게 되는 세 가지는 곧 기도와 자선과 단식입니다. 기도는 하느님과의 관계를 위해서, 자선은 이웃과의 관계를 위해서, 단식, 곧 절제는 자신과의 관계를 위해서 필요한 요소들입니다. 올해 우리는 하느님과의 관계를 위해 기도의 해를 보내게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유일하게 전해진 기도가 바로 ‘주님의 기도’입니다. ‘주님의 기도’는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담고 있습니다. 첫째로 하늘에 계신 하느님을 우리 아버지로 모시는 일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빠’, ‘아버지’이심을 깨닫기를 바라십니다. 예수님은 자주 강조하셨습니다. 참 아버지이신 그분을 목숨을 다해서 사랑하라고. 그분의 뜻이 우리들의 뜻보다 높기 때문에 그분의 뜻을 따르라고. 그래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는 천사들과 성인들에 의해서 이루어지듯이, 이 땅에서는 우리 그리스도 신앙인들에 의해서 이루어지도록 하라고. 아버지의 이름이 영광스럽게 되도록 해야 하는 일이 바로 그리스도 신앙인들이 자녀로서 해야 할 바라고. 바로 거기에 하느님 나라가 이루어진다고 가르쳐 주십니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하느님을 말하기조차 어려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하느님을 잃은 시대, 하느님의 이름이 남용되는 시대를 맞이했습니다. 아무 데나, 아무에게나 -느님을 붙이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하느님을 가리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가끔 우리는 하느님보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더 많이 이야기한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그러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이 그분을 하느님을 가리는 인물로 만들고 있습니다. 달은 보지 않고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보려고 합니다. 


더욱 조심해야 하는 일은 자신의 말을 하느님의 말씀으로 둔갑시키고, 자신의 뜻을 하느님의 뜻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십계명의 두 번째 계명인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일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한분이신 하느님을 흠숭하는 첫째 계명을 어기는 일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잊어버리면 하느님은 그래도 우리를 잊어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으로부터 도망쳐도 하느님은 우리를 끝까지 찾으실 것입니다. 시인 프랜시스 톰슨은 하느님에게서 도망치면서 살았던 자신의 삶을 돌이키면서 [하늘의 사냥개]라는 시를 통하여 우리에게 경고한 바 있습니다.


“나는 그분에게서 도망쳤습니다. 밤 낮으로...

나는 그분을 피해 숨었습니다. 앞이 활짝 트인 무지개를 쫓아서.

...

가까이 가까이 그분이 추적해 다가왔습니다.

이제 끈질긴 추적의 큰 발걸음 소리가 가까이 당도했습니다.

부서지는 파도처럼 저를 에워싸는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네가 나를 저버렸기에, 모든 것이 너를 저버릴 것이다.”

“어떤 것도 너의 피난처가 되지 못한다. 네가 나를 피난처로 삼지 않기 때문이다.”

“보아라! 아무도 너를 만족시키지 못한다. 네가 나를 만족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너에게서 도망칠 것이다. 네가 나에게서 도망치기 때문이다.”

...

제 곁에 그 발걸음 소리 멈추었습니다.

“가장 어리석고, 가장 눈멀고, 가장 연약한 자여! 네가 찾는 사람은 바로 나다. 너는 사랑을 쫓아 버렸다. 네가 나를 쫓아 버렸기 때문이다.”

하느님을 우리 아버지로 모시는 일과 더불어 ‘주님의 기도’는 우리에게 절실한 것들을 청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일용할 양식’, ‘죄의 용서’, ‘유혹과 악으로부터 보호’ 등입니다. 이 외에 우리에게 더 필요한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주님의 기도’는 예수님이 바라시는 기도요, 우리에게는 가장 소중한 기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기도하기를 간곡하게 권고하십니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말씀으로만이 아니라 당신이 모범적인 기도의 삶으로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르면, 우리가 기도해야할 이유는 많습니다. 추수 밭에 모자라는 일꾼을 위해서(마태 9,38 참조), 우리를 힘들게 하고 박해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루카 6,28; 마태 5,44 참조), 미구에 닥쳐올 악에서 벗어나기 위하여(루카 21,36 참조),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루카 22,40 참조). 그리고 우리 삶에서 필요한 도움이 많습니다. 부모님을 위해서, 자녀들을 위해서, 교회 공동체를 위해서, 나라를 위해서, 순교자들의 시복 시성을 위해서 기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기도의 중요한 자세들도 가르쳐 주십니다. 입술로만이 아니라 마음으로(마태 15,8 참조), 끈질기게(루카 11,5-8 참조), 겸손한 마음으로(루카 18,9-14 참조), 단식과 함께 전심전력으로 기도하라고 하십니다(마르 9,29 참조)


교회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좋은 기도를 많이 준비하였습니다. 미사는 가장 큰 기도입니다. 모든 기도의 종합입니다. 미사가 얼마나 중요한지 우리는 잘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훗날 하느님 앞에 가서 그 중요성을 비로소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가장 큰 기도요,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마련해주신 제사 기도입니다. 묵주기도는 끊임없이 기도하기 위하여 가장 좋은 기도입니다. 언제 어디서든 할 수 있습니다. 아주 오랜 시간 복음을 묵상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생애를 그 잉태로부터 시작해서 부활과 승천 모든 중요한 과정을 모두 묵상할 수 있습니다. “이제와 우리 죽을 때 우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라는 청원이 담긴 성모송은 우리가 죽음을 맞이할 때 선종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내어주신 성체의 강복과 조배 역시 훌륭한 기도입니다. 십자가의 길 역시 우리의 어려움을 이겨내는데 큰 힘이 되는 기도입니다. 성가 역시 하느님을 찬미하거나 우리의 어려움을 호소하는데 큰 힘을 지닌 기도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하느님의 힘을 믿는 사람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세상 모든 일이 하느님 손바닥 안의 일이라는 것을 믿고 조용히 하느님의 때를 기다립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잘 참고 기다립니다. 물론 해야 할 일은 하지만, 자신이 최선을 다했다 하더라도 자만하지 않고, 그저 하느님이 직접 일하실 것을 기다립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실망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앞길이 캄캄하고, 하는 일마다 제대로 되지 않고 더 힘들어져도 희망을 갖고 기다립니다. 

 

저는 원주교구 교우 여러분들이 기도하는 하느님의 사람, 하느님의 자녀이기를 기도합니다. 아울러 하느님께서 항상 교우 여러분들과 함께 하시길 기도합니다.

 

 

2019년 12월 대림 첫 주일에
천주교 원주교구장 조 규 만 바실리오 주교

 

   

[의정부교구]

 

“본당은 그 지역에 사는 교회의 현존이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리스도인 생활이 성장하는 곳입니다.”

(복음의 기쁨 28항)

 

  1. 2019년은 유독 어려움이 많은 한 해였습니다. 훈풍을 기대했던 남북 관계는 북미 정상 간의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지금까지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국 대법원의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 손해배상 판결로 경색되기 시작한 한일 관계는 아베 정부의 경제 제재로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여러 요인에 따른 심각한 경제 문제에 더하여 검찰 개혁을 둘러싼 의견 대립으로 우리 사회가 큰 갈등과 불안을 겪기도 했습니다.

세상이 급변하고 살림살이가 힘들어질수록 하느님이 주시는 ‘복음의 기쁨’을 이 사회에 전하여 줄 사명을 지닌 우리 교회의 역할은 더욱 절실해집니다. 교회는 시대의 징표를 읽고 그에 맞갖은 응답의 길을 끊임없이 찾아야 하며, 본당은 우리 지역 안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드러내는 육화된 교회로서 목마른 이들이 목을 축일 수 있는 지성소가 되어야 합니다.

 

2. 최근 보편교회 차원에서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호의적인 동의를 얻어 교황청 국제신학위원회의 『교회의 삶과 사명 안에서 공동합의성』이 발행되었습니다. 이에 따르면, ‘공동합의성(synodality)’은 교회의 본질(구성적 요소)로서, 하느님의 백성이 교회의 삶과 사명에 관련되어 함께 참여하고 걸어가는 여정(3,7항 참조)을 의미합니다. 그러기에 “하느님께서 제삼천년기의 교회에 바라시는 것”(1항)으로서 공동합의성이 “교회의 일상적인 생활 방식과 작용 방식 안에서 표현”(70항)되게 하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이에 우리 교구도 올해 보편교회와 발맞추어 사제연수를 비롯해 교구에서 주관하는 각종 교육기회를 통해 공동합의성의 충만한 의미와 이를 교회 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을 배워나갈 것입니다. 때마침 지난해 우리 교구에서는 “평신도사도직협의회(평협)”가 발족되었습니다. 축하와 더불어 ‘공동합의성’을 이루어 나가는데 큰 힘이 되어주리라 기대합니다. 우리 사제들께는 신자들과의 기꺼운 소통과 협력을, 신자 여러분께는 사제들에 대한 변함없는 존경과 협력, 그리고 특별히 기도를 당부드립니다. 우리 교구가 상호 존중과 배려, 기도와 협력을 통해 하느님 보시기에 더욱 좋은 교회로 성숙해 나갈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3. 당신께 바라는 이들에게 새 힘을 주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새해를 시작합시다. 우리 교구는 올해도 제가 교구설립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중장기 사목서한 『착한 목자』에서 제시한 사목 비전을 계속 이어갈 것입니다. 소공동체, 청소년 사목, 사회사목에 대한 우선적 관심은 여전히 중요한 사목 방향이자 과제입니다. 이에 모든 본당에서도 이 방향을 지속하고, 그에 따른 사목계획도 수립해주시길 바랍니다.

다만 시대의 흐름에 따른 변화 안에서 사목적으로 새로운 응답이 요청되는 측면이 있기에, 저는 이를 찾기 위해 사목교서를 만들기에 앞서 지구사제모임을 통해 사제들의 지혜를 청했고, 교구 사목평의회의 의견도 물었습니다. 사제들과 사목평의회의 의견을 참고한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1) 기본 사목방향 외에 2019년도 사목교서에서 제시한 네 가지 사목 분야(노인, 환경, 난민과 이주민, 민족화해) 가운데 2020년에 더욱 강조해야 할 내용으로 첫째가는 우선순위를 차지한 것은 ‘노인사목’이었습니다. 저 역시 2018년 말 사목연구소에 고령 신자들이 급속하게 늘어나는 현상이 중장기적으로 사목에 미치게 될 영향에 대하여 연구해줄 것을 요청하는 한편, 교구 사목평의회를 통해 고령 신자들이 본당 생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하여 의견을 수렴하였습니다. 그 결과, 고령 인구 증가는 피할 수 없는 흐름이고, 그것이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청년층의 혼인 기피, 저출산 흐름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고, 그에 따라 고령자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점점 더 높아지리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 교회는 사회보다 더 빠르게 초고령 사회에 진입하였습니다.

교회 안에서 고령 신자의 증가는 매일 미사 참여 증가, 고령자들이 할 수 있는 봉사 활동의 확대, 노년의 성숙된 신앙과 지혜를 젊은 세대에게 전수하는 등 긍정적인 면모들을 적지 않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에 우리 교구에서는 후속 대책으로 선교사목국 산하 노인사목부에서 ‘노인사목연구회’를 조직하여 중장기적인 노인사목 대책을 수립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우선 요청되는 시급한 노인 사목 과제들을 이행해나가기로 하였습니다. 특히 우리 교구 관내에 노인 요양시설이 크게 늘고 있는데, 이 시설에 있는 고령 신자들에게 사목적 배려를 강화해나가기로 하였습니다.

 

2) 청소년, 청년 사목을 더욱 모색해 나가자는 의견도 크게 두드러졌습니다. 사제단과 사목평의회 모두 고령화 시대라고 해서 사목이 노인을 중심으로만 펼쳐져서는 곤란하다는 점을 지적해 주었습니다. 교회의 고령화를 대처하기 위해서라도 노인사목만큼 중요한 것이 청소년사목이라는 것입니다.

고령 신자들이 늘어나는 것은 수명 연장의 자연스러운 결과이니 문제라 할 수 없습니다. 문제는 청년들이 교회에 나오지 않거나 그나마 잘 나오던 이들이 교회를 떠나는 현상입니다. 그래서 힘들고 방법을 찾기도 쉽지 않지만 청소년·청년 사목을 계속 강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청소년·청년을 교회의 미래로 바라본다면 이들을 더욱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고 배려하고 또 정성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먼 미래를 내다보면 신자 가정 안에서 신앙을 전수하고, 이렇게 전수된 신앙을 본당 전체가 강화해 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본당 전체가 필요하다는 마음으로 모든 신자가 청소년·청년 사목에 함께 해주길 바랍니다.

                

3) 점점 관심을 더 가져야 할 분야가 사회사목입니다. 사회사목은 소공동체와 신앙의 열매가 맺어지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이들에 대한 돌봄을 비롯해 최근 기후 변화로 피폐해져 가는 ‘우리 공동의 집’인 지구를 보존하기 위해서라도 환경에 대한 관심과 노력은 더욱 강조되어야 합니다. 환경은 미래 세대로 이어지는 우리 모두의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주민 사목, 특히 가난한 이들 중에 더 가난한 난민에 대한 돌봄은 참 신앙인이 가져야 할 의무입니다. 이를 위해 생태환경과 난민사목은 교육을 통한 연대, 연대를 통한 실천이 꼭 필요한 부분입니다. 더불어 민족의 화해와 일치,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밤 9시에 드리는 기도 역시 꾸준히 지속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4. 날로 어려워지고 있는 사회, 교회의 여건 속에서도 묵묵히 각자의 사명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사제, 수도자, 그리고 평신도 동반자들에게 감사와 격려의 인사를 보냅니다. 여러분의 작은 노력들이 모여 하느님 나라가 이 땅에 실현되고 있습니다. 이제껏 잘 해왔지만 올해도 교구민 전체가 교회 생활과 각자의 삶 안에서 ‘공동합의성’을 실천하며, 하느님 나라 건설에 협력해줄 것을 부탁드립니다. 교구민 모두에게 하느님의 은총을 빌어 드립니다.

 

 

2019년 대림 제1 주일에

천주교 의정부교구장 이기헌 베드로 주교

 

 

  

[대구대교구]

새로운 서약, 새로운 희망
- 치유의 해, 성체를 공경하며 성령의 은혜로 충만한 삶을 살아갑시다! -
 


 교구민 여러분과 함께 하느님께서 허락하시는 새로운 한 해를 기쁨으로 맞이하며 인사드립니다.

 

성모당이 봉헌된 지 100주년이 되는 2018년을 맞아 우리는 초대교구장 안세화 드망즈 주교님의 마음으로 돌아가 본당과 가정과 단체 및 개인별로 기본에 충실한 신앙을 약속하고, 3년간 이러한 원의와 희망으로 교구의 쇄신과 발전, 성소자 발굴과 사제양성, 하느님의 사랑과 복음의 기쁨이 충만한 본당과 가정을 만들기 위하여 특별히 기도하며 노력해 왔습니다.


먼저 지난 2018년은 “회개하라! 회개하라! 회개하라!”고 하신 루르드 성모님의 말씀에 따라 ‘회개의 해’로 보내며, 우리 모두가 회개할 것이 무엇인지를 성찰하는 가운데 하느님의 뜻에 어긋난 삶에서 하느님을 향한 삶으로 나아가고자 하였습니다.

 

그리고 지난 2019년은 “죄인들을 위하여 하느님께 기도하여라. 죄인들의 회개를 위하여 무릎을 꿇고 땅에 입을 맞추어라.” 하신 루르드 성모님의 말씀에 따라 ‘용서와 화해의 해’를 보냈습니다. ‘용서와 화해’라는 주제에 따른 실천사항은 우리 자신의 죄를 비롯하여 하느님과 교회를 떠난 교우들의 죄에 대한 용서를 비는 마음으로 ‘냉담교우 회두운동’과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10월 특별전교의 달 선포에 따른 ‘선교운동’을 펼치는 것이었습니다. 지난 11월 9일에 열렸던 특별전교의 달 폐막미사 및 교구선교대회에서 이에 대한 마무리봉헌과 시상이 있었고 적지 않은 결실이 있었습니다. 많은 분들의 수고와 노력에 감사드립니다.

 

이어서 올해 2020년은 ‘치유의 해’로 보내고자 합니다. 루르드 성모님께서는 “샘물을 마셔라”고 하심으로써 사람들이 루르드의 샘물을 마시고 치유의 기적을 얻도록 하셨습니다. 저는 먼저 지난 몇 년간 있었던 일련의 일들에 대해서 교구장으로서 책임을 통감하며, 모든 교구민들께 용서를 구합니다. 아울러 우리 교구민들이 대내외적으로 입은 상처에 대해 성모님께서 치유의 은혜를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이제 우리 모두 가톨릭신자로서의 자긍심을 회복하기 위하여 한 마음으로 노력하자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다음으로 저는 분단된 남북한의 현실과 이념적인 대립, 그리고 끊임없는 여야의 정쟁과 이웃나라들과의 갈등 등으로 상처받은 우리 국민들의 마음도 하느님께서 치유의 손길로 어루만져 주시길 기도합니다. “주님께서는 영혼을 들어 높이시고 눈을 밝혀 주시며 치유와 생명과 복을 내려 주신다.”(집회 34,20)는 말씀대로, 참된 치유는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입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요한 6,51)하신 예수님의 말씀과 성령의 은혜를 신뢰하며 하느님께서 우리 교구민들의 모든 아픔을 낫게 해 주시기를 청합니다.

 

“주님,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제 영혼이 곧 나으리이다.” “주님, 저희가 모신 성체를 깨끗한 마음으로 받들게 하시고 현세의 이 선물이 영원한 생명의 약이 되게 하소서.” 이 미사통상문의 기도처럼, 우리 모두가 주님의 성체와 성혈을 통해 자신의 상처를 치유 받으며, 기본에 충실한 신앙생활로 하느님의 사랑과 복음의 기쁨이 충만한 본당과 단체와 가정을 만들어 나갑시다. 우선 우리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모든 교구민들은 자주 성경을 읽고, 매일 1단 이상의 묵주기도를 바치며, 생활 중에 1회용품 사용 줄이기, 주변의 쓰레기 줍기와 같은 희생봉사에 힘쓰며,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의 가정기도, 평일미사참례, 성체조배에 힘쓰기를 권합니다.

 

또한 우리 주위에는 각종 질병이나 사고로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분들, 노환과 질병의 아픔을 겪는 소외된 어르신들, 나름대로 아프고 힘든 정신적인 상처를 입고 살아가는 이들도 많습니다.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그들의 아픔과 결코 무관할 수 없는 우리들은 자신이 입은 치유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또 그들을 형제적 사랑으로 돌보는 자세를 가져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지향으로 각 본당에서는 주변의 병원이나 요양시설, 어르신들을 위한 주간보호센터 등과 사각지대에 있는 분들에 대한 병자영성체와 방문에 정성을 다하길 바랍니다. 아울러 각 대리구(혹은 각 지역)는 연중 적당한 날에 성체대회나 성체행렬, 치유의 성령대회, 합동병자성사 등의 행사를 거행하면 좋겠습니다. 주님의 은혜와 성모님의 도우심으로 우리의 상처를 치유 받고 가톨릭 신자로서의 긍지를 되찾는 축복의 한 해가 되길 바랍니다.

 

“루르드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님, 저희와 저희 교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 이윤일 요한과 한국의 모든 성인과 복자들이여, 저희와 저희 교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2019년 12월 1일 대림 첫 주일에

천주교 대구대교구장 조 환 길(타대오) 대주교 

 

 


  

[청주교구]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선교 공동체의 해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1. 한 해를 돌아보며 교구에 풍성한 은혜를 베풀어주신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2019년 우리 교구는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교구 공동체의 해’로 정하고 선교의 사명을 마음 깊이 새기고 실천하는 한 해를 보냈습니다.
시노드 이후 수립된 중장기 계획의 마지막 해인 2020년은 지난 12년 동안 살아온 삶을 성찰하고, 선교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깨닫는 해가 되기를 바라며,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선교 공동체의 해’로 정하였습니다.

주님께 나아가는 선교 공동체

2. 우리 교구는 2009년부터 2012년까지 4년 동안 ‘가정과 소공동체에서 말씀과 성체 중심의 삶을 사는 교구 공동체’를 구현하기 위하여 노력하였습니다. 교구는 신자들에게 성경을 공부할 다양한 방법을 제시하였고, 본당에서 성경공부반을 개설하고 운영하여 신자들이 성경 말씀을 읽고 새기며 실천하도록 도왔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교회에 버팀과 활력이 되고, 교회의 자녀들에게는 신앙의 힘, 영혼의 양식이 되기 때문입니다”(계시 헌장, 21항 참조).

또한 교구는 성체 중심의 신자 공동체를 구현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신자들의 주일미사 참석을 독려하였고, 미사를 삶의 중심에 두는 신앙생활을 강조해 왔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미사를 통하여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고 기억하며 감사할 뿐 아니라, 영성체를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주신 새 생명을 보존하고 성장시키고 새롭게 하기 때문입니다(가톨릭교회교리서, 1392항 참조).

 

이웃으로 나아가는 선교 공동체

3. 우리 교구는 2013년부터 2016년까지 4년 동안 이웃을 찾아가는 사목을 통하여 ‘가장 작은이를 섬기는 교구 공동체’를 지향하였습니다. 교구는 기다리는 교회에서 찾아가는 교회가 되고자 노력하였습니다. 특히 본당과 교구의 60여 개의 복지기관을 연계하여 어려운 이웃을 찾아내고 필요한 도움을 줌으로써 가장 작은  이를 섬기고자 노력하였습니다. 또한 교구는 찾아가는 사목을 이루기 위하여 교정사목, 경찰사목, 미혼모자 가정사목, 이주사목을 위한 전담사제를 임명하였습니다.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병들고 고통받는 무수한 사람들을 돌보는 가운데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재현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치유하시는 사랑과 위로를”(평신도 그리스도인, 53항) 이웃에게 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세계로 나아가는 선교 공동체

4. 우리 교구는 2017년부터 2020년까지 4년 동안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교구 공동체’를 목표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선교는 주님께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맡겨주신 고귀한 임무입니다. 교회의 사명은 구원의 기쁜 소식을 세상에 선포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모든 자녀는 세상에 대한 자신의 책임을 생생하게 깨닫고 자기 자신 안에서 참으로 가톨릭 정신을 길러 복음화 활동에 온 힘을 기울여야 합니다”(선교 교령, 36항).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 안에서 쇄신되고 하느님의 가족으로 변화되어야 할 인류 사회의 누룩으로서 존재하며”(사목 헌장, 40항) 온 세상의 복음화를 위하여 노력해야 합니다. 이제 시노드 이후 수립된 교구 중장기 계획의 마지막 해를 맞이하여 교구는 2020년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선교 공동체의 해’를 실현하기 위하여 다음 사항을 실천하고자 합니다.

 

교구 공동체의 실천 사항

5. 먼저 선교 사목 분야에서는 ‘세계로 나아가는 선교공동체’를 이루기 위하여 해외선교와 북방선교를 위한 노력을 계속할 것입니다. 교구는 교구의 기초를 놓아준 메리놀외방전교회를 기억하며, 메리놀외방전교회가 못다 이룬 북방선교의 꿈을 계승할 것입니다. 특히 교구는 2023년 메리놀외방전교회 한국진출 100주년을 바라보며 교구설립 수도회인 예수의꽃동네수도회, 성황석두루카외방선교회와 연계하여 북방선교의 새로운 장을 열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또한 해외선교를 위한 인적, 물적 자원을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구축하여 지원할 뿐 아니라, ‘평신도 해외선교사’를 계속 양성하여 파견할 것입니다.

   

청소년 사목 분야에서는 청소년과 청년들 스스로가 청소년 사목의 대상이며 동시에 주체라는 점을 이해하고, 그들이 온 세상 복음화의 일꾼으로 성장하도록 동반자의 역할을 다할 것입니다. 특히 그동안 양성한 또래사도와 청년 선교사들이 자신들의 선교체험을 본당의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소개하여 그들이 온 세상 복음화에 대한 열정을 가지도록 할 것입니다. 또한 “복음 선교의 다른 방법의 하나로서 절대로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은 교리교육입니다”(현대의 복음선교, 44항). ‘삶에서 신앙으로, 다시 신앙에서 삶으로’ 가는 실천적 교육과정을 담은 교리교육을 하도록 도울 것입니다.

 

가정 사목 분야에서는 사회적 인식의 많은 개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신앙과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다문화 가정과 새터민 가정을 위한 교회의 역할을 모색할 것입니다. 특히 여러 사유로 홀로 아이를 키우고 있는 새터민 가정을 위한 지원을 적극 실행할 것입니다. 그리고 교구 신자 고령화에 초점을 맞추어 노인 사목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본당에서 실행할 수 있도록 도울 것입니다. 또한 생명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증진하고자 생명 교육 심화 과정인 ‘생명 아카데미’를 운영하여, 이를 통해 양성된 이들과 함께 일선 중·고등학교 학생들을 위한 생명 교육과 교재 발간에 힘쓸 것입니다.

 

매괴 성모님에게 도움을 청하며

6. 끝으로, 교구 공동체가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선교 공동체’가 될 수 있도록 우리의 도움이신 매괴의 성모님의 전구를 청합니다. 신자 여러분의 가정과 교구 공동체, 그리고 지역사회에 하느님의 풍성한 은총이 가득히 내리기를 기원합니다.



2019년 12월 1일
대림 제1주일
청주교구장 장 봉 훈 가브리엘 주교

   

[마산교구]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는 다릅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새로운 한 해를 맞으며 사랑하는 교우들과 수도자들 그리고 동료 성직자들께 주님의 사랑과 평화를 빕니다.
무엇보다도 반갑고 기쁜 일은 갈라졌던 우리 민족이 ‘평화의 길’을 향해 한 걸음씩 나가기 시작했다는 사실입니다. 아직도 많은 어려움이 겹겹이 쌓여 있겠지만, 절망과 죽음 속에서도 부활의 희망을 잃지 않고 사는 우리이기에 이 평화의 길이 꼭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간절히 간절히 기도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듯이, 이 길이 결코 만만치 않아서 인간의 수고와 노력만으로는 이룰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잡히시기 전날 밤 제자들에게 “나는 당신들에게 평화를 주고 갑니다. 내 평화를 당신들에게 주는 것입니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는 다릅니다.”(요한 14,27 : 공동번역 1971년판)고 말씀하셨습니다. 역사적으로 한때, 로마의 평화(Pax Romana)라는 말이 있었지만 이런 평화야말로 로마군대의 무력에 의해 유지된 것이었으니 이야말로 예수님께서 지적하신 ‘세상이 주는 평화’일 따름입니다. 그에비해 당신께서 남겨주시고자 했던 평화는 아버지와 함께 있음으로써 아버지로부터 얻어지는 평화입니다. 아버지와 함께 있음으로써 아버지의 사랑을 담뿍 받은 아드님은 그 사랑에 힘입어, 그 사랑 때문에, 그 사랑을 통하여 당신 생명을 아낌없이 바칠 수 있었고, 그렇게 함으로써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참 평화를 제자들에게 주셨습니다.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요한 20,19)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죽기 전에 약속하신 바로 그 평화가 이제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된 것입니다. 평화 자체이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영을 불어 넣어주시며 누구의 죄든지 용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루어야 할 평화의 길, 이 길을 끝까지 걸어갈 수 있는 원동력은 하느님의 사랑이며 그 한 걸음 한 걸음의 구체적 내용은 우리가 서로 용서하는 것입니다. 평화는 이렇게 우리네 삶의 가장 구체적인 모습인 서로 용서하고 서로 얼싸안는 데서 시작됩니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남과 북이 서로 평화의 길로 걷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서로 용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전쟁과 오랜 군사대치로 수없이 흘린 동족상잔의 피를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도 문제겠지만, 이 못지않게 중요한 일은 우리 사회 안에 형성된 서로 다른 생각 때문에 굳을 대로 굳어져 버린 갈라진 마음을 화해와 용서로 모으는 일일 것입니다. 원하옵건대, 우리 모두가 하느님 사랑의 은혜로  인간적으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미움과 분노에서 벗어나 용서의 기쁨 속에서 참 평화를 이루어 가시길 간절히 빕니다. 저 자신 또한 주교라는 직분이 여러분에게 엎드려 봉사하기 위해서 있을 뿐, 한 인간으로서는 허약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고 보니 밀이 아니라 가라지 같은 용서받아야 할 내 속 모습 때문에 하느님 앞에 엎드려 빌고 또 빌게 됩니다. 제발 거짓 없이 살게 해달라고, 위선자가 되지 않게 지켜주시라고 말입니다.

 

끝으로 여러분에게 꼭 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이제 우리 천주교 마산교구 신자들은 더 이상 손가락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지 말고 우리 이웃들이 우리가 그런 사람이 되어주길 바라는 바로 그런 사람 곧 용서하는 사람이 되도록 합시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어려움을 감내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날 이 나라에서 우리 천주교 신자들마저 자기 마음대로 살아간다면 나라의 미래는 마지막 희망인 우리 때문에 더 허무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십자가 그 곁에 서 계셨던 성모님의 도우심으로 평화가 이루어지는 그날까지 서로 용서하며 우리 주 예수님의 남은 고통을 기꺼이 지고 갑시다. 참 좋아하는 시편 한 구절을 여러분께 들려드립니다. 사랑과 평화가 넘치시길 기도합니다. 주님 안에 늘 평안하소서.

 

            자비와 충성이 서로 마주 만나고
            정의와 평화가 함께 입 맞추리라
            땅에서 충성이 움터 나오면
            정의가 하늘에서 굽어보리라
            주께서 행복을 내려주시면
            우리 땅은 열매를 맺어주리라.
            정의가 당신 앞을 걸어나가면
            구원은 그 걸음을 따라가리라.
            (시편 85,11-14 : 최민순 신부 역)
   

 

2020년을 준비하는 대림절에
교구장 배기현 콘스탄틴 주교

 

   

[안동교구]

“기쁨 넘치는 하느님 나라를 일군다!”

- 교구 50주년 다짐 실천의 해 -

 

 

 

 1. 먼저 지난해 교구 50주년을 지내면서 기념사업, 교육, 행사 등 교구의 모든 일정에 함께 해주신 교구민 모두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특히 모든 교구민이 함께한 50주년 기념 감사미사의 자리는 교구의 참모습을 대내외적으로 보여준 참으로 감동적인 자리였습니다. 지난 50년을 돌아보고 새로운 50년을 준비하는 충분한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기억, 감사 그리고 다짐’이라는 표어 아래 준비한 전 교구민들의 정성과 다짐을 봉헌하던 순간은 숙연하기까지 하였습니다. 특별히 교구의 모든 평신도, 수도자, 사제가 참여한 ‘삶의 다짐’ 봉헌은 새로운 출발을 위한 새로운 다짐의 자리였습니다. 그래서 교구는 새로운 50주년을 여는 2020년을 ‘교구 50주년 다짐 실천의 해’로 정하여 “기쁨 넘치는 하느님 나라를 일군다.”라는 교구사명선언문의 정신을 구체적으로 함께 살기로 하였습니다. 이것이 2020년 교구의 사목 방향입니다.

 

교구사명선언문


2. 무엇보다도 먼저 교구 구성원 각자는 교구사명선언문의 내용을 숙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의 다짐이 각각 교구사명선언문의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되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이 이미 잘 알고 있지만, 다시 소개해 드립니다. <우리는/ 이 터에서/ 열린 마음으로/ 소박하게 살고/ 생명을 소중히 여기며/ 서로 나누고 섬김으로써/ 기쁨 넘치는 하느님 나라를 일군다.>

 

우리들의 다짐


3. 우리들의 다짐은 교구 50주년을 맞이하여 교구사명선언문의 정신에 따라 교구 공동체의 구성원 전체가 함께 작성한 ‘삶의 다짐’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들의 다짐이란 안동교구 하느님 백성의 구성원인 평신도, 수도자, 사제가 각각 자기들이 살아가고자 하는 내용을 ‘삶의 다짐’으로 함께 작성하고 교구 50주년 감사미사 때 하느님께 봉헌한 그 다짐이 되겠습니다. 이제 우리들의 다짐인 평신도의 다짐, 수도자의 다짐, 사제의 다짐이 각각 어떤 내용으로 되어 있는지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4. 평신도의 다짐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 평신도는 교구설정 50주년을 맞이하며 교구사명선언문을 새롭게 깨닫고,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삶을 살기로 다짐한다.”


- “기쁘고 떳떳하게” 살기 위하여 신앙의 성숙을 위한 교육과 활동에 적극 동참한다.

- “열린 마음으로” 상대방을 이해하고 배려한다.

- “소박한 삶”을 생활 속 기본질서 지키기로 실천한다.

- “생명을 소중히 여기며” 생태계 보전을 위하여 일회용품 사용을 자제한다.

- “나눔과 섬김”의 자세로 단체에 가입, 봉사함으로써 이 땅에 하느님 나라를 일구는 데 앞장선다.

 

5. 수도자의 다짐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는 수도자로서,

안동교구의 사람과 자연 안에서

빈 마음으로 다름을 받아들이며

일상의 수행을 통하여 생태보전에 힘쓰며,

자유로운 가난의 삶으로

하느님 나라의 표징을 드러낸다.”

 

6. 사제의 다짐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는 안동교구 사제로서 교구사명선언문의 정신에 따라,

- 겸손하고 검소하게 산다.

- 존중을 바탕으로 소통한다.

- 친교와 감사로 사랑을 실천한다.

- 사제 직무에 충실한다.”

 

우리들의 다짐 실천


7. 이제 “돌에 새겨진 것이 아니라 우리 각자의 마음에 새겨진” “자기 사명선언문”(2019년 50주년 사목교서 9항)과도 같은 이 다짐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지 찾아봅시다. 그리고 다른 구성원의 다짐 내용도 다시 한번 잘 살펴봅시다. 그 다짐들에도 관심을 가지고 형제애를 바탕으로 서로의 삶을 격려하고 지지해주는 관계가 된다면 더욱 좋겠습니다. 이는 서로의 친교를 위해서도 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평신도, 수도자, 사제가 연대와 협력을 통해 서로를 도와주고, 배려하며, 소통하고, 함께 발전할 기회가 될 것입니다.

 

우리들의 다짐 목표


8. 우리들의 다짐 목표는 사목교서 제목에서도 밝혔듯이, 교구사명선언문의 정신 구현 목표이기도 한 “기쁨 넘치는 하느님 나라를 일군다.”라는 데에 둡니다. 왜냐하면, 구성원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구체적으로 ‘삶의 다짐’을 사는 것이 바로 이 땅에 하느님 나라를 세우는 것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9. 이 땅에 하느님 나라를 세운다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하느님의 뜻과 복음적 가치를 따르는 세상을 만든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우리 신앙인부터 자발적이고 구체적으로 그분의 뜻을 실천하고 또 그런 실천적인 운동에 참여함으로써 가능해집니다. 우리는 그런 실천을 통해 “신앙의 기쁨이 더디지만 분명하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확고한 신념으로서 … 서서히 되살아나도록 해야 합니다.”(교황 프란치스코, “복음의 기쁨” 제6항). “우리는 이 터에서 … 기쁨 넘치는 하느님 나라를 일군다.”라는 교구사명선언문의 표현이 바로 이러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10.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교구도 50주년 기념 활동으로 선정했던 교구 차원의 여러 가지 일들을 차근차근 실행해 나갈 것입니다. 교구와 교구민 모두가 우리들의 다짐을 성실히 실천함으로써 우리 모두가 이 세상에서부터 이미 하느님 나라에 사는 기쁨을 함께 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2019년 12월 1일 대림 제1주일
천주교 안동교구 교구장 권혁주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

 

 

 

  

[광주대교구]

본당의 해 II
-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 -
 

 

 

1. “본당의 해 II”를 시작하며
  우리 광주대교구는 지난 2012년 교구설정 75주년을 맞이하여 ‘공동체성 회복과 강화’에 초점을 두고 교구 사목비전을 설정하였습니다. ‘공동체성 회복과 강화’야말로 우리 시대의 가장 절실한 요청이라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구는 그 첫 단계로 2012년부터 2014년까지 ‘가정의 해’, 2015년부터 2017년까지는 ‘본당의 해 I’로 정하여 가정과 본당의 공동체성 회복과 강화를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그러나 가정과 본당의 공동체성은 단숨에 성취되거나 실현될 수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꾸준한 관심과 노력 속에서만 비로소 빛을 발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본당의 해 Ⅱ를 시작하는 2018년을 목전에 두고, 우리 가정과 본당의 복음화 상태 그리고 공동체의 일치와 활성화 정도에 대한 성찰의 시간을 가짐과 함께 우리 교구는 2018년부터 2020년까지 3년 동안 ‘본당의 해 II’로 정하여 본당의 복음화에 지속적인 관심을 두고자 합니다.

 

  본당의 공동체성은 복음 선포(Kerygma-Martyria)와 전례(Liturgia), 친교(Koinonia)와 봉사(Diakonia)를 통해 비로소 실현됩니다. 교종 프란치스코께서는 ‘복음의 기쁨’에서 이 점을 분명하게 강조하셨습니다. “본당은 그 지역에서 사는 교회의 현존이고,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리스도인 생활이 성장하는 장소이며, 대화와 선포, 아낌없는 사랑 실천, 그리고 예배와 기념이 이루어지는 장소입니다.” 또한 본당은 “공동체들의 공동체이고, 길을 가다가 목마른 이들이 물을 마시러 오는 지성소이며, 지속적인 선교 활동의 중심지입니다.”
 우리 교구가 사목비전을 통해 이런 본당의 모습을 구체화하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며, 이는 보편교회의 지향에도 부합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공동체상은 본당만이 아니라 모든 형태의 그리스도교 공동체 및 단체가 지향해야 한다는 것도 당연합니다.
 
2. “본당의 해 II”와 사목 중점사항
  우리 교구는 ‘공동체성 회복과 강화’라는 사목비전과 더불어 이를 구체화하기 위한 사목 중점사항을 설정하였습니다. 공동체성 강화,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인 사랑, 청소년 친화적인 본당 이루기, 사제단의 사목 교류 강화 및 지구사목 활성화가 그것입니다. 이 네 가지 사목 중점사항은 공동체성 회복과 강화를 위하여 사목의 우선적인 관심사가 되어야 할 것이며, 공동체의 역량을 집중적으로 쏟아야 할 분야입니다. 그리고 이 네 가지 사목 중점사항이 서로 긴밀하게 결합되고 상호보완적인 작용을 할 때 ‘본당의 해 II’는 더욱 풍요로운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것입니다.
 
(1) 공동체성 강화
  오늘날 공동체성 강화를 위한 교회의 노력은 더욱 요긴해졌습니다. 특히 가정공동체가 가족의 유대와 결속을 약화시키는 갖가지 도전들과 어려움들 속에 놓여 있음을 직시합니다. 가정이 “친교와 기도의 자리, 복음의 참된 학교”가 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살아 있는 세포”가 되도록 가정공동체의 본질을 강화하려는 노력은 가정과 더불어 본당의 공동체성 회복을 위한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본당의 공동체성 증진 또한 시급하고도 중요한 과제입니다. 영세자 증가비율은 거의 답보상태인 반면, 쉬는 교우의 비율은 점차 증가추세이고, 주일미사 참례자(2016년 현재 16.7%)는 감소추세가 뚜렷합니다.
 특히 쉬는 교우 문제는 우리 교회가 오래 전부터 안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입니다. 이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이 절실하게 요청됩니다.
  새 신자와 쉬는 교우들에게 좀 더 깊은 관심을 쏟아 그들이 성사생활에서 ‘맛’을 느낄 수 있는 후속 돌봄 프로그램이 필요합니다.

 

  또한 교회의 공동체성 증진을 위한 노력은 교회 내적인 차원에만 머물 수는 없습니다. 우리 사회의 공동체성 회복을 위하여 우리 교회가 할 수 있는 고유한 몫이 있습니다. 우선 각 본당이 지역사회의 가난한 이들과 연대하고, 살기 좋은 마을공동체를 이루는 데 함께 함으로써 공동체성을 증진하는 데 적절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 교회는 한반도의 평화와 남북한이 형제적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데 기여할 수 있습니다. 한반도의 평화 없이 우리 민족의 진정한 공동체성 회복과 민족의 오랜 염원인 통일은 기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2)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인 사랑
  본당 공동체 안에는 드러나지 않는 가난한 이들, 즉 홀로 의식주를 해결하는 연로한 어르신, 폐품을 수거하여 하루하루를 연명해 가면서 생활고를 겪는 어르신 그리고 약간의 지적 장애와 대화 단절로 우울증을 겪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누군가의 도움, 관심 그리고 대화를 갈망합니다. 이들은 현시대의 가난한 이들이며 우리 신앙 공동체는 이러한 약한 이들, 관심과 사랑, 뭔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우선적 사랑은 교회의 믿음, 곧 “가난한 사람이 되시어 언제나 가난한 이들과 버림받은 이들 곁에 계신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믿음”으로부터 비롯됩니다. 이는 “그리스도교 사랑의 실천에서 가장 중요하고 특별한 형태의 선택을 말하는 것으로, 교회의 전통 전체가 이를 증언”합니다. 따라서 “모든 그리스도인과 공동체는 가난한 이들이 사회에 온전히 통합될 수 있도록 가난한 이들의 해방과 발전을 위한 하느님의 도구가 되라는 부르심을 받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주님이신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의 복음(루카 4,18-19 참조)에서 중심자리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를 교종 프란치스코께서는 <자비의 얼굴>에서 새로운 표현으로 일깨워주십니다. “말과 행동으로 가난한 이들을 위로하고, 현대 사회의 새로운 노예살이에 얽매인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자신 안에 갇혀 있어 제대로 보지 못하는 이들이 다시 볼 수 있도록 하고, 존엄성을 빼앗긴 모든 이가 다시 그 존엄을 찾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지역사회의 가난한 사람들과 연대하는 것은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인 사랑을 구체화하는 데 있어 뜻 깊은 실천이 될 것입니다. 그와 더불어 “빈곤의 구조적 원인을 없애고 가난한 이들의 온전한 발전을 촉진” 하는 것도 교회의 소명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3) 청소년 친화적인 본당 이루기
  우리 교회가 그동안 신앙 전수를 위하여 청소년들에게 쏟은 열정과 노력은 이제 변화된 사회상황 속에서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청소년 사목은 이제 본당공동체 전체로부터 분리되어 이루어지거나 또 청소년들을 순전히 사목의 대상으로만 간주해서는 그 목적을 성취하기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 교회 안에서 “공동체 전체가 젊은이들을 복음화하고 교육하여야 한다는 인식과 젊은이들이 더 많은 지도력을 발휘해야 할 긴급한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는 점은 매우 고무적입니다. 이것은 사실 청소년 사목의 기본 방향을 매우 잘 제시해주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청소년들이 “모든 거리, 모든 광장, 세상의 모든 곳에서 예수님을 기쁘게 전하는 ‘신앙의 길잡이’”로 나설 수 있도록 본당공동체 전체 구성원이 지혜와 힘을 모아야 할 것입니다.

 

  청소년 친화적인 본당은 본당의 주변부에 밀려나 있는 청소년이 본당공동체 안에서 스스로 복음화의 주역이 되도록 하는 본당입니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청소년을 본당이나 성인중심의 공동체로부터 분리시키는 것이 아니라 본당공동체 전체 속에 자리매김하고, 본당의 사목비전을 청소년과 성인이 서로 공유하며, 상호 다각적인 친교를 이루도록 하는 것이 요구됩니다. 아울러 청소년 친화적인 본당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청소년과 청소년 사목협력자를 지속적으로 양성하여 청소년 스스로 “젊은이들의 사도”
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청소년들이 본당공동체에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장을 적극적으로 마련하는 것도 바람직합니다.

 

(4) 사제단의 사목 교류 강화 및 지구사목 활성화
  사제들의 사목활동이 세상 사람들에게 빛이 되고 희망이 되기 위해서 사목 쇄신은 불가피합니다. 사목 쇄신은 무엇보다도 복음과 공동체를 모든 사목활동의 중심으로 삼는 데서 시작됩니다. 사제가 변화되면 모든 것이 변화될 수 있다는 말은 사제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시고 보여주신 기준을 우선적으로 취하고, 하느님 백성의 구원과 행복을 위하여 더욱 겸손하게 봉사한다면 우리 사제들의 사목활동은 큰 희망이 될 것입니다. 평신도들을 존중하여 그들이 교회활동에 참여하고 함께 결정할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제공하고, 저마다 지닌 역량과 지혜를 충만히 발휘할 수 있도록 자유롭고 열린 소통의 장을 마련하는 것은 공동체를 더욱 풍요롭게 할 것입니다.

 

  사제단의 일치와 상호협력은 사목활동의 개인주의를 넘어 사목적 연속성과 일관성을 위해 매우 필요하며, 그 결실이 언제나 풍요롭다는 것도 분명합니다. 또한 사제단의 사목 교류 강화는 구체적으로 지구사목의 활성화를 통해서 심화할 수 있습니다. 지구사목은 사제단의 연대만이 아니라 본당들 간의 연대라는 점에서 매우 뜻이 깊습니다. 이런 사목적인 연대를 통해서 지구의 사목적인 현안을 공동으로 대처하고 지구 내 이웃본당들의 어려움을 함께 나눌 수 있습니다. 특히 세상 사람들을 향해 열린 지구사목의 취지는 지구 내 가난한 이들을 향한 우선적인 사랑을 공동으로 실천함으로써 더욱 뚜렷해질 것입니다.

 

3. 복음 묵상과 실천으로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를 위해 봉사합시다!


  모든 사람은 공동체를 이루도록 초대되었습니다.
 또한 공동체를 건설하고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 삶의 본질적인 소명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을 서로 아무런 연결도 없이 개별적으로 거룩하게 하시거나 구원하시려 하지 않고, 오직 사람들이 백성을 이루어 진리 안에서 당신을 알고 당신을 거룩히 섬기도록 하셨다.”는 것도 그런 뜻입니다.

 

  우리 교회의 공동체성을 가장 분명하게 드러낼 수 있는 기준은 자비입니다. 이런 점에서 교회의 자비 실천은 지속적으로 실천되어야 합니다. 교종 프란치스코께서 <자비의 얼굴>에서 강조하는 바와 같이 “우리 본당과 공동체, 단체와 운동, 곧 그리스도인들이 있는 곳에서는 누구든지 자비의 안식처를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자비는 분명 세상 사람들에게도 기쁜 소식이 될 것입니다.

 

  구원의 기쁜 소식을 선포해야 하는 교회의 사명은 복음의 기쁨 속에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 한 사람 한 사람을 통해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이 사명은 자신만의 안위와 세계를 벗어나 예수님과 인격적 만남을 이루고, 모두가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위해 봉사하며, 모든 피조물과 친교를 이룰 때 비로소 완수될 수 있습니다. 보다 더 아름다운 공동체와 세상을 위한 우리 그리스도인의 헌신이야말로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가장 잘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이 힘은 우리 모두가 매일 복음을 읽고 묵상하고 마음에 새겨 일상 안에서 하느님 현존을 체험하는 삶이 근간을 이룰 때 가능합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 건설은 혼자의 힘으로만 이룰 수 없습니다. 언제나 ‘말씀’으로 자신의 삶을 끊임없이 성찰하고 또 더 사랑하고자 하는 원의로 보는 눈과 듣는 귀를 정결케 하여 오로지 ‘하느님 나라 건설’ 곧 나의 주변이 ‘사랑의 왕국’이 되기를 염원하는 신앙과 갈망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서로 뜻과 힘과 마음을 모을 때 희망은 현실이 됩니다. 우리 교회가 세상 속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 건설에 투신하고, 청소년들이 자신들의 삶의 자리에서 복음 선포의 주역으로 살아가도록 지지하며,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가 될 때, 시대를 거슬러 복음의 가치와 희망을 살아가는 예언자적인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2019년 12월
대림 첫 주일에
천주교 광주대교구
대교구장 김 희 중 히지노 대주교

 

   

[전주교구]


 

 

 

  


 

 

 

 

 


 

  

  

[제주교구]


“생태영성에서 행동으로 나아가는 소공동체”

 

 


우리의 보금자리 제주도는 지난 10년 사이에 중병에 걸렸습니다. 제주의 인구가 10년 사이에 19% 증가했고, 관광객은 세 배로, 달리는 자동차는 두 배로 늘어났습니다. 그리고 45.9㎢에 달하는 제주의 농경지와 녹지(농지 26.3㎢, 녹지 19.6㎢)가 지난 10년 사이에 사라졌습니다. 이는 여의도 16배 면적의 자연생태계가 사라지고 도시화가 무분별하게 진행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제주 생태계 모든 생명의 원천인 지하수가 말라가고 있습니다. 제주인들이 오랜 세월 의지했던 용천수의 반이 말라버렸습니다. 제주의 지하수 수질은 갈수록 악화되어 농업용 지하수의 59%가 먹는 물 기준치를 초과할 정도로 오염되었습니다. 쓰레기 배출량은 처리 용량을 초과하여 쓰레기 매립장들이 대부분 포화상태에 이르고 쓰레기 오름이 생기고 있습니다. 하수처리장도 한계상황에 달하여 정화되지 않은 오염수를 틈틈이 방류함으로써 제주 바다가 백화현상으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제주의 생태계가 더 이상 회복과 지속이 불가능한 지경으로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생태계의 주인이 아닙니다. 우리는 창조주께서 관리 보호하도록 맡기신 생태계를 지키는 집사일 따름입니다. 이 생태계를 지속과 회복이 불가능하도록 변형하고 훼손하는 행위는 인간과 하느님을 향한 죄입니다. 우리는 후손들이 살아갈 삶의 터전을 빼앗고 파괴하고 있습니다.

2019년 10월 세계 150개국에서 수백만의 청소년들이 기후위기를 우려하며 등교를 거부하고 어른들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젊은이들은 진실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보는 직관적 통찰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들의 외침은 절박합니다. 스웨덴의 16세 소녀 그레타 툰베리는 유엔 기후정상회의에 초대받고 이렇게 외쳤습니다. “사람들이 고통 받고 있습니다. 죽어가고 있어요. 생태계 전체가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다. 우린 대멸종의 시작점에 서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오로지 돈과 동화 같은 경제 성장 얘기만 하고 계십니다. 어떻게 그러실 수 있습니까?” 우리 현실을 엄중히 들여다보면 이들의 외침은 결코 과장이나 왜곡이 아닙니다. 지금 한국의 어른들, 제주도의 어른들도 오로지 개발과 성장에만 사로잡혀 사태의 심각성을 못 느끼고 생태적 무감각에 빠져 있습니다.

2020년 우리는 ‘지구의 날’이 선포된 지 50주년을 맞습니다. 프란치스코 교종도 2015년부터 9월1일을 가톨릭교회 ‘피조물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로 정하고 온 세상이 피조물 보호에 동참하도록 초대하셨습니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지난 9월1일에도 이렇게 호소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된 피조물(창세 1,27 참조)로서 공동의 집에서 형제자매로 살아가라고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폭군이 되라고 창조된 것이 아니라, 창조주께서 사랑으로 함께 연결해 주신 수많은 종(種)들의 생명 연결망 중심에 서도록 창조되었습니다.  ...  이제 참회하고 회개하여 우리의 뿌리로 돌아갈 때입니다. 우리 가운데 너무나도 많은 이들이 피조물을 향하여 폭군처럼 행동하고 있습니다. 변화하기 위하여 진지하게 노력합시다! 더 소박하고 반듯한 생활양식을 수용합시다!  ....  소비주의의 탐욕과 만능에 대한 환상에 ‘아니오!’라고 말합시다. 이러한 것들은 죽음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내일의 생명을 멀리 바라보며 오늘 우리는 책임성 있는 희생의 여정에 나섭시다. 눈앞의 이득만 좇는 사악한 논리에 굴복하지 말고 우리 공동의 미래를 바라봅시다!”

2019년 10월 한국천주교주교회의도 기후 재앙을 막기 위한 전 세계의 노력과 프란치스코 교종의 가르침에 적극 부응하여 각 교구, 본당, 개인이 생태환경에 대한 감수성을 키우고 생태계를 살리기 위하여 취할 수 있는 모든 행동에 동참하기를 결의하였습니다.

주교회의의 요청에 의하여 2021년 제주교구에서는 한국청년대회가 두 번째 열립니다. 이는 한국교회의 젊은이들이 지역과 교구를 초월하여 한 형제자매로 모여 청년들의 고민과 아픔, 기쁨과 희망을 공유하고 세상에 변화와 쇄신을 일으키는 강한 그리스도적 연대를 함께 건설하기 위함입니다. 저는 제주에 모이는 한국교회의 청년들이 젊은이 특유의 순수함과 패기를 통하여 어른들이 주저하고 멈칫거리는 피조물 보호에 선구자적 전망과 표징을 보여주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우리는 모두 이 젊은이들의 모임이 한국교회에 새로운 희망을 던져줄 수 있도록 최선의 도움과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2019년 12월
대림 1주일에
천주교 제주교구 감목  강  우  일

 

  

[군종교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라”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나를 따라라.’하고 말씀하셨다.”(요한 21,19)


 I.

주님 안에서 사랑하고 존경하는 교구 신자, 군종사제 그리고 수녀 여러분, 저는 금년의 사목표어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라”로 정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은 책이 유명한 “준주성범”(그리스도를 본받음)이라고 합니다. 이 책의 저자 토마스 아 켐피스는 이 책의 첫 장에서 사도 성 바오로의 말씀, “그러므로 사랑받는 자녀답게 하느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또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는 향기로운 예물과 제물로 내놓으신 것처럼, 여러분도 사랑 안에서 살아가십시오.”를 서두로 인용한 다음, 그리스도의 말씀, “나를 따르는 이는 어둠 속을 걷지 않을 것이다.”(요한8,12)를 인용하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이 말씀은 우리가 만약 우리 자신의 기만적인 마음과 정신에서 벗어나 참된 이해와 자유를 갈망한다면 그분의 삶을 우리가 얼마나 철저히 본받아야 하는지를 가르쳐준다.”(준주성범 1장)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느님, 특히 사람이 되어 오신 하느님의 아드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본받아야 할 공통의 소명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사도 성 바오로께서 사용하신 “본받음”이라는 용어 대신 “발자취를 따른다.”는 표현을 선호합니다. 이 표현이 좀 더 가깝고 직접적이고 절박한 요청의 인상을 주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승천 직전 베드로 사도와 대화하시면서 그에게 이 지상의 최고 목자직을 수여하시는데, 그에게 마지막으로 하신 명령의 말씀이 바로 “나를 따라라.”(요한 21,19)였습니다. 이 말씀은 “베드로, 너는 내 발자취를 따라라.”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주님께서 당신의 첫 제자들을 당신의 제자직에 부르실 때에도 “나를 따라라.”(요한 1,43)고 같은 명령의 말씀을 하셨다는 점입니다. 주님께서는 지금도 사제나 수도자만이 아니고 당신의 모든 백성에게 “나를 따라라.”고 명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주님을 따르는 것이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의 공통 소명입니다.

 

 

II.

1. 저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라감에 있어 길잡이가 될 복음서 말씀을 마르코복음 1장 32-39절에서 찾았습니다. 이 부분은 주님의 초기 복음 선포 생활에서 일어난 일들을 기록하고 있는데, 같은 내용이 루카복음 4장 40-44절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저는 마르코복음의 이 기록(1,32-39)이 좀 길지만 인용하고 싶습니다. “저녁이 되고 해가 지자, 사람들이 병든 이들과 마귀 들린 이들을 모두 예수님께 데려왔다. 온 고을 사람들이 문 앞에 모여들었다. 예수님께서는 갖가지 질병을 앓는 많은 사람을 고쳐 주시고 많은 마귀를 쫒아내셨다. 그러면서 마귀들이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들이 당신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 날 새벽 아직 캄캄할 때, 예수님께서는 일어나 외딴곳으로 나가시어 그곳에서 기도하셨다. 시몬과 그 일행이 예수님을 찾아 나섰다가 그분을 만나자, ‘모두 스승님을 찾고 있습니다.’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다른 이웃 고을들을 찾아가자. 그곳에도 내가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려고 떠나온 것이다.’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온 갈릴래아를 다니시며, 회당에서 복음을 선포하시고 마귀들을 쫒아내셨다.”


네 복음서 전체를 통해, 특히 마르코복음의 이 부분에서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생활 곧 복음 선포의 삶이 세 개의 기초 위에서 이루어졌음을 알게 됩니다.


2. 첫째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파견되어 오신 후 승천하시는 순간까지 아버지 하느님과의 끊임없는 친교를 가지셨고 그것은 바로 당신의 기도를 통해서였습니다. 아버지와의 친밀하고 일치하며 아버지께 순종하는 삶의 추구 - 이것이 우리 주님의 삶에서 최우선 순위를 차지하였습니다. 이 마르코복음서 기록은, 주님께서 전날 저녁 늦게까지 사람들, 특히 많은 병자들을 만나 치유해주신 바쁘고 피곤하신 하루를 마치시고 잠자리에 드셨을 텐데, 새벽 일찍 일어나시어, 외딴곳에 가시어 그곳에서 기도하신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루를 기도로써 시작하시고 이 기도는 바로 아버지와의 친밀한 영적 만남의 시간이 되어주었습니다. 이 기도의 삶이 아버지께 완전히 순종하는 삶으로 이끌어주었습니다. 주님께서는 하루의 시작 때만이 아니고 일상에서 자주 그리고 많은 시간 기도하셨습니다. 기도 생활이 주님의 삶에서 최우선을 차지했습니다.


주님께서는 감사, 찬미, 청원의 기도를 많이 바치셨습니다.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을 행하실 때, 먼저 “하늘을 우러러 찬미를 드리셨고”(마태 14,19). 최후만찬 때 “감사를 드리시며”(루카 22,17) 성체성사를 제정하셨으며, 요한복음이 기록한 주님의 긴 고별사(요한 17장)는 긴 청원기도로 끝나는데, 여기서 당신 자신과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청원기도와 관련해서는 다음 세 단계를 거처 점점 간절한 기도를 바치는 형식도 제시하셨습니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마태 7,7) 주님께서는 우리 청원기도에 하느님께서 반드시 응답하신다는 확신을 우리에게 심어주셨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이 청원기도의 내용에 있어 어떤 한계도 두지 않으셨다는 점입니다. 심하게 말하면, 이기적인 목적의 지향도 허락하셨다고 할 정도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십자가 고난을 앞두시고, 겟세마니 동산에 가시어, 크나큰 고뇌 속에 바치신 다음의 기도,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이 저를 비켜 가게 해 주십시오. 그러나 제가 원하는 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마태 26,39)가 이 청원기도와 관련하여 한 가지 간접적인 지침을 주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내가 혹은 우리가 하느님께 무엇이든 청할 수 있지만, 그에 대한 응답은 결국 하느님의 뜻에 의탁하거나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감사의 기도, 찬미의 기도만이 아니고 청원기도를 바침에 있어서도 모범을 보이시면서 동시에 이들 기도에 대해 가르치셨습니다. 우리는 이 세 종류의 기도를 흔히 ‘자유기도’라고 합니다. 성령께서 이끄시는 대로 마음에 떠오르는 것을 자유롭게 바치는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이 세 가지 자유기도 외에 경문을 읽으면서 바치는 소위 ‘염경기도’도 가르쳐주셨습니다. 이 염경기도의 대표적인 것이 바로 주님께서 당신 제자들에게 친히 가르쳐주신, 가장 모범적인 청원기도인 ‘주님의 기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유기도와 염경기도를 균형 있게 바칠 필요가 있습니다. 염경기도의 대표적인 것이 주님의 기도를 포함되어 있는 ‘주모경’과 ‘묵주신공’입니다.


주님께서는 개인으로 바치는 기도만이 아니고 공동으로 바치는 기도도 강조하셨습니다. 사실 ‘주님의 기도’도 이 기도를 바치는 주체가 ‘내’가 아니고 ‘우리’임을 발견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주님께서 또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또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마태 18, 19-20) 이렇게 주님께서는 우리 개인이 기도하는 것만이 아니고 공동으로 기도 바치는 중요성도 강조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공동체의 형제자매들이 함께 청원기도를 바칠 필요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공동체성을 얼마나 중시하셨는지,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고요히 개인으로 기도 바치는 것만이 아니고 성당이나 혹은 가정에서 공동체로서 함께 기도 바치는 노력도 해야 하겠습니다. 제가 4년 전 우리 교구의 몇몇 신부님과 이냐시오회원들과 함께 동티모르를 방문했을 때, 살레시오 수녀님들이 운영하는 보육원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도착부터 떠나는 순간까지 거의 한 시간 동안 이 보육원에 사는 남녀 어린이들이 우리를 위해 계속 불러준 노래들이, 단순한 환영을 넘어 우리를 위해 하느님께 바치는 기도처럼 느껴져 눈시울이 뜨거울 정도로 감동을 체험했던 것이 생각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공동으로 자주 혹은 끊임없이 바치는 감사와 찬미와 청원기도가 하느님을 감동시켜드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 주님은 활동의 주님이시자 기도의 주님이셨습니다. 기도가 우리 삶의 가장 중요한 기초요, 주님을 따라감에 있어 역시 가장 중요한 기초임을 깨닫게 해줍니다. 주님을 따르는 이들은 기도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과의 친밀함과 일치의 관계, 주님의 뜻에 절대 순종하는 것, 주님의 가르침과 명에 충실할 수 있게 해주는 힘이요 길이 되어 줍니다.


3. 둘째는, 세상 곳곳에 가서 구원의 말씀, 곧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 우리 주님의 삶에서 또 하나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이 마르코복음서를 보면, 주님께서 복음 선포에 대한 사명감이 얼마나 컸는지를 즉시 알 수 있게 됩니다. “다른 이웃 고을들을 찾아가자. 그곳에도 내가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려고 떠나온 것이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아버지로부터 이 세상에 파견된 목적이 바로 복음을 선포하여 모든 이를 구원으로 이끄는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보면, 복음 선포는 주님께서 아버지로부터 받은 소명으로 반드시 실천해야 할 의무이고 책임임을 밝히시면서, 당신이 지니신 복음 선포의 막중한 사명감을 표현하고 계십니다. 이 역시 세상의 모든 그리스도인들, 특별히 사제와 수도자가 공통으로 지닌 소명이며,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삶에서 중요한 기초가 되고 있습니다.


이 복음 선포는 평신도의 경우에는 주로 모범적인 삶의 표양을 통해서 간접으로 복음 선포를 하게 되지만, 사제나 수도자의 경우는 모범적인 삶의 표양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좀 더 적극적으로 구원의 하느님 말씀인 복음을 선포해야 합니다. 제가 확신하는 것은, 어떤 일에서든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든, 정성을 쏟아 땀 흘리며 행할 때, 주님께서 보다 많은 결실을 주시고, 복음 선포의 경우, 보다 많은 영혼을 구원으로 이끌게 된다는 점입니다. 위대한 복음의 사도 성 바오로께서 당신이 지극히 사랑하고 신뢰했던 제자 티모테오 주교에게 하신 다음 말씀을 우리 모두가, 특별히 군에 대한 복음 선포 최일선에 있는 저와 군종사제들이 거의 긴장하는 자세로 듣고 실천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나는 하느님 앞에서, 또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님 앞에서, 그리고 그분의 나타나심과 다스리심을 걸고 그대에게 엄숙히 지시합니다. 말씀을 선포하십시오.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꾸준히 계속하십시오. 끈기를 다하여 사람들을 가르치면서, 타이르고 꾸짖고 격려하십시오.”(2티모 4,1-2)


이 마르코복음서에서 주님의 말씀, “다른 이웃 고을들을 찾아가자. 그곳에도 내가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는 우리 군종사제들에게 매우 현실적인 제안입니다. 많은 군종사제들은 넓은 지역의 군부대 선교를 맡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이 움직여야 하고, 여러 지역, 특별히 벽오지의 부대를 찾아가 장병들을 만나야 합니다. 많은 경우 3-5명 정도 밖에 만나지 못하지만 그래도 찾아갑니다. 한 영혼이라도 구원하겠다는 사명감 때문입니다. ‘병사들 가까이’ 가 마치 군종사제의 구호처럼 느껴지는데, 이것이 국방부가 원하는 바이고 이 요청은 지극히 합당합니다. 이는 물론 젊은 병사들에게 영적인 그리고 정신적인 도움을 주는 것이 우선적 관심사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이고, 병사 외에도 군의 간부, 지휘관들 그리고 그들의 가족들에게도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이로 해서 군종사제들의 일이 늘어나 시간 소모도 많고 육체의 피곤도 더 느끼지만 그래도 보람 있는 일이고 꼭 수행해야 할 일입니다. 장기복무 후 전역한 어느 군종사제가 저에게 “주교님, 저는 동해안 산악지역의 험한 곳에 있는 부대 장병들을 방문하면서, 어떤 때는 겨우 두세 명이 모일 뿐이었지만 그래도 큰보람과 소명을 느껴, 장기 복무를 신청하게 되었습니다.”라고 말한 것이 가끔씩 떠오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친히 이곳저곳 많은 곳을 순회하시면서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사람들이 오기를 기다리지 않으시고 찾아 나서셨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사제들에게도 이 복음 전파 방법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이 복음 선포와 관련하여 한 가지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복음 곧 구원의 말씀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아는 것을 직접 간접으로 선포해야 하기에 복음의 핵심을 알아야 합니다. 저는 이 점에서 주님의 말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요한 14,6)와 사도 성 바오로의 말씀, “나도 전해 받았고 여러분에게 무엇보다 먼저 전해 준 복음은 이렇습니다. 곧 그리스도께서는 성경 말씀대로 우리의 죄 때문에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성경 말씀대로 사흗날에 되살아나시어, 게파에게, 또 이어서 열두 사도에게 나타나셨습니다.”(1코린 15,3-5)를 되새기고 싶습니다. 우리 죄 때문에 돌아가시고 묻히시고 부활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복음의 중심이 되십니다. 저는 복음의 중심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하느님의 사랑을 드러내시어 죄인인 우리를 회개의 길, 새로운 인간의 길,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길을 열어주셨는지를 로마서 5장에서 발견합니다. 로마서 5장 6-10절에서 바오로 사도께서는 우리가 아직 나약했을 때, 우리가 불경했을 때, 우리가 죄인이었을 때, 그리고 우리가 하느님의 원수였을 때, 당신의 피로 우리를 의롭게 해주시어 구원의 희망을 주셨음을 역설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삼위일체 하느님의 신비를 알게 되는 유일한 길이시며 구원의 길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끊임없이 공부하면서 무엇보다도 성경 말씀을 읽고, 듣고, 쓰고, 외우고, 공부하고, 묵상하는 삶을 추구해야 하겠습니다. 이 노력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보다 충실히 따르게 해줍니다.


4. 셋째로, 주님께는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함으로써만이 아니고 세상의 여러 이유로 해서 고통받는 이들을 만나주시고 위로하시고 치유해주시는 것을 복음 선포의 또 하나의 방법이요 당신 삶의 또 하나의 기초로 삼으셨습니다. 그런데 고통받는 이들을 만나주시고 위로해주시고 치유해주시는 것은 무엇보다 당신 사랑의 표현이었음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주님은 모든 사람과 모든 피조물을 사랑하셨는데, 특별히 병자나 굶주리는 이들이나 여러 종류의 장애인 그리고 여러 이유로 해서 고통받는 이들에게 우선적인 사랑의 관심을 지니셨습니다. 네 복음서에는 너무 많아 짜증이 날 정도로 병자들이 주님을 찾아와 치유를 호소하는 이야기들이 나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병자들에게 친절하고 헌신적인 치유의 봉사를 하셨습니다. 마르코복음서 1장은 저녁이 되자 사람들이 병든 이들과 마귀 들린 이들을 모두 주님께 데려와, 주님께서 갖가지 질병을 앓는 많은 사람을 고쳐주고 많은 마귀를 쫒아내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주님께서 최후 심판 때 누구를 당신의 오른쪽 곧 구원의 축복 자리에 앉히실지 구체적으로 말씀하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굶주린 사람들, 목마른 사람들, 나그네 된 사람들, 헐벗은 사람들, 병든 이들, 감옥에 있는 이들을 돌보아 주는 것이 바로 당신 자신에게 해주는 것이라면서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서에 의하면 우리 주님께서는 최후만찬 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면서 새 계명을 주셨습니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 주님께서는 당신이 수난과 죽음을 앞두고 주시는 이 새 계명이 너무도 중요하다고 보시어 두 차례 더 언급을 하고 계십니다(참조: 요한 15,12.17). 두 번째의 언급(요한 15,12)에서는 새 계명이라는 표현대신 “나의 계명이다.”라고 하시면서, 먼저 언급하신 새 계명이라는 표현을 보충 강화하고 계신다는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당신의 고유 계명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계시는 듯합니다. 주님께서는, 이전에는 구약의 레위기(19,18)에 언급된 계명,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를 첫째가는 계명인 “하느님께 대한 사랑”에 이어 둘째 계명으로 제시하시면서,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이웃 사랑을 강조하여 말씀하셨지만, 이제 당신 생애를 마치시게 되는 마지막 순간에 와서는 당신 자신이 주시는 계명, 곧 새 계명을 주셨고, 이것이 바로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입니다.


요한복음서는 당신의 서간에서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1요한 4,7)라고 하시면서, 우리 서로 간의 사랑도 사람에게서가 아닌 하느님에게서 온다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하느님의 사랑이 당신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삼으신 데서 드러났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는 주님께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과 깊이 연관되고 있습니다. 이래서 우리는 우리 개인의 정감에서 흘러나오는 변할 수 있고 또 한계를 지니는 그런 사랑을 초월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시어 끊임없이 실천하셨고 특별히 우리 죄를 사하시고자 수난당하시고 희생 제물로 당신을 바치신 그 사랑을 본받아 사랑을 실천할 것을 명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변할 수 있고 한계를 지니는 우리 인간의 자연적 사랑을 초월하여, 주님께서 보여주신 그 사랑을 이해하고 가슴에 새기고 그 사랑에 몰입하면서 서로 간의 사랑을 실천해야 하겠습니다. 희생을 포함한 무한한 사랑, 항구한 사랑, 순수한 사랑을 보여주신 우리 주님의 사랑을 본받으면서 우리도 무한한, 항구한 그리고 순수한 사랑의 실천으로 나가도록 합시다. 이래서 형제적 사랑의 주요 요소인 친절과 겸손과 배려도 혹시라도 있을 수 있는 가식을 버리고 진실한 친절과 진실한 겸손과 진실한 배려가 되도록 합시다. 이 사랑이 모든 사람, 모든 피조물 특히 고통받는 이들에게 실천되기를 노력하고 그래서 성령님의 도우심을 늘 청하도록 합시다.


모든 사람, 특히 여러 이유로 고통받는 이들을 사랑하고 돌보아주는 것이 주님의 삶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우리의 공통 소명임을 깨닫도록 합시다.


5. 이제 저는 우리 주님께서 수난과 십자가형에 의한 죽음의 고통을 받기 시작하신 당신 생애의 마지막에서 보여주신 ‘고통의 인내’(혹은 고통을 받아들이시는 것) 모범을 보여주셨음을 추가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사실 주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모든 사람들에게 당신을 따르기 위해 고통을, 무엇보다 자신을 버리는 고통을 받아들여야 함을 당신의 복음 선포 생활 중에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루카 9,23)고 말씀하셨고, 당신 열두 제자에게는 “내 이름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 아버지나 어머니,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모두 백 배를 받을 것이고 영원한 생명도 받을 것이다.”(마태 19,2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승천 직전 베드로 사도에게 하신 말씀, “나를 따라라.”(요한 21,19)는 단순히 당신이 맡기신 복음전파의 일을 수행하는 것만이 아니고 당신 때문에 받을 수 있는 박해와 고문과 심지어 죽음의 고통까지 받아들이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열심하고 겸손했지만, 육신의 고통이라는 두려움을 극복 못 하고 주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한 베드로 사도에게 “너는 이제부터 이런 잘못을 범하지 말고, 나와 복음 때문에 어떤 고통도 심지어 죽음의 고통마저 받아들이면서 내가 밟은 고통의 발자취를 밟으면서 나를 따라야 한다.”라는 암시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물론 육신의 병으로 인한 고통이나 심지어 어떤 심리적 고통은 전문 의사로부터 치유를 받아야 하겠지만, 우리 삶에서 오는 여러 고통을 주님께서 겪으신 고통을 되새기면서 받아들이고 견디고 더 나아가 고통에서 교훈을 얻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 주님도 십자가형이라는 무서운 죽음을 바라보면서 공포와 번민에 휩싸이셨고 그래서 “아빠!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무엇이든 하실 수 있으시니,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러나 이 기도로 끝내지 않으시고 연이어 다음의 기도를 바치십니다. “그러나 제가 원하는 것을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것을 하십시오.”(마르 14,36)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죽음의 고통이 아버지의 뜻이라는 것을 아셨을 때 기꺼이 받아들이시어 말할 수 없는 고문과 수치를 당하시고 십자가형으로 죽음을 맞이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고통을 받아들임은 부활이라는 영광을 가져왔습니다! 그러니까 고통에서 영광으로의 축복을 누리신 것입니다! 우리도 주님이 밟아 가신 그 고통의 길을 충실히 따라갈 때 영광의 축복을 누리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도록 합시다. 그 영광은 바로 구원의 영광입니다.

 

 

III.

주님 안에서 사랑하고 존경하는 교구 신자, 군종사제 그리고 수녀 여러분, 우리 모두 군인으로서 군인 가족으로서 군종 사제로서 그리고 군종 사목에 임하는 수녀로서 각자의 직무에 충실하도록 하면서, 우리가 공통으로 밟아가야 할 길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충실히 따라가도록 합시다. 앞에서 말씀드린 네 가지 차원의 따름을 충실히 수행하도록 하여 하느님을 기쁘시게해 드리고 하느님과 하느님의 교회에 영광을 드리도록 합시다. 이 따름이 충실하면 할수록 우리 각자의 덕망은 증가되고, 이는 하느님과 하느님의 교회에 대해서만이 아니고 세상에 대해 국가에 대해서도 위대한 기여를 하게 된다고 저는 믿습니다.


저는 마지막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가장 충실히 따라가신 우리 주님의 어머니이시고, 교회의 어머니이시며, 우리의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의 모범을 본받으면서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르자고 권고드립니다. 하느님으로부터 모든 인류 가운데 가장 큰 영광과 특전을 누리신 어머니이시지만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신 분이 바로 성모님이십니다. 무엇보다 육신적으로 정신적으로 참혹한 고문을 당하시고 가장 참혹한 사형 방법인 십자가에 못 박혀 처형되는 아드님을 눈으로 바라보셔야 하는 고통을 받으신 어머니이십니다. 그러나 이 모든 고통을 감내하시면서 끝까지 아드님 곁에 머무시면서 아드님의 발자취를 따라 가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발자취를 충실히 따를 수 있도록 성모님의 도움을 끊임없이 청하도록 합시다.

 

2019년 대림 제1주일에

천주교 군종교구장 유수일 F. 하비에르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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