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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총이 강물처럼 흘렀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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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중 [amor11] 쪽지 캡슐

2004-04-06 ㅣ No.64936

세번째 이야기로 이제는 저희 어머님 이야기로 넘어 갑니다.

두번째에서는 저희 아버님 이야기였구요..

***********************

(2편에 이어서 계속)

때때로 아버지는 어머니를 도와 일을 하셨는데 정성을 다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낭만적으로 일하셨다. 일을 하다 말고 나무 밑에서 낮잠을 주무시거나 우리들에게 들꽃 이름이나 나무이름 들을 가르쳐 주셨고 곡식들이 자라나는 원리들도 설명도 해주셨다.간혹 한시도 들려주고 역사서적에서 읽은 것도 그리고 정치에 대해서도 상당히 박학하셨다.아버지가 일하다 말고 낮잠을 주무시면 어머니는 불평만했지 결코 욕하거나 싸우지는 않았다.이것이 후에 우리 형제들이 아무 탈없이 잘 살아갈 수 있었던 밑거름이 아닌가 싶다.내가 고등학교 때 벽장 속에서 쾌쾌묵은 아버지 중년 시절의 수첩을 발견했는데 거기에 아버지만의 고민이 빽빽이 적혀있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나는 아버지가 아무런 고통도 없이 훌륭한 어머님 덕에 매일 매일 행복하신 줄 만 알았다.그런데 그 수첩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세상이 살기가 결코 쉽지가 않구나~! 무식한 아내와 결혼해서 8남매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하느님은 너무나 힘든 고통을 나에게 허락하셨다"

 

한편 어머니는 키가 맹꽁이처럼 작고 옹 고집스럽게 생기셨다.그리고 너무나 허약하셔서 어머니는 늘 내가 허약한 것이 젖배를 골아서 라고 했다.그런 어머니가 시집 온 날부터 부엌에 들어가 일을 하셨다는 것은 동네 아저씨들로 부 터 들었다.그 후로 단 하루도 쉬지않고 일을 하셨으니 과연 성인이라고 불러도 될까?자식을 낳으시면 바로 다음날 호미를 들고 밭으로 나가 일을 하셨다고 한다.아무리 숨이 턱에 차오르는 무더위에도 잠시도 쉬지않고 일을 하셨다.한번은 마태오 낳고 그 다음날 호미를 들고 밭으로 나가셨는데 어지럽고 도저히 힘들어 일을 할 수가 없었다.그래서 그날 오후는 집에서 쉬고 있는데 더 아파오는 것 같았다.그래서 다음날부터  쉬지않고 더 일을 했다.어머니는 하루라도 일을 하지 않으면 하느님으로부터 아주 큰 벌을 받을 것처럼 숙명으로 받아 드리시고 일을 하는 것 같았다.새벽 다섯시에 일어나 궁불 을 지피고 아침밥을 하셨는데 18년간 도시락 세 개를 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싸셨으니 가히 놀라울 일이다.그리고 일어나시면 바로 부엌에 나가 불을 지피시며 묵주기도를 하시는데 낭랑하게 흥얼흥얼 하시며 부지깽이로 장단은 맞추시며 하는 그 기도소리가 너무나 은은하여 평생 내 뇌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마태오도 엄마에게 보내는 편지 속에서 어머니의 새벽기도 소리는 영 잊질 못한다고 하였다.한번은 저 건너 콩밭으로 나와, 마태오와, 그리고 어머니가 일을 나갔을 때 너무나 따가운 태양빛과 후덕한 공기의 열기, 땅의 반사열기에 단 일분도 숨을 쉴 수 없을 지경이 였다.참을성 없던 나는 드디어 폭발하고 말았다.

 " 엄마 ,이게 사는 거야, 이건 죽는 거야 죽어 이러다가 모두 일하다 쓰러져 죽을 거야~!" 이깟 밭에서 이렇게 죽어라 일하면 얼마 벌어,그깟 돈 땜 시.. 몸 버리고 나 화 나서 죽으면 하느님도 싫어 하실 거야"

 한 두어 시간을  투덜거리다가  "

 "이렇게 3개월동안 일하면 도대체 콩이 얼마나 나오는데…"

 어머니는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한 두어 말 나오겠지~!"

 "뭐요, 그거 팔면 얼마나 나오는 디.."

 "한 2만원"

"하이 구 내가 미쳐 , 차라리  마태오하고 유구 읍내 가서 하루 노가다(막일)를 해도 그 만큼은 버는데… 꽉~ 콩을 다 뽑아 버리던지"

 " 에구 그래 두 이렇게 콩이라 두 심어 놓으니깐 밭이 꼴을 하고 있지,이것 마저 도 안 해놓으면 밭에 풀과 나무들이 자라서 밭이 버려져서 나중에 팔지도 못해"

그렇게 숨이 막혀오는 밭일도 어머니는 끊임없이 일을 하셨다. 이 8남매를 키우시는 데는 또한 누에치기는 필수였다. 누에치기가 얼마나 힘든 지 지금도 어머니는 그 이야기만 하시면 손을 절래 절래 흔드시며 손사래를 치신다. 게다가 6남매의 옷과 아버지 어머니 옷까지 산더미 같은 옷들을  한겨울에도 냇물에 나가 손수 손빨래를 하시고 집안 청소에 얼마 안되지만 논과 밭일을 도맡아 하셨다.어머니는 지독도 하셨다.  연약한 몸으로 8남매를 낳으시고도 논일 밭일에 돈이란 것을 한번도 손에 쥐어보질 못했다 하셨다. 한번은 아버지와 장에 가셨는데 아버지가 뭐가 먹고싶으냐고 물으시니 짜장면이 먹고 싶으시다고 하셔서 200원을 손에 쥐어 주셨단다.그러나 어머니는 그 돈이 아까워서 하루종일 쓰지도 못하시고 손에 꼭 쥐고 다시 집에 오셨다. 어머니는 지금도 이세상의 즐거움을 못 느끼시는 듯하다.내가 아버지는 왜? 항상 일을 열심히 하지않을까 불평을 하면 어머니는 아버지가 많이 아프잖아? 라고 하셨다.이렇게 힘겹게 가난에 찌든 가정 밑에서도 우리들은 아름다운 추억이 훨씬 더 많았다.아버지는 어머니와 자주 말다툼은 하셨는데 대부분 아주 재미있는 것들이었다.간혹 아버지가 장에서 생선이나 고기를 사오셨는데..생선을 사면 머리나 꼬리를 사고  닭고기는 닭 똥집 짐승들의 내장 등을 사오셨다.그런 날은 어머니는 언제나 푸념하시며 "니 아버지 땜에 나는 평생 살코기 한번 실컷 못 먹어 보겠다" 하였다. 어머니는 또한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기를 서슴지 않으셨다.온양에서 생선을 이고 와 파는 사람이라든가 과일을 이고 와 파는 사람이 있으면 팥이나 깨로 바꿈질을 했다.어머니는 그분들이 측은하여 사준다고 했다.이렇게 어려운 가정 환경 속에서도 부모님들은 서로에게 불평은 하셨지만 서로에게 욕 한마디 하지 않으신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어머니는 가난한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는 정을 가지고 계셨다.간혹 동네입구 가난한 집에 자주 들려서 점심이나 참 거리를 얻어 먹었는데..아무 생각 없던 나는 그것을 타박했다."아니 하필이면 가난한 집에 가서 밥을 얻어 먹어요…"그런데 항상 그 다음 날 동이 트기 전에 마태오를 깨워서 쌀 한되나 보리쌀 한말을 그 집에 보내곤 했는데 어머니의 숨어서 하시는 선행이었다.밥 한 그릇을 얻어 드시고 쌀을 말로 드렸다.그 가난한 사람이 거저 얻었다는 것을 피하기 위한 어머니의 사려 깊은 배려 때문이다. 왜? 마태오인가 하면 마태오는 단 한번도 어머니 말씀에 토를 달거나  거절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8남매의 성격은 가지각색이어서 온 집안은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우리 형제들이 커가면서 제각기 성격들이 달랐다.이중에 큰 누님과 작은 누님은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모두 서울로 떠나서 내 기억은 전혀 없다. 다만 명절 때 와서 부엌에서 어머니와 도란도란 얘기하던 모습만이 내가 생각나는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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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등록일 작성자
64943 동감입니다. 2004-04-06 김형식
64942 [RE:64941]^^ 2004-04-06 구본중
64936 은총이 강물처럼 흘렀다(3) 2004-04-06 구본중
64938     [RE:64936] 1편은 어디에 있나요? 2004-04-06 장정원
64939        [RE:64938]어~! 자매님 2004-04-06 구본중
64934 공감합니다. 2004-04-06 김형식
64926 그분이 얼마나 좋으신지... 2004-04-06 지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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