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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경호 [morningnews] 쪽지 캡슐

2004-04-09 ㅣ No.65298

 

  규환님, 침묵의 종류에 대해서 다시 한번 묵상해 봅시다. 규환님의 침묵론도 전혀 틀린 바는 아니겠으나 그리스도인은 마땅히 또다른 측면에서의 침묵론도 바라보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1. 상대를 무시하는 위선적인 침묵

 

2. 손해볼 것 같아 하지 않는 계산적인 침묵

 

3. 말 머리자체가 생각나지않는 바보같은 침묵

 

4. 사랑이 담긴 말만을 행하는 움직이는 침묵등의 4가지로 배우는

 

5. 도살장에 끌려가도 아무말도 하지 않는 어린 양의 침묵

 

이 침묵론은 기도를 참 즐겨 하는듯한 어느 성령기도회장이 전한 말이기도 합니다. 오늘 성금요일 예절 때의 제 1 독서자가 마침 성령기도회 열심자라 그런지 평소 독서자보다 여유가 있고 소리가 쩌렁 쩌렁 울리되, 개인적으로 볼륨이 너무 크게 다가와 분심이 들더군요. 독서도 노래이기에 이왕이면 테크닉적으로 좀더 쎔, 여림을 의탁하면 좋았겠다 말을 하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좌우지간 거룩한 성가를 지향하기에 전신자들이 가장 가까운 사람의 호흡을 먼저 살피며 이에 맞춰주겠다는 자세로 이어진다면 지난친 겸손등의 교만과라 할 수 있는 다수의 성가지향도가 진일보 할 수 있다 봅니다.

 

불의를 향한 침묵이 결코 비겁함일 뿐이라 하신다면 나는 그것이 분명 어둠의 세력이 조장하는 사고일 수도 있다고 봅니다. 마귀는 침묵에 환장하지 않겠습니까?

 

성가대석의 옆자리에는 정력이 남아돌아가시는지 십자가의 길 14처 해설부터 도무지 힘찬 복음으로 잔소리에 잔소리를 이으시는 신부님을 힘들게 따라하는 마당에서 옆자리의 아이들 둘이 유난히 시끄럽게 잡담을 잇기도 하였는데 나는 이에 투쟁하듯 그렇게 나의 감성과 이성과 영혼의 조화를 구하며 내가 선호하는 고요속의 도피처를 찾기도 하였습니다.

 

아무튼 우리 신부님, 이건 비밀인데 말이죠. 강론 재미 되게 없답니다. 좀 믿는다 하는 사람들과 대미사가 있을시는 무슨 신부님이 강론도 성실하게 준비해오지 않느냐는 투정도 기억나는데 신비하게도 다른 성당보다 인산 인해의 교우들 참여율을 목격할 수도 있지요.

 

그런 와중에서 문득, 아이들이 학교에서도 지루할텐데 여기서도 동참하는 모습에 더우기 난간에 기대거나 펑퍼짐한 자세등으로 이리 움직이고 저리 움직이는 것을 보면서 "너희 어린아이들이 천사의 모습이 나의 고루함을 도와주는구나"라는 느낌도 가지게 되었는데 이 역시 주님의 도움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예절이 끝난후 신부님에 덩달이로 주송자조차 내일 꼭와야 한다. 안오면 죽~~~어!의 엄포를 귀찬케 받아들이고 해방감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며 어린 녀석들 머리를 쓰다듬고는 "좌식들 대견하구나, 그런데 시끄럽게 하는건 아주 나쁜 죄야"란 말을 전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선행인지, 잘못된 권면인지는 중요한 것이 아니라 봅니다.

 

다만 정규환님이 믿는 사랑론처럼 나도 사랑이 담긴 그것임을 믿는것일 뿐이겠지요.

 

아무튼 정규환님도 이사람도 구체적인 것을 참 선호하는듯 합니다.

 

그 구체적인, 그리고 남보다 더 집중력을 가진 탤런트를 보다 좋은 곳에 써야 하겠지요. 아마 정규환님은 아무나 무는 미친개 스타일과 머리만 좋은 진도개 스타일과 그저 날 잡아먹으라!는 보신탕집 개과로도 비유할 수 있는 가톨릭인중 한사람일 것입니다.

 

주님의 개로써 마땅히 삼견일치감도 필요할 것입니다.

 

이 개과론을 전하신 어느 신부님은 해당 본당 주임신부님에 대한 불만을 이기지 못하여, 즉 악령에 걸려 넘어짐으로 사제복을 벗고 트럭운전사로 전업을 하시기도 하였는데 그것도 무슨 은총이 담겨있을 것입니다.

 

정규환님께선 나름대로 하느님의 도구로써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그것을 믿고 싶습니다. 왜냐면 "나는 그저 주님의 은총만을 믿습니다"로 고백하는 신자들이 또한 좋은 제자들의 몫이기 때문이지요. 보다 좋은 몫의 하느님 도구론은 마땅히 영적인 찌꺼기를 비우고 그저 계산하지 않고 누구나 초심자로서 모든 것을 다시 하느님께 의탁하며 사과 자체를 표하는 것도 용기라 생각합니다.

 

그점에 관해서는 그리스도 신앙을 잘 모르는 또다른 분들에게 정규환님의 글들이 나름대로의 순수한 저의와 달리 혼돈과 비복음적인 언사로 이어질 수 있다고 느껴집니다. 그리고 이사람은 한편으로 님의 사과 억제론을 나름대로 하느님께 내가 미력하기에 약속을 하지 않는것이라는 거룩한 뜻으로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아무튼 정규환님이 보다 복음적인 공부와 기도 생활을 접목하신다면 매우 주님보시기 좋은 큰 그릇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보다 지배적임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설득력도 있고 승부의욕도 배울점이며 뭔가의 잔가지등에 흔들림이 없으시다 여겨지는데 "산나무에 물을 주면 더 살고 죽은 나무에 물을 주면 더 썩는다"는 일전의 평화방송에서의 어느 노사제님의 조언도 잘 이해하시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축하도 드리고 싶습니다.

 

금번 부활절 은총을 곱배기로 받으시는듯한 정규환님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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