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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홍 형제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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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요하 [jiyoha] 쪽지 캡슐

2004-04-21 ㅣ No.66198

 

               †. 사랑·평화 (오소서, 성령님. 새로 나게 하소서)

 

 

 김기홍 형제님께

 

 

 우선 감사 드립니다.

 

 성당에 가기 전에 글을 올렸는데, 미사를 지내고 나서 성당에 잠시 머무르다가 돌아와 컴을 켜보니 형제님의 글이 올라 있군요.

 

 제 글을 처음부터 끝까지 세심하게 읽으시고 예리하고 격조 있는 의견을 피력해 주신 점에 경의를 표하고 거듭 감사를 드립니다.

 

 제가 이번 글 <지역주의 해소엔 눈물의 공유가 필요하다>에서 제시하고 있는 핵심적인 논점은 어찌 보면 기본적이고 원론적인 사항일 수 있습니다. 국민 사이에 내재하고 있는 갈등과 대결주의를 해소하고 국민 화합을 이룰 수 있는 정신적인 토대, 우리 모두가 공유해야 할 고귀하고 풍부한 정신세계를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우리 사회를 강점하고 있는 지역주의의 이면에는 ’눈물’이 존재한다는 인식으로부터 그것은 출발하는 것이기도 하지요. 그 눈물에 대한 저의 사유를 설명하기에는 많은 언어 동원이 필요합니다만, 간명하게 표현하자면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연결되는 것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리고 눈물의 공유를 추구하고자 하는 저의 이러한 논법은 제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내면화 생활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천주교 신자이기에 좀더 가능한 것일 수도 있을 듯싶습니다.

 

 저는 미국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1960년대 초 미국 정치를 이끌었던 케네디 대통령의 ’뉴 프론티어’ 정책 같은 것들을 즐겨 기억합니다. 미국의 제35대 대통령 케네디는 근대 미국 자존심의 상징이었지요. ’뉴 프론티어’ 정책을 내세웠던 그의 정치적 열정의 근원은 ’동정(Compassion)’이었습니다. ’컴패션’은 ’남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느낄 수 있는 마음, 남의 괴로움과 슬픔을 나의 것으로 느낄 수 있는 능력’을 이르는 말이라고 저는 파악하고 있습니다.

 

 이런 ’컴패션’을 국가 정책의 핵심 사항으로 수립할 수 있었던 것은 케네디 대통령이 가톨릭 신자였기 때문에 좀더 가능했으리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동방 정책’으로 독일 통일의 기초를 닦은 빌리 브란트 전 서독 수상은 그의 회고록에서 ’정치란 인간적인 실존의 전체를 감싸는 것’이라고 적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의 정치사에는 ’동정심’이라는 것이 없었던 듯싶습니다. 파쟁과 살육으로 점철되어 온 조선의 정치와 경우 없는 일제의 식민 통치, 그리고 오랜 군사 정권의 패권주의 속에서 이어져 내려온 몰이성적인 습성이 오늘에도 다수 국민들의 마음을 부박하게 만들고 있다고 저는 봅니다. 오늘의 정치에도 동정심의 자리는 거의 없어 보인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철거민 문제와 중국 교포들을 포함한 외국인 노동자들의 인권 문제 등 갖가지 크고 작은 사회 문제들의 속을 들여다보면 동정심의 부재는 확인되고도 남습니다. 그리고 그런 습성은 대북 관계에서도 이데올로기 유습 속에서 그대로 발휘되고 있지요.

 

 나는 ’컴패션’이 핵심을 이룬 미국 케네디의 ’뉴 프론티어’ 정책을 떠올릴 때마다 부러움을 느낍니다. 아울러 그런 것이 존재하지 않는 우리 정치의 살풍경과 지역주의 따위에 매몰되어 살아가는 일부 국민들의 부박한 심성에서 안타까움과 연민을 느낍니다.

 

 더욱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내면화 생활화하며 살아야 할 천주교 신자들조차 그런 부박한 심성을 중요시한다는 사실에서 슬픔을 느낍니다.

 

 저의 이번 글 <지역주의 해소엔 눈물의 공유가 필요하다>는 글의 분량이 꽤 길지만, 그럼에도 논점은 원론적인 것이어서 저는 미흡함을 느낍니다.

 

 형제님의 지적처럼 그 원론적인 사항들이, 즉 저의 견해들이 일반화될 수만 있다면 거기에서 더 생각할 점들은 많이 있을 것입니다. ’더 생각할 점이 있다’고 하신 형제님의 그 말씀의 뜻을 저는 나름대로 헤아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회가 되면 그 부분에 대해 좀더 구체적인 글을 쓸 수도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형제님의 말씀대로 국민 개개인이 한 표로 주권을 행사하는 데는 각자 나름의 다양한 이해와 의지들이 결부될 것입니다. 형제님이 제시하신 대략적인 다섯 가지 사항들 외로도 많은 동기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모든 것들의 기본은 눈물을 공유할 수 있는 열린 정신이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것은 참으로 소중한 가치일 것입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우리에게는 그런 기본적인 것이 부재하거나 부족합니다. 그것에 대한 반성적 성찰이 이번 글을 쓰게 만들었습니다. 물론 저의 이런 작업은 현재진행형일 수밖에 없습니다.

 

 제 글을 진지하게 읽으시고 격조와 품위를 지닌 질문과 의견을 주신 형제님께 다시 한번 경의를 표하며 감사 드립니다.

 

 편안한 밤 되시기 바랍니다.  

 

 

 (040421, 밤)

 충남 태안읍 샘골에서 지요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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