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
[RE:66261]호남 민심을 지역주의로 매도하지 말라 |
|---|
|
호남 민심을 지역주의로 매도하지 말라
이재경/시사평론가
호남 지역에서 열린우리당이 압승한 것은 탄핵을 반대하는 전국적 민심의 연장선상에서 보아야 한다. 반면 영남 지역에서 한나라당의 압승은 합리적 동기를 찾아보기 힘들다. 두 현상은 지역주의로 묶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우리 정치에서 지역주의란 대단히 예민한 주제다. 지역주의를 거론하는 것 자체가 지역주의를 부추기는 일로 오해 받기 십상이다. 그렇다고 마냥 함구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 지역주의는, 비록 약화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는 우리 정치의 현저한 경향이기 때문에 이를 빼놓고는 어떠한 실효성 있는 현실 분석도 불가능하다.
지역주의에 대한 분석을 가장 안전하게 수행하는 방편 가운데 하나는 지역주의 현상의 표피를 긁는 일이다. 객관을 가장한 양비론은 대표적인 수법이다. 이번 총선에 대한 지역주의의 영향을 평가하는 데 있어서도 이런 경향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번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은 호남 지역에서, 한나라당은 영남 지역에서 압승을 거두었다. 이를 두고 두 지역이 공평하게 지역주의 투표 행태를 보였다고 진단한다. 사실일까
두 지역의 투표 행태를 공히 지역주의로 규정하려면 세 가지가 전제되어야 한다. 우선 지역별 정당 지지의 이유로 지역주의 이외의 다른 합리적 동기가 없어야 하며, 지역별 정당 지지의 정도가 정당별 전국 지지율의 평균 수준을 현저히 상회해야 한다. 그리고 지지하는 정당 간에 어떠한 도덕적, 역사적 우열관계도 없어야 한다.
먼저, 정당 지지의 동기다. 이번 총선의 핵심 쟁점은 탄핵에 대한 심판이다. 탄핵 세력의 몰락과 탄핵반대 세력의 부상은 이번 총선을 통해 드러난 전국적인 현상이다. 호남 지역에서 열린우리당이 압승한 것 역시 탄핵을 반대하는 전국적 민심의 연장선상에서 바라봐야 한다. 만일 호남 지역에서 지역주의 투표 행태가 재현됐다면 그 대상은 열린우리당이 아니라 이 지역의 전통적 지지 정당인 민주당일 것이다. 그러나 탄핵을 주도한 민주당은 말 그대로 몰락하고 말았다. 유권자들은 명분과 합리에 입각한 투표 행태를 보인 것이다. 반면 영남 지역에서의 한나라당 압승은 뚜렷한 합리적 동기를 찾아보기 힘들다. 탄핵을 반대하는 압도적 다수의 여론도 투표에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했다. 한나라당의 보수적 가치에 대한 지역의 호응을 얘기하지만, 계층적으로 분화돼 있는 거대한 지역 전체가 보수적 가치를 옹호한다는 것이 분명 정상적인 현상은 아니다. 게다가 한나라당식 보수주의가 제대로 된 보수주의이기나 한 것인가. 이를 지역주의 이외의 어떤 다른 논리로 설명할 수 있을까.
둘째, 지역별 정당 지지의 정도가 정당의 평균적인 지지율을 현저히 상회하는 비정상적 수치를 보이는가의 문제다. 물론 열린우리당은 호남 지역에서, 한나라당은 영남 지역에서 압승했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은 수도권에서도 압승했다. 충청권에서도 압승했고, 제주도에서도 압승했다. 다시 말해, 영남을 제외한 전국의 거의 모든 지역에서 한나라당을 압도했다. 호남 지역만의 이례적 현상이 아니라는 얘기다. 실제 열린우리당의 전체 지역구 당선자 중 호남 지역 당선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20%를 밑도는 수준이다. 반면 한나라당은 영남 지역에서만 압승을 거뒀다. 영남 지역에서의 한나라당 압승은 전국적 표심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대단히 이례적인 현상이다. 한나라당의 전체 지역구 당선자 중 영남 지역 당선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무려 60%에 달했다. 이번 선거를 통해 한나라당이 영남당으로 몰락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셋째, 지지 정당의 차이다. 한나라당은 심각한 도덕적, 역사적 부채를 지고 있는 정당이다. 쿠데타, 민주압살, 인권유린, 부정부패, 탈법과 불법, 차떼기. 이 모든 낡은 정치의 유산을 물려 받은 정당이 한나라당이다. 반면 열린우리당은 정치 개혁을 위해 만들어진 정당이다. 아직 많이 모자라지만 정치 개혁의 명분과 당위를 확보하고 있다. 한나라당보다 도덕적으로 우위에 있고, 역사적으로 반 보나마 앞서 있는 것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따라서 적어도 명분의 면에서 한나라당 지지와 열린우리당 지지를 동일한 수준에 놓고 비교할 수는 없다. 물론 본질론적 시각에서 보면 양당간 ‘반 보’의 차이가 가벼운 것일 수 있겠으나 고난의 대한민국 현대사는 또한 반보의 진보를 성취하기도 눈물겨운 고투가 아니었던가.
이번 총선에서 호남 지역과 영남 지역이 보인 투표 행태는 지역주의라는 이름으로 동일하게 묶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이처럼 명백히 다른 현상을 동일한 것이라고 고집하는 것은 둘 중 하나의 효과를 노리고 있다. 하나는 지역주의의 혐의에서 전적으로 자유로운 자신의 장점을 부각하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지역주의에 고착되어 있는 자신의 약점을 희석하려는 것이다. 전자가 민주노동당의 입장이라면 후자는 한나라당의 입장이라고 할 수 있는데, 양자는 공히 당략적 이유에서 의도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반 보’의 차이, 이 나라의 민주주의가 포복하며 그려온 더디지만 값진 역사를 간단히 무시하고 있다.
이런 분석에는 호남 유권자들에 대한 찬양 혹은 영남 유권자들에 대한 폄훼의 의도는 조금도 없다. 다만 사실을 사실대로 보기를 바랄 뿐이다. 그래야만 우리가 이번 총선에서 무엇을 배울 것이며, 다음에는 무엇을 어떻게 개선해야 하는지 명백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지역주의는 초자연적 현상이 아니다. 원인이 있고, 해법이 있다. 더디지만 끈질긴 진전을 보이고 있다. 이번 총선에서 그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탄핵 이슈의 부상과 그것의 전국적 쟁점화는 지역주의를 벗어난 다른 투표 행위의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줬다. 이를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이렇게 된다. 한나라당도 마땅한 합리와 당위를 가지고 전국적 이슈를 제기하고 선점하면 호남 지역에서 합당한 지지를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을, 호남 지역에서의 민주당의 몰락과 열린우리당의 선전을 통해, 충분히 확인할 수 있지 않았는가 하는 것이다.
나찌를 증오하는 유태인들의 심리를 편협한 민족주의로 매도하지는 않는다. 호남 유권자들에게 한나라당은 역사적으로, 또 현행적으로 충분히 분노의 대상이 된다. 분노해야 할 대상에 분노하는 것은 편협이 아니라 당위이자 권리다. 이번 총선의 호남 민심을 지역주의로 매도해서는 안된다.
|
| 번호 | 제목 | 등록일 | 작성자 |
|---|---|---|---|
| 66270 | 지역주의는 정말로 [없다]..[66263,66261]관련 | 2004-04-23 | 김기홍 |
| 66266 | 욕심(慾心) | 2004-04-22 | 배봉균 |
| 66263 | [RE:66261]호남 민심을 지역주의로 매도하지 말라 | 2004-04-22 | 박미홍 |
| 66262 | 하루가 지났군요 | 2004-04-22 | 양대동 |
| 66259 | 사죄말씀-두분신부님과최기학님서경숙님,교우님들에게<1차수정> | 2004-04-22 | 전태수 |




게시판 운영원칙
Help Des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