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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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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경호 [morningnews] 쪽지 캡슐

2004-05-05 ㅣ No.66711

 

  몇해전 사촌 누나 두분이 흙으로 돌아가시고 오월을 맞이한 둘째날 아침 성당을 향하려는데 사촌 형중 한 분이 유명을 달리 했다는 소식을 접하였다. 나름대로 신앙 생활중 남, 여의 평등론에 관심이 많았는데, 가까운 혈육으로서의 첫번째 남자의 죽음에 대하여 뜻모를 애착심같은 것이 발발하는 상태에서 때마침 교우 한분이 지난 한식때 어머니 묘소를 찾지 못하여 경기도의 약현성당 분묘를 향한다기에 바로 위의 아버지 묘소도 배알할겸 동행하게 되었고, 작은 카네이션 화분을 두개 사신 천 데레사 자매의 배려에 감사한다.

 

월요일, 비가 오는 경부 고속도로는 어둑 어둑하던 오후가 캄캄한 밤거리로 이어지더니 12년된 티코는 불안한 소리를 내며 시야도 몹시 흐렸다.

 

며칠전 외가의 혼인잔치 객들을 태운 버스안의 친지들은 열심히 살고 공부도 참 잘하였다는 분들이라서 대개가 서울대 출신이며 모대학 교수등이며 또한 가톨릭 신앙인들로서 밝고 화기 애애한 분위기 가운데 누군가 그곳 마을의 첫 서울대생 배출이 또 이루어졌다는 기쁨조들 가운데 유독 나만 종일 무거운 침묵을 지키게 되었는데 아마도 그것은 이분들처럼 성실하게 살아오지 못한 한 가장으로서의 자책감 때문이었기도 하다.

 

아! 나란 인간이여! 이 외가의 혈통을 받아 머리만 똑똑하면 무엇하리오? 노력이 부족한 것을...

 

이러한 내가 청주의료원 장례식장에 도착하여 어렸을때 손잡고 놀던 세살터울 사촌형의 죽음 앞에서 절을 하고 모처럼의 친가의 형제들과 담소를 나누게 되니 막혔던 숨통이 트이듯 그렇게 이야기를 전개하여 나갔는데 궨시리 지나번의 자격지심을 털어버리듯 촌부들의 구수한 이야기속에 담화를 끌어안게 되었다.

 

잠시후 47세를 일기로 영민한 연호형의 영정이 있는 방으로 들어가 양해를 구하고 간단한 위령기도를 바치니 "하家로서 얀"의 이름을 가진 고인의 예쁘장한 22살 외동딸과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그 형수가 마음속에 자리하기 시작하였다.

 

대가 끊길 위기에 데릴사위를 파견하여 "강씨"의 명맥을 유지시켜 주었다는 그 고집의 원조 "하가"중의 우리 사촌들의 그것은 가히 똥고집도 방불케 하기에 죽는 순간에도 한, 둘이 참여하지 못하는 인간적인 시기, 질투의 끈이 여전히 끊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이번에 참석하지 못한 막내 녀석에게 괘씸죄를 걸어 그 아이들이 혼인할 때 안 갈껴!라 외치는 어떤 형에게 하가의 똥고집은 버려야 한다고 목에 힘을 줄 수 있어 좋았지만 나 또한 최근 그 무엇에 마음이 몹시 무거운 상태였다.

 

문득 장례식장 문앞에서 밤하늘을 보며 담배 한대를 무니 건너편 시야에 거대한 범선같은 것이 있어 그 지붕에는 삼위일체의 십자가가 시야에 들어오고 있었다.

 

두런 두런 이야기를 나눈뒤 눈이 부은 사촌 형수가 그 몸으로 설거지를 마치고 다시 부조금등을 추스리기 시작할 때 몸으로만 때우려 나타난 내 자신이 뭔가 부끄러웠는지 자리를 물러났고, 시간이 아마도 새벽을 가르키는 3시 30분 무렵에 저쪽 방으로 와서 잠을 청하려니 코를 무지막지하게 고는 어떤분이 있어 쉬운 수면은 아니었는데 칸막이 사이로 들려오는 옆방의 고소톱 치는 소리는 덕분에 나를 5시경에 깨운건지 잠을 잔것이나 한지 모를정도로 섞갈리게 만들었으나 아무튼 다짐대로 건너편 성당에서의 새벽미사를 향하여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허나 평일이라 새벽미사를 열지 않았고 다만 예비자를 위한 선교지 몇부를 챙기며 빈 테이블 유리사이로 "미사는 집에서 성당을 향하는 첫걸음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란 격언이 기억에 남게되었는바 병원으로 돌아와 다시 성당을 바라보니 그 시간에 유독 불켜지기 시작한 옥상부근에 그 방에는 틀림없이 누군가가 기도를 시작하고 있는듯 했다.

 

다시 모두가 잠든 영정 앞에서 홀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 사촌 형수에게 말없이 선교지를 건네니 읽어보고 곳 그것을 되돌려 주려하기에 "얀이"가 성당에 관심이 있다하니 전해주라"하여 역시 어머니의 모성애가 좋은지라 그것을 핸드백에 모시고 있다.

 

어느 사이 세상은 아침으로 돌아와 노제를 드리고 장지를 향하는 버스 뒷꽁무니를 비상등도 고장난 고물차이기에 바짝 붙어 쫓아가려는데 잠시 방심을 한 사이 봉고차 하나가 끼어들어 빵빵거려도 도무지 운구 동행차임을 알아주지 않기에 나 역시 끼어들기로 버스뒤로 다시 붙을 수 있었는데 궨시리 팔하나를 운전석 창문에 걸치며 검은 양복의 하얀 장갑을 뒷차에게 노출하며 탓하지 말라는 제스쳐를 써 보기도 하였다.

 

아무튼 비가 개인 오전의 청주에서 진천으로 가는길은 최근 그토록 가보고 싶었던 드라이브 코스였기에 여러 상황들이 그러하여 꽤나 평온한 마음으로 묵주의 기도를 바치게 되었다.

 

장지에 도착하니 새 무덤 조성을 위하여 굴삭기 소리가 울리는 가운데 슬픔의 이정표를 그리는 형수와 함께 임하고 있는 "얀이"의 침묵의 모습은 안델센의 조각상인 인어공주 포즈다.

 

그늘을 찾아 그레고리오 성가 22곡을 한음도 틀리지 않게 그것을 녹음하여 준 파스칼 지휘자의 열정에 감복하던중 또 그것을 마스터하라는 강요(?) 숙제도 풀겸 홀로이 듣고 불러보고 그랬는데 졸리운 머리, 서울 귀환 걱정등 분심도 잠시나마 잊었던듯 하다.

 

다시 장정들이 모여 홈이 파여진 무덤 자리에 입관을 하고 재차 엷은 흙을 덮은뒤 진한 흙색의 일곱개의 나무판을 일렬 횡대로 그 관위를 덮는데 아마도 가톨릭의 칠성사에 견주어 저것은 다른 이름이 비견되지 않는 칠성판(七聖板)일 것이라는 답을 쉽게 얻을 수가 있었다.

 

중간에 풍수지리 좌표를 위해 오신 노인을 청주로 모셔줄겸 먼저 서울로 돌아가라는 사촌형의 말을 듣고 본시 성가를 부르다 보니 과다한 인기를 얻는 나였기에 저쪽의 형수들에게 "떠날 때는 말없이"라는 인사로 대체해 줄것을 당부하고 다시 서울로 향하자 동승한 어르신께선 서강대학교 출신으로 몇몇군대 출강도 하신다 하는데 가족이 모두 교회를 나가지만 자신은 풍수지리 관련 직업 관계로 기독교를 믿지 못한다기에 "가톨릭"은 "보편성"이라는 뜻으로 제사를 효행으로 인정하듯 풍수지리설을 통한 그것 역시 조상에 대한 정성도가 빛나기에 예로부터 조상들의 "한울님" 자체이신 하느님의 종교는 결코 그것을 거부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강조하기도 하였다.

 

더불어 이분을 통하여 답을 확인한 칠성판을 비유하며 간단한 칠성사를 설명드리고 각 성당등에서는 비록 가난할지라도 노인대학등의 웃어른을 모시는 투자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을 수밖에 없으며 또한 어르신들을 모시는 젊은이들의 기쁨이야말로 우리들 최대의 행복 자체이기에 어르신께서 성당에 오셔야 한다니 그렇찬아도 당신께선 일반 노인대학에서의 친구분들이 굉장히 많다하여 그렇다면 그 모든 친구분들을 성당으로 인도하신다면 이는 분명 어르신께서 믿으시는 "한울님"께서 몹시도 기뻐하실 것이라 화답함으로 급기야 이분이 내게 선생님이라는 칭호까지 더해주시며 차창밖에 비추어진 그분의 얼굴은 촌로의 인자한 표정으로서의 작별을 고하고 있었다.

 

그러나 예전같은 선교 열정은 어느새 식어있고 청주의료원 성당에서 가지고 온 선교지 일곱부중, 그 한부만을 망자의 모녀에게 전하고 나머지는 가방에 묻힌채 졸음이 밀려오는 서울행 고속도로에서 차는 시속 100Km 이상을 밟으니, 바퀴의 유격조차 틀어졌는지 운전대마저 심하게 흔들리며 탱크소리를 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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