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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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께 사죄 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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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께 사죄 드립니다
우선 부끄러운 고백부터 하나 하겠습니다.
<가톨릭 굿 뉴스> 사이트의 메인 화면에는 보기 쉬운 가운데쯤에 ’굿 뉴스 웹메일’이라는 간판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놀랍게도 <가톨릭 굿 뉴스>라는 이름의 이 동네를 지난 2001년부터 벌써 3년째 수없이 들락거리면서도 ’굿 뉴스 웹메일’이라는 간판은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지난 4월까지는 한 번도 들어가 보지도 않았다는 얘기죠.
왜 그렇게 되었는지 구구한 변명은 하지 않겠습니다. 저를 그렇게 유도한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듯 싶긴 합니다만, 무엇이든 구구한 변명에 지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하여간 제게 보내 주시는 여러분의 메일이 ’굿 뉴스 웹메일’이라는 집의 방안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는 것을 정말이지 까맣게 모른 채 문 한번 열어보지 않으며 무심하게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러다가 최근에 박난서 글라라 자매님에게서 일반 메일을 한 통 받은 것이 계기가 되어 ’굿 뉴스 웹메일’의 존재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 자매님이 "…굿 뉴스 메일로 보냈는데 열어보시지 않은 것 같습니다"라는 말씀을 하셔서 깜짝 놀라 그 날 비로소 ’굿 뉴스 메일함’을 열어본 것이지요. (글라라 자매님, 이런 사실과 자매님의 이름을 공개해서 미안합니다.)
그리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 집의 내 전용 방안에 많은 분들의 음신(音信)이 쌓여서 덧없이 잠만 자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당혹스러움이며 무안함과 미안함이 참으로 컸습니다. 메일들을 하나하나 읽고, 그리고 제 문서 목록 안에 ’굿 뉴스 웹메일’이라는 방을 하나 만들어서 그 메일들을 모두 복사하여 옮겨놓는 일을 하면서 고마움과 미안함을 다시 한번 깊이 되새겼습니다.
처음엔 너무 부끄럽고 미안하여 이런 고백을 하지 않으려고 하였습니다만, 그것을 감추는 것은 옳지 않은 일로 여겨졌습니다.
또 처음에는 모든 분께 일일이 때늦은 답신이나마 드리는 것이 옳은 처사로 생각되었습니다만, 그러기에는 제 사정이 워낙 수월치 않아서 이렇게 간편한 방식을 취하기로 하였습니다.
제 아내와 함께 여러분의 그 메일들을 하나하나 읽으면서 나의 우둔함과 어떤 한계 같은 것에 대해, 그리고 아내조차 ’굿 뉴스 웹메일’의 존재를 오래도록 알아차리지 못한 사실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나누었습니다.
2002년 11월 5일 편지를 주신 김유철 형제님, 2002년 11월 6일 편지 주신 김미경 자매님, 2003년 2월 26일의 novita님, 2003년 3월 로마에서 편지 주신 monicako님, 2003년 11월 8일의 멕시코 구본중 형제님, 2004년 2월 27일의 최미정 나탈리아 자매님, 2004년 3월 30일의 황미숙 소피아 자매님, 2004년 3월 31일의 pioloveyou님, 2004년 4월 9일의 김형식 형제님께 진심으로 감사 드리며 아울러 사죄를 드립니다.
그리고 저로 하여금 ’굿 뉴스 웹메일’을 열어보도록 유도해주신 박난서 글라라 자매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여러분께 좀더 확실하게 감사와 사죄를 드리는 뜻으로, 그리고 저의 근황을 알려 드릴 겸, 제가 어제 저의 피붙이 인연붙이들과 소수 친지들에게 보낸 메일을 여기에 올려 드립니다. 글이 길어서 좀 죄송스럽습니다만….
여러분 모두에게, 그리고 이 <가톨릭 굿 뉴스> 게시판의 형제 자매 모두에게 하느님의 은총이 늘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040505) 충남 태안읍 샘골에서 지요하 막시모 적음
제목 장모님의 1주기를 맞으며
†. 사랑·평화 (오소서, 성령님. 새로 나게 하소서)
모두 별고 없이 잘들 지낼 것으로 믿네.
그저 빠른 게 시간이어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 4월이 어느새 다 갔는가 했더니 5월도 벌써 4일일세. 어제는 하루종일 비를 뿌렸는데, 오늘은 아침부터 환해진 하늘일세. 하지만 오늘은 전국적으로 황사 현상이 나타난다는군.
5월은 가톨릭 교회의 ’성모의 달’일세. 우리 태안 본당은 5월이 시작되는 1일 저녁 8시에 성당 성모상 앞의 너른 뜰에서 ’성모의 밤’ 행사를 가졌네. 별도 행사는 아니었고 미사와 함께 하는 행사였네. 미사와 함께 다채로운 행사들을 병행하니 더욱 장엄하고 아름다운 예절이 되는 것 같았네.
가톨릭 교회가 5월을 ’성모성월’로 정하고 성모 마리아께 특별한 찬미와 사랑을 표현하는 것은 13세기 말부터 시작된 일일세. 5월과 성모 마리아를 처음으로 연결시킨 인물은 카스티야의 왕 알폰소 10세(1221-1284)였다고 하네.
가톨릭 교회에서 5월을 ’성모의 달’로 정하고 오랜 세월 어머니의 ’모성(母性)’과 그 모성이 관장하는 ’가정’의 소중함을 기리는 관습이 전 세계적으로 보편화되면서 우리나라도 5월을 ’가정의 달’로 정하게 되었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성년의 날 등을 껴안고 있는 5월 ’가정의 달’은 가톨릭 교회의 ’성모의 달’로부터 유래된 것이기도 하지.
유래를 따지자면 5월 1일 ’근로자의 날(노동절)’도 재미있네. 가톨릭 교회는 일찍이 교황 베네딕토 15세(1914-1922)가 예수 그리스도의 양부인 목수 요셉에게 ’노동자의 수호 성인’이라는 호칭을 부여했고, 교황 비오 12세(1939-1958)는 1955년 5월 1일, 이 날을 ’노동자 성 요셉 축일’로 선포했네. 그리고 다음해인 1956년에 5월 1일을 ’노동자의 날로 정하셨지.
이에 따라 유럽의 모든 나라들이 5월 1일을 노동절로 지내게 되었는데, 우리나라는 8·15광복 후에는 5월 1일을 노동절로 기념하다가 1963년 ’근로자의 날 제정에 관한 법률’에 의거하여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창설기념일인 3월 10일을 ’근로자의 날’로 정하였지. ’노동절’이라는 말도 버리고….
그 후 30년도 더 지난 1994년에서야 다시 근로자의 날(노동절)을 5월 1일로 환원하게 되었는데, 그 동안 수많은 노동자들이 노동절 5월 1일 환원을 줄기차게 요구했고, 3월 10일을 고집하는 우리나라는 국제 사회에서 왕따를 당하는 상황이기도 했지.
한국의 과거 위정자들이 5월 1일을 기피한 이유는 유럽뿐만 아니라 러시아와 중국을 비롯한 공산권 국가들도 모두 5월 1일을 노동절로 지낸다는 사실과 함께 ’노동’이라는 말에 대해서도 일종의 알레르기를 느끼는 체질을 가진 탓이었지. 그리고 그들이 숭배하는 미국의 많은 주들이 5월 1일을 노동절로 지내지 않는다는 사실도 많이 작용했을 테고….
5월 1일을 노동절로 지내면 무슨 큰일이라도 나는 줄 알았던(우리나라가 공산화라도 되는 줄 알았던) 사람들은 아직도 사회 각계 일각에서 수구 세력으로 포진한 채 시대착오적인 망동을 계속하고 있고….
우리 본당은 올해 처음 5월 1일에 ’성모의 밤’ 행사를 가졌는데, 그 바람에 교회 차원에서 ’노동절’의 의미를 전혀 살리지 못하는 결과를 빚었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네. 신부님은 5월 첫날부터 5월을 성모님께 잘 봉헌하며 살자는 뜻으로 1일 ’성모의 밤’ 행사를 생각했겠지만, 행사 도중 하늘에 뜬 만월을 향해 가는 달을 보시며 내년에는 보름날을 택해 ’성모의 밤’ 행사를 갖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하시더군. 신부님의 그 말을 들으며 나는 내년에는 5월 1일에 교회에서 노동절 행사를 제대로 갖는 방안을 제안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네.
2일 주일 오후에도 나는 노동을 했네.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주일 오후에는 꼭 백화산을 오르는 것이 나의 일상인데…. 원고 마감 날짜를 어긴 <성모기사> 청탁 콩트를 해결하는 일과 ’축시’ 하나를 지어야 하는 일이 겹쳐서 산에 갈 수가 없었네.
다행히 두 가지 일 모두 해결했네. 축시를 짓는 일은 태안의 <한샘학원>이 개원 10주년을 맞아 오는 7일(금) 저녁에 학부모들을 모시고 기념식을 갖는 일 때문이었네. 그 행사의 팜플렛에 올리고 또 내가 직접 낭송을 해야 하는 모양인데, 그 축시를 부탁 받고 나서 고민을 좀 했네.
한샘학원 원장은 태안문학회 총무 일을 하고 있는 변학수 시인인데, 그는 내가 회장을 할 때부터 고생을 많이 한 사람이고, 내가 시인으로 등단시킨 사람이고, 그의 처녀시집에 내가 ’해설’도 써주었지. 또 한가지 중요한 사실은 우리 한결이를 한샘학원에 보내고 있는 처지이고….
그런 사정으로 그가 내게 축시를 부탁했겠지만, 내가 지역 학원의 개원 10주년 축시까지 지어주는 일은 깊이 생각을 해봐야 할 일이었네. 문인 명색으로 어울리는 일일지도 의문이고, 더욱이 사교육 관련 문제가 적지 않은 우리 사회 현실에서 그게 과연 온당한 일일 지에 대해서도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네.
오래 고민을 하다가 또 한번 무슨 일이건 거절을 잘 하지 못하는 내 성격을 확인하면서( 이런 일이 이완용처럼 나라 팔아먹는 일도 아니고 뭔가 부정을 저지르는 일은 아니라는 우스운 생각도 하면서), 변학수 시인의 나에 대한 존경심이 빚은 일이라는 생각과 함께 아들녀석을 그 학원에 보내고 있는 학부모 처지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으로 결국은 작업을 했네.
개원 10주년에 대한 상투적인 축하와 찬사 따위는 일절 배제하고 아이를 학원에 보내는 것과 관련하는 내 심사와 어떤 소망들을 표현하는 식으로 시를 지었네. (그 시가 팜플렛에 발표되면 다음 편지에 첨부파일로 보내 주겠네. 문인 명색이 별 짓을 다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잘 이해해 주기 바라네.)
<성모기사> 청탁 콩트는 「용천에서 온 쑥이라요」라는 제목으로 해결해서 어제 아침에 메일로 보내주었네. 규정 매수 20매를 좀 넘긴 것 같은데, 편집자가 알아서 처리하라고 그냥 보냈네. (지난해 이맘때 같은 지면에 발표한 「같은 사람 있었네」만큼 ’쌈박’하지는 않은 것 같은데, 나는 콩트가 소설보다도 더 어렵네.)
2일은 음력으로 3월 14일, 백모님의 기일이었네. 그래서 나는 아침에 쇠고기 두 근을 사촌 큰형님 댁에 사다드렸는데 마침 재하형님이 와 계시더군. 북한 용천 참사와 관련하여 우리도 살기 어려운데 그렇게 많이 도와주어도 되느냐는 식의 말씀이 나오기에 내가 여러 가지 말을 많이 해드렸네. 과거 서독의 20년에 걸친 실질적인 통일 노력, 우리의 바람직한 통일 노력과 방식, 수구 세력의 시대착오적인 관습과 망동, 족벌 언론 조중동의 폐해와 한계, 인터넷 언론의 역동성 등에 대해 꽤 많은 말씀을 드렸네. 60대 중반과 70대 초반을 사시는 두 분 형님이 내 열변(?)을 끝까지 잘 들어주신 것을 고맙게 생각하네.
모처럼 백모님 기일이 주일과 맞닿아서 오후 2시경 새롬엄마가 제사 준비하는 일을 도와 드리러 주공아파트에 갔는데, 성당에서 친교실 봉사를 마치고 오자마자 주공아파트로 간 새롬엄마에게 고마운 마음 컸네. 이미 준비가 다 끝나서 이내 돌아왔지만…. 그리고 돌아올 때는 운동 삼아 걸어오게 했지만….
나는 저녁에 콩트를 해결하고 나서 정장을 하고 밤 9시경 새롬엄마와 함께 집을 나서서 우선 삼성아파트에 들러 재하형님과 형수님, 형님의 두 어린 손자들과 남옥누이를 내 차에 태우고 주공아파트 큰형님 댁으로 갔네.
같은 주공아파트에 사시는 둘째 형님이 역시 제사에 불참해서 아쉬운 마음이 컸지만, 그리고 백모님의 손자들은 아무도 없는 것도 허전했지만, 그래도 어린 증손자가 둘이나 참석한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제사를 지냈네.
그리고 음복을 할 때 우리 부부뿐만 아니라 금년 8월에 영세를 받게 되는 작은 형님 내외와 지난해 세례를 받은 정흠이도 함께 성호를 긋고 식사를 하게 되니 흐뭇한 마음 컸네. 전에는 제사 후에 음복을 할 때마다 나 홀로 성호를 긋는 것이 적이 외로웠는데…. 작은 형님 내외분이 착실히 주일 미사에 참례하며 영세 준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없이 고맙고, 내 아버님으로부터 연유한 우리 집안의 ’복음의 씨’가 조금씩 확대되고 있는 사실에 아버님에 대한 고마움도 다시 느낄 수 있었네.
어제 3일은 <충남예술>지 ’충남의 예술인’ 원고(70매 예정)을 해결하려고 아침부터 긴장을 모으고 폼을 잡았는데, 이상하게 작업이 되지 않더군. ’충남예총’으로 전화를 걸었더니 이번 주 안으로만 원고가 되면 된다기에 아예 일손을 놓아버리고 하루종일 빈둥빈둥 놀았네. 비가 와서 오후에 산에도 못 가고….
기록할 만한 일이라곤, 내가 올해 들어 혈당 조절에 큰 효과를 보고 있는 ’고려 쑥차’라는 것을 슈퍼마켓에서 세 상자를 사 가지고 삼성아파트에 가서 재하형님 잡수도록 정흠엄마에게 맡기고 온 일…. 쑥차가 혈당 조절에 좋다는 것을 내가 여러 가지로 시험을 해보고 확신을 하게 되었는데, 나는 하루에 세 번 쑥차를 마시네. 30봉지 한 상자가 2200원, 한 달에 1만원도 안 드는 셈이네.
나는 당뇨를 가지고도 거의 매일 오후 산을 오르고 맘껏 운동을 하지만, 재하형님은 다리 신경통으로 걷기 운동도 잘 못하시는 형편일세. 그래서 내가 쑥차의 존재와 효험을 알려 드릴 겸 쑥차 세 상자를 사다 드린 것일세.
오늘은 천안복자여고 2학년이 홍성 용봉산으로 봄 소풍을 오는 날일세. 지난해 안면도 꽃지로 소풍을 왔을 때처럼 내가 또 생선회를 사 가지고 가서 선생님들을 좀 뵐까 생각했으나, 요즘 이런저런 일로 지출이 많은 데다가 생선회 상자를 들고 홍성 용봉산을 오른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닐 것 같아서 포기를 했네. 우리 딸 도시락만 가지고 가서 살짝 전해준다는 것도 못할 일이어서 새롬이에게 스스로 도시락 준비를 하라고 했네.
새롬이는 용봉산에서 점심을 먹고 근처 ’고건축박물관’으로 이동을 한 다음 거기에서 일행과 헤어지기로 했네. 내일이 5일 어린이날 공휴일이기 때문에…. 그래서 내가 거기로 와서 녀석을 태워오기로 했네. 내일 천안으로 가지고 갈 해미성지 물도 미리 긷고….
내일(5일)은 지난해 별세하신 내 장모님의 1주기가 되는 날일세. 큰아들과 며느리들과 딸들이 모두 개신교 신자여서 제사는 아예 지내지 않는 모양일세. 개신교 신자가 아닌 장인어른과 작은처남은 어떤 마음일지 잘 모르겠고…. 그래서 큰처남 집에 갈 필요는 없을 것 같네.
그 대신 내일 보령 청라면의 산소에 가서 성묘를 하려고 하네. 얼마 전에 장모님 묘를 이장한 관계로 묘 손질할 일도 있고 해서 처가붙이들이 모두 산소에 모이는 모양이네. 산소에 와서도 어머니 묘소에 절을 하지 않는 개신교 신자들의 모습을 또 보아야 할 일이 좀 불편할 것 같네. 하지만 우리 가족만이라도 준비해 간 제물을 놓고 장모님 묘에 절을 올리고 묘 앞에 앉아 연도를 바치려고 하네.
그리고 모두 함께 대전 자기 집에 가서 저녁 식사를 하자는 큰처남의댁 말이 있었지만 우리 가족은 천안으로 가서 영화 『그리스도의 수난(The passion of christ)』을 보고 새롬이 원룸에서 자고 다음날 새벽에 돌아올 계획이네.
새롬이는 2학년 첫 중간고사를 ’그런 대로’ 잘 본 것 같네. 전 과목이 90점 이상 ’수’ 등급에 든 것 같은데, 생물 시험에서 답을 하나 고쳐 적은 것이 아무래도 틀린 것 같다나. 그게 오답이면 생물 한 과목은 80점대가 된다는 것. 그런 심각한 상황에서도 녀석은 여전히 느긋하네. 천안에 가서 보면 시험기간에도 텔레비전에 인터넷에 할 짓 다하고….
한결이는 토요일 첫날에는 사회 100점 국어 97점, 어제 둘째 날에는 영어 100점 컴퓨터 100점 과학 97점을 받았다는데, 그래서 선두를 달리는 아이보다 2점이 뒤졌다는데, 오늘 세 과목 시험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
지난해 이맘때 쓴 편지를 내 홈피 ’가족공동체’ 방에 올리면서 보니 그때 편지도 엄청 길더군. 모처럼 만에 단편소설 하나 쓴 이야기, 청탁 콩트 해결한 이야기, 가족나들이와 한국소설가협회 행사 이야기에다가 우리 장모님에 관한 애달픈 이야기도….
소설처럼 편지를 길게 써서 그때도 미안한 마음이었던 것 같은데 이번에는 더 미안한 마음이네. 이 편지가 내 삶의 기록, 즉 ’일기’를 겸하는 것임을 이해해 주기 바라네.
이만 마치겠네. 내 긴 편지를 읽어주는 모두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하네.
앞으로 5.16과 5.17, 그리고 5.18도 겪어야 하겠지만, 좋은 5월이 되기를 빌며….
(040504) 충남 태안에서 지요하 막시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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