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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에 가져보는 상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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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요하 [jiyoha] 쪽지 캡슐

2004-05-20 ㅣ No.67154

 

*이 글은 충남 서산의 <서령신문> 1998년 5월 13일치에 썼던 글입니다.

 

 

 

 

                           5월에 가져보는 상념들

 

 

 

 

 어느덧 신록의 계절인 5월이다. ’경제대란’ 덕에 오히려 돈방석이 더욱 푹신해진 부자들을 제외하고는 너나없이 한결 우울하게 맞은 5월이지만, 계절적으로 5월은 역시 일년 중에서 가장 살기 좋은 때이다.

 

 5월이 ’계절의 여왕’으로 불리어 온 까닭은 계절의 고유한 특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톨릭교회의 신앙으로부터 유래한 것이기도 하다. 가톨릭교회는 일찍부터 전 세계적으로 5월을 ’성모의 달’로 정하고 인간의 모성과 가정의 의미를 꽃피워 내는 아름다운 예절들을 생활화해왔다. 이런 가톨릭교회의 신앙 관습으로부터 유래되어 오늘날 5월은 우리 나라에서도 가정의 달로 정해져서 어린이 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성년의 날 등을 기념하며 지내고 있는 것이다.

 

 천주교회가 목수이셨던 성 요셉(예수님의 양부)을 ’노동자들의 수호자’로 삼아 5월 1일을 축일로 정한 것에 유래하여 전 세계가 5월 1일을 노동절(근로자의 날)로 삼은 것처럼 세상의 많은 기념일들 중에는 천주교회의 축일로부터 유래된 것이 적지 않다.

 

 아무튼 계절의 여왕 5월은 사랑스러운 달이다. 하지만 5월은 우리에게 있어서 그저 아름답기만 한 달이 아니다. 이제는 우리의 기억에서 거의 사라져가고 있지만 춘궁기니 보릿고개니 하는 말들이 국어사전에 버젓이 살아 있듯이 옛날의 5월은 분명히 모순의 계절이었다.

 

 우리는 이 사실에서도 하나의 교훈과 지혜를 얻어야 한다. 우리 조상들과 적어도 사십대 중·후반 연령층까지는 어느 정도 겪었던 보릿고개의 기억을 자식들이나 후손들에게 전해 줌으로써 (부모들이나 할아버지 할머니의 고생스러웠던 시절 얘기를 진지하게 귀담아 들으려는 아이들이 전혀 없지는 않을 터이니) 낭비와 무절제의 버릇을 방지하는 것도 우리 기성 세대의 몫이 되어야 한다.

 

 옛날의 보릿고개말고도 우리에게 있어 5월은 슬프고 뼈아픈 달이기도 하다. 5. 16, 5. 17과 5. 18로 표징되는 암울한 현대사의 음영이 바로 그것이다. 신록의 달이며 계절의 여왕인 5월을 좀더 아름답게 가꾸기는커녕 처참한 오욕의 달로 만들어버리고도 전혀 참회할 줄 모르는 정치군인 패거리들의 죄과는 역사적으로 철저히 단죄되어야 한다.

 

 아름다운 5월을 살면서 옛날의 보릿고개며 현대사의 암울한 음영들을 생각하는 것은 망각을 거부하는 지성인들의 당연한 몫일 것이다.

 

 5월은 또한 소풍의 계절이다. 학교들마다 소풍 행사가 줄을 잇는다. 그런데 올해는 무슨 까닭인지 초등학교의 경우 학년 별로 따로따로 소풍을 간다. 확실한지는 모르지만 이 어려운 IMF시대에 학교 전체가 한날 소풍을 가는 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아서라니, 어이가 없다. 왜 소풍 행사를 학교장 재량에 맡기질 못하고 쩨쩨하게 그런 일까지 시시콜콜 지시를 하는지, 교육부 사람들은 어지간히도 할 일이 없는가보다.

 

 하여간 그 바람에 우리 집은 두 번 김밥을 싸게 되었는데, 한 번은 새벽 김밥 공사를 치른 후에 비가 와서 소풍이 깨져버렸다. 그래서 다시 날을 잡아 독립기념관 견학을 간다 하니 김밥 공사가 세 번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어머니와 아내는 새벽 4시쯤 일어나서 거창하게 김밥 싸는 공사를 한다. 아내의 김밥 솜씨는 일품이고 지극 정성을 다한다. 새벽에 두세 시간씩 공사를 하는 것은 두 아이의 전·현직 담임 선생님들과 생질 아이의 담임 선생님께 드릴 것까지 싸고, 뒷동 동생네와 생질 아이들 몫까지 싸는 탓이다.

 

 아침에 김밥 도시락 하나 싸기가 귀찮아서 음식점에 김밥 도시락을 주문하는 젊은 엄마들이 부지기수인 세태와, "선생님들은 손이 없나 발이 없나, 왜 소풍날마다 우리가 음식을 바리바리 해 가야 하느냐"는 (서산 부춘초등학교 자모회의에서 확성기를 통해 학교 전체로 울려 퍼진) 말이 판을 치는 이 삭막한 시절을 생각하면 어머니와 아내가 여간 고맙지 않다. 우리 집 아이들은 할머니와 엄마의 노고와 정성이 담뿍 담긴 맛있는 김밥을 먹고 선생님과도 나누는 만큼 할머니와 엄마에 대한 사랑과 존경심도 알뜰히 자라나고 좋은 추억들을 가지게 될 것이다.

 

 얼마 전 <태안군여성단체협의회>에서 노래를 곁들여 강연을 한다는 어느 유명한 여성 직업 연사를 초빙하여 강연회를 가졌다. 강연회장인 태안군청 대강당에 동원된 화환과 화분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고 한다. 강사에겐 무려 200만원의 강연료를 주었고….

 

 지나친 낭비가 아니었을까 싶다. 우리 동네의 여성들이 그 강연회에서 과연 무엇을 느끼고 배웠을지도 궁금하다. 그 청중들 속에 혹 자녀의 소풍날 아침에 김밥 도시락 하나 싸주지 않는 게으른 엄마들은 없었는지도…. *

                                                         

 

(1998년 <서령신문> 5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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