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16일 (금)
(녹) 연중 제28주간 금요일 하느님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

자유게시판

가톨릭내 익명의 이단 II(펌)

스크랩 인쇄

황명구 [hmk12] 쪽지 캡슐

2004-06-29 ㅣ No.68286

3. 받들어야할 전통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다른 어느 시대보다도 그러했지만 오늘날의 우리는 더욱 교회의 전통을 존중하고 그것에 충실해야 하겠습니다.
다른 말로 이 시대는 우리로 말미암아 <가톨릭성>이 더욱 뚜렷이 드러나야 할 시기입니다.

이것은 원리주의자와는 도무지 상관이 없는 말입니다.
굳이 주의라고 한다면 `계시 진리'와 `우리 가톨릭 교회'를 지키기 위한 <전통주의>라 하겠습니다.

계시진리에 관해서는 타협이니 절충이니 하는 따위는 도대체 끼어 들어서는 안될 말들 입니다.
전통 교리에 관한 한 `원수를 만들지 않기 위한 노력'은 축복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

"완전한 고요(정밀)보다 더 위험한 폭풍이 없고 원수 없는 것 보다 더 무서운 적은 없다"고 한
어느 성인의 경구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예수님의 다음 말씀이 내 견해를 지지해 줍니다.

"내가 이 세상을 평화롭게 하려고 온 줄로 아느냐?
아니다 사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루가12,51)는 말씀이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 원수 맺지 말고 잘 지내도록 하자.평화가 좋지 않은가?
좋은 일인데 함께 해나가야 하지 않겠는가?
인간성 회복,생명 문화 운동, 사랑의 문명 건설 등을 위해 우리 함께 일해 나가자.그리고 가톨릭이 앞장서라.
이렇게 세속은 우리에게 손짓합니다.
좋다 우리함께 일하자 그리고 우리 가톨릭이 앞장 서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
사랑과 생명 문제라면 의당 우리가 기선을 제압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것은 굳이 타협주의자나 절충론자가 아니라도 가톨릭 신자라면 누구나가 마음 속에 느끼는 충동입니다.

이리하여 우리는 생명 운동하는 단체와 연합하여 일을 벌이게 되는데 그 단체가 어느 시점에서
`인공 유산'이나 `안락사'에 대하여 너그러운 태도를 보이게 되면 우리는 그야말로 진퇴유곡입니다.
또 사랑의 문명 건설을 우리와 공동으로 추진하는 자들이 `자연적'이며 `인간적'인 차원에만 머물 때 우리는 그들과
결별하든가 아니면 그 차원에서 그들과 함께 허우적 거리게 될 것입니다.

초자연이나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하지 않는 그들에게서 그 이상의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 중에는 그리스도교적인 것이나 가톨릭적인 것을 배격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우리 교회가 멋도 모르고 분별 없이 가담하고 있는 듯한 세계화나 신세계 질서 운동 같은 것도 마찬가지 입니다.

더 나아가 교회일치 운동에 대하여도 같은 말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좋은 운동에도 가톨릭의 전통교리를 변질시키거나 희석하려는 악마의 계락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제 2차 바티칸 공의회를 전후해서 가톨릭의 전통 교리나 제도등을 위태볼게 하는 흐름이 거세어 졌습니다.
`성체교리에 대한 이단설'나 `사제 독신제의 폐지론' 같은 것이 그 예입니다.
또 심지어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는 구원론을 주장하는 유설까지 공공연하게 유포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요새 신앙 교리성은 이저래 바쁘게 되었습니다.
지난 봄에 내가 신앙 교리성을 방문했을 때 성장 추기경으로부터 그 얼마전에 그의 이름으로 발표된
"주 예수님"이란 선언문에 대해 설명을 들었습니다.

그 설명인즉 우리 아동들도 배워서 익히 알고 있고 또 믿고 있는 `매우 기본적이며 초보적인 교리'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가 인류의 유일하고 보편적인 구원자이시며 그 분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무도 구원 받을 수 없다는 교리>였습니다.


오호 애재!
구세주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교회를 세우시고 그 교회를 통하여 구원 사업을 펴신지 2000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
새삼 그러한 선언문을 엄숙하게 발표하지 않으면 안될 만큼 교리 선포가 후퇴했단 말인가!
이렇게 된것이 `일부 불량한 신학자들'로 인해서임을 생각할 때 내 마음은 더욱 아팠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을 열심히 활용하고 있는 것은 오히려 악마인 것 같습니다.
그 놈은 일부 성직자나 신학자들을 사주하여 교묘하게 자기 뜻을 이루어 나가는 듯 합니다.

이전에는 프리메이슨 이라는 말은 공산당이라는 말보다 더 하게 가톨릭 신자를 긴장시키는 두렵고도 혐오스러운 말이었습니다.
한편 그 비밀 결사는 그것대로 우리 가톨릭 교회를 적 제1호로 세워 놓고 반드시 파괴해야 할 두려운 존재로 간주 해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는 정체 불명의 그 실재에 대하여 항시 경계 태세를 늦추지 않고 지내 온 것입니다.

그런데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는 그것이 가톨릭 교회를 만만하게 볼 뿐만 아니라 오히려 자기네 동반자로까지
여기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공산주의는 누구나 쉽게 알아 볼수 있는 색깔을 가지고 있는데 반하여 그 조직은 쉽게 분별할 수 있는 색깔이 없기
때문에 문제는 더욱 심각합니다.
그것은 비밀 결사라는이름에 어울리게 제 얼굴을 가리고 허술해진 우리 교회의 울타리를 마음대로 넘나들면서 비밀 공작을 펴나고 있습니다.

가톨릭과 그 조직의 공동 관심사인 인도주의 박애 정신 사회복지 등을 매개로 하여그 조직원들은 뛰어난 변장술과 미소 작전으로써 특히 `영향력을 행사하는 교회 인사'들을 자기 편으로 끌여들여 부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도록 묵인하는 것이 과연 가톨릭교회의 관용이나 아량이나 대도의 표시이겠습니까?
그렇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나는 서슴지 않고 그것을 무관심, 무기력, 패배주의의 증거로 제시하는 바입니다.
지금 우리 교회는 누기 무슨 말을 해도 상관이 없을 만큼 느슨해진 것이 사실입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사정이 이러하기 때문에 나는 여러분의 구원과 영생에 밀접히 관계되는 교회의 거룩한 전승에 충실하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분이 반드시 `영신적인 눈'을 갖추어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교회가 그리스도의 신비체이며 구원에 필수적인 도구임을 알게 되는 동시에 그 전승에 충실해야 할 필요성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육안으로 보는 사람은 전통을 무시하게 됩니다>
<전통>은 생명이 없는 인습 따위가 아니라 `생명력을 지닌 말할 수 없이 귀중한 보물'입니다.

교회에 대한 애정은 많은 성인들과 위대한 저술가들에게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유명한 프랑스 작가 베르나노스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이 교회를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
만의 하나 내가 내일 교회 밖에 나와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하게라도 된다면 나는 5분도 견디지 못할 것이다.
얼굴을 땅바닥에 대고 무릎으로 기는 한이 있어도 나는 기어이 그 안에 들어기 위해서 무슨 짓이라도 할 것이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교회 사랑의 고백입니까?
기쁨과 축복의 성탄일을 맞아 우리 모두 위대하고 고마운 어머니인 가톨릭 교회를 더욱 많이 사랑하고 더욱 잘 따를 것을 다짐합시다.


4.하느님의 심장과 품

제2위 성자께서우리와 같은 육신을 취하시어 오신 오늘 나는 하느님의 심장과 품에 대하여 잠깐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나는 하느님 아버지의 심장이라든가 품이란 것을 생각지 않고 지냈습니다.
다분히 육신적이며 인간적인 심장이라던가 품이란 것을 순수 영적 존재이시며 인간이 가까이 할 수 없는 빛속에 계시는 하느님 아버지께 결부시키지 못하고 인생을 살아 왔습니다.

그런데 근래에 와서 나는 인간이 되신 성자를 통하여 하느님 아버지의 마음과 품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을 보는 것이 바로 아버지를 보는 것임을 알려 주셨에 그 일이 가능해졌습니다.(요한14,9)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은 인간으로서 심장과 품을 가지고 계십니다.
심장과 품은 사랑과 따스함의 상징입니다.
예수님은 당신 자신이 어머니의 품에 안겨 그 심장의 고동을 들으면서 자라나신 분이십니다.
즉 어머니의 사랑과 온정을 가득히 받으면서 성장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분은 우리를 위해 같은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안겨서 당신 심장의 고동을 느끼기를, 당신 사랑과 온정을 우리가 느끼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형상이신 그 분은 우리가 아버지께 자신의 심장과 품까지도 체험하기를 바라십니다.

한편 아드님이신 예수님을 낳으셨을 때 당신 품에 안으셨고 그 아드님이 돌아가셨을 때 다시 그 분을 당신 품에 안으신 `성모 마리아'가 계시다는 것은 우리에게 큰 위로와 힘이 됩니다.

왜냐하면 `성모님 품에 안기신 예수님 안에' 우리가 모두가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성모님은 예수님을 안으셨을 때 우리도 함께 안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행복합니다.
우리가 넘어지거나 잘못했을 때 어렵고 고통스러울 때 우리를 받아 안을 품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과 온기 넘치는 하느님 아버지의 마음과 품,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과 품, 그리고 성모 마리아의 마음과 품이
있기 때문입니다.

끝으로 나는 감사와 환희 속에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서
여러분과 여러분의 모든 가정을 그리고 우리 교구와
우리 고장을 후히 축복해 주시기를 간절히 빌면서 이 서한을 맺습니다.


2001년 성탄절에
교구장 김 창렬 주교


170 1

추천 반대(0) 신고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번호 제목 등록일 작성자
68291 이해인수녀님 글모음~|2| 2004-06-30 남희철
68290 성음악의 향연 2004-06-30 김근식
68286 가톨릭내 익명의 이단 II(펌)|1| 2004-06-29 황명구
68285 가톨릭내 익명의 이단 I(펌)|2| 2004-06-29 황명구
68282 전교조가|16| 2004-06-29 양대동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