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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향심기도---하느님과의 깊은 일치를 돕는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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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여향 [cpark] 쪽지 캡슐

2004-07-01 ㅣ No.68354

 

불교에선 선승들이 참선을 합니다. 이 때 스님들은 특정한 주제, 예들 들어 “만법귀일 일귀하처(萬法歸一一歸何處)(만가지 진리의 법은 하나로 돌아가고 그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는고? ), 즉 화두를 정하고 이에 대해 깊은 사색과 명상을 함으로서, 참선을 함으로서 인생과 우주의 진리를 께달으려합니다. 그 대상에 있어선 차원이 다르나 방법론적인 면에서 이와 비슷한 것이 우리 교회에 있는데 그것이 바로 향심 기도입니다.

 

'향심(向心)기도'(centering prayer)는 시편 등 성서 구절을 읽고, 읽은 바를 묵상하며 기도함으로써 하느님과 깊은 일치, 친밀한 관계를 이루도록 돕는 기도의 한 방법입니다. 우리의 영성적 존재의 중심(하느님)과 이루는 무한한 일치를 통하여 이 세계를 사랑과 돌보는 마음이 충만한 곳으로 새롭게 가꾸어 가는 그리스도교의 수행법으로 하느님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경험하는 관상(觀想)의 경지로 나아가고자 하는 기도입니다.

 

시토수도회의 토머스 키팅 신부가 1961-81년 미국 코네티컷주의 성요셉수도원원장으로 재직할 때 그리스도교의 엄연한 전통인 '거룩한 독서'를 현대인이 쉽게 실천할 수 있도록 대중화하자는 뜻에서 고안해내었습니다

 

아래는 오늘(7월 1일자) 한겨례 신문에 소개된 향심기도 설명이며, 저도 이에 관한 책들을 사 좀더 공부하고 기도해보고자 합니다.:

 

영성적 존재의 원천인 하느님과 ‘무한한 일치’통한 사랑의 충만

“기도는 관계(Relationship)다.” 현대의 영성가인 토마스 키딩 신부는 기도를 이렇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관상기도인 ‘향심기도’는 우리 마음의 참 주인이시며 ‘만물의 중심’인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과 깊은 일치, 친밀한 관계를 이루도록 돕는 기도의 한 방법입니다. 우리의 영성적 존재의 중심(하느님)과 이루는 무한한 일치를 통하여 이 세계를 사랑과 돌보는 마음이 충만한 곳으로 새롭게 가꾸어 가는 그리스도교의 수행법으로 볼 수 있습니다.

 

창세기는 인간과 인간의 중심이신 하느님과의 관계를 드러내 주며, 창세기 1장의 저자는 인간이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느님이 우리 존재의 원천이시자 고향이시라는 것을 뜻합니다. 그렇기에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우리가 하느님의 안에서 쉬기까지는 마음이 착잡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우리의 어머니와 아버지를 보고 싶어 하는 것처럼, 우리의 고향 하느님에 대해 근원적인 그리움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우리의 중심과의 관계는 창세기 2-3장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아담과 하와를 창조한 후에 하느님은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명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느님이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과를 따먹을 수도 있는 자유를 허락하셨다는 것을 뜻하며, 동시에 이것은 인간의 자유 앞에서 하느님이 실패할 수도 있다는 것을 스스로 수락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느님 자신이 실패를 감수할 만큼 인간의 자유를 소중하게 여기신다는 것이고, 그만큼 자유로운 인간을 사랑하신다는 의미이기도 하지요.

 

‘자유’와 ‘사랑’이 짝을 이루고 있는 이 심오함은 그리스도교 인간 이해의 정점입니다. 바로 이 ‘자유’가 우리 인간으로 하여금 중심에서 멀어지게도 하고 중심을 향하여 나아가게도 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는 가시덤불에 숨었습니다. 이때 하느님께서 물으셨지요. “사람아, 너 어디에 있느냐 왜 숨어 있느냐” 그러자 사람들이 말하였습니다. “우리가 당신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겁이 났다고 했습니다. 이 겁이 난 사람들, 이들은 숨었습니다.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고 겁이 난 사람아, “너는 누구인가” 하느님의 이 물음에 직면하였다는 것은 인간의 자유 행사가 책임을 질문 받게 만든다는 것을 말합니다. 질문에 답을 하고 안하고는 다음 문제입니다. 본질적인 것은 인간의 자유는 언제나 예외 없이 질문을 받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자유를 잘못 사용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길이 열릴 수 있었던 것은 하느님의 저 물음에 응답하면서 부끄러워할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의 진정한 위기는 우리가 “너 어디에 있느냐”와 “너는 누구인가” 하는 물음에 대답할 용기를 잃고 있다는 데에 있습니다.

 

그리스도교는 이천년 역사 안에서 하느님의 저 질문에 응답할 인간 마음의 깊은 역량을 일깨워 왔습니다. ‘향심기도’는 그리스도교의 심오한 관상 기도 전통을 우리 시대에 맞는 형태로 발전시킨 것이며 ‘하느님 안에서의 쉼’의 기도입니다. 창조의 하느님이 일곱째 날에 쉬셨듯 하느님은 우리가 당신 안에서 쉬기를 바라십니다. 하느님이 우리 안에 현존하심을 믿고 그 분의 활동을 “예, 당신 뜻을 이루십시오”라고 깊은 침묵 속에서 동의할 때, 그리고 쉴 때, 우리는 하느님과의 친밀한 일치를 축복으로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한국관상지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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