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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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그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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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제가 오늘 제 피붙이, 겨레붙이, 인연붙이들과 소수의 친지들, 도합 32명에게 <작은아버님 별세 소식>이란 이름으로 보낸 '가족메일'입니다.
잘들 있는지. 지난 10일(토) 오후 2시 40분쯤 임종하신 작은아버님의 유해를 12일 고향 선산으로 모시고 와서 안장했네. 그리고 오늘 삼우제를 지냈네. 지난주 토요일 오후에 우리 부부는 천안에 갈 계획이 있었네. 금요일 기말 시험을 끝내면서 교내 '생활관'에 들어가서 생활하는 규애도 좀 보고, 담임 선생님도 뵙고 할 계획이었네. 그리고 토요일 저녁을 천안에서 지내고 다음날 주일 새벽에 돌아올 생각이었네. 돌아오면서 해미성지 물을 긷는 일도 하고…. 새 생전을 건립하는 일로 지금의 성당을 허물어야 하기 때문에, 지금 성당에서의 교중미사 참례와 성가대 봉사는 11일 주일의 교중미사가 마지막이겠기에(18일 주일은 '농민주일'이라 나는 대전의 한 성당에 가서 강론을 해야 하고…), 11일 주일 아침에 꼭 돌아올 생각이었네. 그런데 물통 걷는 일 등 모든 준비를 마치고 출발을 하려고 할 때 재하 형님에게서 전화가 왔네. 서울 작은아버님께서 좀 전에 운명하셨다는 전갈…. 일단 천안으로 가서 잠시 볼일을 보고 그곳에다 차를 놓고 버스로 서울로 가기로 계획을 세우고 옷가지 준비를 더 한 다음 3시 30분쯤 출발했네. 부의금은 30만원을 준비했는데(6월 7일 작은아버님 문병을 할 때 20만원을 드린 일도 있고 해서…), 급히 그 돈을 마련한 과정이 좀 재미있네. 토요일 오후라 농협도 우체국도 문을 닫았고, 직불카드가 있는 내 농협 통장 안에는 5만원밖에 없고…. 그래서 처음에는 단골 슈퍼에 가서 빌릴까 하다가 성당을 생각했네. 사무장님께 전화를 걸었더니 30만원을 빌려주시겠다고 하더군. 그래서 천안으로 가면서 물통도 받을 겸 성당부터 들렀는데, 내 50여 년 신앙생활 중에 성당 공금을 빌려보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네. 운전을 하면서 서울 인하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금호동 성당으로 아버지 별세 사실을 속히 알리라고 하니 그리하겠다고 대답은 하는데, 신자가 아닌 사람이 경황 중에 그 일을 할 것 같지가 않다는 느낌이 들더군. 새롬엄마로 하여금 휴대폰으로 서울 114에 물어 금호동 성당 전화번호를 알게 한 다음 전화를 걸게 했네. 사무장님과 연결이 된 후에는 내가 직접 금호동 서울중앙병원(구 복음병원) 장례식장 얘기와 함께 금호동 성당 신자들이 와서 연도를 해주시기를 부탁드렸네. 나로서는 작은아버님의 영혼을 위한 연도가 참으로 중요한 일이기에 금호동 성당 수녀원에도 전화를 걸어 연령회장님이나 레지오 단장님께 연락해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렸네. 해미성지에 들러 천안으로 가져갈 물도 길었고, 토요일 오후라 길이 많이 막혀서 6시 30분이 넘은 시각에 새롬이 원룸에 도착했네. 새롬엄마도 함께 서울에 가기로 계획을 바꾸고 새롬엄마가 이것저것 준비를 하는 동안 잠시 '가톨릭 굿 뉴스' 게시판에 짧은 글 하나를 올렸네. 나에게서 대세를 받으신 작은아버님의 별세 사실을 전하며(지난 6월 10일 작은아버님의 대세 얘기와 함께 문병을 와서 선종을 위한 기도를 해주신 서울 금호동 성당 신자들께 감사하는 글을 올린 일도 있고 해서…) 게시판 형제 자매들의 기도를 부탁하는 글이었네. (그런데 엊그제 비로소 게시판을 보니 많은 형제 자매들이 기원의 말씀을 올려주셨더군. 그 고마운 글들 가운데는, 그 경황 중에 어떻게 게시판에 글을 올릴 수 있었느냐고, 몹시 비꼬는 말을 한 사람도 있었고….) 터미널에서 8시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내 승합차 안에 여러 권이나 있는 레지오 수첩을 깜빡 잊고 가져오지 않은 것을 몹시 안타까워했네. 그리고 버스를 타고 서울로 가면서 인하 동생에게 전화를 거니 금호동 성당 신자 10여 분이 와서 한 차례 연도를 하고 가셨다는 대답이었네. 신자들이 사용한 책도 거기에 있느냐고 하니 많이 놓고 가셨다는 대답…. 어찌나 반갑고 고마운지 절로 성호가 그어지더군. 10시쯤 복음병원 장례식장에 도착해서 보니 작은아버님 영정 위에 십자가가 놓여 있고, 영정 아래에는 '지동권 요셉'이라고 쓴 종이가 붙어 있고, 성수그릇과 성수채도 놓여 있더군. 그리고 벽에는 작은아버님의 속명과 영세명, 주소, 임종하신 시각, 12일의 장례미사 시간, 충남 태안의 장지까지 적은 종이가 붙어 있더군. 정말 고마운 마음이었네. 우리 부부는 우선 작은아버님께 절을 올린 다음 늦은 저녁을 먹고 나서 둘이 함께 연도를 바쳤네. 서울대교구의 연도가 우리 대전교구와는 좀 다르지만, 음표를 보면서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었네. 작은아버님 영정 앞에 앉아 작은아버님을 '요셉'이라 부르며 연도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마음을 갖게 하는지…. 내가 작은아버님께 대세를 드릴 때, 의식이 명확하지 않은 작은아버님께 작은어머니와 사촌 인하 동생을 의식하여 다소 큰소리로 천주교의 4대 교리(천주존재, 삼위일체, 강생구속, 상선벌악)을 설명한 다음 세례 받기를 원하느냐고 여쭌 순간의 그 특유의 긴장감을 다시 반추하지 않을 수 없었네. 세례 받기를 원하시면 고개를 한 번 끄덕여보시라고 하고 나서 잠시 반응을 기다릴 때의 그 간절한 기대와 불안감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고개를 간신히 한 번 끄덕여주신 작은아버지, 그 모습을 보며 나보다 더 기뻐한 인하 동생의 그 반응을 나는 평생 동안 잊지 못하며 고마워할 것 같네. 인하와 의하 동생 가족이 앞으로 어머니 모시고 신앙의 길로 나아간다면 더 바랄 것이 없을 터이고…. 밤 2시쯤 우리 부부는 당질 규섭(장손이신 경하 형님의 둘째 아들)이 잡아준 근처 모텔로 가서 눈을 붙였는데, 모텔 방도 좁고 침대가 무척 작아서 우리 부부는 멀어지려 해도 도저히 멀어질 수가 없더군. 새롬엄마가 "이럴 줄 알았으면 어제쯤 부부싸움 좀 하고 올 걸"해서, "이 여자가 그런 농담도 할 줄 아네."하고, 우리 부부는 즐겁게 웃으며 잠을 잘 수 있었네. 다음날(11일 주일) 아침 7시쯤 장례식장으로 돌아온 우리 부부는 우선 또 한차례 연도부터 했네. 이 연도에는 두 사촌 동생과 인하 동생의 딸(세미, 대학 휴학 중) 아들(영근, 대학 1년)도 함께 했네. 신자가 아닌 그들은 연도를 함께 하지 못하고 그저 눈으로 책을 읽을 뿐이었지만 무척 진지한 자세여서, 그리고 '자녀를 위한 기도'를 간절한 음성으로 읽어서 나는 고맙고 흐뭇한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없었네. 비록 우리 부부만 '계 응'을 하는 연도였지만, 그리고 서울대교구의 '상장예식서'를 가지고 두 번째 하는 연도였지만 우리 부부는 능숙하게 그리고 정성껏 연도를 할 수 있었네. 개신교 신자로 살다가 나와 결혼하면서 천주교 신자가 된 새롬엄마가 연도하기를 즐겨하고 또 연도를 능숙하게 잘하는 것도 고마웠고, 작은아버님의 영정 앞에서 우리 부부가 연도를 할 수 있다는 사실도 고맙고…연도를 하면서 내내 하느님께 다시 감사하는 마음이었네. 전날 저녁에 나를 기다리다가 돌아가신 금호동 성당의 정 바오로 연령회장님이 인하댁에게 연락처를 적은 쪽지를 맡기시고 가셨다는데, 제수씨가 그 쪽지를 이날 아침에서야 내게 주어서 죄송한 마음으로 정 바오로 회장님께 전화를 걸어 인사를 나눌 수 있었네. 우선 전화로 12일 아침 9시로 잡아놓은 장례미사 시간을 8시로 한 시간 앞당겨주실 것을 부탁드렸네. 나는 상가가 비신자가정임을 생각하고 "미사예물은 얼마 정도 준비하면 될까요?"하고 조심스럽게 물었더니 10만원 정도 넣으면 될 거라고 하셔서 또 한번 고마운 마음이었네. 그리고 낮에 오신 정 회장님께 미사 시간을 7시로 당겼으면 하는 말씀을 드렸더니 6시 30분에 아침미사가 있음을 말하며 아침 평일미사에 장례미사를 겸할 수 있다고 하시더군. 두 사촌 동생은 아버님이 생전에 한 번도 가시지 않은 성당에까지 유해를 모시고 가서 미사를 지낸다는 것이 미안하고 걱정되는지, 장례식장에서의 '사도예절'을 희망하더군. 하지만 "사도예절을 하려면 오늘 해야 하는데, 오늘은 주일이라 신부님이 움직이시기 어렵다"는 대답. 그래서 내가 두 동생에게 "생전에 아버지가 한번도 성당에 가시지 않았는데도 성당에서 장례미사를 지낼 수 있게 된 것은 하느님의 큰 은총이요 축복"이라고 말하고, "어색한 일이 아니다. 장례미사는 산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고 돌아가신 분을 위한 것이며, 모든 일은 돌아가신 분 위주로 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말했네. 결국 12일 아침 7시 30분에 출관을 하고 8시에 성당으로 가서 장례미사를 지내고, 곧바로 장지로 출발하는 것으로 결정을 했네. 나는 서울의 돌아가는 모든 사정을 태안의 사촌 둘째 형님과 셋째 형님께 보고를 하고, 서울에는 내가 있으니 태안에서는 아무도 서울로 오지말고 선산에서의 장례준비를 완벽하게 잘 하시도록 부탁을 드렸네. 11일 오전부터 실로 많은 신자들이 여러 번에 걸쳐 오셔서 연도를 해주셨네. 신자들은 연도만 하시고 상가에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그냥 서둘러 돌아가시곤 해서 우리 쪽에선 미안한 마음도 컸네. 그래서 오후부터는 영양음료를 준비했다가 한 병씩 드리곤 했네. 새롬엄마는 천안 복자여고 생활관 행사(오후 2시로 예정되어 있는 담임교사와 학부모와의 만남)에 참석하기 위해 오전 11시쯤 장례식장을 떠났는데, 아침에 인하와 의하 가족에게 천주교의 '미사예물'에 관해서 자세히 설명을 한 다음 미리 10만원을 받아서 봉투에 넣고 새롬엄마가 예쁜 글씨로 <주님, 요셉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지동권 요셉 장례미사 예물>이라고 쓰기까지 한 그 예물 봉투를 가방에 넣은 채 그냥 갔지 뭔가. 건망증에 관한 한 우리 부부의 완벽한 부창부수, 일심동체가 다시 한번 확인되는 순간이었네. 12시쯤 안양의 매형과 누님이 안산의 세연이 모녀와 함께 오셨는데, 문상을 마치고 함께 점심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우리 부부의 완벽한 건망증 얘기를 했지. 새롬엄마가 떠나고 난 다음 순간 그 사실을 알아차린 내가(그러나 택시를 만나지 못해 뒤쫓아가는 것을 포기) 남부터미널까지 가서야 그 사실을 알고 내게 전화를 한 새롬엄마보다는 건망증 중증이 아님을 강조했네. 다행히 매형의 호주머니에 10만원의 현찰이 있어서 다시 미사예물을 준비할 수가 있었네. 봉투에는 평소의 내 악필답지 않은, 누가 보아도 놀랄 정도의 명필(?)로 다시 그 글자들을 썼고…. 지하철 금호역에서 탄 택시 기사가 서울중앙병원을 '서울아산병원'으로 잘못 알아듣고(지척인 복음병원에 가려고 택시를 탄 것은 아닐 것으로 생각한 나머지) 한참을 가다가 되돌아왔다는 매형과 누님 일행은 금호동 성당 신자들과 연도도 두 번이나 같이 하고, 2시에 시작한 '입관예절'을 끝까지 지켜보고 돌아가셨네. 입관을 할 때 누님은 자신의 묵주를 내게 주고는, 작은아버님께 대세를 주고 작은아버님의 선종을 위해 기도도 많이 한 내 묵주를 작은아버님의 손에 쥐어드리는 것이 좋겠다고 하시더군. 그래서 나는 누님 말대로 내 묵주를 작은아버님께 드렸네. 그런데 누님은 금호동 성당 연령회 정 바오로 회장님과 회원님들의 염습하시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감동을 하셨던 것 같네. 그건 나도 마찬가지일세. 나는 고등학생 때부터 신앙공동체의 염습 봉사에 참여하여 100구가 넘는 시신들을 내 손으로 정성스럽게 처리해서 떠나보내 드렸지만, 금호동 성당 형제 자매님들의 염습 봉사는 더욱 세밀하고 정성스러운 것 같았네. 나는 염습 후 음료수만 한잔 드시고 돌아가시는 그분들께 진심으로 고마운 말씀을 드리고, 연령회 여성 총무님께 미리 준비한 미사 예물을 드린 다음 별도로 봉투에 넣은 10만원을 드렸네. 처음에는 받지 않으려고 하셨지만, 내 감사 표시를 받아주셔서 더욱 고마웠네. 작은 어머니와 사촌 동생들이 그 장면을 보았기에, 나는 그 감사 표시의 연유를 설명할 수 있었는데, 작은어머니와 사촌 동생들이 누님께 감사하는 마음도 큰 것 같았네. 미사를 마치고 장례식장으로 돌아온 순간 밖에까지 들려나오는 우렁찬 연도 소리에 온몸이 뜨거워지는 듯한 야릇한 감동을 경험했네. 서른 명도 넘는 중년의 남성 신자들이 와서 한 목소리로 구성지게 연도를 바치는데, 참으로 고맙고도 신나는 기분이었네. 내가 작은아버지께 대세를 드린 일이 실로 놀라운 일들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그 사실이 내게 안겨주는 감동은 실로 컸네. 새벽 3시경 잠시 침실 공간에 누워 눈을 붙여보았으나 잠이 들지 않아 곧 일어나서 그대로 밤을 새웠네. 계속 비가 내려서 자주 밖에 나가 비의 강도를 살피고 수없이 성호를 그으며 기도를 했네. ****
이윽고 금호동 성당 연령회 정 회장님과 회원님들이 오셔서 7시 20분 ‘출관예절’을 했네. 영구차로는 성당까지 골목길을 갈 수가 없어서 병원 앰뷸런스에 관을 싣고 여러 대의 승용차로 성당에 가서 장례미사를 지냈는데, 나는 미사 중에도 날씨가 괜찮아지기를 하느님께 계속 기도했네. 작은아버님이 비록 생전에는 한 번도 와보시지 않은 성당이지만, 전 날이 주일이었던 사정이 겹쳐서 발인 날 아침에 성당에까지 와서 장례미사의 은덕을 입으시니 그런 쪽으로는 참으로 복된 분임을 실감할 수 있었네. 그런데 미사를 마치고 나오니 비가 그쳐 있더군. 미사를 집전해 주신 주임 신부님께 인사를 드리니, 신부님이 날씨 걱정을 하면서도 괜찮아질 것 같다는 말씀을 하셔서 참 고마웠네. 서울시내를 빠져나갈 때는 가늘어진 비가 간간이 뿌렸는데, 서해안고속도로를 달릴 때는 비가 그치고 하늘이 훤해지는 느낌이어서 더욱 긴장되는 기분이더군. 동행을 해주신 금호동 성당 연령회 정 회장님과 여덟 분의 회원님들이 차안에서 ‘운구예절’을 해주시는데, 목소리들이 어찌나 또렷하고 리드미컬한지…. 오전 11시가 조금 넘은 시각에 근흥면 두야리 선산에 도착하니 일가친척이며 사촌 누이들이며 많은 이들이 모여 있고, 큰 천막도 하나 쳐져 있고, 사촌 형님들이 수고를 많이 하셨음을 느낄 수 있었네. 그리고 날이 얼마나 좋은지…. 비도 뿌리지 않으면서 햇볕을 가려주는 하늘에 가득한 구름이 얼마나 고마운지….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날씨 얘기를 많이 했네. 날씨가 그렇게 도움을 주어서 서울에서 함께 내려오신 금호동 성당 신자들은 아무 불편 없이 여유 있게 ‘도묘예절’과 ‘하관예절’을 할 수가 있었네. 요즘은 포크레인으로 묘 자리를 파고 봉분을 하기 때문에 작업은 속성과로 진행되었네. 작업비와 점심값과 기타 비용이 170만원쯤 되고, 제물과 점심 외 음식 비용도 40만원쯤 들었다는데, 재하 형님이 인하에게 삼우제 날 와서 작업비와 점심값만 처리하라고 하시더군. 제물과 점심 외 음식을 차린 비용은 자신이 부담하겠다고…. 정말 좋은 날씨 속에서 기분 좋게 장례를 마칠 수가 있었네. 모든 일을 마치고, 학교로 먼저 돌아가는 새롬엄마를 태워다주고 온 대전 승목아배 차로 어머니와 뒷동 동생 부부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네. 그리고 나는 오후 3시경 승목아배 차로 천안으로 갔네. 어머니는 또 잊지 않고 승목아배 차에 김치를 실어주셨고…. 대전으로 돌아가는 길에 천안으로 길을 잡아서 나를 내려주고 간 승목아배에게 감사하네. 나는 규애 원룸에서 잠시 인터넷 메일과 특히 ‘가톨릭 굿 뉴스’ 게시판 상황을 확인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네. 9시경 학교에서 돌아온 규애를 보고 12시경 다시 잠에 들었다가 어제 13일 아침 5시에 일어나서 돌아왔네. 도중에 해미성지에 들러서 물맛을 보니 건수 맛이 느껴지지 않아서 혼자 물긷는 공사를 하고…. 그리고 어제는 승훈이에게 우편물 부치는 일(여권 신청서와 관계되는 서류인데, 여권 신청 이야기는 내일 하겠네), 성당에서 빌린 30만원을 갚아드리는 일, 자동차 엔진오일 가는 일만을 하고, 오후에는 백화산도 올랐는데, 저녁에 갑자기 너무 피로하고 통풍기도 느껴져서 저녁미사에 참례하지 않았네. 화요일 저녁의 레지오 쁘레시디움 모임에도 불참을 한 거지. 내가 쁘레시디움 단장인데도…. 지금 내 수중에는 10만원이 있네. 새롬엄마가 서울에서 깜빡 잊고 가방에 넣어온 장례미사예물…. 매형께 갚아드릴 돈이지. 그런데 어제 누님에게 전화를 했더니, 그 돈으로 마늘을 사서 보내달라고 하시더군. 우선 그 돈으로 오늘 할아버지 삼우제를 지내러 온 서울의 당질들에게 용돈을 주려고 하네. 인하 동생의 두 대학생 자녀에겐 3만원씩(대학생들에게 3만원씩 준다는 게 낯간지럽긴 하지만…), 의하 동생의 두 자녀에게는 2만원씩 주려고 하네. 그리고 우리 집에 있는 5천원짜리 도서상품권 10장을 세미를 제외한 3명에게 나누어주려고 하네. 당숙으로서 서울 당질 아이들에게 처음 주어보는 선물인 것 같네. 또 2년 전에 출간된 내 소설책 『죄와 사랑』을 사인을 해서 세 아이에게 한 권씩 주고, 초등학생인 의하 아들 다솔이에게는 큰할아버지의 동화책 『팥죽할머니와 늑대』를 선물하려고 하네. 편지를 너무 길게 써서 미안하네.
*(삼우제를 지내고 와서)
오늘 오전 11시쯤 지낸 삼우제에는 작은어머니와 인하 의하 가족, 우리 어머니, 사촌 큰 형수, 둘째 형님 내외, 작은형님 내외, 당진 용부 형님, 사촌 경자 누님 내외가 참석을 했네. 전통 풍습대로 삼우제를 지내고 곧바로 인하 의하 가족과 우리 가족, 재하 형님 내외는 그 자리에 남아서 ‘상장예식서’를 가지고 삼우제 기도를 바쳤네. 이제는 그런 일에서 외롭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이 내게 어떤 흥겨움을 안겨주는 것 같더군. 그리고 우리 겨레붙이들은 제사상을 한갓진 자리로 옮겨놓고 즐겁게 음복을 했네. 어제와 달리 비도 뿌리지 않으면서 햇볕을 잘 가려주는 하늘 가득한 구름이 참으로 고맙고 정답더군. 의하 동생도 다음주일부터 아이들과 함께 안양의 범계성당에 나가기로 나와 약속했네. 정말 흐뭇한 마음이었네. 그리고 나는 집에서 준비해온 책을 내 당질들인 세미와 영근, 새롬이와 다솔이에게 주었네. 아이들은 봉투 안에 담긴 책을 꺼내보고, 책 안의 편지 봉투 속에 담긴 돈과 문화상품권을 보며 놀란 표정들을 짓더군. 비록 적은 금액이지만 그 돈과 문화상품권, 그리고 큰할아버지와 당숙의 책이 아이들에게 좋은 마음과 생각을 갖게 해줄 것으로 믿네. 점심 식사 후 작은어머니와 두 사촌 동생 가족이 떠나는 것을 배웅하고, 이곳의 사촌형님들과도 헤어진 다음 곧바로 집에 돌아와서 이 편지를 보충했네. 그리고 드디어 이제 전송을 하려고 하네. *어제는 내 아들 한결이의 14회 생일이었네. 어제 아침 천안 규애의 원룸을 나올 때 규애가 “오늘이 한결이의 생일이에요.”하고, 아빠도 잘 알고 있는 그 사실을 상기시켜 주더군. 저녁에 엄마가 한결이에게 2만5천원짜리 배드민턴 라켓을 선물했네. *12일 월요일 아침미사에 어머니가 미사예물 3만원을 준비해서 작은아버님을 위한 연미사를 봉헌하셨다고 하네. 이 메일을 읽은 천주교 신자 피붙이 겨레붙이들은 내 어머니처럼 위령미사를 봉헌하지는 못하더라도, 내 작은아버님의 영혼을 위해 기도해주기 바라네. 이 기록적인 긴 편지를 굳이 다 읽지 않아도 되네. 다 읽었는데 무슨 소리냐고? 그렇다면 고맙고…. 이만 줄이네.
(040714) |
| 번호 | 제목 | 등록일 | 작성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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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8794 | 박미경양에 관련한 정식 항의 입니다.|10| | 2004-07-14 | 유재범 |
| 68793 | 거쎈항의를 지우며...|15| | 2004-07-14 | 유재범 |
| 68792 | 주님, 그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1| | 2004-07-14 | 지요하 |
| 68799 | Re:지요하 형제님 보람 있는 일 많이 하셨습니다. |
2004-07-14 | 박여향 |
| 68808 | Re: 박여향 형제님 |
2004-07-15 | 지요하 |
| 68791 | 꽃동네사건에 대하여 궁금한분 들을 위해펀글(II)|2| | 2004-07-14 | 황명구 |
| 68790 | 꽃동네사건에 대하여 궁금한분 들을 위해펀글(I) | 2004-07-14 | 황명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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