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회 언론의 의혹 제기로 오 신부의 명예가 크게 훼손되었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많은데 오 신부는 어떤 반응을 보이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이금희 꽃동네 자원봉사자들인 저희가 걱정이 되어서 신부님께 너무 힘들지 않으시냐고 물었더니 오 신부는 이 사건을 오히려 주님께서 주신 은총이라고 해요. 성직자라서 그런지 괜찮으신 것 같아요.
임광규 저는 충주 지청장을 허위 피의사실 공표로 고발을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오 신부가 제지해서 못했습니다. 오 신부는 자기를 기소한 검사를 축복해달라는 기도까지 하시니 저는 정말 불만이 이만저만 아니었습니다.
또 내가 오 신부를 매도한 사람들을 나쁜 사람이라고 말했다가 오 신부에게 혼이 났어요. 그런 말은 입도 떼지 말라고 어찌나 야단을 치시던지 다시는 오 신부 앞에서 그런 말 꺼내지도 못합니다.
갑자기 어디 시장이라면서 “아, 지금 국제행사도 있는데 이곳에 버려진 사람이 많습니다”라는 전화가 오자 밤 10시가 되었는데 봉고차 타고 가서 싣고 옵디다.
죽을 때 죽더라도 술 먹고 자유를 만끽하려는 노숙자들 몇몇은 오지 않으려 한답니다. 간신히 데려다가 깨끗하게 씻기고 입히고… 그것 다하고 자면 새벽 2시, 그래도 어김없이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새벽기도하고 새벽미사 드립니다. 그리고 낮잠 주무시느냐? 낮잠도 안 주무세요. 그렇게 강행군을 하니 겉은 멀쩡한데 건강상태가 지금 굉장히 안 좋아요.
사 회 사실 꽃동네 문제는 오웅진 신부님만의 문제가 아니라 가톨릭 전체의 문제이면서 또 제 자신의 문제인 것 같아요.
며칠 전 자식이 있는데도 3살 아이를 입양해 키우는 부장판사 한 분을 만났어요. 또 문용린 교수님은 장관까지 하신 분이 자신의 마을은 자신이 지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자경단을 조직해서 마을 방범활동을 직접 하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활동을 주위에서 스스로 찾지 않으면서도 남이 이루어 놓은 일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습성도 있는 것 같아요.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우리 모두가 반성해야 할 점이 있을 것입니다.
이금희 천주교 신자들 중에도 후원 한 번 해본 적 없으면서 이 사건을 빌미로 열심히 봉사했던 교우들을 깎아내리는 사람들이 있어요. 아는 분이 공중목욕탕에서 불교신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니까 오히려 그 분들은 언론을 탓하더래요. 자기네 같은 사람들이 봐도 이것은 분명히 언론의 횡포라고 하면서….
꽃동네에서 6~7년 자원봉사 하면서 신부님을 가까이에서 뵐 수 있었는데 도와드리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우러나와요. 무조건적으로 비판하지 말고 자기가 직접 후원회에도 와보고 실제로 느낀 것을 가지고 말을 해야지 언론의 보도만 보고 다 아는 양 말 하는 것은 무책임한 것 같아요.
김화태 라자로 마을에 들어가면서 저는 이런 생각을 했어요. ‘나는 라자로 마을에 살러 왔는가 아니면 관리자로 왔는가?’ 관리자로 일하려면 함께 사는 분들한테 잔소리도 하고 이런저런 간섭도 하게 됩니다. 비용도 줄이고 질서도 잡아야 하니까요. 그러다 보니 ‘내가 이 어려운 분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며 봉사하는 것인가’ 하는 반성의 마음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이제부터는 관리자가 아니라 이분들과 한 가족으로 함께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었지요.
어떤 분이 밤늦게까지 혼자 앉아 TV를 보고 싶어 하는데도 “그 불 꺼! 불 꺼! 하게 된단 말입니다. 그때 혹 어떤 봉사자가 지나가다가 신부님이 “불 꺼, 불 꺼!” 소리 지르는 것을 보게 된다면 부정적으로 보지 않겠습니까? 저는 이런 경험들을 통해서 오 신부의 일거수 일투족이 누구에게나 좋게만 보였을 거라고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문용린 일반사람들이 바람을 피우면 그런가 하면서도 신부님, 수녀님이 바람을 폈다면 일종의 센세이션을 일으킵니다.
오 신부님 저렇게 되었다 하니까 여론의 아주 중요한 미끼가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거기서 어떤 일이 벌어졌다 하니까 신문에 특종감이 되고 말지요.
그런 면에서 우리 사회는 아주 천박합니다. 설사 오 신부가 정말로 범법행위를 했다 하더라도 지금 거기 있는 어려운 사람들을 생각한다면 센세이셔널하게 다룰 수 없을 것 같아요.
3천여명의 그 어려운 사람들을 수십 년 동안 돌보아 온 분이 설사 큰 실수를 했다 하더라도 과거의 일은 싹 잊어버리고 나쁘게 떠도는 이야기만을 침소봉대하는 것은 인간의 도리가 아니지요. 그런 좋지 않은 이야기를 다룰 때는 좀더 확인하고 신중하게 다루는 성숙함이 왜 우리에게는 없는 것인지….
7년 전에 미국의 어느 대학교수가 “컴퓨터를 하면 뇌가 망가진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어요. 다른 방송사보다 뒤쳐져 있어 늘 특종을 찾고 있던 미국 모 방송사 사장이 “이것 9시 뉴스에 최대 특종으로 날리자.”고 슈와네즈라는 앵커에게 지시를 했어요. 그러나 슈와네즈가 특종으로 보도하기 전 사흘간 조사를 해 보니까 이 연구가 너무 부실한 거예요.
내용을 그냥 보도했을 때 컴퓨터업자, 게임업자들은 다 죽게 되어 있지요. 이 사람이 사장한테 “이 연구가 그렇게 확실한 연구가 아니다. 기초연구도 부실하니 조금 더 기다려서 보도를 해야 되겠다.” 하니까 사장이 “그 따위로 하려면 당장 관두라!”고 하는 거예요. 내 양심에 비추어서 옳은 일을 하지 하며 몇 백만불 봉급의 그 좋은 앵커 자리를 즉시 관두고 맙니다.
그러나 미국사람들은 슈와네즈를 알아보고 인정해줘 지금은 더 큰 PBS방송에서 더 높은 위치에 있습니다. 슈와네즈 같은 사람이 뉴스를 총괄하니까 그 방송사에 대한 공신력이 더 커질 수밖에 없지요. 중견 지성인 집단이 그만큼 버텨주니까 오늘의 미국사회가 그나마 있는 거지요.
오 신부 사건도 조금 기다려서, 정말 진실이 무엇인지를 알고 나서 보도했어도 좋은데…
조흥식 우리가 천박한 게 사실이라면 이 사실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아요.
과거에 연말쯤 되면 “어느 시설의 누가 착복했다.”하는 기사가 나고 우르르 후원금이 떨어져요. 언론은 다음날 “불우이웃을 도웁시다!” 하면서 나서지요. 언론이 사회적 파급효과에 대해서 생각을 하는 건지 못 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오 신부님이 양적으로만 꽃동네를 키워오다가 복지를 질적으로 성장시키기 위해 현도사회복지대학을 만들어 교육도 하시는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가고 있던 차에 이 문제가 생겨 안타깝습니다.
최인수 퓨리처는 출근하던 첫날 바로 옆 양복점에서 난 화재의 범인으로 종업원이 잡혀가는 장면을 목격했고 “이 사람이 사장한테 앙심을 품고 불을 냈다”는 경찰의 발표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신문은 다 썼는데 퓨리처는 보도하지 않고 신중하게 취재해 보니까 정 반대로 양복점 주인이 보험금을 타기 위해 방화를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보도해 퓨리처는 기자가 된 첫날 아주 유명해졌지요.
이금희 꽃동네에 오는 사람들은 대개 가족에게 버림을 받아서 옵니다. 사랑이 결핍되고 가정이 파괴되면 나 자신도 올 수밖에 없는 거 아니겠어요?
지금 겉으로는 평화롭게 보이지만 정말 불안한 유리장 같은 가정들이 제 주위에 너무나도 많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만 참 신앙생활은 너무나도 부족한 것 같아요.
조흥식 이유야 어떻든 복지시설의 대형화에는 많은 문제가 있어요. 더구나 내가 중심이 되어 더 크게 일을 해야 되고, 더 많은 영향을 주겠다는 그런 시대는 이미 지났다고 봅니다.
저는 과거에 오 신부한테 두 가지 점을 이야기했어요. 하나는 “좋은 사랑도 좀더 효율적인 방법으로 해야 됩니다.”라고 한 것이고, 또 하나는 너무 혼자서만 많은 일을 하시려 마시고 각 성당이나 다른 성직자들한테도 알려주세요. 하느님의 일도 나누어 할 때 효과적이지, 혼자서만 많이 하시면 자꾸 규모가 커져 일사불란하게 되는데 그건 문제라고 말씀드렸죠.
김종철 이번 기회를 통해서 종교단체에서 운영하는 곳들이 투명해져야 한다고 봅니다. 저는 가톨릭 신자는 아닙니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언론의 감시도 필요하고, 조금 더 기도하는 자세도 필요할 것 같고요. 남이 한 소리 하더라도 열소리로 알아듣고, ‘조금 더 하는’ 그게 종교인들에게 바라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문용린 오 신부님이 유죄냐, 무죄냐 하는 것을 떠나서 이번 일이 우리 가톨릭 내부로 봐서 하나의 교훈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사회복지에 열정을 가진 제2, 제3의 오 신부님 같은 분이 나올 거거든요.
재작년에 미네아폴리스의 시의회 의장이 독직을 했어요. 슈퍼마켓에서 3년 동안 한 5만불의 뇌물을 먹었어요. 그게 밝혀져 난리가 났는데 시의회 의장의 아버지가 유명한 흑인 목사님이었대요. 그 일이 벌어지니까 그 목사의 아들인 시의장이 독직을 했다고 언론에 대문짝만하게 연일 나왔습니다.
‘미국도 똑 같구나!’ 생각하며. 일이 어떻게 처리되나 보니까 시의회가 제일 바쁘더라고요. 죄의 여부는 사법 당국에 맡기고, 시의회에서는 “왜 이 사람이 그 엄청난 일을 저지를 수밖에 없었느냐?” “어떻게 견제받지 않고 할 수 있었느냐?”를 분석했습니다.
“그런 짓을 못하도록 견제하는 감독기구가 없더라. 견제 안 받고 마음대로 결정해도 들통날 가능성이 없다면 누구든지 이렇게 범죄를 저지를 유혹이 생긴다. 이런 제도적인 장치를 안 해서 순수한 사람으로 하여금 범죄에 빠지게끔 하는 우리의 법적인 미비점이 있었다.” 언론은 연일 비난하더라도 의회에서는 토론하고 케이블TV 같은 데서는 법하는 사람들이 모여 그 허점을 면밀히 짚어보는 것이었습니다.
수사와는 별도로 모든 시의회 의원들이 업무분석을 하고 이러한 범죄가 일어날 가능성을 이중, 삼중으로 검토를 하고 그래서 법안이 만들어지는 것을 봤어요. ‘입법가들이 이런 것을 하는 것이구나!’ 감탄을 했습니다.
우리는 그런 일을 국회의원이나, 지방의원이 못해 주지만 가톨릭 내부에서라도 이번 사건이 교훈이 되어서 두 번 다시 오 신부님 사건과 같은 일이 발생되지 않도록 차가운 머리로 예방책을 만들 필요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강선옥 이번 사건은 오 신부님이 개인적으로 횡령한 것이 아닌데도 언론의 집중포화를 당한 것은 섭섭한 일이지만, 그렇게 매도당할만한 원인이 전혀 없었느냐 하는 점을 부각시켜 볼 필요가 있죠. 만약 우리가 이런 점을 더 깊이 심사숙고 하고 반성할 점을 찾는 노력을 한다면 이번 사건이 오히려 가톨릭을 한 단계 발전시킬 것입니다.
한미자 어떤 조직이든지 완벽할 수는 없습니다. 꽃동네도 마찬가지겠지요. 그렇지만 꽃동네와 오 신부님을 진흙탕에 빠뜨려서 무엇을 얻겠다는 걸까요? 지금 이 순간에도 거기서는 자기 손으로 밥을 떠먹을 수 없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고, 가족과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가엾은 분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어요. 이런 때일수록 꽃동네 뿐 아니라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들을 찾아가서 더 열심히 봉사하고 후원금도 더 많이 내자고 하는 이들이 늘었으면 좋겠어요.
이금희 지금 우리의 사회복지는 육체적, 경제적인 것에 치중하고 있어 정신적 고통은 좀 외면되고 있는 것 같아요. 상처받은 사람들의 마음을 치료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중요하다고 봅니다. 우리나라 소년의 집은 버리는 애들을 키우는 데이지만 필리핀의 ‘소년의 집’은 부모들이 키울 수가 없어 맡아달라고 위탁하는 곳이었어요. 방학 때만 엄마를 볼 수 있는데 한 시설에 3천명씩 있거든요. 그 많은 애들을 정말 사랑으로 가르치는데 아이들 표정이 너무 밝았어요.
예수님도 가난하셨지만 우리의 구세주가 되셨잖아요. 우리 모두 어려운 분들이 경제적 측면에서 벗어나는 데에만 관심을 가질 것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성숙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사 회 이번 사건은 아무리 훌륭한 일을 하는 사람이라도 조그마한 흠이라도 보이면 깊이 생각해 보지 않고 비난하는 우리사회의 천박함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었습니다. 한편 아무리 훌륭한 일이라도 그것이 조금이라도 불완전하면 누군가 비난한다는 교훈도 주었습니다.
또한 오 신부처럼 언론에 의해 명예가 훼손될 경우, 우리의 인권은 누가 어떻게 지켜줄 것인가 하는 심각한 사회적 양심의 문제도 드러났습니다.
이런 문제점과 교훈은 오신부를 비난하는 분들에게도, 비난을 받은 오신부에게도, 또 그것을 즐기거나 착잡한 심정으로 보아온 우리들에게도 좀더 자신들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오 신부 한 분의 희생으로 우리 모두가 성찰과 반성의 기회를 갖는다면 이것은 분명 하느님께서 우리 가톨릭에 준 커다란 선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선물을 고이 간직하고 감사하는 자세로 마음을 새롭게 가져 봅니다.
참 우울한 사건에 대해서 장시간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진실을 향해, 좀더 나은 내일을 위해 진지하게 토론하면서 복지문제라든지 또 언론문제 등 여러 가지 난마처럼 얽힌 문제들이 조금씩 풀려나갈 것이라는 희망과 확신을 갖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