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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박여향 형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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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요하 [jiyoha] 쪽지 캡슐

2004-07-15 ㅣ No.68808

 

†. 사랑·평화 (오소서, 성령님. 새로 나게 하소서)

 

 박여향 형제님

 

 형제님께서 평소 제 글을 관심 깊게 읽어주신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만, 소설같이 길고 지극히 사사로운 이번의 편지글도 읽어주시고 또 귀한 말씀까지 주시니 고마운 것은 물론이고 송구스러운 마음마저 듭니다.

 

 평소 형제님의 글을 읽으며 감미로운 평화를 느끼곤 했습니다. 형제님의 온유하고도 무게 있는 품성을 글에서 접하며 글의 향기라는 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인가, 숙연한 마음을 갖곤 했지요.

 

 저의 길고도 사사로운 편지글을 세심하게 읽어주심에 거듭 감사와 존경을 드립니다. 젊은 사람이 아니고 연세를 지니신 분이기에 좀더 그러실 수 있었으리라는 생각도 하면서….

 

 어제 작은아버님 삼우제를 지내고, 점심 식사 후 사촌 동생들을 떠나보내고 집에 와서 서울 금호동 성당 정 바오로 연령회장님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제 사촌 동생의 전화번호를 알려드리고, 제 사촌 동생 가족을 성당에서 보게 되면 잘 안내해 주실 것을 부탁드리기 위해서였지요.

 

 그런데 정 회장님은 이미 제 사촌 동생의 집 전화번호를 알고 계시더군요. 이곳에서 장례를 치르고 서울로 돌아간 날 버스에서 내렸을 때 제 사촌 제수씨가 회장님께 말했답니다. 다음주일부터 어머니 모시고 온 가족이 함께 성당에 가겠다고…. 스스로 그런 약속을 하면서 제수씨가 회장님께 전화번호 적은 쪽지를 드렸다고 하더군요.

 

 그 얘기를 해주시면서 정 회장님이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우리도 날씨 걱정을 많이 하면서 열심히 염습 봉사와 기도 봉사를 했고, 그것이 유족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었겠지만, 우리는 지 선생님이 평소에 작은아버지와 사촌들에게 어떻게 처신했는지를 미루어 알 수 있었습니다. 지 선생님의 평소의 처신이 오늘의 이런 일을 가져왔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정 회장님의 그 말씀을 듣고 저는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끄러웠습니다. 그 동안 저는 작은아버님께만 처신을 잘했을 뿐입니다. 작은아버님께서 명절이나 한식날 고향에 오실 때마다 5만원씩 적은 금액이나마 용돈 드리는 일을 잊지 않았고, 안질 치료에 돈이 많이 들어간다고 하셔서 40만원을 보내 드린 일, 또 10만원씩 몇 번 송금을 해드린 일이 전부지요.

 

 해마다 정월 초하루와 작은아버님의 생신에는 꼭꼭 전화를 드렸지만, 그건 누구나 하는 일이고….

 

 그랬을 뿐 사촌 동생들에게는 별로 신경을 쓰지 못했습니다. 오죽 신경을 쓰지 않았으면, 이번 글에도 나타났듯이 사촌 작은 동생의 아이들, 엄마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자라는 그 가엾은 어린 당질아이들과 처음 식사를 하였다고 했겠습니까. 생각하면 참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래도 사촌 동생들이 저를 늘 고마워하고 깎듯이 대접해주고 존경해주니, 그저 감사할 뿐이지요.

 

 뜻밖에도 박여향 형제님에게서 김승훈 신부님 얘기를 듣게 되어 더욱 반가웠습니다. 형제님의 글을 읽고 나서 다시 한번 김승훈 신부님의 모습을 떠올리며 이미 아스라이 멀어진 1976년의 신림동 성당 풍경을 떠올려볼 수 있었습니다. 아직 서른이 되지 않은 청년 시절이었지요. 일년 동안 서울바닥을 구르면서 신림동 성당에서 청년회 활동을 했지요. 당시 신림동 성당의 전례봉사는 청년회 몫이었고요.

 

 고향 성당에서 오래 전례봉사를 한 경험을 살려서 신림동 성당에서도 전례봉사를 열심히 잘했지요. 대부분 저보다 나이 어린 청년회원들에게 꽤 인기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때 저를 좋아하는 아가씨도 있었고….

 

 청년들을 아끼신 김승훈 신부님의 온화하면서도 자상하신 모습은 늘 저의 뇌리 한 편에 아련한 그리움으로 남아 있습니다.

 

 제가 이듬해인 1977년 마산화력발전소로 내려가서 굴뚝 청소부 노릇을 하게 됨으로써 신림동 성당 생활은 단 일년으로 그치고 말았지만….

 

 형제님께서 김승훈 신부님께 혼배성사를 받으시고 계속 영적 지도신부님으로 모시고 사셨다니, 부러운 생각도 듭니다.

 

 저는 지난 11일 주일 저녁 금호동 성당에 몸을 넣는 순간 불현듯 28년 전의 신림동 성당 추억이 떠오르더군요. 아마도 참으로 오랜만에 서울의 성당에서 미사를 지내게 되었기 때문인 듯싶습니다. 1980년인가 영등포의 어느 성당에서 노동판에서 만난 포크레인 기사 친구의 결혼식에 가서 사회를 보아준 일이 있긴 한데, 어떤 성당이었는지도 기억이 명확치 않고….

 

 박여향 형제님, 형제님과 함께 김승훈 신부님을 추억할 수 있게 되어서 더욱 반갑습니다. 언제 한번 뵙고 싶습니다. 혹시 여기 태안반도 쪽으로 걸음을 하시게 되면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제 글을 세심하게 읽어주심에 다시 한번 감사 드리며, 향기를 지닌 형제님의 글을 계속 읽게 되기를 바랍니다. *

 


 (040715)
 충남 태안읍 샘골에서 지요하 막시모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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