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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북한이탈주민의 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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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과희망사목연구원 [gaudium95] 쪽지 캡슐

2004-08-02 ㅣ No.69519

한 북한이탈주민의 호소

 

<김태영(가명), 스테파노/북한이탈주민> 

 

저는 1958년 1월 8일 함경남도 북청군에서 11명의 자녀 중 둘째로 태어났습니다. 지지리 가난하게 살아오다가 1995년부터 굶어죽는 사람들을 수없이 보면서 또 아버지는 관절염으로 저는 복부에 심한 통증으로 몸이 망가지는 것을 견디다 못해 1998년 7월에 두만강을 넘어 중국 땅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중국 흑룡강성 목란강시 온춘이라는 곳에서 선반공으로 일하면서 천주교 신자들의 도움으로 건강도 많이 회복했으며 하느님을 믿는 신앙인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나라 없는 백성으로 산다는 것은 상갓집 개보다도 못한 신세라는 것을 깨닫고 한국으로 가는 것만이 내가 사는 길이라고 결심하고 치안과 경찰의 눈을 피해가며 깊은 산속을 헤매고 죽을 고생을 하면서 2001년 7월 17일에 태국의 수도 방콕에 있는 유엔본부에 간신히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중국에서 태국까지 죽지 않고 살아 건너왔다는 사실을 돌이켜 생각하는 순간이면 그때는 오로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강행군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을 알고부터는 그 일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는 것, 내가 하느님을 알기 전에 이미 하느님께서 나는 돌보셨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2001년도 11월 16일 태국에서 한국에 도착하여 하나원에서 교육을 마치고 2002년 2월 7일 전남 여수시로 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부지런히 일하면 나도 이 사회의 일원으로 잘 살 수 있을 것이라는 목표를 두고 미화원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집에서 새벽 5시 버스를 타고 출근할 때나 수없이 많은 차들이 다니는 도로를 비질할 때 나 또 청소차를 타고 다니면서 도로 구석구석을 말끔히 치우면서 힘들다는 생각보다는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 일하는 것이 얼마나 다행이며 얼마나 축복받은 일인가를 생각할 때 늘 하느님께 감사의 정을 느낍니다.

긴장과 두근거림이 교차되면서 오로지 열심히 사는 일에만 전념했던 시간들이 몇 년째 흘렀습니다. 그러는 동안 내가 겪었던 일들과 주변의 형제들이 겪는 일들 안에서 서로 마음이 통하고 동질감을 느끼면서 우리들의 대화의 폭은 넓어져 갔습니다.

또한 최근 몇 년 사이 북한이탈주민의 수가 늘어가면서 남한사회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것이 이제 나의 문제에서 우리의 문제로 발전해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에게 따뜻한 배려와 관심, 애정의 눈길을 보내주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인식 부족에서 오는 외면, 무시, 소외감, 곱지 않은 시선, 비인간적 태도를 취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그래도 통일을 이루어 나가는 첫걸음으로 함께 사는 우리들을 보듬어주셨으면 합니다. 더 나아가 평화적 통일을 갈망하는 이 사회에서 북한이탈주민들은 가까운 미래에 남북한 주민들이 함께 어울려 사는 통일사회의 기초환경을 조성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이들로 봐주셨으면 합니다.

이러한 인식의 변화와 노력들이 우선될 때 비로소 반세기 동안이나 불러 온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우리 민족의 노래로 후손들의 역사 속에 자리잡게 될 것입니다.

 

기쁨과희망사목연구원 후원회 소식지 8월호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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