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본래 개신교인을 목표로 쓴 글이지만
천주교인 분들도 참고할 만한 글이라 생각되어 올립니다.
(유감스럽게도 필자는 이 글에서 '기독교'를 '개신교'의 의미로 쓴 듯 합니다)
정도를 벗어나는 개신교인을 보면서 제 스스로도 반성합니다.
혹시 내가 정도를 벗어난 것은 아닌가 말입니다.
| 번호 |
42324 |
올린시간 |
2004-08-02 09:52: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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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한국 기독교, 이대로 좋은가? |
글쓴이 |
철철히(byii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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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독교인이 아니고 성경을 통독한 일도 없다. 그러나 기독교 교인들한테서 들은 많은 키워드와 중요한 성경 구절들을 종합할 때 기독교의 기본적인 구조는 쉽게 알 수 있었다.
1). " 종교" 의 의미와 그리고 윤리학은? 종교는 무리 "종" 자와 가르칠 "교" 자로 쓴다. 어느 무리의 그 " 무리다운 격" 즉 사람이라는 무리에게는 사람다운 격(인격 교육) 을 가르치고자 하는 것이 종교라는 얘기다. 유교에서는 이 교육이 조상으로부터 대대로 전수되었고(효의 사상) 기독교에서는 이 교육 내용이 하느님의 말씀으로 성경에 쓰여 있다. 인간은 하느님이 창조했다고 하니까 유교에서와 같이 하느님이 낳고 하느님이 가르친다고나 할까? 이 말은 지금의 의식 수준으로 말하면 고작 학교에서 흔히 말하는 전인 교육의 개념을 하느님의 말씀과 동일시하느냐? 말 같지 않은 소리하지 말라고 할지 모르지만 예수가 탄생할 그 당시의 미개한 시대 상황에서는 인간을 총체적이고 체계 있게 영원한 진리의 개념으로 교육한다는 것은 선각자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성업이었을 것이며 예수의 권위가 크게 인정받게 된 것은 이 때문이리라. 지금도 그러한 교육적 의의는 매우 중요하다.
2) 주요 어휘의 교육 적 측면 더 보기. 내가 기독교의 교육 이념이나 내용 을 모두 말하는 것은 전혀 나의 능력 밖의 일이다. 다만 기독교의 중요한 어휘가 어떻게 교육적인 의미를 갖는가를 좀더 말하고자 한다. 기독교는 인간의 존엄성과, 만민 평등의 박애주의 사상과 그리고 세계 평화주의를 교육 이념으로 하여 개인의 원만한 인격 형성과 건전한 사회의 건설을 목표로 하고 있다.( "구원" 의 뜻, -->김원웅 목사가 옥한음 목사와의 대담에서 개인의 "구원" 과 사회의 "구원" 을 언급했다 함). 이 가르침은 절대적 이어서 하느님을 절대자로 모시고 오로지 "찬송" 하여야 하며(찬송가의 의미) 가르침을 위반하면 "회개" 를 하여야 한다. 같은 사안에 대하여 두번 이상 회개하는 것은 하느님에 대한 기만 행위 이니 회개를 밥 먹 듯 하지 말아야 한다. "성경" 에 쓰여 있는 하느님의 가르침은 삶의 "진리"요 "길" 이니라. 이를 완수하면 육체는 죽어서 썩어도 그 의 "삶의 가치" 는 영원한 것이니 "온전한 삶의 영 적 주체" 로 인정받아 곧 "영생" 을 누리 게 된다는 말이 된다. 따라서 "내가 곧 생명" 이니라. "하느님의 축복을 받는다" 는 말도 같은 맥락이다. "영생" 의 뜻이 이것이 아니라면 이는 "천당" 과 함께 "상상의 세계" 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가르치는 진리를 깨닫고 저 몸부림치고 그의 실천 의지를 다짐하는 것이 "기도" 이거늘 " ........하게 하여 주소서, 또는......를 이루어 주소서" 라고 기도할 때 교인들이 쓰는 그 상투적인 말은 과연 그런 의미로 쓰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이명박 서울 시장이 서울을 하느님께 봉헌한다고 했다가 말썽이 생기니까 그 기도문을 써준 목사도 말하지 않았나? "봉헌" 이란 말은 서울을 발전시키겠다는 "강한 의지" 의 표현으로 썼다고). 기도가 그런 의미의 것이 아니라면 그 기도는 기복신앙 에서 무당들이 하는 짓과 조금도 다를 바 가 없게 된다. "에덴 동산의 선악과 이야기" 는 감정을 버리고 이성을 택하라는 말을 유치원생들에게 말하듯 한 것이다. 옛날 촌부 할머니들도 말했다. 착한 사람이 되어야 "천당" 간다고! "천당" 은 기독교의 전유물이 아니며 이성을 아는 올바른 교육을 받은 사람이면 누구나 한번씩 동경 해 볼 수 있는 보편적인 이상의 세계다. 온갖 "기적" 과 "간증" 의 이야기는 하느님의 가르침에 대한 확신을 갖게 하는 유용한 교육 수단으로 썼을 법하다.(교통과 정보의 소통이 거의 없는 원시적인 사회에서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하는 모습을 봤다는 데는 어찌 하겠나?)
3) 기독교의 교육원리의 한계 하느님의 교육적 명령은 절대적인 윤리관 이어서 무조건 적으로 복종해야지 앞에서 내가 말한 바와 같은 비판적이고 평가하는 말들이 일체 허용되지 않는다. 하느님의 머리 위에 올라가려는 교만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느님 말씀에 대한 "무조건적인 복종과 절대성" 은 다양성과 변화를 요구하는 현대 문명 사회에서 적응하기 어려운 운명적인 한계 에 직면 할 수밖에 없다. 융통성 없는 절대적인 윤리관을 끝까지 견지하는 젊은이들은 이 사회에서는 무능력하다. 성경의 내용이 비유화법과 추상적인 언어로 되어 있어서 어느 시대 어느 사안에도 적용 할 수 있는 방식으로 탄력적인 강론을 할 수는 있다.(그럴 경우 오늘은 "진리" 라고 강론했든 사안이 내일은 진리가 아니라 고 하게 될 수도 있음). 하지만 그러한 능력을 가진 성직자가 과연 있겠나? 나는 예수밖에 없었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것이라 믿는다. 현재의 모든 교회가 기복 신앙의 성격이 짙게 풍기는 것도 바로 이 한계성을 극복하지 못한 데 대한 대안으로서의 현상이 아닌가 싶다.
4) 무당, 무속과 잘 구별되지 않는 기독교 대부분의 기독교 신자들이 전도하는 말을 들어 보면 --- "예수 믿어 천당가세요"--- 라는 것이다. " 예수를 믿는다" 라는 말의 뜻을 "가르침" 과 관련지어 말하는 이는 거의 없고 그저 교회만 나가면 천당 간다는 것을 설득하느라 하느님 의 전지 전능 한 권능과, 기적과 ,간증의 이야기들만 늘어놓기만 하면서 기복 신앙의 냄새를 확확 풍긴다. 나는 우연히 신학대학교 교재 신학 개론의 앞부분 몇 장을 읽은 적이 있는데 우리나라와 같이 역사적으로 온갖 잡탕 신앙이 뒤섞인 나라에서는 이의 영향을 받아 교리가 크게 왜곡 될 수 있다는 내용이었는데 딱 맞는 말이다. 기도하는 말을 들어 보라. 온통 ".....하여주소서" ".....을 이루어 주소서" 하는 말이 기도 내용의 전부다. 교회에 가서 설교하는 내용을 들어 보라. 온통 하느님에 대한 찬양으로 시작하여 하느님에 대한 찬양으로 끝난다. 찬양은 한 두 번으로 끝나고 하느님의 가르침을 현실 생활에 조명하고 하느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설교가 주를 이루어야 되는 것 아닌가?. (김원응 목사가 "오늘날 성경의 재해석" 이 필요하다는 말을 했다는데 이 말은 결국 내 말이 틀리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이것이 교인 한사람 더 늘이는 것보다 더 참된 의미의 " 전도" 행위 가 아닌가? 얼마 전 청주 의 한 여고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가 퇴직한 내가 잘 아는 L 씨는 장로이고 처녀 총각 때부터 교회를 다니던 사람인데 퇴직 후 체면과 권위가 도전받을까봐 걱정했는지 다니든 교회를 저버리고 나온 것도 문제려니와 지금은 여자 측에서 혼자 남편의 반대를 무릅쓰고 "의심받는 이단교회" 로 나가고 있다니 과연 "이단" 을 가려 낼 수 있을 만큼 의 기독교 기본교리를 아직도 터득하지 못했단 말인가?, "기복" 만을 일삼아 왔으니 터득했을 리가 없다.
5) 빗나간 교회를 목사들은 알고 있을 것. 신학대학교 교재에 나오는 중요한 몇 가지 명제들과 교회 현실이 너무 다르기 때문에 내가 하는 말이다. 종교를 제대로 알려면 높은 철학적 지식이 요구된다. 대부분의 교인들이 나이 많은 늙은이 들이고 안 여자 들 이어서 하느님의 심오한 생활 철학을 늘어놓으면 교인들 이 다 떨어 저 나가기 때문에 목사들로서도 어쩔 수 가 없으리라. 또 모든 삶을 커버하는 철학을 강론할 능력도 없으니 차라리 기복신앙을 그대로 방치하고 동조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종교를 뜻하는 영어의 "religion " 도 생활의 길잡이로서의 "신조" 라는 의미를 함께 지니고 있는데 불교와 함께 우리나라 의 정신문화의 큰 축을 이룬다는 기독교가 과연 기복신앙으로 이대로 방치 돼 있어도 되는 것인지 한심스러워서 목사들에게 묻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대답은 이러할 것이다. "오!!! 잃어버린 양 이여!!" 그러나 그 잃어버린 양은 이 사람 "나" 가 아니라 전국 교회에서 눈물을 흘리며 복을 빌고 하느님을 우상 섬기듯 하는 빗나간 신앙인 들일 것이다. 신병을 고쳐준다고 일반 교인들을 현혹하는 목사들일 것이다.
6) 기독교 성직자 어느 분 ! 나는 기독교를 부정하지는 않았습니다. 나에게 설교할 생각은 마시고 기도교의 현주소에 대한 솔직한 고백을 들려주실 분은 없는지요? "모든 교인들의 수준이 그러하니 할 수 없다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