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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편의 행복한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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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선 [peterpan65] 쪽지 캡슐

2004-08-09 ㅣ No.69787


제가 살고 있는 동네에 팔순은 훨 넘었을 법한, 백발에 이라고해야 달랑 서너개 달고 계신 주름살 깊고 많으신 행색이 초라하다고 표현할 수 있는 할머니 한분이 있습니다.

매번 아내가 학원 끝날 시간에 맞춰 마중을 나가면 어김없이 손자를 포대기에 싸서 업고 나와 계십니다.

요즘 같은 방학 때야 일찍 학원이 파하는 관계로 만나뵙기 힘들지만 방학 전때만해도 거의 매일 마주쳤습니다.

그 할머니가 업고 있는 아기는 우리 아들 녀석과 태어난 시점이 거의 비슷해 보여서 우리 부부가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습니다.

물론, 이유를 하나 더 추가한다면 맞벌이 우리를 위해서 저의 본가에서 부모님께서 저희 아들을 키우는 바람에 주말에 겨우 가서 안아보는 우리로서는 더욱 그 아기를 지나치지 못합니다.

녀석도 우리 아들만큼 이쁘게 생긴 것이 여간 귀엽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서로 언어가 달라 통역이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그 할머니의 발음상 도무지 같은 한국말이라도 통역이 되질 않습니다.

다 빠지신 이 때문에 우리가 "몇 개월 됐어요?" 혹은 "이름이 뭐에요?" 하고 물으면 무어라고 말씀을 하시는데 이건 도통 발음이 새는 탓에 해석이 불가능 합니다.

그런데 아내는 신통하게도 그 언어를 참 잘도 해석합니다.

제가 보기엔 아내는 한국말로 얘기하고 그 할머니는 지구밖에 있는 외계인의 용어를 쓰고 있는 것 같아 보이는데도 둘은 참도 대화를 잘 합니다.

그럼 전 할머니 등에 업힌 아기와 눈을 맞추고 까꿍! 얼레리~~하며 아기와 대화를 합니다.

그러다 빠이빠이 하며 헤어진 다음 아내에게 아까 그 할머니께서 무슨 말씀을 했었는지를 통역을 부탁하곤 합니다.

그렇게 저렇게 늘 밤이면 만나는 그 아기와 할머니에게 정도 들게 되었습니다.

또 저희 동네에 30대 정도로 보이는 부부가 있습니다.

이 부부는 늘 아기를 유모차에 끌고 다니며 산책을 종종 합니다.

유모차의 아기는 남들이 잘 보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한 밤에도 이 부부는 유모차 상단에 달려있는 햇빛가리개를 푹 뒤집어 씌워 다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요즘 아들 녀석뻘쯤 되는 아기들만 보면 거의 습관적으로 "몇 개월이에요?"하고 묻는 것이 일반화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 부부에겐 물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이유는 이 부부는 남들이 흔히 말하는 장애를 안고 사는 부부이기 때문입니다.

신체는 멀쩡한데 정신상 약간 장애를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두 부부는 그 유모차를 끌고 다니며 둘이 그렇게 정다워 보이고 사랑의 눈빛을 주고 받으며 다닙니다.

아기의 엄마는 늘 헤~하며 약간 바보스럽게 웃고 다닙니다.

아기의 아빠는 엄마보다는 좀 나아 보이기는 합니다만 어딘가 모르게 사람들로 부터 연민의 정을 불러 일으킵니다.

그렇게 아기를 끌고 다니는 부부는 늘 행복해 보입니다.

어느 날 아내가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며 제게 호들갑을 떱니다.

학원 주변에서 거의 매일 아기를 안고 기다리는 할머니가 그 부부의 어머니라는 이야기 입니다.

그렇다면 할머니가 안고 있는 아기와 그 부부가 유모차에 끌고 다녔던 아기는 동일인 이라는 결론입니다.

할머니는 시장에서 장사하며 늦게 귀가하는 아들과 며느리를 밖에서 기다렸던 것입니다.

또 아기는 밤만되면 자기 엄마, 아빠를 기다리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졸려서 그런 것인지 시간만 되면 울고불고 난리를 펴서 겸사겸사 할머니 등에 업혀 동네에 나와 장사 끝내고 늦게 귀가하는 자기 가족들을 기다렸던 것입니다.

처음에 우리 부부는 그 할머니가 업고 있는 아기와 그 부부가 가끔 끌고 다니는 유모차 속의 아기가 동일인인지 몰랐던 것입니다.

그 후부터 더욱 그 아기에게 정이 생겼습니다.

우리 부부는 그 가족들에게 무엇인가를 해줄 일이 없을까?를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단지 불쌍해 보여서가 절대 아니라 그냥 우연히 정이 든 계기로 무슨 선물이라도 해줄까?하는 마음에서 였습니다.

요즘 생활이 힘들어서 일까요?

그 할머니께서 요즘 생활전선에 뛰어드셨는지 동네에서 파지나 빈병등을 모아 팔고 다니는 모습을 아내가 본 모양입니다.

아내는 엊그제 학원에서 이제 쓰지 않는 교재들을 꼼꼼히 정리해 일부러 할머니 만나기만을 기다리다 이틀 만에 발견한 할머니를 불러 세워 그 교재들을 주었답니다.

할머니 고마우신지 동네 구멍가게로 들어가시더니 야쿠르트 한줄을 사다 주더랍니다.

그 자리에서 마셔야 한다면 한개, 두개...세개째를 일부러 까서 아내의 입에 계속 넣어 주더랍니다.

배 터지게(?) 야쿠르트를 마셔댄 아내가 집에 와서 제게 자랑을 합니다.

참으로 이쁜 아내...

그래서 내가 당신에게 반했던거야 하며 살포시 안아주었습니다.

이제 그 할머니 등에 업힌 녀석이나 우리 아들 녀석이 장난감에 정신 팔릴 때가 온다면 작은 장난감이나마 선물할 몫은 저의 몫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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