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삶으로 나아가는 길
사람들이 거룩함의 길로 가고 싶어하는 마음은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다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도 거룩함으로 나가고 싶은 반면
실제로 나 자신이 그 거룩함으로 나가기 위해
얼마나 행동하며 노력하고 있는가를 생각할 때
아직까지 자신은 하느님께서 이끌어주시기만 바랬지
실제로 행동하고 있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때로는 그것을 깨닫기 위해 단식도 합니다.
그리고 사랑을 깨닫기 위해 희생도 하고
불우한 이웃을 돕겠다고 봉사도 해보지만
정작 변화되고 고쳐져야 할 나의 삶의 조건은
개선되지 않고 그 자리에 머물고 있습니다.
자신의 많은 물음에 그것은 기도를 게을리 하였다는
공통적인 답을 찾아내게 됩니다.
그래서 열심히 기도생활을 하겠다고 기도방도 만들고
매 시간을 기도 속에 정진시켜 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별다른 변화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나를 받아주시지 않는 것일까?
별의별 생각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쳐지나갑니다.
허지만 오늘날까지 말씀을 먼저 경청하는 것이
기도의 시작이라는 이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내 자신이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하느님의 믿음에 대해 심화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진실된 기도가 이루어질 수 있겠습니까?
이제 어렴풋이 느껴지는 것은 아무리 선한 의도라도
성령께서 요구하시는 희생이 되어야 하고
동료들과는 전혀 다른 외롭고 고통스러운
책임을 져야하는 희생을 통해서
나 자신이 속해 있는 사회적 집단의 한계를
극복해 나가지 못한다면 깊이와 부재와 편파성 때문에
그리스도를 온전히 본받을 수 없다는 것을
느껴가고 있습니다.
어쩌면 나 자신은 성서를 읽어가면서도
그저 도덕적인 습관으로 읽는 것에만 도취되어
정작 우리들이 깨달아 나가야할 중요한 부분을
가슴에 담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하느님의 이름은 성서 안에서 축복입니다.
또 성서의 한 장 한 장은 하느님 사랑의 학교입니다.
그리고 성서는 체험에 대한 증명록입니다.
내가 거룩해지기를 원하면서도
내가 그리스도화 되기를 희망하면서도
그리스도의 삶을 살아가지 못한 것은
성서시대의 체험과 오늘날의 현대시대의 체험과
중간 다리를 놓아주는 교역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고 하지만
그리스도화 되어 가는 삶을 살아가지 못한 것입니다.
구약성서를 읽어가다 보면 등장하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비참하고 어렵게 살아간 사람들인데
그들은 결코 하느님으로부터 외면 당하지 않고
모두가 구원을 받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제 조금은 깨달아지는 것 같습니다.
그 동안 나는 세상의 좋은 것들을 즐기는 가운데
이따금 "나 자신의 의향"을 바르게 함으로써
"하느님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고
자처하는 정도의 신앙생활을 해 나왔는데
이러한 막연한 장신자세가 나를 좀먹게 했고
나를 더욱 초라한 변명으로 몰아갔다는 것을
조금씩 깨달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기도는 하느님과 맺어지는 친밀한 관계인 동시에
최상의 선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머리로 가식적인 글들로 꾸미지 않고
마음으로 우러나오는 이야기를 끊임없이
바쳐져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내 영혼의 빛이요 하느님께 대한 참된 앎이며
하느님과 사람 사이를 중재하는 고리입니다.
기도는 하느님을 갈망하는 사람이
하느님의 은총을 받아 맑은 샘물과 같이
거룩한 삶으로 변화하는 하느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영원에서 영원으로
섬돌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