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 ‘서울 교구 사제들의 공동체에 대한 애정과 일치의 모습 구현’ 및 ‘시노드에서 나타난 교우들과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사제상 - 신자들의 바람’
이것들 특히 ‘서울 교구 사제들의 공동체에 대한 애정과 일치의 모습 구현’은 한마디로 쉽게 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고 서울 교구에 관한한 지난날의 사회현상과 사제단의 모습을 잠깐 짚어보아야 오늘날 왜 사제들의 일치와 애정이 흐트러졌는지의 진상을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교회는 언제나 교회내 문제도 그렇고 사회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많은 문제와 갈등을 갖게 마련입니다. 노대주교님때 교회는 비판적 경향신문(당시에는 서울교구운영, 유력일간지)을 중심으로 이승만 독재정권과 매우 껄끄러운 관계를 가졌는데도 주교님과 사제단의 유대는 견고했습니다. 그러던 중 박정희 장기독재 군사정권의 등장으로 교회는 1970,80,90년대 30년간에 걸쳐 정치적 문제에 휘말려 어느 시기에는 사제단이 거의 두 동강이 나다시피 했습니다. 그런 현상이 단적으로 표출된 것이 1973년으로 생각됩니다만 서울 장춘동분도회에서 있었던 이른바 정의구현사제단에 대항하는 구국사제단의 모임이었습니다. 그때 총대리였던 김철규 신부님이 혜화동신학교로 저를 찾아와 그 회의에의 참석을 간곡히 종용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사제단을 2분하여 나이가 있는 측 따로, 어느 연령이하는 따로하는식의 회의 특히 시국문제로 갈라져하는 사제회의에는 참석할 수 없다고 하며 불참했습니다. 그것은 제 생각으로는 정치 사회문제는 어차피 시간의 흐름속에서 해결되게 마련이고 교회는 여야를 떠나 하느님의 입장에서 올바른 길을 가르치고 신자들이 사회의 주역이니 신자들이 자기의 양심에 따라 행동하게 하는 것이 정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함으로써 야에는 물론이고, 여에도 영향력을 행사 할 수 있고 사회전체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럴 때 교구장님의 태도가 매우 중요합니다. 그 당시 김수환 추기경님은 자신의 의도는 어쨌든 사회 일반은 정의구현사제단일변도의 입장이라고 인식되어 있었습니다. 정치 사회문제도 중요하지만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사제단의 분열을 막고 강력한 일치를 보존하는 것입니다. 그 때 극한적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정의 구현측과 구국측이 분열되었다고 저에게는 비쳐졌던 것입니다. 그런 와중에서 사목자들이 말로는 사목의 중요성을 강조했지만 실제로는 사목은 뒷전이 된 느낌이었습니다. 사제단이 정치적문제로 분열되고 사목에 대한 사제들의 마음이 해이해지면 생명의 희생까지를 무릅쓰고라도 지탱해야할 사제들의 일치와 사목적 본 모습을 되찾아 오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을 지금도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특히 정치적 문제가 사제들의 분열의 계기가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한 마디로 사제들 특히 본당 사목자들은 정치적 권력과는 불원(不遠) 불근(不近)의 입장에 서 있어야합니다. 그것은 본당신자들 중에는 여도 있고 야도 있고 중간도 있기 때문입니다. 특수 사목사제들은 담당분야에 서는 것이 이치에 맞겠습니다. 사목자들은 자기구역내 모든 신자의 목자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저는 반정부 데모가 극심할 때 명동 주임신부로서 ‘나는 여야와 중간에 서 있는 모든 신자들의 목자, 아버지’라는 점을 분명히하여 미움과 투쟁심으로 가득찬 데모를 명동성당에서 잠재운 일이 있습니다. 그 때 데모분위기는 여당은 악이고 야당과 데모군중은 무조건 선이라는 관념에 사로잡혀 악이라는 여는 명동성당에 들어 올 수 없는 형편였습니다. 저는 주임신부로서 정말 악인이라면 더욱더 성당에 와서 은혜를 받아 하느님과 화해하고 사람들과 화해해야한다고하며 성당 출입을 가로막는 어떤 형태의 폭력도 용인 할 수 없다는 단호한 입장을 취했습니다. 사실 하느님 이외에 그 누구도 누가 선인인지 누가 악인인지 단정 할 수 없다는 것을 명백히 했습니다.
이 점은 앞으로 말 할 교황청에서 있었던 「제8차 주교 시노두스」(1990)때도 분명하게 드러났습니다. 제가 「종합대학안에서의 사제양성」이란 제목으로 동양을 대표하여 발표할 때 한국의 정의구현사제단의 업적을 치하한 몇마디를 삽입했습니다. 발표가 끝나고 휴식시간에 톰코 추기경님을 위시하여 교황청 몇몇 추기경님들이 발표의 다른 부분들에는 대찬성이면서도 정의구현사제단 부분에서는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했습니다. 이 점을 무마시키느라 저는 애를 먹었습니다. 교황청은 사제들이 정치문제에 있어 어느 파당적 형태를 띠는 것을 매우 못마땅해하는 것이며 그것은 평신도들의 몫이란 것이 교회의 입장임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물론 사제가 어느 당파에도 관련되지 않고 정정당당하게 자기의 소신을 밝히는 것은 옳은 일입니다. 사제도 개인적으로는 어떤 정당을 선호할 수 있습니다. 사제들은 사제신분으로서는 복음과 교회의 가르침을 분명히 하며 신자들에게 잘 전달해 그들이 정치, 사회문제 등 구체적인 세속적 문제를 어느 편에 있던 양심적으로 수행케하라는 것이 저의 진의였습니다. 사목적 위치에서 사제들은 어떤 정권에든 교회의 가르침과 복음적 정신에서 시시비비를 말해주어야 할 것입니다. 사제가 권력의 맛 그것에서 따라나오는 금력의 맛을 보고 권력층과 일체가 되어 종교의 탈을 쓴 정치인이라는 비난을 받게 되면 안되겠습니다. 이런 비난 특히 사제들이 정치적 권력과 결탁되었다는 비난은 군사정권시대에도 있었고 오늘도 있는 것입니다.
교회와 사제가 하는 모든 것은 사목적이어야 하겠습니다. 그렇기에 교황청은 정치문제나 사회 경제문제라 할지라도 너무 구체적으로 개입하는 고위 성직자들 특히 교구의 책임자들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경고를 하는 것이 사실이고 우리나라 또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라틴 아메리카의 아른스 추기경, 까마라 대주교, 보프 신부 등에 대한 불호의(不好意)적 교황청의 태도는 분명했으며 그것은 오늘에 이르러 옳았다는 평가입니다. 물론 교회가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를 통해 또 앞으로도 정치, 사회, 경제, 환경, 과학, 기술, 기아, 분쟁, 전쟁, 평화, 인권 등등 문제에 계속 발언하며 올바른 인간상, 자연상, 우주상의 실천을 촉구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교회의 입장은 여・야나 어떤 국가, 민족, 지역 등에 편중하지 않고 만인의 아버지 하느님의 입장에서 하느님의 모습인 인간과 그 흔적이 담긴 자연과 우주를 지키고 풍요롭게 한다는 입장에서 할 것입니다. 이러저러한 요인들이 복합되어 오늘 서울대교구사제들은 그 중심인 교구청으로부터 마음이 떠나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서울 신부님들이 교구청으로부터 소원해진 이유는 물론 여러 가지이겠습니다만 큰 이유 중 하나는 교구장님의 사제들에 대한 아버지다운 애정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교구장님은 아버지의 애정과 사목적 열성으로 발로 뛰어 사제들을 만나야합니다. 그들의 고통과 소망을 마음으로 같이 느끼며 들어주어야 합니다. 그럴 때 교구장과 사제의 일치, 사제들간의 일치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런 풍토에서만 사제들간의 일치와 애정이 싹 터올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