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우리 주위의 이념적 정서를 살펴보면 '민주화인사' '인권(人權)지상론자' '민족주의자'로 위장한 친북좌경세력이 정통보수세력을 '반(反)민주' 또는 '민족반역자' 등으로 몰아세우는 양상이 전개되고 있다. 55년 전 '해방공간에서 진행됐던 이념적·사상적 혼란'이 재연되고있는 느낌이다.
해방공간에서의 혼란은 실로 암담한 것이었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지 1년도 안된 1949년 5월20일 국회에서 '남로당(南勞黨)프락치 사건'이 터졌다. 국회부의장 김약수(金若水)를 비롯하여 노익환(盧謚煥) 김옥주(金沃周) 등 의원 13명이 국가 보안법 위반 혐의로 3차에 걸쳐 검거됐다.
그 전해(1948년) 10월20일에는 군(軍) 내부에 침투해있던 '남로당 세포조직'이 반란을 일으켰다. 그것이 이른바 여순(麗順)무장폭동이고, 국보법을 만드는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토벌에 쫓긴 반란군 잔당들은 지리산 태백산 등 험준한 산악지대로 도주하여 유격전을 벌였다. 그들이 바로 '빨치산'이다. 이들은 그 후 약 3년간 남한 사회를 납치·살해·방화·약탈 등 극도의 공포와 혼란 속으로 몰아넣었다. "낮에는 대한민국, 밤에는 인민공화국"이던 세상이 출현한 것은 바로 이 무렵이었다.
이에 더해 북한은 남침(南侵) 전까지 1948년 11월17일 오대산 부근 등지에 침투하여 10여 차례 국지전(局地戰)을 벌였다. 북한의 전면적인 남침은 이 같은 무장세력에 의한 전복활동이 실효를 거두지 못하자 김일성이 최후수단으로 강구한 무력통일 기도였다.
군대도 경찰력도 보잘것없었던 그 무렵에도 일부 소장파 의원들은 "자손만대에 미치는 죄과"라고 비난하며 주한미군 철수를 외쳤고, 주한미군은 1949년 6월 27일 국보법 철폐론자들이 바라던 대로 모두 철수했다. 6·25는 그로부터 만 1년 후 어김없이 찾아왔다.
국회가 1948년 12월 1일 공산주의자들의 활동을 불법화하는 국보법을 통과시키자 '남로당'의 파괴공작은 실로 치열했다. "남북통일을 위하여 일하는 진정한 애국자들을 처벌할 우려가 있다"(申性均) "데모크라시 정신의 모독이다"(嚴道海) "일제하의 '치안유지법'의 재판(再版)이다" 등 무성한 비난이 당시에 생산됐던 국회의원들의 발언이다.
그 후 55년이 지난 이제 우리는 당시와 상황은 다를지라도 여러 면에서 흡사한 세태를 목도하고 있다. 국보법 규탄 목소리도 그때 듣던 것과 똑같다. 서울이 인민군에 의하여 점령되자 '국보법 위반 의원'들은 형무소에서 풀려나 월북했다. 그러나 그들은 북(北)에서 환영은커녕, 온갖 천대를 받다 용도 폐기됐다.
반세기 이전의 과거사에 비추어 오늘 국보법 폐기를 맹렬히 주장하는 이른바 '진보주의자' '주사파' 등 친북(親北)그룹이 설령 저들이 원하는 세상이 찾아온다고 해도 그들의 처지가 어떻게 될 것인지 예단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집권 여당은 긴급히 해결해야 과제들을 산적해 있는 상황에서 무엇 때문에 국보법 폐지에 운명을 거는 것인가. 국보법이 반민주적인 '악법'이라지만, 오늘의 국보법은 지난 1991년 12차례에 걸친 개정이 있기 전의 국보법이 아니다. 누더기나 다름없는 사문화(死文化)되다시피 한 법 아닌가.
집권여당 정치인들에게 묻는다. 그대들은 국보법의 존재로 인해 정당활동 정치활동이 위축되고 불가능한가. 민주통일의 장애물이 국가보안법인가, 아니면 북한의 독재체제 장벽인가. 국가 안위와 관련하여 국보법의 저촉을 받은 국사범(國事犯)이 전체 국민의 0.001%라면, 국보법의 존치로 인해 대다수의 국민이 획득한 것은 이 나라의 명운(命運)이었다.
그런데도 일부 정치인들은 국보법의 개정이 아닌,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국보법이 과거에 남용되었던 사례를 들쳐 내며, 대한민국이 국보법 때문에 마치 암흑천지가 된 것처럼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국보법이 응징한 것은 남한사회에서 소란을 일으키고 이 나라를 전복하려는 파괴분자들의 발호였을 뿐, 애국시민들의 인권과 안전이 아니었다.
우리는 역사로부터 배우는 것이 있는 국민으로 남아야 한다. 시행착오를 통해 오욕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말아야 하는데도 실상 그렇지가 않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현 정권은 국민의 여망을 저버리는 국민의 여망을 저버리는 오만(傲慢)과 독선(獨善)의 역사를 쓰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