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안됐던 일이 새삼…
핵(核)의 역사를 보면 우리는 두 가지 결론을 연역해낼 수 있다. 첫째, 핵을 가지려면 강국(强國)의 대열에 끼어야 한다. 핵을 갖고 그것을 지킬 수 있으려면 그것을 방어할 국력 또는 군사력을 보유해야 한다. 강국까지는 아니더라도 북한처럼 위협과 엄포로 ‘벼랑 끝 외교’를 할 줄 알아야 버틸 수 있다. 둘째, 강국이 못 되면서 핵을 가지려면 냉전시대의 축(軸)을 따라 줄을 잘 서야 했다. 한때 줄을 잘 섰다가도 냉전의 종식과 함께 줄을 잘못 선 결과로 되면 리비아의 카다피처럼 손을 털어야 한다.
한국은 어느 경우에 해당할까. 물론 우리는 지금 핵보유를 논할 상황에 있지 않다. 그럼에도 이 정도를 갖고 세계로부터 꿀밤을 맞는 형국이 된 저간의 사정을 보건대, 우리는 아마도 줄을 잘못 섰거나 바꿔서 선 경우에 해당하는 것 같다. 핵문제의 핵심은 핵이 누구, 즉 어떤 노선의 지도자 또는 어떤 정권의 수중(手中)에 있느냐다. 세계질서를 장악하고 있는 측에서 볼 때 핵이 우군(友軍)의 수중에 있을 때는 크게 문제시되지 않지만 적대적 세력의 손에 장악됐을 때는 가차 없는 타도의 대상이 되곤 했다.
한국의 ‘별 볼일 없는’ ‘옛날 이야기’가 이제 새삼 도마 위에 오르는 것을 냉혹한 강대국 논리의 잣대로 재단해본다면 한국은 이제 그들의 눈에 더 이상 우군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단적으로 말하면 과거에는 어쩌다 핵을 가지고 ‘장난’을 해도 못 본듯이 넘어갔지만 이제 노무현 정부의 좌향(左向) 노선을 보건대 한 번쯤 경고의 ‘고리’를 걸어두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이제 시작에 불과할지 모른다. 우리가 ‘민족’과 ‘반미’를 내세우려면 대비가 있었어야 했다. 그때 미국, 그중에서도 네오콘들은 노 정권을 가리켜 ‘탈레반’ ‘홍위병’을 거론하기 시작했다. 지금 서울 한복판에서는 세계 최고의 큰손이라는 미국의 캐피털그룹이 국내 대기업 CEO들을 차례로 불러 그들이 투자한 돈의 운용계획을 따지고 있다. 서서히 전주(錢主)행세를 시작하는 것이다. 심상치 않은 일이다. 경제학자 공병호씨는 ‘10년 후, 한국’이라는 책에서 “놀랍게도 한국의 좌향좌를 막는 커다란 힘은 바로 외국인 투자가들에게서 나올 것”으로 진단했다. 경제뿐 아니다. 부시가 재선되면 미국은 안보·동맹 등 대한(對韓)정책을 전면 재검토해 한국과의 관계를 일신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밖' 생각않으면 '외톨이'길
한국의 핵의혹 제기를 복합적 관점에서 보는 견해도 있다. 부시의 네오콘들이 북한핵의 견제를 위해 중국을 동원했을 때 써먹은 논리의 연장선상이다. 그때 딕 체니 등은 “미국은 지금 한국과 일본 그리고 대만의 핵개발 의욕을 최대한 억제하고 있다. 만일 중국이 그에 상응해서 북한을 견제해주지 못한다면 우리 역시 언제까지 한·일·대만을 묶어두기 힘들다”고 중국을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 미국 쪽에서 한국 핵 문제가 불거져 나오는 것은 중국에 대한 일종의 채근이며 시위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번 사태에서 우리가 분명히 깨달아야 하는 것이 있다. 노무현 정권이 밖으로 열려 있는 문을 걸어잠그고 안에서 개혁에 전념하는 것이 그들만의 당위이고 윤리이고 정치라고 치자. 다만 우리가 언젠가 정신을 차려 고개를 들고 밖을 봤을 때 거기에 이미 ‘세계’는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때 노 정권을 통탄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주한독일대사가 한국을 ‘홀로 외로이 서 있는’ 모습으로 그린 것은 한 외교관의 단순한 관찰이 아니라는 것을 머지않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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