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혁을 기치로 내걸고 한국 정치의 장에 당당하게 등장한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가 탄핵 정국 이후 다시 충격에 휩싸여 있다. 노 대통령이 “정부의 진퇴를 걸고 반드시 성사시키겠다”면서 강한 드라이브를 걸어온 행정수도 이전사업이 전면 중단될 수밖에 없게 됐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는 21일 ‘신행정수도의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에 대해 위헌결정을 내림으로써 그 동안 행정수도 이전을 두고 계속돼 온 정치적 논쟁에 마침표를 찍어버렸다. 그러나 이 일을 두고 ‘정부의 충격’을 운위하는 것에는 단지 특정 정권이 추진하려는 사업의 중단만을 의미하지 않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참여정부는 출범 이후 지난 1년8개월 동안 행정수도 이전사업을 핵심 정책으로 내걸고 추진해 왔다는 점에서 무엇보다도 이것이 지닌 정치적 상징성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노무현 대통령(후보)은 지난 대선 때부터 국가 균형발전과 지방분권이라는 정치적 상징의 실천적 과제로서 행정수도 이전 프로그램을 수많은 공약과 함께 제시했으며, 또 상당수의 유권자들이 노무현 (당시) 대통령후보의 이러한 비전을 보고 투표했을 것이라는 점도 인정한다. 바로 이러한 핵심 정책이, 대통령 자리까지 걸렸던 지난번 탄핵심판에서 노 대통령의 손을 들어주었던 바로 그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좌초된 것이다.
출범 당시 비록 소수 세력이기는 했지만 정치적 경쟁관계에 있었던 한나라당에 덧칠된 부패 이미지와 대비시킴으로써 확보할 수 있었던 노무현 정권의 도덕적 우위성은 권력 측근들의 불법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이 정권이 추진하는 개혁정책의 가장 큰 명분이자 수단이었다는 사실에 대해서 아무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참여정부는 지난 4·15총선 이후 신생 열린우리당이 일약 원내 제1당으로 약진한 것에 힘입어 손상된 정권의 도덕성과 개혁 추진의 에너지를 행정부에 이어 입법부도 장악한 다수의 힘으로 보상받을 수 있다는 유혹에 노출돼 있다.
국민은 바로 이러한 권력 상황에서 초래될 수 있는 유혹을 우려하면서, 정부가 정치적 반대파들을 모두 수구 반동으로 몰아버리고 모든 가치를 자신들이 독점하고 있다는 독선주의에 사로잡히지 않기를, 그리고 실시간으로 확인이 가능한 여론마저 우둔한 민중의 속견으로 치부하는 어리석음에 눈멀지 않기를 희망해 왔다. 이유야 어쨌든, 이러한 우려는 임기의 절반도 넘기지 못한 상태에서 벌써 두 차례나 헌법재판소에 신탁(神託)을 해야만 하는 기이한 광경을 통해서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모름지기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치권력은, 그것이 간접적이든 직접적이든 선거 과정을 통해서 성립되며, 또 이러한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그것이 수행하는 정치행위에 정당성을 부여받는 정치 시스템이다. 그렇기는 해도 유권자들이 이렇게 성립된 정치권력에 무소불위(無所不爲)의 전권을 부여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지극히 상식에 속한다. 바로 이러한 상식이 말하고 있는 것은 선거를 통해서 출범한 노무현 정권 역시 그 권한을 거두어들여야 할 지점이 ‘헌법의 테두리’라는 경계선 위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비록 그것이 국민 어느 누구도 반대하지 않는 개혁 정책이라고 해도 그래야 한다는 것은 인류가 근대 이후 확립해 온 법치주의이다.
이 시점에서 참여정부가 제시하여 온 개혁 정책들의 추진 자세와 방법들을 진지하게 숙고해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행정수도 이전 문제에서 보듯이, 야당과 상당수 국민의 반대를 무릅쓰면서까지 밀어붙이려는 내면에는 혹여 국민들로부터 전권을 양도받은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를 말이다. 또, 정부와 집권당이 추진하려고 하는 개혁 정책들이 설혹 아무리 정당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아직은 상상으로만 그려지는 역사와의 감미로운 속삭임에 도취되어 당장 앞에 놓인 국민과의 이성적 대화를 무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말이다.
윤순갑 / 경북대 정치학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