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함께 하시길 빕니다
"남을 판단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판단받지 않을 것이다. 남을 판단하는
대로 너희도 하느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고 남을 저울질 하는 대로 너희도 저울질을
당할 것이다. 어찌하여 너는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도 제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는냐?. 제 눈 속에 있는 들보도 보지 못하면서 어떻게 형제에게
'네 눈의 티를 빼내어 주겠다' 하겠는냐?. 이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 내어라. 그래야 눈이 잘 보여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낼수 있지 않는냐?"
(마 7:1-5)
들보와 티
이 단어가 주는 의미로만 본다면, 들보는 티 보다는 크고 많은 것을 ,
티는 들보보다 아주 작은 흠, 잘못의 의미로 들립니다
그리고 누가 들보나 티가 있다고 할 때 우린 일반적으로 경계없이
누구라는데서 보단 들보인가 티인가 라는 것에 그 의미에 주의하게 됩니다
우리가 이렇게 들보와 티를 단순하게 느끼는 의미에서의 정도로만
생각하거나 알고 있다면 자신의 들보와 티에 더해서 또다른 보이지 않는
들보를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면 이는 또다른 선입관에 따른 편견과 완고함(들보를 지닌 경우)을
주게 되어 더욱 들보을 제거하는데 어려움을 일으키거나 들보가 더욱
커지기 때문입니다
나의 들보가 남에겐 티가 될수 있으며 나의 티가 남에겐 들보가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들보라고 해서 단순히 크고 많음이라는 의미로 생각하기
쉬운데 양적인 의미와 함께 정신적, 영적으로의 의미가 함께 쓰여 집니다
사제의 티가 평신도에겐 들보가 되기도 하며 평신도의 티가 사제들에게
있어 들보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는 영적 진보에 따르거나 믿음의 정도(제한되어 져야 하지만)에 따라
달라 지는데 수도자라면 더욱 평신도와의 비교에 있어 들보와 티의 역설의
차는 크기도 합니다
이러한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제 평신도 모두 경계,의식없이
단순히 충동, 감정,감각에 따라 생각하고 판단해 오고 있지 않는지
생각해 봅니다
교회의 정의라면 눈에 불을 킨 듯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타한 의견들을 아예 무시하기가 일인듯이 자신의 입장만 옳고 내세우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은 교회에서도 신앙적이라는 사람이라는
사람들입니다
정의를 위해선 심판 단죄하는 것에 부끄러워 하지도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동조합니다
교도권과 권위가 있기 때문에 맹목적으로 복종하라고 합니다
아무 이성, 지성,양심의 작용도 허락하지 않고 다만 따라 오라는 식입니다
논제의 잘못을 떠나 그 사람들의 행위는 광신, 미신이며, 우상숭배인데도
단지 같은 입장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진리에 선 사람처럼 서로 감싸고
남을 단죄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그와는 정 반대입니다
가톨릭적입니다, 새로움입니다
진리가 무엇입니까? 진리는 변하는 것입니다 변하면서 변하지 않는것
새로움입니다
매일 매일 매순간마다 새롭게 체험되어야 합니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고 체험했으니 너도 그리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우상을 모시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요
모든 사람에게 새로움을 주시는 분께서 함께 하시고 계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느님의 현존을 더욱 자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내가 생각하고 알고 있던 들보가 티로, 내가 티라고 여겼던 것이
나에게 들보로 있었음을 보게 되기도 할 것입니다
우리의 이러한 동전과 같은 양면성을 지닌 들보와 티를 어떻게 해야
올바르게 인식하고 고쳐 나갈 수가 있을까요?
자기이해에 있습니다
자신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아는 것이 하느님을 알게 되는 것이고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알려면 자기 훈련과 수덕이 따라야 합니다
인내, 희생, 겸손, 믿음, 사랑을 통해 나아가야 합니다
깨어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