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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관 황태병 장학사는 기자와 만나 "이승복 사건과 이에 대한 조선일보의 보도가 역사적 진실임을 법원이 재확인했으니, 이제는 그런 소모적인 논쟁이 없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가끔 '이승복 사건은 사실이 아니지 않느냐'고 묻는 관람객들이 있어요. 그럴 때면 직원들이 당시 주변 정황이라든지 지역 주민들의 증언 등을 들어가며 자세히 설명을 드립니다. 재판과정이나 결과도 말씀을 드리고요. 그럼 대부분 이해하고 돌아가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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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산 가는 길에 들렀다는 유명자(60·여)씨는 "우리 세대와 달리 요즘 애들은 이런 것 봐도 아무 느낌도 없을 것"이라며 "남과 북이 너무 가까워졌다고 안보교육에 무감각해져서는 안될 일"이라고 했다.
"쟤가 아홉 살이었다지." "우리 시집이 꼭 저렇게 초가집이었다니까."
관람객이 점점 많아지면서 기념관 안은 한결 활기를 띄었다. 기념관 초입에 서있는 이승복군의 동상과 그 옆 이승복군의 생가를 재현한 곳은 관람객들의 단골 사진촬영 코스였다.
전시실 본관 입구에는 이승복 사건과 관련된 조선일보 등의 신문 스크랩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관람객들은 대부분 '이승복 사건'이 역사적 진실임을 의심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기자가 다가가 28일 법원의 판결내용과 그 배경을 설명하면 모두 금시초문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40대 여성은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일곱 마디를 어린 애가 했는지 확인할 수는 없지만 나름대로의 항거를 했으니까 그렇게 참혹한 일은 겪은 것 아니냐"며 "역사적 사실인 사건 자체를 부정하려는 얘기는 이해가 안된다"고 말했다.
낮 12시쯤 10여대의 관광버스가 기념관 주차장에 들어오더니 한 무리의 학생들이 쏟아져 나왔다. 수학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는 충남 천안의 C정보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이었다. 기념관 앞 잔디밭에서 도시락을 먹은 학생들은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기념관 안으로 들어갔다.
이 학교 문모(58) 교사가 "이승복이 누군지 아느냐"고 묻자 "몰라요"란 대답이 주를 이뤘다. 한 학생이 "공산당이 싫어요잖아"라고 소리치자, "그럼 북한군이냐"는 다른 학생의 질문이 이어졌다.
한 학생은 기자에게 "(이승복 사건)그 이야기 코미디에서 웃자고 하는 개그 아니냐"며 진지하게 묻기도 했고, 대부분 학생들이 "간첩이 어린 아이를 죽였다는 것은 거짓말 같다"고 했다.
기념관의 황 장학사는 이런 학생들의 반응에 황당해하면서도, "방문하기 전에 이승복 사건에 대해 한 마디라도 사전 교육을 한다면 학생들이 좀더 효율적인 관람을 할 수 있을텐데"라며 아쉬워했다.
그는 또 "과거의 반공교육을 다시 하자는 것이 아니라, 이승복 사건 같은 참혹한 역사를 인식한 상태에서 정부가 시대 변화에 맞는 통일교육을 실시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1982년 10월에 개관한 이승복기념관은 1980년대 중반 70만명에 달하던 연간 관람인원이 2000년대 들어 30만명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기념관은 이승복군과 가족들의 유품 및 관련자료 등을 전시하고 이승복군의 집과 다니던 학교도 그대로 재현돼 있다. 한국전쟁 당시 전투장비와 북한 관련 자료 등도 볼 수 있다. 관람시간은 오전9시~오후6시(동절기 오후5시)이며, 관람 및 주차는 모두 무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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