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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위 있는 생의 마감을 생각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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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산바치) - 품위 있는 생의 마감을 생각하며
병동에서는 자주 심폐소생술을 시행한다. 갑자기 심장이 멎거나, 호흡이 곤란해지면 심장마사지와 기계호흡기를 연결하고 심장근육을 빨리 뛰게 하거나, 분비물을 흡입해 냄으로써 다시 소생시키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DNR(Do Not Resuscita - tion)이란 심폐소생술을 하지 않겠다는 동의서도 있다. 말하자면 마지막 심장마비가 와도 대응하지 않고 그냥 돌아가시게 한다는 동의서인 것이다. 심폐소생술로 다행히 다시 정상적 생활을 하는 분들을 보면 정말 감사하고 이를 위해 애쓴 의사와 간호사, 보호자들이 참으로 존경스럽다. 하지만 어떤 경우 갈비뼈가 부러지면서까지 소생술을 했으나 의식이 없는 채 몇 개월 살다가 결국은 돌아가시는 경우를 보게 되면 그렇게까지 적극적인 대응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가 하는 의문이 생기는 것이 솔직한 심경이다. 그런 상황을 접할 때면 가족에게 '만약 내가 의식 없이 누워 있게 되면 과도한 소생술을 실시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하고, 진정한 의사 전달을 위한 유언서까지도 생각하게 된다.
문제는 DNR을 받는다 해도 그 이후가 문제다. 아마 이 제도가 처음 도입하게 된 동기는 물론 과도한 경제적 부담을 줄이고자 함도 한 이유이겠으나, 의식 없는 채로 기계에 의지하다 생을 마감하는 것에 대한 인간적 저항의 작은 몸짓에 기인한 것이 아닌가 한다.
심지어 이런 분들을 일컫어 "DNR"라고 부른다. 다시 말해 더 이상 이름도 성별도 질병명(멀지 않은 과거에 환자를 질병명으로 부르던 때가 있었다)도 없는 DNR인 것이다.
DNR에 대한 의학적, 윤리적, 사회적 문제는 너무 복잡해서 미약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과연 무엇인지 안타까울 뿐이다. 다만 하느님 품으로 돌아갈 때를 기다리는 한 영혼임을 인식하며 잘 보낼 줄 수 있는 마음가짐을 접지 않는 일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곱고 아름다웠던 단풍도 낙엽이 되어서 흙으로 되돌아가는 계절, 지금 살아있는 나도 너도 언젠가는 생을 마감해야 하는 인간의 한계와 죽음을 묵상하는 위령성월이다. 생의 마감을 두려워하지 않고 죽음을 담담하게 맞을 수 있도록, 품위 있게 삶의 마지막을 보낼 수 있도록 해주고 싶다. 너무 힘들고 어려웠던 삶이었겠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행복했던 기억을 안고, 웃으면서 이 세상을 떠나서 주님 품안에 편안히 안길 수 있도록 그들 한분한분의 이름을 기억하면서 기도한다.
<김시현·마리아 / 삼성의료원 간호과장>
기쁨과희망사목연구원 11월호 후원회 소식지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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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호 | 제목 | 등록일 | 작성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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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3901 | 모든 성인 대축일 | 2004-11-01 | 김근식 |
| 73900 | 현장 증언 <1975년 4월 9일>을 소개하며 | 2004-11-01 | 기쁨과희망사목연구원 |
| 73899 | 품위 있는 생의 마감을 생각하며 | 2004-11-01 | 기쁨과희망사목연구원 |
| 73898 | 학생이 봉사활동으로 시간을 뺏길 수는 없지요? | 2004-11-01 | 기쁨과희망사목연구원 |
| 73897 | 작은 행위의 시작에서 - 산을 옮길 만한 믿음으로 | 2004-11-01 | 기쁨과희망사목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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