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5일 (일)
(녹) 연중 제30주일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자유게시판

103위 성인전 25, 聖 남이관 (세바스티아노 1779~1839)

스크랩 인쇄

신성구 [xhak59] 쪽지 캡슐

2004-11-17 ㅣ No.74825

聖 남이관 (세바스티아노)은 명망 높은 양반 가문의 후손으로 일찍이 입교한 부모에게서 4형제 중

 

막내로 태어 납니다. 일찍이 모친을 여의였지만 천주교에 열심하신 아버지의 영향으로 남명혁은 신앙을

 

본 받으며 성장 하는데 1801년(신유박해) 박해가 일어나자 아버지 남필용은 붙잡혀 혹독한 고문에도 

 

끝내 배교를 거부하자 강진으로 유배되어 그곳에서 생을 마감 합니다. 당시 聖 남이관(세바스티아노)는

 

18세에 열심한 천주교 집안 조증이(바르바라)와 결혼하여 슬하에 아들하나를 두었으나 곧바로 잃는

 

슬픔과 함께 박해를 피하기위해 처가에 숨어 들지만, 결국 붙잡히어 모진 고문 끝에 경상도 단성(丹城)

 

으로 귀양을 가게 됩니다. 남이관(세바스티아노)은 귀양지에서 자녀를 갖고자 하는욕망으로  어느 처녀

 

를 첩으로 두어 교리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고 지내기도 하는데, 하지만 나이 50에 중병에 걸리자 마침

 

이웃 지방에 귀양온 교우로부터 교리를 배우면서 첩과도 헤어지고 대세를 받은 뒤  다시 열심한 신앙생

 

활을 하게 됩니다. 그는 나이 50이 넘도록 무려 30년 동안 귀양 생활을 하다가 1832년에야 풀려 납니다

 

귀양살이에서 풀리자 그는 정하상(외척)과  더불어 신부를 영접하는 일에 위험을 무릅쓰고 다시 열과

 

성을 다 합니다. 마침내 그들의 노력으로 1833년 말 중국인 영항덕 신부가 입국하고, 유 신부로부터

 

세바스티아노란 세례명으로 영세하고 견진까지 받습니다. 남이관은 유 신부를 위해 모든 업무중에도

 

기도와 신경을 빠뜨리지 않고 열심을 다 합니다. 그후 유 신부가 본국으로 돌아가자 남이관은 아내와

 

딸과 함께 거처한 집을 한양에 마련하여 지내오다, 기해박해(1839)가 시작하자 그는 교회의 명망가로

 

신변에 닥칠 위험을 예측하고 한양을 떠나 진천을 거쳐 이천으로 피신하는데, 그해 6월에 포졸이

 

남이관을 체포하러 왔지만 잡지 못하고 그의 부인과 15세의 딸만을 잡아 갔는데  집안에서 많은 성서,

 

성화, 성상이 발각되어 모두 압수 됩니다. 한편 시골로 피신한 남이관은 장차 당할 치명을 기도로서

 

예비하며 마음의 준비를 합니다. 결국 배교자의 안내를 받은 포졸들은 8월10일 이천고을 금죄에서

 

남명혁을 체포하여  한양으로 압송합니다. 포장은 그가 범상한 천주교인이 아님을 알고 즉시 형조로

 

이송했고 이어 김제준(聖김대건 신부 부친)과 함께 의금부로 보내져 여기서 유진길, 정하상등과 함께

 

국문을 받습니다. 이튿날, 8월13일 국청 심문에서 그는 부친으로 천주학을 배우게 되었으며 십계등,

 

교리서의 요지가 심히 좋아서 아내와 함께 봉교 하게 됨을 상세히 자백합니다. 선교사 영접에 관하여

 

그는 천주교가 널리 퍼질 수 있어 다행한 일이며, 또한 나라에서 천주교를 금해서는 안될 이유를......

 

“나라에서 금하시는 바는 도의 본질을 살피지 아니하신 것이니, 제가 본 바로는 스스로 옳다고 하는

 

까닭 이올시다. 대저, 부모의 명령도 옳은 것이 있고, 옳지 않은 것이 있는데 나라에서 금하는 영도

 

또한 마땅히 옳은 것도 있고, 옳지않은 것도 있을 것이오니 나라에서 그 옳고, 옳지 않은 것을

 

바르게 분별하여 금 했다면 제가 어찌 이 지경에 이르렀겠습니까?”

 

이어서 남이관은 천주교가 옳다고 생각되는 두 가지 사실을 구체적으로 지적합니다 .

 

“즉 하나는 천지의 주제를 존중하는 것이오. 또 하나는 사람 사랑 하기를 자기 몸 같이 하는것 입니다.”

 

남이관은 의금부에서 무수한 곤장과 주리를 비트는 등, 이틀에 걸쳐 심문을 끝낸 국청은

 

남이관에 대해, 그 정절이 심히 흉악하나 유가(유진길)와 정가(정하상)와는 조금 다르다고

 

결론하고 형조로 돌려보내 의법 처단키로 합니다.

 

드디어 8월15일 형조에서는... 남이관은 사학을 강습하여 일심으로 고혹하여 죽어도 뉘우치지 아느니

 

서소문 밖에서 부대 시참에 처한다고 결안 합니다. 형장으로 가는 수레를 타게 될 즈음에 남이관은

 

환희 용약하며 한 군사에게 옥중에 있는 자기 아내에게 전해 달라고 부탁 합니다.

 

“동일동사(同日同死)하자 했더니,  이는 못해 동지동사(同地同死)합시다.”

 

음력 8월19일 60세의 나이로  참수 치명 합니다.

 

...3개월 후  아내 조 바르바라도 서소문 밖에서 참수 치명 하니 비록 동일동사는 못했어도

 

동지에서나마 ‘치명’하자는 그의 소원이 성취 됩니다.       끝.

 

다음은 聖女 조증이(바르바라)편 입니다.



151 35

추천 반대(0) 신고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