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6일 (월)
(녹) 연중 제30주간 월요일 아브라함의 딸인 이 여자를 안식일일지라도 속박에서 풀어 주어야 하지 않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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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위 성인전 26, 聖女 조증이 (바르바라 1781~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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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구 [xhak59] 쪽지 캡슐

2004-11-19 ㅣ No.74944

聖女 조증이(바르바라)는  명문가인 양근땅 조동섬(유스티아노)의 후손으로 아버지 조 프란치스코의

 

딸로 태어나 1801년 16세에 남이관(세바스티아노)과 혼인하여 4년만에 아들을 낳았으나 곧 잃습니다.

 

곧바로 신유박해(1801)가 터지며 다시 아버지, 어머니를 잃는 슬픔을 당합니다. 또한 남편(남이관)도

 

잡혀 경상도 단성으로 유배되어 떠나자 , 남편도 없이 혼자 집에 남아 있을수 없게되자, 경기도 이천

 

친정 집으로 돌아가 어린 동생과 같이 지냅니다. 하지만 조증이는 신부와  신자들과 교류가 끊기게되자

 

잠시 냉담을 하지만. 30세가 되어 한양으로 올라온 그녀는 신자 친척집에 머물면서 다시 열심한

 

신앙생활을 하게되는데,  예전 허송세월을 깊히 뉘우치며 이를 선행으로 보충하며 열심히 살아 갑니다.

 

또한 그녀는 친척 정하상 (바오로)이 북경으로 선교사를 모시러 가는데 필요한 여비를 보태기 위해서도

 

열과 성을 다합니다. 1832년에는 마침내 남편이 귀양지에서 돌아오자 그녀는 남편과 함께 신자들을

 

위해 거처를 마련하고  1833년에 입국한 여항덕 (余恒德 빠치피코)신부 복사를 서면서 余 신부님이

 

본국(중국)으로 돌아가실 때까지 정성껏 모십니다.  3년후 유신부가 본국으로 돌아가자, 다시 그는

 

모방(Manbant) 신부, 샤스탕(Chastan)신부, 앵베르(Imbert) 주교를 그의 집에 영접해 모십니다.

 

또한 그의 집은 교우들이 와서 기도하고, 고백하고, 미사에 참례하는 공소로서 역을 다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합니다. 그러면서도 조 바르바라는 기도와 묵상 중 교우들에게 늘 입버릇처럼...

 

“만일 박해가 일어나면 죽을 터이니 천주교의 영광을 현양하고 우리 영혼을 구하기 위해  고통을 참아

 

받을 마음의 준비를 합시다.” 이러한 마음은 그녀의 행동과 말이 일치함을 볼 수 있습니다. 기해박해가

 

한창일 때 박해를 피해 남편은 시골에 숨어 들었지만, 조 바르바라는 딸과 함께 있다 붙잡힙니다.

 

그때 집안에서 많은 성서와 성물이 발각되어 교우란 사실이 여실이 드러나자.곧바로 심문에 들어가는데

 

포장이 조 바르바라의 주리를 틀게하고 "배교해라, 그리고 가장(家長)이 간 곳과  같은 교우들을 대라."

 

고 위협하지만, 조증이는 남편의 피난처와 교우들의 이름은 물론 자신의 이름조차 밝히지 않고 또한

 

신앙을 배반할 생각이 조금도 없다 합니다, 그녀에게 20회 이상이나 고문을 가하지만,  조 바르바라는

 

“만 번 죽어도 나는 천주를 배반할 수 없고 또 내 남편이 어디 숨어 있는지 알지도 못합니다.” 말합니다.

 

하느님을 향한 끝없는 사랑과 충성으로 비밀을 지키자 그녀는 무수한 곤장질과 주리틀림을 당합니다.

 

몇 주일에 걸쳐 조증이는 다섯 번이나 같은 문제로 문초를 당합니다

 

“죽든지, 그렇지 않으면 네 교를 배반하고 교우를 대든지, 두 가지 중에 한가지를 택해야 할 터이니

 

잘 생각해 보아라.”....이에 조 바르바라...

 

“잘 생각해 보았습니다. 차라리 만 번 죽을지언정 죄를 하나도 범할 수 없습니다.”

 

굽힘 없이 당당하게 진술하자 포장은 그를 다시 옥에 가두게 하지만, 포졸들은 제멋대로 끌어내어

 

사사로이 수차례나 박해를 저지릅니다. 그 사이에 남편 남이관이 이천에서 잡혀 서울로 압송되어

 

옵니다. 그리고 불과 10일만인 8월19일 아내에게 비록 동일 동사는 못할지언정 동지 동사는 하자는

 

유언을 남기고 남이관(세바스티아노)이 먼저 순교를 합니다. 조증이는 모진 고문으로 온몸에서는

 

고름이 흐르고 상처투성이로 이제는 더 이상 형벌을 가할수 있는 곳이 없게됩니다. 그러나 형조로

 

이송된 후에도 몇 차례나 곤장을 더 맞고서야 비로소 사형 선고를 받았습니다. 사형 집행 일이 되자

 

옥에 갇혀 있던 모든 신자들이 그녀와 함께 있을 수 없게 된 것을 슬퍼하자, 조증이 바르바라는

 

사형장에 나가기 전에 둘러 쌓인 신자들을 향하여 애정과 신앙이 넘치는 말로 위로하며..

 

"교형, 자매 여러분! 우리가 살 곳은 이곳이 아닙니다, 천주께서 마련하신 저 천국이야말로 우리가

 

영원히 살 곳입니다." 이렇게 굳건한 신앙으로 천주님을 증거 할수있도록 그들의 용기를 북돋아 줍니다.

 

마침내 형장으로 떠나면서 환희용약(歡喜勇躍)하며 형장으로 향 합니다.

 

그는 옥에 갇힌지 6개월, 동료교우 5인과 함께 ‘동지동사 (同地同死) 하자,’는 남편의 예언대로

 

서소문 밖 형장에서 1839년 12월 29일... 聖女 조증이(바르바라) 나이 58세를 일기로 순교 합니다. 

 

끝.

다음은 聖 박종원(아우구스티노1792~1839)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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