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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글 쓰기 전에 반성 좀 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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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민 [kjm_34] 쪽지 캡슐

2004-11-19 ㅣ No.74947

   직접 글을 쓰지 않고 외부에서 퍼온 점 양해 바랍니다. 그러나 여러분도 한번쯤 읽어 보시면 도움이 되실 것 같아서 올립니다.

   글쓴이가 어떤 생각으로 이런 글을 썼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글 중간에 나오는 '집권층'이나 '언론운동진영'이나 '불도장 찍는 이들'에 대한 유감의 표현일 수도 있고, '유력 언론사' 소속 언론인의 궁색한 변명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글쓴이는 매우 중요한 사실 하나를 지적했습니다. '낙인'이 바로 그것입니다. 고해실에서 해야 할 얘기겠지만, 저도 살면서(그래봤자 20년밖에 안 됐지만) '낙인' 참 많이 찍어댔습니다.

   여러분 중에는 신학적 지식 부족으로 비판이 곤란해지자 '이 마리아쟁이 사탄'이라고 우리를 욕하는 일부 개신교도 혹은 목회자들에게 시달린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요새 주한 미국 대사관에서 개설한 Daum 카페 'Cafe USA'를 자주 들릅니다. 그러나 여기는 힐 대사님의 본래 의도에서 벗어난 지 오래입니다. 역시 (친미와 반미를 막론하고)'불도장 들고 설치는' 양반들 때문입니다.

   여기 굿뉴스도 나아진 게 없는 것 같군요. '왜 옳은가' 혹은 '왜 잘못됐나'를 말하기보다는 '당연한 거 아니냐' 혹은 '잘못됐으니 잘못됐지, 이 수구/빨갱이 ▒▒▒(욕설)'이라고 얘기하는 분들, 그런 방법이 쉽기야 하겠지만 피아 양쪽의 이미지를 모두 망가뜨리는 효과만은 제가 인정하겠습니다(정확히 말하면 이미지 초토화인가요? ㅋㅋㅋ).

   '왜(Why)?'는 말하지도 않고 무조건 내 생각이 진리라는 분들 반성하십시오. 6하 원칙, 굳이 지키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만 '왜?'는 확실히 해 두시길 바랍니다. 그것만큼은 10분을 생각하든 1시간을 생각하든 확실히 해 두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상대가 반문하면 가능한 모든 인내심을 동원해서라도 일일이 답해 주는 것이 예의라고 봅니다. 여기 있는 글들 중에도 '왜?'라고 묻고 싶은 글들이 산더미 같습니다.

   아래 글을 읽으시면서 반성해 봅시다. 신도같지 않은 신도가 작별 인사 드립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길 빕니다.

 

[광화문에서/허엽]‘낙인’이 일상화된 세상
 
   열린우리당이 국회에 제출한 신문법안이 논란을 빚으면서 기자는 관련 토론회와 TV 대담에 몇 차례 나선 적이 있다. 토론회 주최측은 법안의 문제점을 지적해 온 동아일보 기자의 말을 듣고 싶어 했고, 기자도 문제점을 공유할 수 있는 자리라는 생각에서 참석했다.
   그런데 토론회 이후 기자와 다른 견해를 가진 언론운동진영 등에서 나오는 뒷이야기가 한결같다.
   “사주의 대변인 같다.” “사주의 권리를 보호하려 한다.”
   사주를 만날 이유도 없고, 그럴 기회도 없는 기자에게는 대단한 모욕이다. 그럴 때마다 내 발언을 복기해 보지만 그 비난을 납득하기 어렵다.
   기자는 법안의 문제점으로 신문과 태생적 갈등 관계에 있는 국가 권력이 자의적으로 개입할 소지가 많고, 외국에서는 찾기 어려운 규제가 많다는 점을 지적했을 뿐이다. 더구나 법안의 명분으로 내세운 여론 다양성 확보에 반대할 리도 없다.
   그럼에도 기자의 발언에 사주와 관련한 ‘레테르’를 붙이는 이유는 뭘까. 대학 교수인 한 친구는 기자의 고민을 듣더니 “그런 낙인(烙印)은 편리한 비난의 수단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의 말대로, 낙인은 발언의 취지를 단숨에 왜곡한다는 점에서 편리한 듯하다. 특히 낙인이 개인 차원에 그치지 않고 정치 사회 단체나 언론사를 비난하는 데로 옮아가면 피아(彼我)를 구분하는 편 가르기의 도구가 된다. 정치인들의 투론(鬪論)에 가까운 TV 토론이나 국회의 이전투구에서 보듯, 정교한 논리보다 한마디의 낙인이 훨씬 더 선동적이다.
   집권층과 언론운동진영의 특정 신문에 대한 ‘낙인찍기’는 거의 일상화되어 있다. ‘족벌언론’ 등에 이어 최근 이해찬 총리는 동아일보에 대해 ‘역사에 반역했다’는 낙인을 찍었다. 그는 동아일보의 이마에 ‘사상의 주홍글씨’를 새기려 했던 것일까.
   충청 지역의 언론운동진영도 헌법재판소의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 위헌 결정 이후 어느새 동아와 조선일보에 대해 ‘수도권 이기주의의 첨병’ ‘위헌 결정의 배후’라고 낙인찍었다. 청와대부터 수도 이전 논란을 두 신문 탓이라고 몰아붙인 결과다.
   그러나 낙인의 역사는 실패의 역사다. 중국 문화혁명기 홍위병이었던 선판(沈凡)이 쓴 책 ‘홍위병(Gang of One)’은 당시 10대들이 ‘봉건 잔재’라는 낙인 아래 산더미 같은 책을 ‘감동적으로’ 불살랐음을 증언하고 있다. 독일의 나치 치하 ‘다비드의 별’은 유대인에게 죽음의 낙인이었고, 한국의 현대사에서도 ‘반동’이나 ‘빨갱이’라는 낙인은 영혼과 육체에 대한 사형선고였다.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는 최근 한 신문 칼럼에서 “하나의 원리 또는 범할 수 없는 몇 개의 개념으로 만사를 풀어내는 이데올로기가 사고의 밀도를 낮추며, 밀도 있는 사고와 그것을 뒷받침하는 사회와 문화 없이는 현명한 사회적 선택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낮은 밀도의 사고가 가져올 불행을 지적한 김 교수의 사유에 범접할 순 없으나 그의 말은 기자의 눈과 귀를 잡아당겼다. 단순한 사고와 독선에서 비롯되는 낙인이 일상화된 사회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말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요즘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아무 때나 불도장을 찍어 대는 이들이다. 그 낙인이야말로 그들의 사고(思考)의 수준을 말해 주는 게 아닐까.

 

허엽 문화부 차장 h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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